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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무신, 무림학관을 제패하다-122화 (120/250)

제122화

제122화

“분하냐?”

천무린이 고갤 돌려 진량과 이백, 구태현과 문호, 송무와 백리 형제에게 시선을 옮겼다.

그의 말에 어떤 반응도 없이 그저 고개를 떨구는 이들이었다.

무엇을 말하랴.

정파 무림이 이럴 줄 몰랐다고, 배신감이 든다고 소리라도 치겠는가.

그들은 그러지 못했다. 아니, 그럴 수 없었다.

그들이 딛고 밟고 있는 이 땅에서 나고 자란 이들이다.

제 얼굴에 침을 뱉는 행동은 차마 할 수 없는 이들이다.

“억울하겠지. 죄를 지은 이에겐 단죄를, 그렇지 않은 자에겐 자비를 보이라고 무관에서 늘 떠들었으니까. 그리고 그게 정파의 자부심이라는 이야기를 들었겠지.”

그 말은 오롯이 생도들에게 향한 것만은 아니었다. 자리에 있는 누군가를 국한하여 말한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아니야. 너희들이 직접 보고 있는 이 민낯이 바로 정파 무림이다. 바로 이게 정파 무림이야. 이걸 보고도 너희가 척결하려는 사도 무림, 마도 무림과 무엇이 다른지 과연 답할 수 있을까.”

비로소 그 자리에 있던 생도들은 느낄 수 있었다.

아무도 말해 주지 않는, 전형적인 약육강식의 세계. 여태껏 사도나 마도와 다르다고 생각했던 정파 무림에 대한 가치관이 산산이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누누이 말했지. 억울하면 강해지라고. 무림맹의 무력대 대주고 나발이고 그 어떤 꿈에도 한계를 짓지 마. 끊임없이 강해져라. 끝없이 강해져. 그래서 어느 누구도 함부로 말할 수 없게! 감히 이야기를 꺼낼 수 없게 만들어라. 같잖은 인맥, 부질없는 정치질. 그딴 것에 놀아나지 말고.”

또박또박 말하는 천무린의 일갈은 모두의 가슴에 화인처럼 새겨져 영영 지워지지 않을 터였다.

“강해지면 억울할 일도, 이런 일을 당할 일도 없다. 강한 자가 모든 것을 가지는 세상. 반대로 강해지면 너희가 베풀 수 있고, 배려할 수 있고, 자비로울 수 있는 세상이니까.”

그렇게 말을 끝맺고는 천무린이 씨익 웃었다.

“보여 줄게.”

저벅, 저벅.

* * *

……징계 수위가 정해진 후, 편일현과 고우림, 명천은 씨익 웃었다.

자원봉사 활동은 꽤 귀찮지만, 악교운 총교관이 직접 건의한 사건치고는 수월하게 넘어갔고, 20은자라는 금전 정도야 그들에겐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액수였다.

“푸흐흐, 꿍쳐 둔 곡료나 마시러 가자.”

“으휴, 귀찮아 죽겠네.”

“다들 고생했습니다. 선배님들!”

그렇게 징계 절차가 끝나고 밖을 나서려는데,

“와! 그러니까 아무리 두들겨 패도 20은자만 내면 된다, 이거지?”

호탕한 목소리와 함께 묵직한 금전 주머니가 징계원 내 허공에 흩뿌려졌다. 그 안에 담긴 수많은 금자와 은자가 무수히 흩날렸다.

촤르르륵!

“그 결과! 겸허하게 받아들이겠습니다. 후후.”

천무린이 흐뭇한 미소로 세 사람과 장로들을 바라보자, 장로들이 대경하며 노호를 터뜨렸다.

“저, 저게 무슨 버릇없는!”

“예비 생도 따위가 이 무슨 망발인가!”

손태각과 화영조가 대노하며 손가락을 들어 천무린을 삿대질했다.

그러나.

그 음성이 채 닿기도 전에 경쾌한 움직임으로 편일현의 코앞에 불쑥 나타난 천무린이었다. 흡사 공간을 접어 버렸다는 착각이 들 만큼 빠른 움직임을 보인 그의 입가에 미소가 감돌았다.

눈을 마주한 편일현에게 보내는 한마디.

“안녕? 선배 새끼.”

“……뭐, 뭣!”

꽝! 휘리리릭! 콰지직!

반문을 하기도 전에 편일현의 턱에 정확히 틀어박힌 주먹으로 그의 몸뚱어리는 그대로 천장에 정수리를 찍었다가 바닥으로 하강했다.

신음 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추락한 편일현의 멱살을 잡더니, 검지와 중지를 들어 아혈을 짚었다.

