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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무신, 무림학관을 제패하다-113화 (111/250)

제113화

제113화

이형환위(移形換位).

경신법으로 펼칠 수 있는 상위 경지가 되어야 보일 수 있는 움직임.

얼마나 많은 깨달음을 얻어야 펼칠 수 있을지 모르는 이형환위는 파평으로서도 쉬이 펼칠 수 없는 움직임이었다.

그런데.

저토록 여유롭게 펼친다고.

그것도 파평의 검격을 앞에 두고서 펼칠 만큼 자신만만하게.

파평의 외눈동자가 심히 흔들렸다.

“왜? 쫄았냐?”

“……무슨 거짓부렁을 말하는 것이냐?”

“거짓부렁이라니.”

천무린이 어깨를 으쓱하며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에 하나밖에 남지 않은 파평의 외눈에 핏발이 섰다.

어떻게 저토록 여유를 부릴 수 있단 말인가. 자신을 앞에 두고서.

파평은 여태 여유로웠던 표정이 사라지고 핏발이 설 만큼 극도의 흥분 상태에 빠져들었다.

“감히, 감히 누구를 우롱하려 드느냐! 네 이노오옴!”

콧김까지 뿜어내는 파평은 성난 멧돼지만큼 크게 흥분해 있었다.

고작 무관의 풋내기에 불과한 녀석이 감히 자신을 농락하려 들다니!

왼손이 움직이고, 찰나의 순간에 오른손까지 움직이는 파평의 동작은 군더더기가 하나도 없었다. 쌍용검에서 피어난 검풍(劍風)과 마주한 천무린의 도포 자락이 휘날렸다.

후우웅!

“거, 검풍!”

“무린아! 조심해!”

“도망가아!”

쌍용검에서 불그스름한 기운이 옅게 퍼진다 싶더니 산발적으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파아앙! 파앙!

검이 휘날릴 때마다 뻗어 나오는 검풍은 무수하게 불어오기 시작했고, 천무린이 자리한 사방 곳곳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칫! 귀찮아 죽겠네.”

흡사 자신의 내공을 자랑이라도 하듯, 천무린의 기이한 움직임을 봉쇄코자 전 범위를 차단하듯 검풍을 쏴 댔다.

어떻게든 맞춰서 치명상을 입혀 보겠단 각오로.

휘리릭!

순식간에 짓쳐들어온 검풍에도 날다람쥐처럼 탁자를 밟고 허공에서 몸을 회전하는 동시에 눈앞에 뻗어 오는 검풍을 간결한 움직임으로 피해 내는 천무린이었다.

“생긴 거랑 다르게 제법 머리를 좀 쓰는데.”

그러나.

콰직! 콰지직! 피잉! 피피핑!

간결하게 움직이던 천무린의 소맷자락이 검풍에 잘려 나가며 처음으로 핏물이 튀었다. 연속해서 천무린의 움직임보다 더욱 쾌속하게 검풍이 난도질해 왔다.

“흐흐흐, 언제까지 피할 수 있나 보자꾸나.”

간격이 점차 짧아지면서 검풍의 기세가 한층 강력해지자, 간결했던 천무린의 움직임도 이내 격하게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뭘 많이도 처먹었나 보네. 검풍을 제법 쏴 대는 걸 보니까.”

검풍 자체가 위협적인 것은 아니었으나, 무수하게 불어오는 검풍을 피하기에는 좁디좁은 객잔의 내부였다.

쏟아지는 검풍을 피해 물러나다 보니 객잔 구석으로 몰렸고, 이에 따라 파평의 미소는 더욱 짙어졌다.

“어디 이번에도 피할 수 있으면 피해 보거라!”

파평의 쌍검이 유려하게 움직이며 속도를 더했다. 그의 뛰어난 기량을 자랑이라도 하듯, 쌍검에 물든 붉은 기운은 춤을 췄고 검풍이 쏟아지는 속도 역시 빨라지며 거침없이 질주했다.

궁지에 몰린 천무린의 모습에 송무는 자신이 쥐고 있는 검의 손잡이에 힘을 더하였다.

“아, 아니 무린이도 검풍을 쓸 수 있는데, 왜 저렇게 무기력하게 피하기만……!”

다급한 송무의 외침에 신혁건이 이를 악물었다.

