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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무신, 무림학관을 제패하다-124화 (122/250)

제124화

제124화

“아니……! 애가 한다고 어른이 따라 해요?”

“언제는 네 녀석 스스로 애가 아니라며?”

“칫, 기억력도 좋아.”

티격태격하고 있는 두 사람에게 조용히 다가온 두 사람.

눈을 가늘게 뜬 천무린의 육안에 들어온 것은 다름 아닌 담진과 배단아였다. 그리고 그 모습을 바라보며 의아한 표정을 짓는 것은 송무를 비롯한 생도들이었다.

어엉?

“교, 교관님들?”

아니, 옷소매는 왜 걷는 건데.

악교운까지 옷소매를 걷어붙이는데, 세 사람의 표정은 뭔가 단단히 결심한 듯 보였다.

벙쪄 있는 천무린과 생도들의 모습 뒤로 보이는 그 표정은 흡사.

“……무린이 표정이랑 비슷한데? 우리 패기 직전의 모습이랑?”

“교관님들도 물든 건가?”

“그새 물들어 버렸어.”

송무와 백리후, 백리무영이 아찔하다는 듯 두 눈을 질끈 감아 버렸다.

“그거 알아요? 여러분?”

배단아가 흐트러진 머리칼을 질끈 묶으며 앞으로 벌어질 일이 기대되는지 콧소리를 냈다. 이백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그 물음에 대답했다.

“에? 어떤 거요?”

대체 뭘 하려고.

“징계위원회에서 만들어진 선례는 생도와 후보생뿐만 아니라 교관들을 비롯한 무관 전체 인원들에게 적용되고 해당된다는 사실을요.”

어?

그, 그러니까 그게…….

생도들이 황당하다는 눈빛으로 교관들을 쭉 훑었다.

이 작자들이 설마……?

“맞아요. 여러분이 생각하는 그거. 후후후, 안 그래도 열 받아서 미칠 지경이었는데, 잘됐네요.”

잘되긴, 뭐가 잘돼!

뜨악한 표정의 송무가 어버버하고 있는데, 배단아는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애체로 비치는 두 눈동자 속에는 불타는 의지가 드러났다.

“배 교관님도 꽤나 힘들었나 보군요. 요즘 과중한 업무로 쌓인 게 많긴 했지요. 이참에 아주 잘되었습니다.”

담진이 그 말을 받았다. 진중한 표정의 담진이 허리춤에 있는 검집을 달그락거리기까지 하니 묘하게 소름이 돋아나는 생도들이었다.

아니, 담진마저? 대체 뭐가 잘되었다는 건가.

“두 사람 다 나 들으라고 하는 소리인가?”

뚜둑, 뚜둑.

악교운이 목을 풀면서 한 걸음 나섰다. 그 모습에 생도들이 입을 옴짝달싹하였다.

애들 싸움이 어른 싸움 된다더니, 지금이라도 말려야 될 것 같았다.

그렇게 당장 말리기 위해 발걸음을 떼는데.

“우리 편 이겨라! 짝! 우리 편 이겨라! 짝!”

……말리긴 개뿔, 이 사태를 만든 녀석이 두 팔을 벌려 환영하는 모습을 보자 그만 기운이 쭉 빠지는 생도들이었다.

타앗, 타닥!

그리고 말릴 새도 없이 땅을 박차는 세 교관이었다. 교관들은 마치 자신의 상대가 누구인지 알기라도 하듯 움직였는데.

“아주 그냥 입을 꿰매 버리고 싶었는데 말이야. 어이! 노친네, 어디 한 번 더 지껄여 봐! 그 주둥아리!”

악교운의 거친 음성이 징계원에 울려 퍼지자, 생도들은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표정이 되어 버렸다.

말로만 야차라고 들었지. 당백진 다음으로 냉철하고 냉정하기 그지없었던 악교운이 저렇게 험한 말을 뱉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푸흐하하하! 노친네라니! 와, 저 양반. 그렇게 안 봤는데 말 한번 잘하네.”

천무린이 포복절도하며 바닥을 굴렀지만, 덕유명과 두 장로는 주춤거리는 수밖에 없었다.

악교운은 덕유명을,

담진은 손태각에게,

배단아는 화영조를.

언제 짝까지 맞췄는지 합을 맞춰 움직이는 세 사람은 각자 패고 싶은 이들의 앞에 섰다. 그러나 그 모습에 황당함을 느끼는 것도 잠시, 정신을 차린 손태각이 핏대를 세운 목울대로 소리쳤다.

꽈앙!

진각을 밟아 징계원 전체를 떨어 울린 손태각이었다.

“이 무슨 무례인가!”

부들부들 떨며 목소리까지 떨었다. 이내 핏발이 선 두 눈으로 세 교관을 매섭게 노려봤다.

