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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무신, 무림학관을 제패하다-96화 (94/250)

제96화

제96화

하건욱을 비롯한 섬서무관 생도의 수는 7명이었지만, 사실 그 숫자는 무의미할 뿐이었다.

반항은커녕 손 한 번도 제대로 뻗질 못했다. 눈에 들어온 상대의 주먹질을 분명 막았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턱에 닿아 있었다.

그리고 못 막은 대가는.

쾅! 푸화아악.

상대가 뻗은 발길질을 피했다고 여겼건만, 귀신처럼 달라붙어 발길질을 펼쳐 내는 기이한 공격에서 도저히 피할 방도가 없었다.

이 역시 피해 내지 못한 대가는.

후웅, 콰직!

무인의 삶과 생이별이었다.

주먹질 한 번에 피를 한 움큼씩 뿜어내며 날아가는 섬서무관 생도들의 모습은 아주 비현실적으로 보이면서 다른 생도들에게 엄청난 공포감을 심어 주기에 충분했다.

쾅! 쿠드더더덕.

여지없이 발길질 한 번에 두 눈에 초점을 잃은 생도는 땅바닥을 구르며 충격으로 몸이 펄떡거렸다.

그렇게 파닥거리고 있는 생도에게 심드렁한 표정으로 다가간 천무린의 손속은 자비가 없었다.

“제, 제발……!”

“제발? 제발, 뭐?”

콰직. 콰직.

“미, 미친 새끼야!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단전을……!”

쓰러진 생도들의 처절한 외침에도 천무린은 그저 미소 지을 따름이었다. 발을 들어 올려 단전을 찍어 누르는 것으로 화답했다.

유리그릇처럼 단전이 깨어져 나갈 때마다 생도들은 태어나서 단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던 끔찍한 격통을 겪어야만 했다.

“……제, 제발. 뭐든 할게! 뭐든.”

콰직. 콰직.

“끄르륵.”

“끄으으윽.”

태어난 후 걸음마를 떼고 나서부터 무공을 익히기 시작한 이들이 대부분인 생도들이었다. 평생에 걸쳐 익히고 축적된 내공의 그릇이 손짓 한 번, 발짓 한 번에 망가진다는 사실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이루 말할 수 없는 크나큰 고통이었다.

내공을 쓰고 강호를 누비던 무림인에서 범인(凡人)이 되어 가는 과정을 생생하게 느끼는 것은 거의 죽을 만큼의 끔찍한 고통으로 다가올 정도였으니. 초점을 잃어 멍한 눈빛과 더불어 생기를 잃어 가는 생도들의 모습에 하나 남은 생도는 바르르 떨다 말고 두려움에 못 이겨 결코 해서는 안 될 선택을 하고 말았다.

“으아아아아! 도, 도망가!”

부리나케 도망가는 선택을.

몸을 돌려 눈앞에 보이는 지화루의 출입문을 향해 달려가다 말고 굳게 잠겨진 문을 확인한 생도는 힐끗 고갤 돌려 옆 창문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살면서 이토록 내공을 폭발적으로 끌어올려 본 적이 있었을까. 몸으로 부딪쳐 창문을 깨부수고 달아나려고 창에 손을 뻗었다.

‘……됐다!’

그러나 살 수 있을 거라는 희망도 잠시.

“……도망가게?”

스산한 음성이 귓가에 울리더니.

퍼억!

콰당탕탕!

옆구리에 가해지는 강렬한 충격과 동시에 생도는 그대로 날아가서 지화루의 기둥에 처박혔다.

저벅, 저벅.

“자기 동료를 버리고 도망을 가? 못된 것만 배웠네, 아주. 정파 무림의 해충 같은 새끼.”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서는 천무린을 바라보며 입가를 파르르 떨던 생도는 주변에 있는 집기들을 모조리 던졌다.

휙! 휙!

쨍그랑! 와장창!

날아간 집기들은 하나둘 벽에 부딪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박살이 났으나,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쪽으로 걸어오는 천무린의 모습에 잔뜩 겁에 질려 버린 생도였다.

“다, 다가오지 마! 다가오지 말라고!”

“……억울하면 강해지든가. 아니면 쓸데없이 정의롭든가. 그랬다면 적어도 이럴 일은 없었을 텐데 말이야.”

쨍그랑! 쨍그랑!

온갖 접시와 집기들을 가볍게 고개를 트는 것만으로 유연하게 피해 낸 천무린은 주변을 훑었다.

“역시 똘똘한걸.”

