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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무신, 무림학관을 제패하다-100화 (98/250)

제100화

제100화

마공 하면 천무린, 천무린 하면 마공이다.

비록 지금은 마공을 쓸 수 없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공에 대한 해박한 지식마저 잊은 건 아니었다. 언제고 다시 쓸 날이 오리라고 믿으며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네놈이 혈마공을 어떻게 알고 있는 것이냐!”

제갈벽이 이 혈마공을 숨기느라 지금껏 얼마나 고생했던가.

그런데.

후비적, 후비적.

귀를 파면서 대수롭지 않은 표정을 짓는 저 녀석은 대체 뭐란 말인가.

기괴한 모습을 한 제갈벽에게 쯧쯧 혀를 차는 천무린이었다.

“쯔쯧, 이놈아! 마공의 마(魔) 자도 모르는 놈이 어디서 나한테 마공을 운운해!”

“……주둥이만큼은 인정해줄 수밖에 없는 놈이로다. 내 오늘 네 입을 찢어서 다시는 그 건방진 입을 열지 못하게 만들어 주겠다.”

염X하네. 네깟 게 뭐라고 내 입을 찢느니 마느니 해.

근데.

“이 상황이 좀 이상하지 않냐?”

나만 이상한가.

“뭔가 착각하고 있나 본데. 정파 무림인, 그것도 제갈세가의 일원인 네가, 그것도 섬서무관의 총교관이라는 녀석이 마공을 쓰고 있다는 게 그리 당당할 일이냐.”

“상관없다. 여기서 네 녀석을 갈기갈기 찢어 죽이면 아무도 모르는 일이 된다. 후보생 하나 사라지는 것쯤이야.”

하여튼, 세상이 거꾸로 돌아간다니까.

정파 새끼들이 걸핏하면 살인멸구를 입에 담아.

으휴.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된 건지 모르겠다만.

스르릉.

검집째 타구봉법을 펼치던 천무린은 서서히 검집에서 검을 뽑았다. 혈마공으로 서슬 퍼런 기세를 내뿜는 제갈벽을 마주 바라봤다.

“후우.”

저벅. 저벅.

줄줄 뿜어대는 살기와 여유 만만한 미소에 담긴 호기로운 표정. 애초에 숨길 생각이 없는 듯했다.

속전속결로 이 상황을 정리할 생각인지 제갈벽은 거칠게 숨을 내쉬더니 그대로,

꾸국! 퍼엉!

쇄도해 오는 모습에 주변 공기가 찢어질 듯한 굉음을 냈다.

“후후후후, 이게 바로 혈마공. 과연 최강의 마공 중 하나라고 평가받는 이유를 알겠노라.”

절로 웃음이 나는 제갈벽은 혈관을 타고 흐르는 고양감에 도취해 버렸다. 말 그대로 주체할 수 없는 힘이 용솟음친다.

세상 그 누가 와도 자신을 이길 수 없으리라. 그렇게 자신할 수 있었다.

저 앞을 보라.

천둥벌거숭이처럼 날뛰던 녀석도 나의 속도에 감히 범접할 수 없음을 느꼈는지 미동조차 못 하고 있지 않은가.

“……이제 와서 후회해 봐야 소용없다! 내 모습을 본 이상, 결코 죽음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기괴한 모습만큼이나 쇠를 긁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짓쳐들어오는 제갈벽의 거대해진 손이 쥐어지면서 그대로 천무린에게 권격을 뻗었다.

그리고.

그 권격을 무미건조하게 바라보던 천무린이 씨익 웃는다.

“웃어?”

“그래, 웃었다. 왜?”

서서히 들어 올리는 검 끝에서 부드러운 예기가 담긴다.

그 예기에 권격을 뻗던 제갈벽은 코웃음을 쳤다. 기껏해야 실낱같은 기운일 뿐. 검과 함께 통째로 박살 낼 수 있을 터였다.

무게중심이 앞으로 쏠리면서 권격은 코앞까지 다가왔다.

서걱! 서거걱!

그리고 울려 퍼지는 파육음.

맹수처럼 달려든 제갈벽의 오른 팔뚝에서 무수한 피보라가 일어나며 동시에 신음 소리가 터져 나왔다.

“크으아아!”

“이거, 이거. 잘 안 되네?”

이백 선배가 썼던 게 사일검법의 구곡전척(九曲箭剔)이라고 했던가.

역시 한 번 보고 기억해 낸 걸로는 무리가 있는 것 같네, 쩝.

“사, 사일검법?”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타구봉법도 그렇고, 사일검법도 그렇고. 심지어는 혈마공까지 알고 있는 눈앞의 녀석이 정녕 무관의 후보생이라고.

