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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무신, 무림학관을 제패하다-101화 (99/250)

제101화

제101화

회의가 끝난 직후 공선은.

“……섬서무관을 퇴관하겠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검을 잡지 않겠습니다.”

다른 이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무림인의 길을 폐했다. 제갈벽에게 당한 배신감과 자신의 동기들을 버렸다는 죄책감, 그리고 이런저런 복잡한 감정들로 인해 내린 마음의 결정이었다.

그 이야길 들은 천무린은,

“싸게 먹혔네. 할복을 해도 모자를 판이었을 텐데. 후후, 앞으로 내 눈에 띄지 말라고 해! 얼굴 보면 단전 바로 부숴 버릴 거라고.”

그런 이야길 했다고 한다.

그렇게 한차례의 폭풍우가 지나가고, 그 폭풍우는 생각보다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특히, 삼대 무관 비무대회를 즐겁게 관전하던 관중들에게 하후성은 어느 정도 양해를 구해야만 했다.

「 섬서무관의 기권! 」

섬서무관의 전력은 온전했지만, 조금씩 퍼지는 기이한 소문에 혜공과 청강은 삼대 무관 비무대회에서 기권이라는 사상 초유의 결정을 내렸다. 기권했다는 소식은 또 다른 수많은 소문을 낳겠지만, 급한 불을 꺼야 하는 입장이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하물며 의원의 침실에서 섬서무관의 생도와 후보생들이 단전이 폐해진 채 단체로 드러누워 있으니 수상한 소문이 안 날 리가 있을까.

섬서무관 습격 사태라는 기이한 소문이 낙양 바닥 전체를 휩쓸기 전에 어서 떠나야만 했다. 그저 심증만 남아 있을 때 떠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물론 거기서 덕을 본 이는.

“이런 접시 물에 코 박을 놈들! 허구한 날 섬서무관이라고 거들먹거리더니 꼴좋구나!”

남궁도가 이끄는 산동무관이었다.

꼴찌라는 수모를 겪기도 전에 섬서무관이 기권패를 하였고, 거기다 섬서무관의 악소문이 터져 나오면서 비무대회에서 패한 것이 절로 묻혀 버린 것이다.

그러면서 겸사겸사 남궁도는 ‘약삭빠른 놈들보단 우직하게 정면 승부를 하는 놈들이 더 낫다!’라고 떠들고 다녔고, 그것이 어느 정도 먹히는 듯했다.

어쩌면 삼대 무관 비무대회에서 최고의 업적을 만들 뻔했던 사천무관이었으나.

“끄응차, 드디어 집에 돌아가는 건가.”

“집은 무슨! 무관이 언제부터 집이 됐냐!”

“나름 꽃길을 걷다 왔잖아.”

“무슨 개소리야. 이제부터 다시 불꽃길이 시작인데!”

생도들과 후보생들은 낙천적이었다. 할 만큼 했다는 표정을 짓는 이들을 닦달할 순 없는 노릇 아닌가.

그런 모습을 바라보는 악교운 역시 시원섭섭한 표정으로 비무대회를 정리해야만 했다.

“아니! 잠깐만, 무슨 이렇게 얼렁뚱땅 넘어가?”

으응?

“비무대회가 끝나는 건 끝나는 거고! 우승은 제대로 발표해야 될 거 아냐. 이 멍청이들아!”

아……!

후보생들과 생도들은 하나같이 싸고 있던 짐을 풀었다.

“생각해 보니까 그러네? 억울하게.”

“맞아. 우승이라고 딱 찍어야지!”

송무와 태강이 옳다며 소리쳤고, 다른 후보생들도 옹호했다.

“웬일로 맞는 말을 했대요?”

“웬일로? 몸 좀 나아졌다고 또 까불지?”

설화린과 티격태격하기 시작한 천무린이었고.

“…….”

“혁건, 넌 왜 우울해하냐?”

“냅둬. 뻔하지 뭐. 이번 대회에서 별호 못 얻어서 지금 우울한 거잖아.”

신혁건을 다독이는 백리무영과, 코웃음 치는 백리후.

“그럼 우리 이제 생도가 되는 건가?”

“모르지. 어떻게 될지. 돌아가 봐야 알지 않을까 싶은데.”

“떨린다…….”

명진과 진무양, 낭소소는 기대감 어린 시선으로.

“피곤하다. 열양장으로 나 마사지 좀 해 주면 안 되냐.”

“미친놈이!”

황태와 남사익까지.

“후배 녀석들 따라가야지.”

이백이 움직이고,

“세~ 상 많이 좋아졌다. 선배가 후배들 따라가고.”

