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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무신, 무림학관을 제패하다-99화 (97/250)

제99화

제99화

떨리는 목소리로 실토하는 공선의 말에 하후성은 쯧, 하고 혀를 찼고, 이야기를 들은 당백진과 남궁도, 혜공과 청강은 답답하다는 시선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혈기왕성한 이들을 무관에 가둬 놓고 가르치다 보니 별의별 일이 다 생기는 것은 당연지사.

뛰어난 이들을 보면 의당 질투도 하고 시기도 하는 것이 무관이었다.

그렇다고 한들, 비무대회라는 정파 무림의 가장 큰 행사에 이와 같은 사건을 일으키다니. 그것도 단지 괘씸하다는 이유 때문에.

답답함을 느끼는 것도 잠시, 당백진이 눈매를 좁히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오롯이 자네들끼리 작당 모의를 하고 일으킨 사건이었는가?”

담담한 음성이 울려 퍼지자, 공선은 더 이상의 변명은 의미가 없다고 여겼는지 억눌린 음성을 내뱉었다.

“……그렇습니다.”

콰앙!

그 말에 남궁도가 탁자를 쾅하고 내려치면서 벌떡 일어났다.

우지끈하고 부서질 듯한 탁자를 뒤로하고 남궁도의 무시무시한 기세가 사방으로 퍼졌다.

“고작 생도 따위가 우릴 능멸하려 드느냐! 네놈의 말에는 어폐가 있음을 모르는 게냐.”

회의실 공간을 가득 메우고도 남을 기세가 누그러들지 않자, 공선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 그게 무슨?”

“네놈들은 정확히 검진 시합에 참가하는 인원들만 노렸다. 허나, 그 인원들은 총교관급 이상만 알 수 있는 것. 어찌 네놈들 자의로 그것이 가능하겠느냐. 누군가의 지시도 없이!”

일리 있는 지적에 공선은 순간 멈칫했다. 지화루에서 습격한 이로부터 듣던 말과 동일했다. 제아무리 공선이 머리를 굴려도 빠져나갈 구멍이 보이지 않았다.

“남궁 관주님의 말씀대로일세. 자네는 그에 대한 명확한 근거를 대야 하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일이 벌어질 수가 없다는 것은 알고 있겠지?”

“그, 그것은.”

진퇴양난, 더 이상 빠져나갈 구멍이 없었다.

차라리 단전이 망가진 녀석들처럼 의원에 누워 있었다면 이리도 압박을 받을 일은 없었을 터인데.

심지어.

흐뭇.

만면에 미소를 띤 채,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천무린을 보고 있노라면.

관주들과 하후성이 있다는 사실조차 까먹을 지경이었다.

꿀꺽.

절망적인 시선으로 땅바닥을 내려다보며 공씨세가가 뒤집어쓸 오명을 생각하고 두 눈을 질끈 감고 있는 공선의 앞으로 누군가가 불쑥 걸어 나왔다.

“……내가 명단을 주었소.”

다름 아닌 제갈벽이었다.

“제갈 교관이!”

“허어!”

“이럴 수가.”

특히나 혜공과 청강의 배신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제갈벽이라니.

“허나.”

감정이라고는 배제된 얼굴로 공선을 지그시 바라보는 제갈벽은 나직이 입을 열었다.

“명단을 준 것은 검진 시합에 대한 대비를 위한 처사였을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소.”

그 말과 동시에 공선의 표정이 다시금 창백해졌다. 이로써 제갈벽이 취하고 있는 행태가 분명해진 것이다.

명백한 경계, 선을 제대로 그은 것이다.

이는 공선과 섬서무관의 생도, 후보생들이 독단적으로 일을 벌인 것뿐이라고.

“물론 명단을 준 제 잘못이 없다고 할 수 없으니 그 죗값은 달게 받겠소.”

그 이야길 듣는 내내 천무린의 시선이 가늘어졌다.

하여간 누가 제갈세가 아니랄까 봐 잔머리 쓰는 것만큼은 어딜 가나 최고 수준이다.

저렇게 행동함으로써 제갈벽 역시 어느 정도의 벌은 받겠지만, 그것이 제갈벽에게 해가 될 수준은 결코 아닐 터였다.

정파 무림 내에서 제갈세가가 차지하고 있는 비중은 상당했다.

무력이 아닌 지략가로서, 또 군사의 역할로서 차지하는 비중은 실로 컸고, 특히 요직에 앉아 있는 이들도 많았다.

역팔자로 꺾인 하후성의 눈썹 역시 제갈벽의 말에 어찌 반응해야 할지 망설이던 그때.

“그런데, 뭔가 하나 빠진 것 같지 않소.”

악교운이 눈매를 좁히며 제갈벽을 노려봤다.

“악교운 총교관, 무엇이 말이오?”

“정녕 독단적으로 일을 펼친 것이라면! 그것도! 섬서무관의 생도와 후보생이 뒤섞여서 간 인물들 중에 어찌 단 한 명도 검진 시합에 출전하는 이가 없단 말이오? 그것이 과연 우연의 일치라고 할 수 있소?”

