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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무신, 무림학관을 제패하다-121화 (119/250)

제121화

제121화

덕유명이 의기양양한 미소를 띠며 팔짱을 낀 채 다리를 꼬았다. 사천무관 내에서 덕유명은 어느 누구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위치에 있었다.

대장로 덕유명.

명문 정파 점창파의 장로 출신인 점도 한몫했거니와, 사천무관 창립 당시 누구도 눈여겨보지 않았던 때에 자진해서 빠르게 움직여 종남과 화산의 화영조와 손태각을 이끌었다.

거기다 운도 따랐는지 자파에서 세 제자를 끌어왔다.

다름 아닌 편일현과 고우림, 명천, 이 세 사람이었다.

사천무림 내에서 기린상단과 청룡표국 다음으로 가장 부유한 가문의 자제들.

아니나 다를까, 덕유명의 정치질과 세 아이의 미래를 보장해 주겠다는 설득으로 수많은 거금을 지원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오랜 기간 공고히 해 온 자리가 바로 사천무관 내 대장로라는 자리였다.

공든 탑, 철벽같이 든든한 이 탑은 자신이 본 파로 복귀하였을 때 더욱 높은 자리로 올라가게 만들어 줄 발판이자 동아줄이었다.

그런 덕유명의 시선이 진량에게로 향한다.

‘후후, 진궁의 아들이라고.’

점창의 새로운 주인이 된 진궁이었지만, 덕유명은 개의치 않았다. 아니, 오히려 좋았다. 이를 빌미로 진궁을 더욱 압박할 수 있으니까.

진궁이 차지한 점창은 반푼이일 뿐이었으니까.

전 장문인 관평도를 폐관동에 가둔 진궁을 따르는 점창의 수뇌부는 절반도 채 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덕유명에게 진량의 뒷배경이 눈에 들어오기나 하겠는가.

그와 같은 상황은 1장로 화영조와 2장로 손태각도 마찬가지였다. 종남의 송무가 제아무리 도량진인의 제자라고 할지라도 장문인이 되기에는 손색이 있었고, 화영조 역시 장로 출신이었다. 오히려 입김으로 따지면 화영조가 도량진인보다 더 셌다.

백리무영과 백리후 역시 뛰어난 재능을 선보이고 있었지만, 완전히 인정받기 전까지는 속가 제자에 불과하였으니 손태각으로서는 이보다 다루기 쉬운 이들이 없었다.

그런 상황이다 보니 덕유명으로서는 지금의 사태가 그리 심각해 보이지 않았다. 늘 그렇듯, 늘 그래 왔듯 유야무야 넘기면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물론 그런 안일한 마음이 큰 화를 불러오게 될 터였지만.

“5기수 편일현, 구타와 폭언을 행한 이유를 명백히 고하라. 한 치의 거짓이라도 있으면 엄히 벌할 것이다.”

무게감 있는 목소리가 징계위원회를 압도하였다. 장로가 괜한 허명은 아니었는지 손태각의 음성이 주변의 공기를 짓눌렀다.

그것이 비록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예! 먼저 이와 같은 잘못을 저질러 많은 분들께 누를 끼쳤습니다. 죄송합니다.”

죄스러워하는 목소리에다 글썽거리는 눈가까지.

보는 이로 하여금 누가 봐도 동정심을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폭언보다는 직언에 가까운 이야기, 구타보다는 가벼운 얼차려였습니다. 사실 그조차도 하면 안 되는 일이었으나, 아무래도 후배 기수들이 선배들을 존중하는 마음이 없다는 생각에서 그만 잘못을 저지르게 되었습니다. 죄송합니다. 모두 제 불찰입니다.”

그 말과 함께 고개를 떨구는 편일현이었다.

“연기력 좀 보게. 장난 없는데? 여럿 울렸겠네. 아주.”

천무린의 말처럼 악교운도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그 어떤 허점도 보이지 않을 정도였으니.

적절하게 자신의 잘못을 밝힌다. 애초에 자신의 잘못은 없다고, 모두 누명이라고 뻗댔다면 오히려 일이 더욱 커졌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 뜻은 곧.

“5기수 편일현이 스스로 죄를 인정했다라…….”

손태각을 비롯해 참석한 위원들의 표정이 한층 누그러졌다.

