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1화
제111화
개방 지부를 나서며 황급히 이동하던 일행은 서로를 바라보면서 개방에서 얻은 정보를 교환하였다.
“벌써 마공서를 얻은 이가 있다고?”
“그렇다고 하더라고. 위사검? 그분은 어떻게 그리 빠르게 얻었는지.”
“위사검이라……. 위사검.”
후보생들과 생도들은 생소한 이름에 고개를 갸웃했지만.
“위사검? 허어, 위사검이라니.”
“내가 아는 그 위사검이 맞는가.”
고윤과 자겸은 감탄과 자조가 섞인 말투로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위사검? 그게 누군데요?”
두 사람이 저리 반응할 정도면 제법 유명한가 본데, 천무린은 난생처음 들어 보는 이름이었다. 전생에서도, 현생에서도.
“정마대전 때 낭인들을 이끌고 마도인들과 맞섰던 한 배분 높은 인물일세.”
“유명한 일화도 많이 남겼지.”
유명한 일화 좋아하네.
위사검이고 나발이고 처음 들어 봤다. 낭인들이 참전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그중에서 천마신교를 위협할 만한 이들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천마신교 교주이자 천마였던 천무린을 막아설 수 있는 인물은 몇 없었으니까.
근데 뭐 어쩌고 어째.
“그런 인물이 왜 마공서를 찾은 건데요?”
“이유야 나도 모르지.”
“나름의 이유가 있지 않겠느냐.”
나름의 이유는 개뿔.
“아무튼 위치를 파악했으니까 움직이죠.”
마공서를 모두 회수하고, 혹여 마교의 간자가 있으면 죄다 색출해 내는 것이 목적이지 그 외에 일어나는 부차적인 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천무린이었다.
사연 많은 이들이 어디 한둘이겠는가.
관심을 가져주는 것 자체가 시간 낭비였다.
* * *
“네놈은 누구냐?”
파평의 수하로 보이는 자의 외침에 천연덕스럽게 객잔 안으로 꾸역꾸역 걸어 들어오는 천무린이 해맑게 웃었다.
“사천무관 천무린이라고 합니다만?”
당찬 말에 파평의 수하들이 당황한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봤다.
“사천무관?”
“무관이라고?”
“무관에서 여길 왜……!”
파평의 수하들이 당황한 눈빛을 보이는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무관은 정파를 대표하는 단체로 자리매김을 하였다. 심지어 무관 내에 소속된 정파만 해도 수십 개의 문파가 있었다.
그러니 무관에게 시비를 건다는 것은 괜한 벌집을 건드리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의미였다.
“제길, 무관에서도 마공서에 관심을 갖고 있단 말이냐?”
“네에. 그러니까 꺼져 주세요. 헤헤.”
천무린이 해맑게 웃으며 손사래를 치자 파평의 수하들이 일순 주춤거리며 주도권을 빼앗긴 채 자리를 내주었다.
그리고 위사검과 파평의 옆자리에 스윽 앉는 천무린이었다.
“그러니까 이 애꾸가 쌍용검이라는 양반이고, 이 주눅 든 양반이 위사검이라고?”
“헙.”
“무, 무린아, 아무리 그래도……!”
뒤따라온 송무와 후보생들이 황급히 입을 틀어막았다.
아무리 그래도 무관 밖에 나와서까지 저렇게 막말을 하다니.
정말 겁이 없는 건가.
“아니야? 그럼 이 애꾸가 위사검?”
“아, 아니. 맞는데. 애꾸라니…….”
식은땀을 흘리는 송무가 눈치를 보자, 아니나 다를까.
파평의 수하들이 눈에 쌍심지를 켠 채 후보생들과 천무린을 마치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제아무리 무관에 소속된 인물들이라 할지라도 자신들이 모시고 있는 상관을 약관도 안 된 청년이 함부로 모욕하다니.
그것은 본인들을 욕하는 것보다도 더 큰 모욕이었다.
당장이라도 검을 빼 들 정도로 흉흉한 기세를 보이는 가운데, 빙긋 웃고 있는 천무린의 모습에.
“껄껄껄.”
목젖까지 보이며 웃어 젖히는 쌍용검 파평이었다.
“제법이구나. 애송아. 제법이야. 주눅 들지도 않고 말이다.”
“하하하, 주눅 들 게 뭐가 있어요.”