“꼰대냐. 닥치고 따라와.”

구태현과 문호까지 8기 후보생들과 어울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악교운은 피식 웃으며 나직이 이야기했다.

“걱정일랑 말도록. 잘 챙겨 줄 거다.”

“에? 그걸 어떻게 믿어! 이 양반아! 지금도 아무것도 안 하잖아.”

천무린의 말에 악교운이 창피하다는 기색으로 고갤 떨궜다.

“……당 관주님이 왜 안 보이시는지 모르겠냐?”

“어? 그러고 보니.”

이 양반, 어디 갔어.

그렇게 어리둥절해하고 있는데, 당지운이 창피하다는 듯 목덜미까지 붉어진 채 일행이 있는 곳으로 걸어와 입을 열었다.

“……나가자. 준비 다 됐대.”

“준비? 뭔 준비?”

“나가 보면 알 거다.”

악교운까지 나서서 말하자, 떨떠름한 얼굴을 한 천무린을 필두로 비무장이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비무장으로 들어서는 어두운 통로 끝에서부터,

“와하하하하! 와하하하!”

우렁찬 웃음소리가 비무장을 가득 메웠다.

“아주 입 찢어지겠소! 그만 웃으시오!”

“기쁜 날에 웃는 것까지 뭐라 하는 것이오, 남궁 관주. 부러우면 부럽다고 하시오!”

“크윽.”

당백진이 함박웃음을 지은 채 어두운 비무장 통로에 멈춰 서 있는 일행의 기세를 느끼고는 소리쳤다.

“뭣들 하는 겐가! 어서 오지 않고! 어서! 어서!”

멈칫.

하아아, 정말. 정말로.

천무린이 질린 표정으로 멈춰 서서 일행의 얼굴을 쭉 훑었다. 모두가 같은 생각인 듯, 한마음 한뜻으로 창피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저 나이 먹고 저게 무슨 추태인지! 으이구! 주책이야, 정말.

“……원래 저런 사람 아니지 않았어?”

“관주님 항상 무게 있고.”

“중압감 있고.”

분명 그랬는데.

“으아아아! 쪽팔려! 나 안 가.”

천무린의 말에 모두가 공감했지만, 악교운이 멈춰 선 천무린의 등을 떠밀었다.

“……창피한 건 창피한 거고, 즐길 건 즐겨야지.”

못 이기는 척 천천히 걸어가는 천무린. 그리고 그 뒤에 후보생들과 생도들이 느릿느릿 걸음을 옮겼다.

찌이잉!

어두운 통로를 막 벗어나 쨍한 빛무리가 그들의 시야를 가린 그 순간,

“와아아아아아아아!”

“우오오오오오!”

“사천! 사천! 사천!”

“우와아아아아! 사천무관의 주인공이다!”

“사! 처어어언!”

낙양 바닥을 떨어 울리는 엄청난 환호 소리였고, 새로운 주인공이자 영웅들을 반기는 함성이었다. 온몸을 전율케 하는 함성은 후보생들과 생도들에게 깊은 울림을 안겨 주었다.

천무린 역시.

“……많이들 모였네.”

시선을 어디에 두어도 가득 메운 인파로 얼떨떨할 지경이었다. 정작 대회를 진행할 때에는 느끼지 못했던 부분이었는데.

……새로웠다.

절대자였던 천마이자 무신으로 각광을 받던 시대를 살았어도 두려움 혹은 무력에 대한 경외심이 아니라 이처럼 순수한 동경의 눈빛을 받아 보는 것은.

“호호, 좋으면서 뭘 또 그렇게 퉁명스럽게 이야기해요. 그렇게 무게감 있으신 당 관주님도, 쑥스러워 차마 고갤 못 들던 악 교관님도 지금은 저렇게 즐기고 계시잖아요.”

설화린의 말마따나 당백진은 관중들의 환호에 따라 꽃다발을 들고 손을 흔들고 있었다.

무려 8년 만에 만끽하는 우승이었고, 그간의 설움을 씻어 내는 몸짓이었다.

악교운의 손을 맞잡아 들어 올릴 정도로 당백진은 그저 순수하게 이 자리를 즐기고 있었다.

“그리고 저렇게 해 주셔야 우리도 만끽할 수 있는 거 아니겠어요.”

그녀의 말에 고갤 돌린 천무린의 눈에,

“매화쌍절이다! 우와아아아!”

“사일검룡 이백! 진정한 검수였소이다아!”

“추풍검은 어떻고! 최고였소!”

“적화객! 적화객! 적화객!”

즐기고 있는 녀석들이 눈에 들어왔다.

후후, 그런가.

