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5화
제105화
당백진과 악교운을 비롯한 대다수의 사천무관 일원들이 별안간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더할 나위 없이 심각해진 표정에 따라, 개방의 일원이자 산동무관의 7기수 탁궁이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그 말이 사실인가?”
악교운의 말에 탁궁의 고개가 무겁게 끄덕이다 말고 품속에서 서찰을 꺼내 들어 건넸다.
“남궁 관주께서 직접 전하라고 한 서찰입니다.”
남궁도의 필체가 명확한 서찰에 담긴 뜻은 단 하나였다.
「 정파 무림 전역에 정체 모를 마공서가 대거 나타났다! 」
난데없는 소문이 사천 전역을 휩쓸었다. 삼대 무관이 자리 잡고 있는 곳은 물론이거니와, 각 지역마다 한때 마인들이 펼치던 마공서들이 나타났다는 소문이었다.
소문의 진위 여부를 확인할 순 없었지만, 무언가가 있는 것은 확실해 보였다.
그 예로.
“파건량과 금태도 역시 움직였다고 합니다.”
“헙!”
“흐억!”
사천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장강수로채 채주인 수룡왕 파건량과 녹림칠십이채 채주인 벽력왕 금태도의 엉덩이도 들썩였다는 사실이다.
파건량과 금태도.
두 사람의 이름은 듣는 이로 하여금 오금을 저리게 만든다. 특히 후보생들과 갓 생도가 된 이들에게는 기겁할 만큼 악명이 높았다.
“……그 두 사람이 직접 움직였다는 겐가?”
나직한 악교운의 물음에 탁궁은 자세를 고쳐 잡으며 정중히 대답하였다.
“직접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그들이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은 확실합니다. 장강수로채의 일선에 있던 수룡대 중 일부가 움직였고, 녹림채의 산왕단 역시 행동에 나섰습니다.”
그런 사실이 공공연하게 퍼지다 보니 그 영향력은 사천무관에까지 미쳤는데.
“진짜일까?”
“그럴 리가 있겠냐.”
“갑작스럽게 마공서라니 누가 믿겠어?”
“아냐. 정신 나간 마교 새끼들이라면 가능하지. 으휴.”
후보생과 생도, 너나없이 모두 마공서 이야기로 수군거렸다.
마공. 그리고 마공을 익힌 이들을 마인이라고 한다.
그 마인들이 소속된 천마신교는 그 이름만으로도 사람들의 뒷덜미를 서늘하게 만든다.
“설마 사천에 마교가 나타난 건 아니겠지?”
“마교가? 설마, 아직도 내전 중이라고 얼핏 들은 거 같은데.”
“모르지. 강산도 십 년이면 변한다고 했어.”
마공서가 사천 전역에서 나타났다는 것은 어쩌면 마교의 발호를 뜻하는 것은 아닌지 사람들은 의심했다.
그것이 곧 정파 무림을 위협하는 계기가 될까 노심초사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그리고 그들 중에는.
“히이익! 마, 마교!”
“이제 빛 좀 보려 했더니, 마교라고?”
“바람 잘 날이 없구나. 내 앞길은.”
참담한 표정을 짓고 있는 8기 후보생들도 포함돼 있었다. 사천무관이 비무대회에서 우승했다는 사실로 한껏 들떠 있었던 것이 무색할 정도로 어두운 분위기로 바뀌었다.
“사파들도 관심을 가지고 움직일 정도라고 하던데?”
“장강수로채와 녹림칠십이채도 움직인다고 들었어.”
“설마 우리가 파견되진 않겠지?”
“파견은 무슨. 후보생들을 내보내겠어?”
아무리 윗대가리들이 생각이 없다고 해도 그렇지!
송무의 괜한 걱정에 후보생들이 혀를 차며 말하는 와중에 당백진과 악교운의 표정은 더없이 심각해졌다.
“갑작스럽게 마공서라…….”
“다시 그들이 움직인 것일까요?”
“……그렇다고 보기엔 너무 맥락이 없네. 녀석들은 계획적이고 아주 치밀하지. 여태껏 그래 왔어.”
당백진으로서는 전혀 이해가 안 되는 상황이었다.