“후후후. 그렇지. 용기가 가상하다. 어르신들을 보고도 전혀 겁을 먹지 않는 것을 보니 꼭 내 옛날 모습을 보는 것 같구나.”
그 말에 후보생들은 계속해서 식은땀을 흘렸다. 파평의 말에 천무린의 눈빛이 착 하고 가라앉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말이다. 애송아. 어른들끼리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는 함부로 끼어드는 거 아니라고 배우지 못했느냐. 예의범절부터 가르쳐야 했을 텐데. 이래서 나는 무관이 생긴다고 했을 때 유명무실해질 거라고 경고했거늘.”
“하하하, 그렇구나. 무관이 생길 때 반대하셨구나.”
천무린의 입가는 웃고 있었다. 입가만.
눈매는 서늘하게 가라앉아 있는데 입가만 웃고 있는 천무린의 모습에 서늘함을 느끼는 후보생들이었다.
“하긴. 겁대가리 없이 어딜 그렇게 쏘다니셨으면 눈알 하나가 없데요? 손모가지도 아니고 말이야. 하하하하.”
혼자 웃어 젖히는 천무린의 모습에 여유롭게 미소를 머금던 파평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 버렸다.
“아니, 무관이 생길 때 반대를 해? 하하, 예의범절을 남한테 따질 게 아니라 본인부터 먼저 챙겨야 할 거 같은데 말이야. 안 그래, 다들? 한눈에 봐도 무공 하나 못 쓰는 사람을 앞에 두고 핍박하는 모양새가 참 예의 바르다. 그렇죠?”
그 말에 위사검의 두 눈이 커졌다. 동시에 후보생들과 생도들의 표정도 놀란 동태눈이 되었다.
“……무공을 못 쓴다고? 누가?”
“설마?”
“누구긴 누구야. 이 애꾸눈 아저씨가 계속 핍박하고 있는 이 아저씨지.”
위사검을 가리킨 천무린의 모습에 파평의 수하들도 처음 안 건지 순간적으로 헛바람을 들이켰다.
오직 파평만이 굳은 표정에 일말의 변화가 없었다.
“이 애꾸 아저씨만 알고 있었나 보네. 하긴. 그러니까 그 대단했다던 위사검 아저씨 앞에서 이렇게 여유를 부릴 수 있었겠지?”
무공을 쓸 수 없다는 것을 대번에 파악한 것은 천무린뿐이었다.
‘단 한 점의 기운도 느껴지지 않는다.’
기의 운용과 기척을 알아차리는 점에서는 그저 탁월하다는 말로도 부족할 만큼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천무린이었다.
“아니지, 아니야. 정마대전 때는 이 애꾸 아저씨가 위사검 아저씨의 수하였다던데, 정말이에요?”
개방을 통해 위사검이 정마대전 때 나름 활약을 펼쳤던 인물이었고, 그리고 부교관인 자겸과 고윤을 통해 나름 무명을 날렸던 인물임을 알게 되었다.
거기다 현재 중도의 길을 걷는 이들 중 다수가 이 위사검의 통솔 아래 정마대전에 참여했었다는 사실까지도.
“그런데 한때 모시던 분을 이토록 핍박하다니. 개X끼도 제 주인은 안 문다는데. 하하하, 그럼 개X끼보다도 못한 아저씨네요? 애꾸 아저씨는? 나라면 절대 그렇게는 안 살 텐데 말이야. 참으로 대단한 예의범절이야. 안 그래?”
비아냥거림을 넘어서서 조롱이 담긴 말에 파평이 쥐고 있던 탁주병이 와장창 깨지면서 탁주가 쏟아져 내렸다.
“……그 주둥아리를 갈가리 찢어 주마.”
“아이고, 무서워라.”
까드드득.
탁주병이 깨어진 손아귀에서 핏물이 주르륵 흘러나오는데도 섬뜩한 표정에는 변함이 없는 파평이었다.
“살려 달라고 애원하지 마라. 어차피 살려 주지 않을 테니.”
“애원? 애원이라.”
내가 살면서 애원을 해 본 적이 있었던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눈앞의 녀석에게도 그럴 리 없겠지만.
“네가 만약에 나를 애원하게 만들면 내 이름을 버리겠습니드아.”
해 볼 수 있음 해봐.
얼마나 비싼 이름인 줄 알지?
살벌한 기세를 피워 올리는 파평의 입가가 뒤틀린 순간,
“그만! 파평, 더 이상 움직이지 마라. 조금이라도 움직이는 순간, 너는 삼대 무관의 공공의 적이 된다!”