“……네 녀석의 정체가.”

“내 정체를 알아서 뭐 하려고. 어차피 여기서 죽을 텐데.”

핏물이 낭자하게 뿌려졌음에도 불구하고 언제 그랬냐는 듯 팔뚝의 상처가 이미 회복된 제갈벽은 거친 호흡을 내뱉으며 맹수의 눈길로 천무린을 바라봤다.

“상처 입은 늑대새끼 같은 표정 짓지 말고 아까처럼 또 달려들어 보시지? 네게 주어진 시간이 그리 많진 않을 텐데.”

그 말에 제갈벽의 두 눈동자가 급격히 흔들렸다.

주어진 시간.

혈마공의 유일한 단점이자 최악의 단점.

혈마공은 사용하는 자의 이지(理智)를 갖고 간다. 즉,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멀쩡했던 정신을 점점 미쳐 가게 만드는 단점을 지니고 있었다.

그 최악의 단점에도 불구하고 혈마공이 최강의 마공 중 하나로 손꼽히는 이유는 압도적인 힘을 주기 때문이다.

꽈드드득.

“정말로 살려 두어선 안 되는 놈이로구나.”

그리고 폭풍과도 같은 기세로 달려든 제갈벽은 그저 달려드는 데 그치지 않고 보다 신중을 기했다. 주어지는 힘에 그저 취하는 것이 아니라 운용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콰앙! 콰앙!

공격을 막아 내던 천무린의 움직임이 주먹질 한 방에 휘청거렸다.

무릎이 꺾일 정도로 강대한 힘인 혈마공에 천무린은 속절없이 물러나야만 했다.

“쳇.”

아무리 흘려 내도 그 힘을 모두 떨쳐 내기란 쉽지 않았다. 단 한 방에 상황이 역전될 정도로 천무린의 표정이 창백해졌다.

콰앙! 콰앙!

무더기로 쏟아져 내리는 힘의 향연에 천무린은 무림인이라면 창피해서 절대 쓰지 않는다는 나려타곤(懶驢打坤, 데굴데굴 구르기)까지 펼치며 공격을 피해야 했다.

물론 그 와중에도.

서걱!

검의 예기가 제갈벽의 종아리와 옆구리, 팔뚝에 생채기를 냈다.

“흥!”

물론 그런 상처에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 제갈벽은 콧김을 뿜어내며 다시금 자세를 잡았다.

“……아고, 나 죽는다.”

그리고.

“나랑 성미가 안 맞아서 이런 건 안 쓰려고 했는데.”

생각해 보니 나려타곤까지 쓴 마당에 무엇이 창피하랴.

개똥같이 굴러도 죽는 것보다 낫다! 이 말이야, 이 자식아!

“그런 허장성세에 내가 넘어갈 것 같으냐!”

검을 바로 세우는 천무린을 향해 제갈벽은 입술을 혀로 한차례 핥더니 다시금 쇄도했다. 이미 천무린의 검 맛을 봤기에 경계의 눈빛을 한 채 말이다.

코앞에 다가갈 때까지도 검 끝의 움직임이 느릿하자, 제갈벽은 혈마공의 힘을 최대로 끌어올렸다.

꾸구국.

전완근이 터질 것처럼 부풀어 올랐다. 이 정도의 거력(巨力)이라면 그 누가 막을 수 있으랴!

그런데.

콰아아아아…….

폭발적인 소음을 내도 모자랄 공격의 소리가 힘없이 사그라들었다.

“……이, 이게 무슨!”

기운이라고는 눈곱만큼밖에 없는 검 끝이 제갈벽의 팔뚝을 부드럽게 회전시키며 파괴력을 흘려 냈다. 그와 동시에 비틀려서 흘려 낸 기운이.

콰앙!

그제야 폭발음을 냈다. 제갈벽을 향해서.

“쿠으아악! 콜록! 콜록. 컥컥.”

뻗었던 공격이 그대로 되돌아오다니. 상대방의 공격을 역이용하는 이화접목(移花接木)의 묘리를 담은 무공은 강호 무림에서 단 하나밖에 없었다.

태극혜검(太極慧劍).

무당파의 개파조사인 장삼봉이 직접 만들었다는 절대적인 무공 중 하나다.

“거참, 하여간 나랑 성미가 안 맞는 검법이야.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고. 이게 뭐람.”

몇 번이나 고심했다. 고심 안 했으면 몇 대 처맞지도 않았겠지만 어쩌겠나.

어? 무공이 말이야. 치고받는 재미가 있어야지. 뭐만 하면 흘려 내고, 부드럽게 역이용하고. 하여간 장삼봉 그 인간도 더럽게 재미없는 무공을 만들어 냈단 말이지.