그 말에 비통한 표정을 짓고 있던 혜공과 청강의 두 눈이 커졌다.

물론 그럴 수 있다. 섬서무관의 생도와 후보생으로 참가한 인원만 족히 백여 명이다. 그런 인원들 중에 몇몇 이들이 의기투합해 이와 같은 비행을 저지를 수도 있긴 하다.

그러나.

“에이! 설마요! 설마! 아무리 바보라도 그렇게 노골적으로 했겠어요? 어? 물론 제갈세가 주변에 즐비한 문파와 세가의 생도와 후보생들로만 인원이 구성되었다는 건 여기 있는 누구라도 알 수 있는 사실이긴 하지만 말이죠!”

천무린의 한마디로 인해 회의실 내부가 차갑게 얼어붙었다.

제아무리 바보라도 악교운과 천무린의 말로 유추해 보았을 때, 이와 같은 상황을 진두지휘한 자가 누군지 대번에 알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작 당사자인 제갈벽은,

“후후.”

그저 여유롭게 미소 지을 따름이었다.

“제갈 교관.”

척, 척.

제갈벽의 양옆으로 천성검대원 두 명이 나란히 섰다. 하후성의 명이 떨어지면 당장이라도 체포하기 위해서.

“여유를 그만…….”

“그것마저도 심증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 내게 압박을 가하는 것이오. 다들.”

은근한 목소리로 말을 꺼내는 제갈벽은 손가락으로 공선을 가리킨다.

“정녕 내가 지시한 짓이라면 공선 생도의 입에서도 그렇다는 말이 나올 것일진대, 왜 여태 나오지 않고 있겠소?”

“그것은 당신이 협박을……!”

“협박? 흥! 말도 안 되는 소리. 명확한 증거도 없이 나를 몰아세울 수는 없소이다. 명확한 증거가 없다면 나는 그 어떤 것도 인정할 수 없소.”

빠드득.

그 말에 하후성이 이를 빠드득 갈았다. 뻔뻔하기 짝이 없는 철면피였지만, 지금 당장은 제갈벽의 말대로 그를 체포할 수 있는 명확한 근거가 없었다.

사건이 벌어진 직후, 공선과 하건욱을 비롯한 생도들과 후보생들을 추궁해 보았지만 그들은 단 한마디도 입을 열지 않았다. 무려 단전이 폐하는 최악의 고통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당최 어떻게 만들어야 그리될 수 있는지 하후성조차 기가 막혀 혀를 내두를 지경이었다.

“……더 이상 일이 없다면 나는 이만 가 보겠소.”

그런 하후성의 앞에서 묘한 미소를 띤 채 몸을 돌리고는 독고황과 각 관주들에게 최소한의 예를 갖추었다.

그런 후 발걸음을 돌려 나가려다 말고,

“아아, 명단을 보여 준 죄. 그 죗값은 달게 받겠다고 하였으니 나중에 통보해 주시구려. 하. 후. 성. 대. 협.”

무표정한 눈매가 반달 모양으로 휘면서 비웃음을 띠고 나가는 제갈벽이었다.

눈앞에서 범인을 놓쳐야 하는 답답한 심정을 느끼고 있는 하후성에게 다가간 그림자.

토닥토닥.

“괜찮아요. 그럴 수도 있지. 대협의 장기는 검을 쓰는 거지 추리하는 게 아니잖아요?”

“……뭐?”

“다 각자 잘하는 게 있다~, 그 말입니다. 저도 제가 잘하는 게 있으니까 이제부터 그걸 하러 가려고요.”

어리둥절한 이야기였다. 당최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늘어놓는 천무린은 다시 한번 한쪽 눈을 찡긋 거렸다.

데헷.

* * *

“……감히 나를 핍박하려 들다니.”

여유만만하게 걸어 나오는 제갈벽이었지만, 그의 속은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어쭙잖은 공선의 시선 처리, 갑작스레 들이닥친 악교운과 천무린의 조합은 능청스럽게 넘어가려던 제갈벽에게 위협 요소가 되었다.

완벽하게 짠 계획이 어그러지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제갈벽에게 이 세 사람은 곧.

“눈엣가시야.”

자신을 건드린 대가를 톡톡이 치르게 할 생각이다.

제까짓 놈들이 감히 누굴 건드린 것인지 분명하게 깨닫게 해 줄 작정이다.

뚜벅, 뚜벅.

처억.

그렇게 섬서무관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제갈벽은 문득 이상함을 느꼈다.

감정에 못 이겨 분을 삭이는 것도 잠시, 회의실로부터 멀어진 지 무려 반각이 지났다는 것을 깨달은 그에게.

“어딜 간 거지?”

항상 자신의 옆에서 수족처럼 수행원 노릇을 하던 심복이 보이질 않았다.

빠드득.

감정이란 한번 싹이 트면 그것이 소멸할 때까지 사그라들지 않는 법. 그리고 제갈벽은 그런 성향이 유독 심한 인간이었다.

모든 게 마음에 들지 않던 그는 이내,

꽈앙!

