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3화
제93화
“알이라고? 그 영물의?”
“예, 귀구(鬼龜)라고 하죠.”
귀구라, 거북이의 형상이라는 건가.
“이 알로 부화를 시키자는 것인가.”
“반은 맞고, 반은 틀렸습니다!”
씩 웃는 천무린의 모습에 당백진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왜 독단 이야기에 이어 영물의 알까지 거론하나 싶었는데.
“설마?”
“딩동댕. 그 설마가 맞습니다.”
“녹독단, 청독단, 적독단, 백독단에 시험을 하자는 것이냐?”
설마설마하니 영물의 알과 사천당가에서 개발한 독단을 섞어 보자는 이야길 꺼내다니.
“물론 그 전에 중요한 과정이 있죠.”
“중요한 과정?”
“귀구가 정확히 얼마마다 알을 낳는지, 또 몇 개의 알을 낳는지 저도 잘 몰라요. 귀구의 생활방식부터 부화해서 알을 얼마 만에 낳는지, 거기다 부화한 귀구의 새끼들은 어떻게 움직이는지 모든 조사가 필요합니다.”
“그렇게 태어난 귀구의 새끼들을 키워서 다시 알을 낳게 만들겠다는 거겠지.”
이른바, 귀구의 농장.
북쪽 동굴의 귀구가 들었다면 놀라 까무러칠 이야길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두 사람이었다.
“……후후, 어때요?”
눈을 빛내는 천무린의 모습에 그만 할말을 잃고 만 당백진이었다.
이게 후보생의 입에서 나올 이야긴가 싶다가도.
‘가능만 하다면 획기적인 방식으로 사천무관에 날개를 달 수도 있다.’
제아무리 사천무관의 관주이자 사천당가의 태상가주라고 할지라도 독단을 무한정 공급할 순 없는 노릇이다. 어디까지나 당가가 가진 힘의 일부였고, 그것을 공개하는 것은 곧 가문의 비기를 공개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영물을 키워 영물의 힘과 독단을 섞어 무관에 제공한다면?
하등 문제 될 게 없었다. 아니, 도약하기 좋았다.
영물이 가진 기운과 독단이 가진 기운이 잘 어우러질 수만 있다면.
좋은 효과가 나타난다면 천무린의 말대로 후보생들과 생도들의 부족한 내공을 채우는 것은 그야말로 식은 죽 먹기가 아닌가.
“……뭐, 거기다 지금 교관님들 죄다 놀고 자빠져 있지 않나요? 귀구 파악하는 데 모조리 붙여 놓으면 금방일 것 같은데.”
어떻게 말을 해도 꼭.
죄다 놀고 자빠져 있다니……. 어?
그런가?
당백진이 그리 생각하는 와중에,
부르르.
“왜 갑자기 오한이…….”
“너, 너도?”
부교관 고윤과 자겸은 갑자기 돋은 닭살에 의아할 따름이었다.
“어때요? 따로 인력 낭비를 할 필요도 없고, 시험해 볼 가치는 충분할 것 같은데.”
일리 있는 말이었다.
삼대 무관 비무대회에 참가하면서 업무의 공백이 생긴 교관들하며, 사천무관 북쪽 동굴에 기거하고 있는 귀구를 활용하여 얻을 이득을 생각하면 행동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저.
히죽.
눈앞에서 웃고 있는 후보생에게 시선이 절로 갈 뿐.
그저 무에 대한 재능만 뛰어난 줄 알았더니, 그것만이 아니었다.
총교관인 악교운이 왜 매번 이 녀석에 대해 언급하는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당지운 역시 이 녀석 이야길 꺼낸다.
“대체.”
“응?”
“대체 네 정체가 무엇이냐?”
진부하다, 진부해.
“사천무관 후보생이죠. 좋은 의견을 내니까 막 사람이 달라 보여요? 세상은 넓고 기인이사는 많은 게 강호 아닙니까.”
그 말에 당백진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오냐, 내 더는 묻지 않으마. 이거 한 방 당했군.”