“쿨럭, 쿨럭.”

피를 몇 움큼이나 토해 내던 제갈벽에게 어깨를 으쓱하는 천무린이었다.

“어, 어째서 혈마공까지 익힌 내가……!”

아, 이거야 원. 또 분조장 시작인가. 방금까지 힘에 취해서 껄껄대던 녀석이 몇 대 맞고는 분노를 조절하지 못한다.

“사상 최강의 마공이라는 혈마공을 익혔는데 어째서!”

야야, 사상 최강은 아니지. 그건 선 넘었고.

“아냐. 너 강해. 강했어. 근데 혈마공 그거.”

뚜벅, 뚜벅.

다가가는 천무린은 쪼그려 앉아서 땅바닥을 잡고서 거칠게 숨을 내쉬는 제갈벽을 지그시 바라봤다.

“미완성이야. 미완성. 진짜 마공의 이름은 역혈마공이고.”

“……무, 뭐?”

피식.

“아니, 난 그 작전 반대한다고 했었거든?”

“……작전?”

멍하니 내 이야기를 듣는 제갈벽의 표정이 이보다 더 멍청할 순 없었다.

“어떤 멍청한 새끼가 정마대전에서 얻은 마공을 익히려 들겠냐고? 그것도 전장 한복판에 떨어진 책자를 말이야. 의심도 안 하고. 근데 그걸 굳이 하자며 애들이 작전을 펼치자고 하더라고.”

불과 십여 년 전에 일어난 정마대전에서 마도인들이 펼쳐 낸 작전은 실로 다양했다. 기습, 야습, 화공을 비롯한 각종 전략과 더불어 비열한 계책도 썼다.

그리고 그 와중에.

「 미친놈들아, 미완성된 마공서를 뿌리자고? 전쟁 통에 그런 정신 나간 소릴 하고 싶냐. 」

「 밑져야 본전 아니겠습니까. 어차피 역혈마공도 사장된 마당에 혈마공을 뿌려서 녀석들끼리 다투기라도 하면 제법 괜찮은 작전이 될 겁니다. 」

영 마뜩찮았지만 어차피 그 당시야 마도 통일, 천하제패가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기에 마음대로 하라고 했다.

“……세상이 참 얄궂지?”

이보다 더 절망적인 말이 있을까. 그간 믿었던 동아줄 하나가 알고 보니 썩은 동아줄이었다. 맨 정신으로 그런 사실을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으리라.

“완성된 무공인 역혈마공도 고작 일각(15분)을 쓰고 나면 며칠을 요양해야 하는데, 미완성인 무공으로 넌 지금 얼마나 활개치고 다닌 거냐. 멍청한 새끼.”

역혈마공은 숨겨져 있는 잠력까지 모조리 폭발시켜 가진 힘을 최대치로 끌어내는 무공이었다. 다만 잠력을 폭발시키는 만큼이나 후유증이 너무도 컸기에 익히는 자들이 그리 많지 않았다. 역혈마공을 익힌 이들을 상대하는 해법은 너무나 명확했다.

천무린처럼 시간을 질질 끌면서 일각이 지나길 기다리는 것.

“지금쯤 네 선천지기(先天至氣)도 고갈되고 있을 텐데. 짧은 시간이나마 옛 천마 시절을 떠올릴 수 있어 즐거웠다.”

쪼그려 앉은 천무린의 말에 제갈벽의 동공이 급격히 흔들렸다.

“처, 천마?”

“혹시라도 저승사자를 만나게 되면 말해 줘. 나 지금 이렇게 약조 잘 지키면서 살고 있으니까 금제 좀 풀어 달라고. 너 같은 새낄 만나도 내가 죽이질 못하잖아. 앙?”

얼마나 안타깝냐고.

그 말을 남긴 천무린은 온몸이 바스라져 가는 제갈벽을 뒤로하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아, 안 돼! 나, 나 제갈벽이!”

뚜벅, 뚜벅.

“……네 손에 피 묻히지 않고 알량한 주둥이로 많은 이들을 농락한 죄를 달게 받아라. 그리고.”

흔적조차 남지 않을 것이었다. 어쩌면 이 세상에 제갈벽이라는 인물이 있었다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어설프게 마공을 익혀 날뛴 죄, 목숨으로 갚아라.”

사사사삭.

먼지처럼 한 줌의 재가 되어 버린 제갈벽의 흔적이 바람을 타고 멀리 사라졌다.

그리고 천무린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쩌면 제갈벽 단 한 명이 아닐 수도 있다. 그 당시에 펼쳤던 작전은 무수히 많았으니까.

“후우, 제법 발걸음이 무거운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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