“검풍도 검풍 나름이어야지. 절정 고수가 쏟아내는 검풍이랑 같겠냐?”

일류급 고수들도 검풍은 쏠 수 있지만, 검풍의 농도를 조절하여 무수하게 쏟아 내는 것은 절정급의 고수가 되어야만 가능했다.

이토록 위기에 몰린 천무린의 모습을 본 적이 있었던가.

후보생들과 생도들이 보기에 이보다 더 생소한 광경은 없었다.

콰앙!

“흥!”

천무린은 자신에게 쇄도해 오는 검풍을 무심하게 바라보며 코웃음을 날리더니 옆에 놓인 탁자의 다리를 후려차서 앞에 세워 방패막이로 삼았다.

파바바박!

검풍이 탁자를 두들기는 동안, 운룡대팔식을 펼쳐 객잔 내부를 누볐고, 그를 따라 천무린이 지나간 자리는 검풍에 노출되어 먼지바람이 무수히 일어났다.

시야를 뿌옇게 가렸지만, 파평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언제까지 도망갈 수 있는지 보자꾸나!”

갈지(之) 자로 움직이던 천무린의 눈빛이 빛나면서 먼지바람 속으로 숨어들었다.

그리고 이내.

푸슉!

“크아악!”

푸슉!

“커억!”

푸슈슉!

먼지바람 속에서 파평이 흩뿌린 검풍에 맞아 비명이 터져 나왔다.

“크흐흐, 고놈. 드디어 잡았구나! 쥐새끼 같은 놈!”

흡족한 미소를 지은 파평은 먼지바람이 가라앉길 기다리면서 상처 입은 맹랑한 꼬맹이를 볼 생각에 잔뜩 기대를 했다.

그러나.

“으, 으으으. 혀, 형님!”

“저, 저희입니다!”

“우리라고요!”

익숙한 목소리에 파평의 외눈동자가 흔들렸다.

이, 이게 무슨.

있으리라 생각했던 천무린은 온데간데없고, 뒤엉켜서 검풍에 노출되어 사방에다 피를 쏟아 내고 있는 것은 파평의 수하들이었다.

그들은 쓰러져 게거품을 물었고, 먼지바람이 사라진 객잔 내부는 모든 기물이 죄다 박살이 나 있었다.

풍압과 내력이 담긴 검풍은 파평의 수하들도 충분히 막아 내고 튕겨 낼 법했지만, 시야가 가려진 채 급습해 오는 천무린의 손길을 피해 내려다가 그만 검풍에 노출되고 만 것이었다.

열다섯의 수하들 중 대다수가 심각한 중상을 입은 모습에 파평의 외눈이 부릅떠졌다.

“……!”

“으휴, 머저리 같은 놈. 지 무공에 취해 가지고 자기 수하들을 베는 것도 모르고 말이야. 쯔쯧.”

혀를 차는 목소리가 파평의 뒤에서 들려왔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뻣뻣하게 굳어 버린 파평의 목이 천천히 돌아가 상처 하나 없이 멀쩡한 천무린을 바라봤다.

“쯔쯔쯧. 걸레짝을 만들어 놨구먼. 걸레짝을. 수하들은 걸레짝에다, 객잔 안은 아주 박살을 내 놨네. 너 돈이 많나 봐? 부럽다, 진짜. 난 언제쯤 그런 걱정 없이 살 수 있을까 몰라.”

태평스러웠다.

절정의 고수인 자신을 앞에 두고.

수없이 보인 기예를 보고도 긴장한 모습이라고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네놈은 대체 어떻게 돼먹은…….”

“푸훕, 방귀 뀐 놈이 성낸다고. 진절머리가 나는구먼. 진절머리가.”

천연덕스럽기까지 한 그의 모습에 파평은 도리어 머릿속이 차분해졌다. 분노가 치밀다 못해 극에 다다르면, 되레 차분해진다고 하지 않던가.

또옥. 또옥.

아랫입술을 깨물어 핏물이 입가를 타고 턱 끝에 맺혀 바닥에 떨어지고 있음에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는 파평이었다.

살심(殺心)이 치솟다 못해 전신을 지배하여 덜덜 떨리는 파평이었다.

모욕을 당하고 수치심을 느꼈다.

그러나.

피를 보고 나니 조금은 차분해진 파평은 다시금 주변을 둘러봤다.

휙.