자겸의 외침에 파평의 움직임이 멈칫했다. 그러면서 고개를 천천히 돌려 부교관인 자겸과 고윤을 바라봤다.
자겸과 고윤은 부교관으로 뛰어난 실력을 지니고 있었지만, 알려진 파평의 실력은 적어도 그들보다 높은 무명을 지니고 있었다.
그렇다는 건.
생사를 건 결전을 치러야 함을 의미했다.
처음에는 천무린의 저돌적인 행동을 제지하지 못해 원망했지만, 이젠 아니었다. 위사검이 마공서를 갖고 있으며 무공을 쓰지도 못하는데 핍박을 받고 있었다면 의당 움직여야 하는 것이 무관의 일원으로서의 마땅한 도리였다.
“……후후, 공공의 적이라. 삼대 무관의?”
파평이 은근한 미소를 짓고 부교관들을 지그시 바라봤다. 진득하고도 날 선 기세가 피어오르며 두 사람을 압박했다.
“내가 공공의 적이 되는 걸 두려워할 거라고 생각했다면 크나큰 오산이다. 역혈마공이 손에 쥐어진다면 비로소 나의 길이 정해지겠지.”
고윤과 자겸의 표정이 절로 굳어졌다.
‘적어도 우리보다 한 수 위!’
대번에 파악할 수 있을 정도의 무공 수위였다. 심지어 파평의 수하들의 수는 무려 열다섯.
이류에서 일류급으로 파악되는 이들로 열다섯이다.
심지어 파평은 이젠 정파 무림의 공공의 적이 된다고 하더라도 감수하겠다고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마공서를 얻으면 마교로 넘어가겠다는 모습까지 보이는 파평이라면 그 어떤 말로도 회유할 수 없을 터였다.
‘심지어 위사검 선배까지 지켜야 한다면.’
압도적으로 불리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내가 파평을 막고 있겠다.’
자겸이 고윤을 바라봤다.
‘그러니까 위사검 선배를 대피시키고 후보생들을 잘 이끌게.’
자겸의 뜻에 고윤의 표정이 일순 굳는다. 스스로 희생을 감수하겠다고 표현한 것이었다. 그 모습에 고윤은 잊고 있던 강호 무림의 세상을 다시금 떠올렸다.
무관의 부교관으로 있으면서 그동안 잊고 있었던 감각과 무뎌졌던 감각이 되살아나기 시작한 것이다.
약하면 패배한다. 패배하면 죽는다. 죽으면 그 누구도 지키지 못한다.
이것이 바로 강자존이자 약육강식의 강호 무림이었다.
그리고 지금 현재.
자신들은 약자였다.
이를 악문 고윤이 담담한 자겸의 반응에 고개를 끄덕였다. 스스로 희생을 자처하겠다는 자겸의 모습에 안 된다며, 하지 말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결론을 내린 그의 결단을 지지해 줘야 한다.
그리고 고윤 자신이 해야 할 일은 위사검과 후보생, 생도 모두를 지키는 것이었다.
가능하다면 마공서 입수까지.
“후후후, 정말로 어이가 없군.”
끄그극. 콰당탕.
의자가 뒤로 넘어가며 벌떡 일어난 파평은 어이가 없다는 미소를 띤 채 주변을 둘러봤다.
“너희들이 여기서 살아서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나. 모두가 죽으면 증인도, 증거도 아무것도 남지 않을 텐데 말이다.”
파평과 파평의 수하들이 동시에 피워 올리는 끈적한 살기가 주변을 가득 채웠다.
단 한 명도 살려서 보내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였다.
“살아 나갈 생각은 단 한 명도 하지 말도록.”
스르릉.
스르릉.
파평의 등 뒤에 꽂혀 있던 쌍검이 뽑혀 나왔고, 동시에 수하들이 객잔의 입구를 막아서면서 숨 막히는 상황이 전개되었다.
“큭.”
“후웁. 후웁.”
송무와 설화린, 백리무영과 신혁건은 긴장된 얼굴로 자신들을 짓누르고 있는 무거운 압박감을 이겨 내려고 애썼고, 이백과 진량은 위사검의 옆에 바짝 붙었다.
“……모두 죽이고 역혈마공을 탈취한 후 천마신교로 넘어간다.”
파평의 말 한마디에 수하들이 일제히 검을 빼 들었다.
“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