과거 그는 천마신교와 격전을 치렀고, 누구보다 그들의 생리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과거 정마대전을 치르면서 천마신교는 누구보다도 용의주도하고 치밀한 사람들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마공서를 정파 무림 전역에 투하해 버린다?’
당시의 천마신교와 현재의 천마신교가 다른 점이 있다면.
‘천마 천무린의 부재. 그 고약한 늙은이가 사라져 천마신교 내에서 통제가 전혀 안 된다면?’
그렇다면 그럴 수도 있었다. 내전이 아직 끝나지 않았기에 천마신교는 전력을 제법 많이 잃었을 것이다. 그러니 외부로 시선을 돌려 공동의 적을 만듦으로써 내부 결속을 다지려 한다면.
내전이라는 불필요한 희생을 어느 정도 줄일 수 있다.
‘결론은 그것뿐이다.’
“천마(天魔)의 부재로 이런 상황이 발생한 것이라면 아마 외부로 시선을 돌려 내부를 단결시키려는 것은 아닐까 합니다.”
악교운 역시 당백진과 동일한 생각을 하였고,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다시금 하나로 집약된다면.”
두 사람의 표정은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졌다.
걷잡을 수 없는 겁화(劫火)가 일어날 터였다.
그리고 그 시작점은 사천이 될 가능성이 농후했다. 당장 장강수로채랑 녹림칠십이채가 맞닿아 있는 곳이기도 하거니와, 요충지에서 가까운 사천의 지리적 특성 탓도 있다.
그렇게 복잡한 머릿속으로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가운데.
“……저어.”
“응?”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파고들었다. 조심스럽다 못해 반듯한 예의를 갖춘 개방의 동도가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는 이만 돌아가 봐도 되겠습니까?”
탁궁이었다.
피곤해 보이는 안색을 한 탁궁은 한눈에 봐도 그가 개방과 산동무관에서 얼마나 시달렸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 모습에 절로 측은지심이 일어난 당백진은 악교운을 바라보며 어서 돌려보내라는 뜻을 전했다. 이미 제 몫을 다했다고 여긴 악교운 역시 당백진의 뜻을 이어받아 탁궁에게 손짓하였다.
“어여, 돌아가 보게나…….”
아니, 그렇게 손짓을 하려는 찰나.
“미친, 어딜 보내려고! 이 쓸 만한 새X를! 아, 아니, 인재를!”
“…….”
쓸 만한 새X?
얼떨떨한 표정을 짓는 탁궁의 뒤에 서 있던 당백진과 악교운이 눈을 질끈 감았다. 굳이 보지 않아도 누구의 음성인지 알기에 귀에 들리는 것이 이젠 싫어질 정도였다.
저벅저벅, 유들거리는 발걸음으로 다가온 천무린이 흐뭇하게 웃으며 탁궁의 어깨 위로 손을 올렸다.
“껄껄, 고생이 많소이다. 탁궁 생도.”
“……천무린 후보생?”
산동무관의 일원으로 그와 자웅을 겨뤄 본 적은 없지만, 천무린은 삼대 무관 비무대회가 낳은 최고의 유명 인사였다.
처음에 마공서와 관련된 소문이 돌았을 때, 사천무관으로 누가 파견을 갈 것인가를 놓고 의논할 때 탁궁이 자진해서 가겠다고 나선 이유도 천무린 때문이었다.
「 어쩌면 다음 천하제일인은 천무린이 될지도 모른다. 」
이것이 탁궁이 내린 결론이었다.
거기다 강호 무림의 생리를 남들보다 일찍 깨우친 탁궁으로서는 천무린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눈여겨보고 있던 터라 이렇게 친분을 쌓을 수 있다는 사실이 반가웠다.
씨익.
호의가 담긴 탁궁의 표정을 바라보며 절로 한숨을 내쉬는 악교운이었다.
보이는 게 다가 아니란다, 탁궁아.
심지어.
천무린이 자꾸 입 모양으로 악교운에게 말하고 있다.
‘쓸 만한 새X!’
쓸 만한 놈이라고, 쓸 만한 녀석이라고 자꾸 말하는 천무린의 모습에 악교운이 다시 한번 눈을 질끈 감았다.