“뭐야. 나보고 허장성세니 뭐니 나발 불길래 한가락 하는 줄 알았더니, 영 떨거지 새끼였잖아? 이 선배 새끼.”

쏜살같은 그의 움직임에 순간적으로 행적을 놓친 모든 이들이었다. 눈 깜빡할 새에 벌어진 일이라 막겠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눈앞에 경악스러운 일이 벌어지면 순간 인지부조화가 일어나는 법이다. 상황을 상황답게 인지하여야 하고, 영문을 파악해야 하나 이를 이해할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은 찰나였으니.

그래서 인지할 수 있을 만큼 적당한 시간을 줘야 하는 것이 보통의 도리였으나.

천무린은 이를 기다려 주지 않았다.

혼절하기 직전의 편일현을 그대로 허공에다가 다시 던져 버렸다.

“억!”

콰당탕탕!

아혈이 짚인 데다 의식까지 흐려져 가는 편일현은 자신이 어떤 상황인지 파악할 수 없어 겨우겨우 고갤 들었다.

그리고 마주한 네 쌍의 눈빛.

“선배들! 두들겨 패! 많이 두들겨 패도 20은자래! 내가 다 쏠 테니까 두들겨 패! 낄낄낄!”

낄낄거리는 천무린에게 진량은 처음으로 그에게 엄지를 치켜세웠다.

“오늘 후배 돈 제대로 한번 탕진해 보자!”

“낄낄! 그 기세 아주 좋아!”

“히이이익!”

퍼억! 퍼버벅!

이글거리는 네 쌍의 눈빛에 갇힌 편일현은 어디서 날아올지 모르는 무자비한 구타에 두 눈을 질끈 감은 채 몸을 웅크리는 것이 전부였다.

“이, 이! 미친 새……!”

나동그라져 후배들에게 마구 구타를 당하는 편일현을 바라본 고우림이 두 눈을 부릅뜨며 천무린이 있는 자리를 향해 손가락질을 하려는 찰나,

훅!

“아아, 아쉬웠어? 너 먼저 아니라서, 이 선배 새끼야?”

땅에 꺼진 듯 천무린의 움직임이 섬전처럼 사라졌다가 고우림의 코앞에 당도하였다. 뭐라고 입을 열려는 고우림의 두 눈동자는 바로 아래에서 치솟아 오르는 손바닥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꽈앙!

“밥 먹을 때 침 좀 흘려야 될 거야.”

내공을 실은 장력이 턱에 적중하자, 그대로 아래턱이 주저앉으면서 박살이 났다. 동시에 힘없이 주저앉는 고우림이었지만, 천무린은 무자비하게 가슴팍과 명치, 옆구리, 무릎을 차례대로 후려쳤다.

“점창에는 무려 네 명이나 있잖아. 그러니까 내가 손을 덜 써도 충분히 많이 팰 거란 말이야? 근데 종남엔 송무밖에 없어. 그래서 대신해서 내가 좀 더 팰 거야. 억울하지 않지?”

빠각! 빠가각! 빠각!

“끄으으으으아아!”

하나하나가 뼈를 으스러뜨릴 만한 가공할 힘이 담겨 있었기에 그 충격은 태어나서 한 번도 겪어 본 적 없는 끔찍한 고통이었다.

“아오, 시끄러워.”

편일현과 같이 아혈을 재빨리 짚은 천무린이 나직이 입을 열었다.

“소리 지르면 안 되지. 아까 나보고 뭐라 그랬더라? 소리 지른다고 해서 누가 도와줄 것 같으냐고? 그러게. 소리 지른다고 해도 아무도 안 도와주네? 선배 새끼야. 낄낄낄.”

몇 차례 두들긴 천무린은 고우림이 채 의식을 잃기 전에 멱살을 잡았다. 그러고는.

“기절하면 단전 부숴 버린다?”

“히, 히이익!”

기절하고 싶어도 기절조차 제 맘대로 하지 못하는 동안, 고우림은 어느새 허공을 날아 땅바닥을 몇 차례나 굴러야 했다.

그리고 그 방향은.

“무, 무린아!”

송무가 있는 곳이었다. 어쩔 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있는 송무였다. 그 모습에 천무린이 쯧, 하고 혀를 차며 한 소리를 했다.

“마음 약한 소리 하면……!”

아니, 하려고 한 순간.

빠각!

어?

어느새 들린 송무의 검집이 고우림의 옆통수를 후려치고 있었다.

“이렇게 했던가? 손맛 좋은데? 왜 무린이가 우리를 그렇게 팼는지 알 것 같기도 하고……?”

커흐흠. 이 새꺄, 그걸 그렇게 받아들이면…….

“히이익! 이런 미친 새끼들!”