“제가 악교운 총교관님이었어도 그런 광경을 봤다면 징계를 하였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와 같은 불미스러운 일을 저질러서 정말 죄송합니다. 특히, 후배 기수들에게 매우 미안한 마음뿐입니다.”

“다음부터는 이와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주의하겠습니다. 특히 후배 기수들에게 이런 일을 겪게 하여 미안할 따름입니다. 이상 6기수 명천이었습니다.”

이어진 고우림과 명천 역시 편일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대동소이한 모습으로, 자진 납세하여 스스로의 죄목을 밝혔고 인정하였다.

그 모습에 손태각은 혀를 차더니 다른 위원들의 얼굴을 훑었다. 세 사람의 처사를 논하기 위해 소회의장으로 자리를 옮긴 직후였다.

“길게 볼 것 있겠는가. 가해자들이 스스로 잘못을 인정하였으니, 오래 끌 것도 없이 바로 징계 수위를 결정하도록 하지.”

“저도 위원장님과 동일한 생각입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이미 잘못을 인정한 마당에 시간을 끌 필욘 없겠지요.”

“맞는 말씀입니다.”

징계위원장인 손태각을 필두로 세 위원이 동조하여 심문을 금방 정리했다.

아니, 정리하고자 한 순간.

“잠깐만요.”

애체(靉靆, 안경)를 끌어올린 배단아가 위원석에 앉아 오른손을 들고 있었다.

“아직 안 끝났어요. 편일현, 고우림, 명천 세 사람 모두 같은 전적이 여럿 있다고 나와 있는걸요?”

똑 부러진 음성이 위원들 사이를 파고들자, 손태각은 눈에 띄게 당황했다.

“배 위원, 같은 전적이라니? 게다가 그게 여럿 있다고 한들 아이들끼리 조금 치고받고 할 수도 있는 거 아닌가.”

“조금 치고받고요? 위원장님, 뭔가 말씀이 이상하시네요. 피해자 생도와 예비 생도들의 모습이 어떻게 조금 치고받은 정도라고 생각하시나요? 누가 봐도 이건 일방적인 구타에 해당합니다. 거기다 사유도 이상해요. 위 기수가 이렇게 아래 기수에게 함부로 하도록 허락할 수 없습니다.”

그 말에 위원장인 손태각을 비롯한 다른 위원들이 배단아를 진정시키려 애썼다.

“이보게, 배 위원. 혈기 왕성한 나이에는 그럴 수도 있는 법이라네. 다음부터 그렇게 하지 않도록 지도하는 것이 징계위원회의 목적 아닌가.”

“그렇다네. 게다가 가해자인 생도들도 반성하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 않은가.”

“자네도 잘 생각해 보게. 우리가 나서서 벌한다고 무엇이 달라지겠는가. 이번에 잘잘못을 따지고 화해를 시키면 될 일일세. 괜히 일을 크게 만들지 말게나.”

이미 결정이라도 내린 듯, 배단아를 제외한 모든 이들이 한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크게 분란을 만들지 말자는 의견으로 대동단결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배단아는 속에서 끓어오르는 무언가를 느껴야 했다.

“……지난 전적을 한번 읊어 드려요? 아래 기수 여생도들에게 추행을 하고 심지어 해서는 안 될 짓까지 저지른 그때도 아무렇지 않게 넘어갔었죠. 주의만 주고서! 또, 같은 자파의 제자라는 이유로 마구잡이로 구타를 해 놓고서도 그냥 넘어갔다고 여기에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도 또 대충 넘어가자고요?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어서 흥분한 목소리로 소리치자, 위원장인 손태각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나직이 입을 열었다.

“그럼 자네는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가? 저 가해자들을 모두 잡아다가 가두고 치도곤을 먹이면 되겠는가? 그럼 자네의 속이 좀 풀리겠는가?”

“……그런 뜻이!”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겐가?”

“저 아이들이 잘못했다면 어영부영 넘길 게 아니라 제대로 된 징벌을 줘야지요! 다음에는 이와 같은 짓을 저지르면 안 된다는 걸 가르치자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그게 어떤 징계를 내리자는 것인가?”

어떤 징계, 그야 당연히……!

멈칫.

