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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무신, 무림학관을 제패하다-112화 (110/250)

제112화

제112화

와장창!

깨진 창문들 사이로 혈투를 벌이고 있는 이는 다름 아닌 이백이었다.

“선배님! 뒤로 물러나 계십시오!”

위사검의 앞에 선 이백은 눈앞에 있는 파평의 수하들을 마주 봤다.

콰앙!

사일검법을 펼치며 파평의 수하들과 힘겨루기를 하였다.

꾸구국.

살기 진득한 검세를 쳐 내는 이백에게도 지금과 같이 서로의 목숨을 건 실전은 처음이었다.

‘차원이 다르잖아.’

실전을 방불케 한다던 훈련은 그저 훈련일 뿐이라고 절실히 느끼는 중인 이백이었다. 바로 눈앞에서 자신을 죽이려고 득달같이 달려드는 이들의 검세는 훈련 때 맞섰던 상대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였다.

으득.

그렇다고 한들 이백은 물러날 수가 없었다.

그때.

“혼자만 멋있는 척하려고! 어딜!”

콰앙!

동시에 사일검법을 펼쳐 내는 진량이 이백의 옆에서 파고들어 오는 검격을 쳐 냈다.

“고맙다!”

“흥! 네놈과 정정당당하게 겨룬 후 이겨서 점창의 대제자가 될 것이다. 그러니 그때까지 네놈이 다쳐서는 안 될 말이지.”

점창의 두 제자인 7기수가 위사검을 지키며 나름 고군분투를 하고 있는 동안.

“으흐흐, 아주 예쁜 처자가 여기 있었구먼. 아랫도리를 안 쓴 지 오래되었는데, 때마침 잘 찾아왔어.”

“다 죽여 버리고, 저년 하나만 살려 놓자고. 오늘 아주 화끈한 밤을 보낼 수 있도록.”

“이거야 원. 침이 꼴깍꼴깍 넘어가는구먼.”

음담패설을 내뱉던 파평의 수하들이 하나둘 눈을 빛내며 후보생들을 압박해 왔다. 그 숫자가 무려 열이 넘어 압박감은 더해 갔고, 진득한 살기 속에 설화린을 바라보는 눈빛은 더욱 끈적해졌다.

“이거이거, 아직 어른이 안 된 거 같은데. 우리가 어른이 어떻게 되는지 자세히 알려 줘야겠구먼.”

“끌끌, 내가 먼저인 거 절대 잊지 말게.”

“어허! 이 사람, 위아래도 모르나? 내가 먼저 눈독을 들였다네.”

네 명의 후보생들을 눈앞에 두고 한껏 여유를 부리는 이들은 지금의 상황을 자신들이 지배하고 있다고 여겼다.

달달달달.

떨고 있는 송무와 잔뜩 긴장한 이들의 기색을 보아하니 실전을 많이 겪어 보지 않은 것이 바로 티가 났기 때문에.

“걱정하지 말거라. 사내놈들은 관심 없으니 바로바로 죽여 줄 테니까.”

“기대해라. 예쁜아. 흐흐.”

군침을 흘리는 이들에게 설화린이 도끼눈을 뜨고 이가 부서져라 깨물었다.

“이럴 때 뭐라고 해야 하는지 알아요?”

“목소리도 예쁘구나. 흐흐. 그래, 예쁜아? 뭐라고 하려고?”

“흐흐흐, 고년 참. 마음에 안 드는 데가 없구나. 어디 말해 보거라. 이 어르신이 다 들어주마.”

설화린이 매서운 표정으로 씹어뱉듯 말을 뱉어 냈다.

“X랄! 염X하네! 이 새끼들아!”

천무린에 빙의하여 한바탕 욕지거리를 내뱉은 설화린이 대번에 검을 빼 들었다.

“네놈들한테 당할 바엔 차라리 혀를 깨물고 자결하고 말겠다!”

독심을 품은 그녀의 말에 후보생들 역시 힘을 얻은 건지 송무와 백리무영, 신혁건 역시 제각기 병장기를 치켜들었다.

스르릉.

스릉.

“그냥 여기서 죽자. 죽는단 생각으로 싸우겠다.”

신혁건의 외침에.

“무식한 건 딱 질색이지만, 진짜 오늘 제대로 검을 쓰겠군.”

백리무영 역시 살벌한 눈빛을 했고.

“죽더라도 내가 가장 먼저 죽을 거니까 걱정하지 마. 얘들아.”

송무가 콧김을 뿜었다.

그리고 등을 맞대며, 에워싼 파평의 수하들을 상대로 혈투를 벌이기 시작했다.

채채챙- 채챙!

송무는 천하삼십육검으로 수세를 취했고.

신혁건은 창대를 짧게 잡아 좁디좁은 객잔 내에서 창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궤적 범위를 줄였으며.