과일곡료와 궁보계정, 향고유채.

술과 음식이 작은 소반에 담겨 모락모락 김을 풍기고 있었다.

녀석, 말한 걸 하나도 빼먹지 않고 준비를 잘해 놨네.

병X들처럼 당한 녀석들보다 소강이 네가 훨씬 낫다, 나아.

저벅, 저벅.

겁을 집어먹고 주변에서 손에 잡히는 집기들을 마구 던지던 생도는 이제 천무린의 유유자적한 행동을 그저 바라볼 따름이었다.

“깜빡하고 있었지 뭐야.”

덥석.

소반을 챙겨 생도의 앞으로 걸어온 천무린이 빙긋 웃었다.

“시비를 먼저 걸었어야 했는데. 나도 모르게 먼저 패 버렸네? 순서가 좀 바뀐 건가.”

바르르.

눈꺼풀을 파르르 떠는 생도와 눈을 마주한 천무린이 어깨를 으쓱한다.

“하나도 안 웃긴가 보네. 나름 농담이었는데.”

과연 이 상황에 누가 웃을 수 있을까.

생도에게 천무린은 악귀이자 야차였고, 저승사자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졸졸졸.

공포에 질린 생도의 얼굴과 몸 위로 과일곡료가 천천히 흘러내렸다.

“지금이라도 하면 되지.”

졸졸졸.

“네놈들이 그리도 좋아하던 과일곡료야. 어때?”

“……흡.”

모욕적인 행동에도 생도는 그 어떤 반항도 할 수 없었다. 굳어진 몸은 이미 자신의 통제를 벗어났기에.

“그냥 자연재해를 당했다고 생각해. 길 가다가 만난 천둥 벼락을 막을 순 없는 거잖아? 어때?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하지?”

납득할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반박할 수도 없었다. 쉼 없이 떨리는 턱과 입술, 흔들리는 동공으로 지금의 광경을 그저 바라볼 따름이었다.

“자, 아~ 해 봐.”

과일곡료에 이어 궁보계정과 향고유채가 한 점씩 생도의 얼굴과 앞섶에 떨어진다. 온갖 양념이 버무려진 음식물이 쏟아졌다.

“좀 웃어. 아까처럼. 과일곡료 처마시고 발광하던 때처럼 웃어 보라고.”

천무린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입은 웃되, 눈빛은 서늘하기 그지없었다.

빙한심안(氷寒心眼).

모든 것을 꿰뚫을 듯한 눈빛과 동시에 태산같이 찍어 누르는 기세.

감히 항거할 수조차 없는 생도의 위로 계속해서 음식물과 술이 떨어져 내렸다.

후두둑. 쫄쫄쫄.

이지(理智)를 상실한 생도의 바지춤이 축축해지더니 이내 노린내가 나기 시작했다.

“으, 사내새끼가 지리기나 하고 말이야.”

그 모습을 본 천무린은 남은 과일곡료를 바지춤 언저리에 마저 부어 버렸다.

“이렇게 하면 아무도 모를걸? 후후.”

미소를 지은 천무린이 몸을 숙이고 생도와 눈을 마주했다.

“그거 아냐?”

“…….”

“우습게도 검진 시합에 참가 안 하는 녀석들만 골라서 사천무관 참가자들을 습격했더라고.”

촤라락.

품속에서 몇 장의 서류가 딸려 나오면서 나풀거리자 생도는 초점을 잃은 동공을 억지로 움직였다.

“그게 무슨 뜻일 것 같아?”

“…….”

“제갈벽. 그 녀석이 재수 없게 웃는 이유를 알겠더라고. 왜? 검진 시합에 차질이 생기지도 않을 테고, 혹여 걸리더라도 너희를 고기 방패로 세워서 털어 낼 수 있거든.”

그 말에 흐려졌던 정신을 부여잡으며 생도는 작게 고개를 젓는다.

“……그럴 리 없어. 제갈 총교관님은 그러실 분이 아니야.”

“쯧.”

말해도 한 번에 알아듣는 경우가 없네. 입 아프게.

“이거 비싼 정보거든. 물론 무일푼으로 얻어 낸 정보이긴 한데.”

출처는 쥐소굴의 공야찬과 조수강이었다. 살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내뱉은 정보였지만, 꽤 신뢰할 만했다.

“어디 보자……. 공선?”

움찔.

자신의 이름이 불리자, 순간 움찔거린 공선이었다.