“감히 네놈들이 하극상을 하겠다는 것인가! 감히! 가암히!”

숨소리까지 거칠어진 것이 얼마나 분노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더럽게 떽떽거리네. 어이, 2장로 노친네. 고혈압으로 뒤로 넘어가시겠어.”

고저 없는 눈빛. 그러나 웃고 있는 입가.

잔뜩 입가를 말아 올린 악교운의 음성에 손태각은 두 눈을 찢어져라 부릅떴다.

정녕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천박한 말투였다.

그러나.

피어오르는 악교운의 기세가 덕유명을 비롯한 장로들에게 전해졌다.

극도의 분노에 달한 손태각을 제외한 덕유명과 화영조는 그 기세에 순간 움찔거렸다.

‘……이, 일개 교관이 펼치기에는 너무 가, 강한.’

특히 악교운과 마주한 덕유명은 심히 당황하며 한 걸음 물러서고 말았다.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가.

도를 넘는 하극상에 맨 정신을 유지하면 그게 되레 이상할 지경이었다.

그러나 더욱 말도 안 된다고 여긴 것은.

덕유명의 기세를 짓누르고 퍼져 나오는 악교운의 기운이었다.

끈적하게 옭아매는 기운은 거미줄에 뒤엉킨 나비의 모습처럼 덕유명의 호흡을 가쁘게 만들었다. 덕유명은 그제야 볼 수 있었다.

자신을 죽이기 위해 다가오는 야차(夜叉)의 모습을.

얼어 버린 덕유명을 바라본 악교운이 히죽 웃는다.

“우리 노친네, 얼어 버렸네? 왜? 막상 해 보려니까 안 되겠어?”

도발하는 음성에 덕유명은 그 어떤 대꾸도 하지 않았다. 아니, 하지 못했다.

꾸구국.

찍어 누르는 압도적인 기백, 아니 기백을 넘은 이 기운은 다름 아닌 살기(殺氣)였다.

넘실거리는 살기에 덕유명의 몸이 옥죄어졌다.

저벅, 저벅.

조금씩 옥죄어 오는 살기에 덕유명은 잠들어 있던 단전에서 기운을 피워 올렸다. 대항하지 않으면 그대로 죽을 것이라는 압박감에.

“등 따시고, 배부르게 산 노친네.”

차가운 음성에 덕유명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십여 년 동안 검이라도 제대로 잡아 본 적이 있나? 입만 번지르르하게 터는 것밖에 못 하는 주제에 왜 이렇게 일을 벌이는지 모르겠군.”

치욕감에 몸을 부르르 떠는 덕유명이었다. 하지만 반박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건 덕유명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닌지.

카가가강!

이제는 검과 검을 맞대는 손태각과 담진이었다. 어느 정도 비등비등한 모습을 보이는가 싶더니,

콰가가강!

종횡무진 베어 가는 담진의 난격에 손태각은 그만 쩔쩔 매야 했다. 늑대의 발톱처럼 표홀하면서도 날카로운 기세는 오랜 기간 검을 내려놨던 손태각에겐 고역이었다.

커다랗게 뜬 두 눈으로 맞서는 손태각의 손발은 금방 어지러워졌고,

서걱! 서거걱!

담진의 기세에 눌린 손태각은 이내 몇 번이나 검격을 허용해야만 했다.

“어, 어, 어떻게…….”

제아무리 검을 내려놨다지만 이만큼이나 차이가 날 수 있는가. 손태각은 오래전부터 장로의 자리를 역임할 만큼 나름 무공에 뛰어난 재능을 가진 이였다.

그런 손태각이 이렇게나 밀릴 수가. 그것도 일개 교관에게.

“무뎌 버린 겁니다. 같잖은 평화에 속아서 날카로웠던 검 끝을 무디게 만든 것입니다. 세월의 흐름에 그저 쾌락만을 추구한 사람과 제 실력이 같다면 오히려 제가 낯을 들 수 없을 만큼 부끄러울 겁니다.”

한없이 담담한 음성, 그것은 검의 끝을 보고자 노력하고 또 노력하여 생도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검술 교관의 자리를 역임하고 있는 사내의 자부심이었다.

또옥, 또옥.

손태각의 온몸 곳곳에서 핏방울이 떨어져 내렸다. 베인 가슴팍과 팔뚝보다 더 쓰라린 곳은 폐부 깊숙이 치밀어 오르는 자괴감이었다.

전투 의지를 상실한 손태각은 두 손을 늘어뜨린 채, 두 눈을 질끈 감아 버리고 말았다.

‘그런가. 옳다고 생각한 방향이 나를 구렁텅이로 빠뜨리고 있었구나.’

파아악!

동시에 배단아는 화영조의 가슴팍을 걷어차 벽으로 밀어붙이고 있었다.

쿠당탕탕!

“쿨럭!”