암만 그래도 너보다 한 기수 높은 생도야! 이 자식아!
악교운이 입안에 맴도는 말을 애써 참으며 천무린을 바라봤다.
“……무슨 일인가, 천무린 후. 보. 생?”
“잘 생각해 봐요. 개방의 사결개라고요, 사결개.”
어깨동무를 한 채 탁궁의 옆구리에 차고 있는 네 가닥으로 꼬여 있는 밧줄을 잡고 흔들었다.
덜렁, 덜렁.
사결개라는 상징은 그가 개방에서도 각광받고 있는 후기지수임을 뜻했다.
“그 누가 오더라도 이 녀석보다 더 괜찮은 녀석이 사천무관을 상대해 줄 것 같아요? 가진 정보가 얼마나 많을 거며, 받아들일 수 있는 거지 놈들 중에 이 녀석보다 더 나은 놈이 있을 것 같으냐고요!”
……맞는 말이었다.
사결개라는 상징성과 더불어 힘 또한 천무린이 말한 그 이상이었다.
다만.
“……저, 천무린 후보생?”
탁궁의 표정이 황당함으로 물들어 있었다.
듣는 거지 놈(?) 기분이 아주 묘해지는 상황이었다. 아무리 맞는 말이라고 해도 듣는 사람 앞에서 저리 대놓고 말을 하다니.
“외람된 말이지만, 천무린 후보생. 나는 그리 한가한 사람이 아니오. 어디까지나 개방의 일원으로서…….”
“아유, 그럼. 얼마나 공사가 다망할까. 바쁜 거 내 다 알지. 근데!”
그러면서 어딘가를 향해 손짓을 막 하는 천무린이었다.
휘적휘적!
“으응?”
그곳으로 시선을 돌리자, 송무와 태강 그리고 소강이 작은 소반 위에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다양한 요리들을 들고 왔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다~ 먹고살자고 하는 짓인데, 설마 밥 먹는 걸로 뭐라 하겠어? 어?”
그 말과 함께 탁궁의 눈앞에 놓인 잘 차려진 산해진미!
사천에서만 맛볼 수 있는 요리들과 자극적인 향이 솔솔 피어오르는 음식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꼬르르륵.
“…….”
탁궁의 두 눈이 급격하게 흔들렸다.
누가 뭐라고 해도 탁궁은 개방의 일원이었다.
개방의 근간은 무엇인가.
거지다. 즉 매 끼니 걱정을 달고 살아야 하는 숙명을 타고난 셈이었다.
그러니 바로 눈앞에 밥이 있으면 일단 먹어야 한다. 언제 굶을지 모르기 때문에 먹을 수 있을 때 먹어 둬야 하는 법이다.
“이 정도 음식이면 개방의 태상방주라고 해도 못 참지. 안 그래?”
천무린의 나긋한 속삭임이 탁궁의 경계를 허물었다.
“우리가 산동무관이랑 개방한테 잘 말해 주면 되는 거 아닌가? 저어기, 당 관주님은 항상 준비되어 있다고. 그렇죠, 당 관주님?”
그 말과 함께 당백진에게 시선을 보낸 천무린에게 당백진은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어? 어……. 그렇지. 내 잘 말해 줌세.”
당백진의 말에 탁궁은 그대로 허물어지듯 쓰러져 허겁지겁 음식을 퍼먹기 시작했다.
와구, 와구!
“어허!”
정신없이 음식을 퍼먹는 탁궁에게 천무린이 눈에 쌍심지를 켜며 노호를 터뜨렸다.
“……그렇게 먹으면 체하니까 물도 마셔 가며 천천히 먹어. 많아.”
그 말에 탁궁은 깊이 감동한 것인지 천무린이 주는 물을 꿀꺽꿀꺽 마셔 가며 사천요리에 깊이 빠져들었다.
“후후후. 후후후후. 후후후후후.”
흐뭇하게 미소를 짓고 있는 천무린을 바라보며 당백진과 악교운, 음식을 가져다준 송무와 태강, 그리고 소강까지 모두 닭살이 돋는 팔뚝을 쓸어내려야만 했다.
동시에 떠오르는 공통적인 생각.
‘……이 악마 같은 새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