화풀이의 대상을 애꿎은 상대롲 정했다.

길바닥에 있는 나무에다가 권경(拳經)을 한차례 박은 제갈벽은 깊은 호흡을 내뱉었다.

“……와, 겉으론 냉정하고 이성적인 척 온갖 행세를 다하더니 뭐야, 분노조절장애였어?”

그렇다. 이른바 분조장이었다.

휙.

갑작스레 들려오는 음성에 놀란 제갈벽이 고갤 돌렸다.

“정말 세상 말세다, 말세야. 총교관이라는 새끼가 분조장이었다니. 이건 뭐, 애들 다 패고 다닌 거 아닌가 몰라.”

크흠, 그렇다고 난 분조장은 절대 아니다. 절대로.

“……천무린?”

“어? 뭐야. 어떻게 알았지?”

지화루 때와 동일하게 검은 복면을 쓰고 왔는데?

“목소리며, 행동거지며 모든 것이 천무린 네놈임을 알려 주고 있다. 무엇을 숨기려 드느냐?”

“나 원 참, 왜 그리 나한테 관심이 많아? 내 목소리랑 행동을 왜 기억해? 변태 새끼도 아니고.”

징그럽다는 표정을 짓는 천무린에게 제갈벽이 분노를 넘어 황당함이 어린 눈빛을 띠었다.

대체 뭐 하자는 건가.

검은 복면이랍시고 쓰고 와서는 자신에게 시비를 건다?

설마.

“……지금 나를 습격하려고 하는 건가?”

“습격? 에이, 말은 바로 해야지.”

후우웅!

공간을 접어드는 천무린의 신형이 어둠 속에 녹아들었다. 그런 후 제갈벽 바로 앞에 나타났다.

그리고.

꽈앙!

태산처럼 다가온 권격(拳擊)의 기세가 제갈벽을 냅다 후려쳤다.

백보신권을 팔만 뻗으면 닿을 지근거리에서 사용한 것이다.

타타타탓!

황급히 양손을 들어 올려 막은 제갈벽은 무려 다섯 걸음이나 물러나서야 겨우 멈출 수 있었다.

‘……이게 무슨.’

내부가 진탕하는 충격을 받았다. 후보생이 뻗은 권격 한방에 무려 다섯 걸음이나 물러난다고?

“……구타라는 것을 해 볼 생각이야. 구. 타. 제발 죽여 주세요, 하고 빌 때까지 말이야.”

호기로운 천무린의 말에 흥하고 제갈벽이 코웃음을 치며 고작 후보생 따위가, 라고 소리치려는 찰나, 여지없이 검집이 변칙적인 각도로 무수히 뻗어 왔다.

“타, 타구봉법?”

“잘 아네. 미친 개XX는 처맞아야 정신을 차리는 법이거든.”

이미 몇 차례나 검증된 타구봉법이 아니던가. 사람답지 않은 놈을 패기에 이보다 적당한 무공은 없었다.

“커억!”

쉴 새 없이 두드려지는 방망이는 관자놀이, 심장, 명치, 폐부, 무릎, 발목 등 다각도의 공격으로 이어졌다.

하나하나가 급소를 공격했고, 이는 곧 제갈벽의 두 눈이 점점 진득한 살기를 띠기 시작하는 시발점이 되었다.

비무대회를 통해 지켜봤지만, 이토록 뛰어난 무위를 갖고 있을 줄은 상상치도 못했다. 감히 후보생이라는 편견을 모조리 부숴버리는 무공 수준이 아닌가.

득의양양한 미소를 짓는 천무린의 앞에,

푸화아악!

뻗어 오는 방망이를 양손으로 쳐 내고 뒤로 물러난 제갈벽은 거칠게 호흡을 내쉬었다.

“네깟 게 감히 나를 이길 수 있다고 보느냐.”

꽈드드득.

차분하게 가라앉았던 장발이 서서히 하늘을 향해 뻗치기 시작함과 동시에 두 팔에 울긋불긋 힘줄들이 툭툭 튀어나왔고, 곧이어 제갈벽의 두 눈이 시뻘겋게 물들었다.

“으응? 이새끼 왜이래, 이거.”

눈이 가늘어진 천무린의 시선 끝에 닿은 제갈벽의 모습은 어딘가 낯이 익었다.

설마 저 기운은.

폭사하듯 솟구치기 시작한 광폭한 기세가 천무린을 내리누르기 시작했다.

꾸국, 꾸국.

당장이라도 튀어나올 듯한 힘줄과 피눈물이라도 흘릴 듯 시뻘겋게 차오른 두 눈가는 참으로 섬뜩한 모습이었다.

패도적이다 못해 살의가 넘실거리는 기운과 흉측한 모습은 그 누가 봐도 기겁할 만했다.

다만.

“서, 설마! 너어! 설마 혈마공(血魔功)을 익힌 거야?”

상대가 좋지 못했다.

뜨악한 표정을 지은 천무린이 손가락으로 제갈벽을 가리켰다.

“하씨, 분조장인 이유를 이제 알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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