백리무영은 눈을 현혹케 하면서도 변칙적인 칠절매화검으로.

설화린은 극한의 음기를 내뿜는 빙공을 적극적으로 펼쳐 파평의 수하들과 맞섰다.

수하 한 사람, 한 사람이 무려 이류에서 일류의 실력자들이었다.

조금이라도 방심한다면.

핏!

스쳐 지나간 검날에 송무의 볼에서 핏물이 튀었다.

피핏!

옆구리를 베어 낸 검 끝에 신혁건의 쓰라린 신음이 터져 나왔다.

“큿.”

잔상처가 늘어 가면 늘어 갈수록 후보생들은 이를 앙다물어야 했다.

네 후보생이 제대로 된 실전 속으로 뛰어들고 있는 동안.

다른 쪽에서도 생사결이 오가고 있었다.

꽈앙! 꽈앙!

“무, 무슨 힘이!”

“두 검을 저렇게 자유자재로…….”

부교관인 고윤과 자겸 역시 속절없이 뒤로 물러서면서 입가에 흐르는 피를 닦을 새도 없이 적의 파상공세를 막아 내야만 했다.

무섭게 파고들어 오는 검격은 지금껏 한 번도 마주한 적 없던 쌍검을 다루는 파평의 강검(强劍)이었다. 일류의 극에 달해 있는 두 사람이 연합하고 있는데도 단 한 번도 공세를 취해 보지 못하고 그저 공격을 막아 내는 데 급급할 뿐이었다.

“최, 최소 절정이다. 어떻게……!”

검면과 손잡이에 새겨진 용의 음각이 마치 꿈틀거리는 것 같은 착각을 한 고윤이 넘실거리는 살기에 위축된 기세로 겨우겨우 검을 들어 막았다.

까드드득.

“정신 차려라! 고윤!”

자겸은 고윤을 향해 뻗어 오는 검격을 겨우 쳐 내며 막아 냈지만.

서걱!

고윤의 검격을 신경 쓰느라 정작 자신을 향해 뻗어 오는 검격은 막아 내지 못한 자겸의 옆구리에 큰 자상이 생기며 출혈이 터져 나왔다.

“자겸!”

“흐흐흐, 제법이구나. 금방이라도 무너질 줄 알았는데 말이야.”

잔뜩 여유를 부리고 있는 파평의 검에 감도는 기운은 모두를 찍어 누를 듯한 강력한 기세를 품고 있었다.

“크흐윽.”

옆구리에서 울컥 솟아오르는 핏줄기로 입술이 대번에 창백해질 정도로 깊은 상처를 입은 자겸은 몇 걸음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자겸!”

그 모습에 고윤은 애타게 그를 부르짖으면서도 파평에게 눈을 떼지 못한 채 몇 걸음 물러났다. 자신 때문에, 방심한 자신 탓에 깊은 자상을 입은 자겸의 모습에 절로 자괴감이 드는 고윤이었다.

“나, 난 괜찮으니까. 얼른 애들을 데리고. 마공서를 꼭…….”

고윤이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며 검을 바짝 쥐었다. 자겸의 저 말끝에 담긴 의미는…….

‘오래는 못 버틴다.’

자신의 희생을 의미했다. 조금이나마 시간을 벌어 주기 위함이었다.

저벅, 저벅.

“흐흐흐, 이놈들아. 누가 살려 준다고 하던? 생각해 보니 말이다. 마교에 투신할 때 네놈들의 모가지를 베어 가면 제법 큰 공으로 인정받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드는구나.”

중도(中道)의 길.

중도를 택했고, 몇십 년간 중도라는 이름 아래 무명을 날리던 이 무인은 마치 손바닥을 뒤집듯 쉽게 마의 길을 택하겠다고 선언했다.

“하여간. 그놈의 중도, 중도. 말만 중도지. 박쥐 새끼나 다름없는 것들이 허울 좋은 이름이나 갖다 붙여서는.”

노골적으로 비아냥대는 음성이 객잔 전체에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 음성에 파평의 움직임이 뚝, 하고 멈추며 천천히 음성이 들린 곳으로 몸을 돌렸다.

“나이가 드니 점점 귀가 이상해지는지 헛소리가 들리는군그래.”

저벅, 저벅.

음성이 들린 곳에는 덩그러니 탁자에 앉아 술…… 아니, 곡료를 쫄쫄 따르고 있는 청년이 보였다. 모두가 살기 위해 칼부림하고 있는 상황에서 말이다.

“……어처구니가 없군. 다들 발악하고 있는데 혼자만 빠진 채 삶을 미리 포기하고 있다니 정말 형편없는 놈이었군.”

파평이 혀를 차며 청년, 천무린을 바라봤다.

“삶을 미리 포기해? 누가? 나?”

“네놈 말고 여기에 누가 또 있느냐? 그런 정신 나간 짓을 하고 있는 놈이.”