즐길 때는 또 즐길 줄 알아야 하는가.

녀석들의 반응에 슬며시 미소를 짓고 있는데,

투욱.

“……그리고 이제 당신 차례예요.”

어깨에 손을 올리더니 힘껏 밀어 버린 설화린 때문에 천무린은 앞으로 튕겨 나가듯 몇 걸음 나섰다.

졸지에.

타타탓.

비무장 중앙으로 와 버렸다.

그러자 3초간의 정적 후.

“와아아아아아아! 천무린! 천무린! 천무린!”

“사천무관이 낳은 최고의 후기지수가 아니던가.”

“아니지! 이제는 정파 무림 최고의 후기지수라고 할 수 있지 않겠나.”

목청이 터져라 부르짖는 이들의 함성은 다른 이들에 대한 환호를 훌쩍 뛰어넘을 정도였다. 그 어떤 별호로도 호명되지 않았지만, 천무린이라는 이름 석 자가 낙양 바닥에 크게 아로새겨지는 순간이었다.

“……크흐흠.”

머리를 긁적이는 천무린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후보생들과 생도들이 낄낄거렸다.

“뭐야, 저 녀석. 지금 쑥스러워하는 거야?”

“와, 저런 모습도 있었네.”

“그러게. 나 원 참, 인간다운 면모가……. 어?”

그간 인간답지 않은 모습만을 보다가 저런 순수한 모습을 보고 빙긋 미소를 지으려는데, 갑자기 천무린의 가슴에 힘이 들어가며 어깨가 한껏 올라간다.

“엣헴, 그래그래! 다들 내 이름 잘 기억해 두라고. 내가 누구!”

“천! 무! 린!”

“옳지! 캬하하하!”

그럼 그렇지.

순수할 리가 없지.

이젠 떼창까지 시키는 천무린을 보면서 기가 막힌 얼굴로 혀를 내두르는 후보생들과 생도들이었다.

그러나 그런 모습을 보면서 헛웃음을 짓는 이도 있었다.

“……앞으로 사천무관의 행보가 기대됩니다.”

천무린을 비롯한 사천무관의 일행이 보여 주는 모습은 근래에 가장 기대되고 흥미로운 광경이었다. 그리고 그의 옆에서 독고황이 미미하게 고갤 끄덕이며 나직이 말했다.

“그만 돌아가지. 시간을 많이 끌었어.”

“예, 예!”

공식적으로 사천무관이 우승했다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비무대회가 시작부터 끝까지 매끄러운 진행이 되지 못했기에.

그러나.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인정했다.

우승자가 누구인지를.

* * *

사천무관으로 복귀한 후보생들의 관심사는 단 하나였다.

“아니, 그래서 우리 어떻게 되는 건데?”

“어떻게 되긴. 우승했잖아. 우승인데, 당연히 진급 아니야?”

“공식적으로 우승이란 말이 없었잖아. 이거 말 바꾸면 우리 다 조지는 거라고.”

“야야, 걱정 마.”

태강이 걱정 말라는 표정으로 고갯짓을 했다. 그 반응에 송무가 고개를 갸웃했다.

“왜? 넌 걱정이 안 돼?”

“그게 아니라……. 이럴 때만큼은 든든한 우군이 있잖냐. 그것도 아주 드러븐 우군!”

“그러게. 관주님이랑 총교관님은 괜찮으실까?”

“괜찮긴 개뿔, 사천무관으로 돌아올 때까지 매일같이 당 관주님이랑 곡료를 까면서 뭐 거의 친구 먹었다고 하더만.”

……그저 말만 들었다면 거짓말하지 말라고 소리쳤을 송무였지만.

“그랬지. 곡료 냄새가 아주 진동을 하더라.”

“어떻게 관주님이랑 곡료로 대결할 생각을 하냐. 진짜 난놈이라니까.”

“그런 걸 난놈이라고 평가하나…….”

그렇게 대화하고 있는 와중에,

딸꾹!

딸꾹!

숙소로 걸어 들어오는 한 인영이 득의양양한 미소를 지었다.

“이 새끼들아! 이제 다 같이 1학년이다아! 딸꾹!”

그 말에 후보생들이 제각기 손뼉을 마주치며 환호성을 질렀다.

“아차차, 우리 바로 아래 기수 얼굴을 볼 수 있을 거야. 후후후.”

“후후후.”

“후후.”

……그러나.

“그 전에 처리해야 할 게 있지.”

들뜬 후보생들을 쭉 훑는 천무린의 시선이 별안간 싸늘해졌다. 그리고 품속에 있던 많은 책자들을 꼼지락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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