고갤 돌려 객잔 내의 분위기를 살펴본 파평은 객잔 내부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오롯이 자신과 눈앞에 있는 이 청년에게 집중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찬물이라도 끼얹은 듯 주변 분위기는 고요하다 못해 무거운 정적이 흘렀다.

단 한 번의 동작.

이형환위로 보여 준, 말도 안 되는 무위로 혼을 빼 놓았고.

절륜한 절정급 고수인 파평의 검풍과 검격에도 여유를 부리는 모습까지.

본능적으로 객잔 내의 사람들은 깨달은 것이다.

천무린이 가진 무위가 파평에 준하고 있음을.

파평이 고갤 돌려 청년을 직시했다.

‘녀석에게 말려들었다.’

천무린, 무관의 저 아해에게 말려들고 말았다.

녀석의 입담과 행동에 말리다 못해 휘둘렸다.

그렇다. 격장지계(激將之計)에 당했다.

‘그래. 그럴 리 없다. 이형환위는 최소 절정 극의에 달해도 펼칠 수 있을까 말까 한 기예! 그것도 경신에서 깨달음을 얻는다 해도 어려운 것이다. 격장지계에 속아 그것조차 인지하지 못했다.’

천무린은 생각이 많아진 파평을 바라보며 히죽 웃고 있었다.

“……이렇게 되길 기다렸던 것이냐. 아니, 유도한 것인가.”

저벅. 저벅.

천무린이 다가와 큰 키의 파평을 올려다봤다.

“더럽게 크네.”

분위기가 대번에 바뀌었다.

천무린이 움직임으로써.

위사검을 지키고 있던 두 청년.

수하들에게 둘러싸여 있던 무관의 일행들.

파평을 상대하다가 물러나 언제라도 끼어들 틈을 엿보고 있던 두 부교관까지.

모두 턱 끝까지 차오르던 숨이 어느새 정상적으로 돌아왔고, 차분하게 사태를 관망하는 모습으로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반대로.

파평의 수하들은 검을 늘어뜨린 채 경악을 금치 못하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들에게 파평이 누구던가.

적어도 수하들이 아는 한, 초원을 질주하는 야생마처럼 물러남이 없었고 패배한 적이 없었으며 단숨에 방해하는 자들을 꺾어 온 인물이었다.

그 압도적인 위세에 매료되어 여태까지 따라왔건만.

젊은 아해에게 휘둘려 그 질주를 멈추다니.

“기다려? 유도? 후후,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다하네. 아주.”

익살스럽게 웃은 천무린이 파평을 바라봤다.

“뭔가 착각하고 있나 본데. 넌.”

천무린의 두 눈이 침잠하듯 가라앉으며 그를 마주 바라봤다.

“아무것도 아니야. 그저 박쥐 새끼에 불과해.”

씨익.

마지막 천무린의 말을 끝으로 파평이 미소를 지었다. 아랫입술이 터져 핏물이 흐르는데도 그는 웃었다.

기괴하기 짝이 없는 그의 웃음에 더하여.

후우우웅!

맹렬하게 울려 퍼지는 검명(劍鳴).

동시에 파평의 쌍검에 불그스름한 기운이 한층 진해졌다. 그 농도가 더욱 깊어졌다.

옅었던 검풍의 기운이 아닌, 짙고도 짙은 농도로 압축된 검기(劍氣). 열화처럼 피어난 검기가 쌍검에 담겼다.

“한 가지 약속하지. 내 반드시 이 자리에서 너를 갈기갈기 찢어 죽이겠노라고.”

관자놀이에 곤두선 태양혈.

시뻘겋게 물든 섬뜩한 외눈동자.

줄줄 흐르고 있는 입술에서 꾸역꾸역 나오는 핏물.

거기다 불그스름한 검기가 피어난 쌍검까지.

꿈에 나올까 무서운 소름 끼치는 모습이었다.

객잔의 주방 안에서 납작 엎드려 상황을 지켜보던 객잔 점소이와 주방장, 주인장은 그만 모골이 송연해졌다. 그동안 강호 무림에서 나름 난다 긴다 하는 무인들을 많이 봐 온 이들이었지만, 지금 파평이 보여 주는 모습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심신이 미약한 이들이었으면 대번에 기절했을 정도로.

그러나.

“……왜 그런 약속을 하고 그래?”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씨익 웃고 있는 천무린.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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