다음은 자기 차례라는 것을 인지한 명천은 어느새 걸음을 옮겨 1장로인 화영조의 뒤로 몸을 숨겼다.

“자, 장로님! 저, 저 미친 새끼 어떻게 좀!”

겁에 질린 명천의 모습에 화영조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이 무슨 난장판이란 말인가.

본인이라도 정신을 차려 이 상황을 진정시켜야 한다고 생각한 화영조였다.

“이노오오옴!”

노호를 터뜨리며 당장이라도 천무린을 제지하기 위해 기세를 폭사하려는 순간.

파앗!

불쑥 나타난 천무린의 그림자가 화영조의 눈앞에 드리워졌다. 경공을 펼쳐 어느새 그의 눈과 마주하고 있는 천무린은 허공에 머물러 있었다. 바람 같은 그의 인기척에 화영조는 눈썹을 치켜떴다.

‘내, 내가 움직임을 느끼지 못했다고?’

아니, 그럴 리 없다. 일개 생도 따위에게!

화영조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손끝을 날카롭게 세워 금나수를 펼쳤다.

허공에 떠 있는 천무린의 발목을 낚아채 움직임을 봉쇄하고 그대로 땅에다 메다꽂으리라.

그리 생각하며 펼친 금나수는 정확하게 천무린의 발목을 향해 뻗어 갔다.

파악! 휙!

“이놈! 잡았……!”

흐릿해지는 천무린의 형상. 물결처럼, 실바람처럼 사라지는 천무린의 모습에 화영조의 두 눈이 찢어져라 부릅떠졌다.

분명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거품처럼 사라지다니.

이게 대체 무슨……?

그렇게 놀라 속으로 경악하고 있는 와중에,

쿠당탕탕!

푸화아아악!

화영조의 뒤에 숨었던 명천이 어느새 허공에다 피분수를 뿜으며 백리무영과 백리후의 앞으로 포탄처럼 튕겨 날아가고 있었다.

“안 두들겨 팰 거면 나 줘도 돼. 아직 손도 덜 풀렸거든. 낄낄.”

백리무영과 백리후는 그런 천무린의 태연한 모습에 대답도 않고 날아온 명천을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대꾸조차 없는 걸 보아하니, 제법 쌓인 게 많은 듯 보였다.

그렇게 징계원 내부는 난장판이 되어 갔고, 더는 그 모습을 두고 보지 않겠다는 듯 크게 노한 이들이 있었다.

“이노오옴!”

“감히 누구 앞이라고 이리 방자하게 날뛰는 것이냐!”

“가아아암히!”

침묵하고 있는 화영조의 뒤로, 대장로 덕유명, 2장로 손태각이 기세를 터뜨리며 징계원 전체를 중압감으로 찍어 눌렀다. 짓누르기 시작한 그 기운은 오롯이 천무린을 향한 것이었지만, 다듬어지지 않은 기운은 주변 모든 이들을 주춤하게 만들 정도였다.

“크, 크윽!”

“읏……!”

“여, 역시 대장로님과 2장로님!”

장로라는 직함이 거저 얻은 것은 아니라는 듯, 일신의 무력을 뽐내는 두 사람의 모습에 대다수가 걸음을 물렀다.

그리고 일부 위원들과 참관한 이들 중 장로들의 편에 섰던 이들은 고소를 머금었다. 그들의 시선이 천무린에게 닿았다.

한낱 생도에 불과한 주제에.

제아무리 삼대 무관 비무대회에 명성을 떨친 우승자라고 할지언정.

“감히! 우리들이 보는 앞에서 이와 같은 대죄를 저지르다니! 이 같은 일을 내 가벼이 넘긴다면 세상천지가 사천무관을 두고두고 비웃을 것이오!”

덕유명의 근엄한 목소리가 공간을 크게 떨어 울렸다. 보는 이들로 하여금 절로 움찔거리게 만드는 노호였다.

무시무시한 압박감에 천무린 역시 낄낄거리는 웃음을 멈추고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을 따름이었다.

그때.

저벅.

“……지금 뭘 하는 겐가?”

저벅.

“……뭘 하는 거냐고 물었네.”

저벅.

“뭣들 하는 것이냐고 내 묻지 않는가!”

천무린과 생도들을 뒤로하고 장로들을 마주 보며 걸어 나오는 세 사람.

“무엇을 하다니 보시는 바와 같소이다.”

총교관 악교운.

검술 교관 담진.

역사 교관 배단아.

담담히 장로들이 내뿜는 기운과 직면하는 세 사람이었다. 그리고 한 걸음을 나선 악교운이 나직이 입을 열었다.

“……그만합시다. 쪽팔려 죽겠으니까.”

그 말에 장로들의 표정이 대번에 일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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