그런 말을 듣고 있는 와중에도 천무린은 피식하고 웃으며 곡료잔을 기울였다.

꼴깍. 꼴깍.

그 모습을 보는 파평의 눈이 게슴츠레하게 바뀌었다.

‘……기분 탓인가.’

왠지 위화감이 들었다.

객잔 내에 무려 스무 명이 넘는 인원이 피바람이 불 만큼 치열한 혈전을 벌이고 있었는데.

그리고 그 혈전 속에서 모두가 뒤엉켜 있었는데, 어떻게 저렇게 냉정하고 차분할 수 있는지.

거기다 어떻게 자신뿐 아니라 수하들 중 단 한 명도 저 녀석을 의식하지 않았는지.

마치 원래 없었던 사람처럼.

녹아들 수가 있는가.

아주 자그마한 의심의 씨앗이 파평의 가슴속에서 발아(發芽)하기 시작했다.

절레절레.

‘절대 그럴 리 없지. 절대로.’

저 청년이 그만한 고수일 리가 없다. 그것도 자신의 감마저 속일 만큼 고수일 수가 없다. 절대로.

“요란하기만 요란하고 말이야.”

드르륵.

천무린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흐흐, 이제라도 용서를 빌 테냐? 용서를 빈다면 고통 없이 내 단숨에 목숨을 끊어 주는 것으로 그 용서를 받아 주마.”

쌍검에 내력을 줄기차게 뿜어 대는 파평이 천무린을 바라보며 어쩔 거냐는 눈빛을 보냈다.

“절정 고수라고?”

“후후, 그렇다. 네깟 놈이 제아무리 길길이 날뛰어도 절대 이길 수 없는 경지지.”

“절정이 뭐 그리 대단하다고.”

“……뭐?”

“자갈밭에서 자갈이 밟혔다고 신경 쓴 적 있냐.”

자갈밭에서 자갈? 자갈밭에서 자갈을 밟는데, 누가 자갈에 신경을 쓰겠는가.

파평의 미간이 짜증 난다는 듯 좁아졌다.

“무슨 헛소리냐.”

“나 땐 말이다.”

꼰대 같은 말투는 죽어도 쓰기 싫었는데, 어쩔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꼰대가 되어 가나 보다.

“절정급은 발에 차이고 차여서 신경도 안 썼다는 말이야. 자갈밭에서 자갈이 발에 밟히는 만큼.”

“……푸흐, 푸흐하하핫.”

잠깐의 정적 이후 터져 나온 광소(狂笑)를 참지 못한 파평은 한참을 웃다가 두 손에 쥔 쌍검을 꽉 쥐었다.

꽈드드득.

“내가 잠깐이나마 네 녀석을 의심했다. 혹시나 하고 말이다. 그런데 그저 미친놈에 불과했구나.”

그럼 그렇지. 그저 미친놈에 불과했다. 고수는 무슨.

그랬는데.

후웅.

객잔 내부에 살랑거리는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아주 약한 바람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파평은 의식하지도 못한 채 땅을 박찼고, 박찬 객잔의 바닥이 모조리 부서질 만큼 패도적인 경공을 펼쳐 천무린에게로 쇄도했다.

양손을 교차하며 그대로 천무린을 네 부분으로 동강을 내 버릴 정도로 무시무시한 기세를 뿜은 채.

후우웅!

“죽음으로 네 죗값을 치르도록 하라!”

솨아아아!

천무린이 서 있는 자리를 향해 쌍검이 내리꽂히며 객잔에 놓인 탁자를 비롯한 가구가 박살이 나면서 먼지바람이 동시에 일어났다.

“무, 무린아!”

“천무린!”

“아, 안 돼!”

비명이 터져 나왔다.

비교할 수 없는 기세.

절정이라는 고수가 내뿜은 검격.

부교관인 자겸과 고윤이 동시에 상대해도 막을 수 없었던 고수가 천무린을 향해 진심으로 뻗어 낸 검격을 본 후보생들과 생도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저 정도의 파괴력이라면 과연 천무린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런데.

……꽈드득.

파평의 두 손잡이가 다시 한번 꽉 쥐어졌다. 그의 어금니가 꽉 깨물어지면서 먼지바람이 사라진 곳을 지그시 바라보고 있었다.

“어떻게 한 것이냐?”

“어떻게 하다니? 그냥 피한 거지.”

특유의 천연덕스러운 목소리가 먼지바람을 뚫고 새어 나왔다.

그리고.

그 자리엔 옷깃 하나 상하지 않은 천무린이 빙긋 웃은 채 서 있었다.

“설마…… 이형환위(移形換位)?”

본인이 말해 놓고서도 파평의 외눈동자는 미친 듯이 흔들리고 있었다.

이형환위라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으나.

“제법이네. 그것도 알아보고.”

천무린의 대답으로 확실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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