한 모금의 핏덩이를 내뱉은 화영조였다. 그 역시 흔들리는 두 눈으로 배단아를 바라보고 있었다.

총교관 악교운이나 검술 교관 담진의 무위는 그렇다고 칠 수 있었다. 본래 두 사람의 무위는 사천무관의 창설 당시부터 뛰어났다고 정평이 나 있었기에.

비록 장로들인 자신들을 꺾을 정도는 아니었다고 하나, 세월의 흐름에 따라 자신들은 노쇠했고, 저들은 더욱 강해졌을 테니.

크게 봐주어 납득할 만했다.

그러나.

“대, 대체 자네가?”

“왜요? 이론이나 가르치는 저 따위는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나요?”

단아한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산발을 한 배단아가 애체를 콧등에 바로 올리며 빙긋 미소를 띠었다.

“…….”

화영조는 떨리는 두 눈으로 배단아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녀의 말마따나 그녀는 별 볼 일 없는 수준의 무위를 지녔다.

고작해야 부교관들의 무위, 똑똑한 머리와 이론을 가르치는 실력이 수준급이 아니었다면 결코 정식 교관도 되지 못했을 터.

그런 그녀에게 자신이 밀리다 못해 이렇게 궁지에 몰리다니.

“제가 가르치는 아이들이 제법 독하더라고요. 후후, 저 아이들이 얼마나 독한지 저는 감히 따라가지도 못해요. 그런 애들 앞에서 그냥 놀고먹기가 얼마나 쪽팔리고 창피하던지.”

배단아가 천무린을 힐끗 쳐다보고는 다시금 고갤 돌렸다.

“교관이나 되는 사람이 적어도 쪽팔리면 안 되는 거잖아요. 그렇죠? 화영조 1장로님?”

그 말에 화영조는 더 이상 반항할 의지조차 일으킬 수 없었다.

그 와중에,

어디선가 주먹질과 발길질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퍼억! 퍼억! 퍼버벅!

거침없고, 무자비한 소리였다.

“즈, 즈블! 느, 느그 즐믓흤으!”

잘 들리지도 않는 음성. 편일현이 눈물범벅, 콧물 범벅이 되어서 제발 살려 달라고 애걸복걸했지만,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진량이었다.

그 모습에 구태현과 문호, 이백 역시 뭔가에 이끌린 것처럼 편일현을 밟기 시작했다.

얘, 얘들아?

천무린의 두 눈이 황당함으로 물들어 가는데, 또 어디선가 찰진 소리가 들려왔다.

퍼억! 퍼억!

“스, 슬르즈…….”

애먼 데 무공을 쓰는 것을 꺼리는 송무마저 교관들의 모습에 감격했는지 절대 질 수 없다며 누군가를 두들겨 패고 있었다.

다름 아닌 고우림이었다. 천무린이 팬 것보다 몇 배는 더, 몇십 배는 더 급소를 노리고 두들겨 패는 것이 아주 작심한 듯 보였다.

소, 송무야, 그러다 죽어…….

퍼억! 퍽! 퍼퍽!

떼구르르르.

이미 덜그럭거리는 턱에다가 발길질을 한 백리후에 이어, 발라당 넘어지는 명천의 발바닥부터 무릎까지 잘근잘근 밟는 백리무영이었다.

어? 뭔가 저 움직임들 익숙한데.

아, 기억났다.

내가 애들 팰 때 쓰던 움직임인데?

천무린이 팔짱을 낀 채, 녀석들의 움직임을 살폈다.

제법인데?

학습 능력을 속으로 칭찬하며 흡족해진 표정을 짓는 천무린이었지만, 편일현과 고우림 그리고 명천은 죽을 맛이었다.

가뜩이나 짚인 아혈 때문에 끽소리조차 낼 수 없었다.

그저 의성어에 가까운, 살아 있음을 알리는 것이 전부인 소리로 살려 달라고 빌어야 했다.

이토록 추하게 빌어 본 적이 있을까.

무관에서 제멋대로 살아온 세 사람이었다.

그런 그들이 이렇게 살기 위해 발버둥치는 이유가 무엇일까.

자신들이 믿고 있던 동아줄이 끊어지면 원래 그런 법이다.

와장창!

든든한 뒷배라고 여겼던 장로들이 하나둘 끈이 끊긴 연처럼 힘없이 날아가 벽에 처박히는 모습이 보였다.

어찌나 맞았는지 형체를 알아볼 수도 없는 덕유명의 모습에 잘게 몸을 떠는 편일현이었다.

“아휴, 아주 피떡을 만들어 놨네. 피떡을.”

전부라고 여겼던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는 느낌. 그 상실감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으랴.

“나 참, 애나 어른이나 똑같다니까?”

꼬르륵.

천연덕스러운 천무린의 말투에 편일현은 그대로 혼절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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