“하건욱, 공선, 추일학, 지혁경……. 먼저 하건욱이 맡은 지령은 지화루에 방문한 사천무관의 태강을 습격, 추일학과 지혁경은 저잣거리 당과점 앞에서 사천무관의 채종한, 진이간을 습격…….”

서류에 적힌 이름과 불과 몇 시진 전 사건에 대해 줄줄이 읊던 천무린은 다시금 고갤 들어 공선과 마주한다.

“…….”

공선은 천무린의 입에서 줄줄이 나온 이야기에 입을 딱 벌렸다. 어떻게 제갈벽에게 직접 하달 받은 상황을 이렇듯 대번에 파악할 수 있단 말인가.

흡사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당하지 않는 한, 불가능한 일에 가깝지 않은가.

“솔직하네. 표정이 거짓말을 못 해. 나도 설마설마했는데 진짜였나 봐?”

쥐소굴에서 정보를 얻어 왔지만, 공선의 표정을 보니 확실한 듯했다.

쓸 만하네. 낙양 바닥을 주름잡고 있는 암흑가의 우두머리라더니.

그 말은 확실히 사실인 듯하네.

아무튼.

“그래서 말이야. 네게 기회를 주려고 해.”

“무, 무슨?”

“하후성에게 가서 작금의 상황을 낱낱이 밝혀. 모두 제갈벽이 시킨 짓거리라고. 물론 그게 사실이잖아?”

“……마, 말도 안 되는!”

“아아, 걱정 마. 걱정 마. 나 도리는 아는 사람이야.”

씨익 웃는 천무린이 나직하게, 속삭이듯 이야기한다.

손가락으로 공선의 단전을 가리키며.

“이거 살려 줄게. 특별히 너만.”

찡긋.

그 말에 쉴 새 없이 동공이 흔들리는 공선이었다.

다, 단전이 부서지지 않는다고?

즉, 무인으로서의 삶을 계속 영위해 나갈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힐끗.

공선의 시선이 주변에 쓰러진 섬서무관의 생도들에게 닿았다.

자신을 제외한 모든 이들의 단전이 깨졌다. 지금은 잠깐 정신을 잃었지만, 이내 곧 일어날 것이었다.

그런 이들과 함께 복귀를 하면 의심을 받을 것이다.

왜 자신만 단전이 멀쩡한지.

“쓸데없는 갈등을 하고 있네……? 그런 갈등 안 하게 부숴 줘?”

익살스럽게 웃는 천무린이 손을 뻗어 공선의 아랫배를 움켜쥐었다.

끄드드득.

“……아, 안 돼! 아, 알았어!”

뚝 하고 움직임이 멈췄다.

“하, 할게. 한다고.”

“진작에 그렇게 나왔어야지.”

천무린이 몸을 털고 일어나 손을 뻗었다.

“자, 일어나라고. 친구. 우린 잠깐 동안 같은 목표를 위해 동업자가 되는 거야. 어때?”

천무린의 손을 잡고 일어선 공선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본다.

‘……정말로 단전이 깨지지 않았다.’

그리고.

공포에 서려 있던 눈빛이 서서히 정상으로 돌아오는 공선이었다.

비록 온몸이 각종 음식물과 주향(酒香), 지린내로 점철되어 있지만 상관없었다. 일단 살았으니까.

그러다 보니.

‘……잠깐, 섬서무관으로 간다면.’

이 협박이 무의미해지는 것이 아닌가. 아무리 날고 기는 놈이라 할지라도 섬서무관의 본대가 있는데, 감히 들어와서 이 같은 행패는 부릴 수 없을 테니.

공선의 두 눈에 점차 생기가 생겨났다. 사람에게 희망은 곧 움직일 원동력이 된다.

하지만.

“아, 맞다. 공선, 18세. 섬서무관의 1학년 생도. 하남 공씨세가 가주 공진석의 차남. 삼남이녀(三男二女)로 화목하고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남. 공씨세가의 막내딸이자 가족 모두가 죽고 못 사는 공해월을 가장 애정함. ……더 읊어 줄까?”

귓가에 울리는 적나라한 내용에 희망으로 되살아나던 공선의 초점이 다시금 그 빛을 잃었다.

허튼짓을 하면 어떻게 될지 불 보듯 뻔한 일.

‘……악마의 재림.’

눈을 질끈 감는 공선이었다.

“너의 입신(立身)을 위해 남의 눈에 피눈물을 흘리게 하면 어떻게 되는지 똑똑히 알도록.”

단호한 말이었고, 그것은 평생 동안 공선을 따라다닐 꼬리표가 될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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