“중징계를 내려 무관에서 퇴관시키면 배 위원의 속이 풀리겠는가? 아니면 기수 강등이라도 시킬 텐가?”

담담한 손태각의 음성에 배단아가 고개를 떨궜다. 중징계라고 하면 당연히 퇴관이다.

하지만 그 퇴관이라는 것이 저들에게 과연 의미가 있는 일일까.

혹은 기수 강등을 시키는 것이 저들의 발목을 잡을 수 있는 일일까.

그와 같은 중징계를 내린다고 해도 제 뒷배경을 믿고 거침없이 행동할 것이고, 기수 강등을 시킨다고 똑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는다고 단언할 수도 없다.

그렇다.

그 어떤 것도 배단아가 밀어붙인다고 한들 그녀가 말한 대로 좋은 방향으로 선도된다는 보장이 없었다.

멈칫.

배단아는 멈칫하며 징계를 기다리는 편일현과 고우림, 명천의 의미심장한 미소와 표정을 떠올렸다. 반성한다는 듯 고개를 떨군 세 사람의 입가가 묘하게 비틀려 있던 모습까지 눈앞에 선했다.

이미 자신들의 처우가 어떻게 결정될지 뻔히 아는 모습이 아닌가.

‘……그렇구나. 학습한 거구나. 자신들이 어떤 잘못을 저질러도 솜방망이 처벌로 끝날 것임을.’

이미 늦었다. 저 아이들은 어떻게 해도 바뀌지 않을 것이다.

심지어는.

저 아이들의 손을 들어주는 손태각의 음성이 울려 퍼진다.

“말해 보게, 배 위원. 징계 처사를 말하면 내 참고해 보도록 하지.”

배단아가 고갤 들어 손태각과 여타 다른 위원들을 바라본다. 그들의 눈빛 속에 담긴 시선. 얼른 끝내고 쉬고 싶다는 눈빛, 징계위원회 위원으로서 그 어떤 책임감도 없고, 생도들을 좋은 방향으로 선도하겠다는 의지조차 찾아볼 수 없는 표정.

순간 무력감이 밀려오는 배단아였다.

어쩔 수 없는 건가.

고개를 떨군 그녀가 아무 말이 없자, 손태각은 입꼬리를 올리며 조용히 말을 이어 갔다.

“배 위원이 따로 의견이 없는 것 같으니, 이미 이야기가 나온 대로 징계 절차를 밟도록 하지.”

“예, 그렇게 하시지요. 위원장님.”

“괜스레 이야기만 길어졌군요.”

“허허, 역시 혜안을 갖고 있는 위원장님 아니겠습니까.”

서로서로 공치사해 준 직후, 손태각은 징계위원회의 소회의장에서 벗어나 다시 자리에 복귀하여 회의 결과를 발표했다.

“……다음과 같은 잘못이 있으나 깊이 반성하고 있는 점을 들어 처벌을 결정한다. 사천무관 내 자원봉사 활동 25시진을 명한다. 또한, 피해자들에게 쏟아 낸 폭언과 무자비한 구타로 인한 정신적인 손해와 신체적인 손해에 대한 배상으로 각각 20은자를 배상하도록 한다. 협객행과 각 무관에서 나오는 활동비로 갹출할 것을 명한다.”

땅! 땅! 땅!

징계위원회를 거친 징계에도 불구하고 미소를 머금은 세 사람과 달리, 피해자인 이들은 축 처진 분위기였다.

“…….”

“이게 대체.”

“이미 예상했잖아. X발, 뭐 기대라도 했던 거냐?”

피해자인 생도들은 일제히 허탈한 표정을 지으며 고갤 떨궜다. 이를 갈아붙이는 진량의 말에 어색한 정적만이 감돌았다.

그리고 그 정적 속에.

“잘 봤냐. 이게 너희들이 나아갈 정파 무림이다. 겉으로는 정의로운 척하지만, 어느 누구도 정의로운 편에 손을 들어 주지 않는.”

그 말이 생도들의 가슴에 비수를 꽂았다. 누구의 목소리인지 듣지 않아도 안다.

허나 여느 때처럼 천무린을 타박할 수도 없었다. 몸소 겪은 눈앞의 현실은 생각보다 더 참혹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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