더는 묻지 말란 말을 저리 하다니.
“이 두 알은 내 잘 쓰도록 하지.”
그러면서 손을 뻗는 당백진을 지그시 바라보던 천무린이 나직이 입을 열었다.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응?”
“이걸 공짜로 냅다 드시겠다고?”
어, 어?
당황하는 당백진에게 기가 차다는 표정으로 혀를 차는 천무린이었다.
“허허, 나 참. 관주님 그렇게 안 봤는데, 아주 양아치시네.”
야, 양아치?
둔기로 머리를 크게 한 대 맞은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당백진에게 천무린은 해맑게 웃으며 나긋하게 말한다.
“적독단 두 개 내놔요.”
검지와 중지를 쭉 펼치며.
진짜 양아치는 여기 있었다. 바로 여기에.
* * *
사천무관의 후보생들이 낙양의 저잣거리를 활보하고 있었다.
생기 가득한 그들은 저잣거리에서 각종 공연을 즐기고 노점에서 파는 먹거리를 즐겼다.
“쩝쩝쩝. 와, 이게 어향육사란 거야? 사천요리는 간이 강한 편인데, 이건 담백한데도 맛있어!”
그 와중에 송무와 태강은 낙양의 지화루라는 곳에 들러 만찬을 즐기고 있었다.
우적우적.
쫘악!
닭다리를 하나 쭉 뜯어 입에 넣는 태강은 그만 감격의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요놈이 바로 규화계라는 놈이로구나. 듣던 대로 아주 입에서 살살 녹는다, 녹아!”
행복에 겨운 이런 날이 대체 얼마 만인지.
그렇게 두 사람이 식도락을 즐기고 있는데,
드르륵.
“어서 옵쇼!”
문을 열고 일단의 무리가 우르르 들어오더니 송무와 태강의 옆에 앉았다.
“응?”
송무의 시선이 일단의 무리를 쓱 훑었다.
‘섬서무관?’
그들도 여가를 즐기러 나온 것인지 무관복을 입고 있지는 않았으나, 송무가 비무대회에서 봤던 섬서무관의 후보생들과 생도가 섞여 있는 듯했다.
“점소이! 여기 과일 곡료 한 병하고 궁보계정, 향고유채 한 접시씩 부탁하네.”
“예!”
송무가 어깨를 으쓱이며 몸을 돌리곤 다시 음식을 먹는 데 집중했다.
저들이 곡료를 먹는다는 사실에 부러움을 느끼며.
우적우적.
한창 만찬을 즐기고 있는 두 사람의 옆에서 일절의 소음도 내지 않던 무리 중 한 명이 점소이가 갖고 오는 음식을 바라보다가 대신 받겠다며 일어났다.
“아이쿠, 조심하십시오! 여기 음식 나왔습……!”
퍼억!
“으악!”
쿠당탕!
쟁반에 음식을 담고 나르던 점소이가 옆으로 쓰러지며 음식물을 그만 엎고 말았는데 하필,
“에구머니나! 이, 이를 어째. 괜찮으십니까, 소협?”
음식물을 고스란히 뒤집어쓴 이는 다름 아닌 식도락을 즐기고 있던 태강이었다.
화들짝 놀란 점소이가 벌떡 일어나 마른 행주를 갖고 와서는 태강에게 몇 차례나 사과를 했다.
“죄, 죄송합니다. 소인이 이토록 큰 실수를!”
우물우물 음식을 씹어 삼킨 태강은 점소이의 사죄에 허허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괜찮습니다. 일을 하다 보면 이런 실수도 하는 것이죠. 이런 걸로 기죽지 말고 다음엔 이런 실수 하지 마세요.”
무복 앞섶하며 옷소매하며 음식물로 더러워져 얼굴을 찡그릴 법도 하건만 태강은 한차례 어깨를 으쓱인 것 말고는 대수롭지 않은 반응을 보였다.
그저.
“그런데 어찌하여 당신들은 그리 웃음을 띠고 있는 것인지.”
송무는 섬서무관으로 추측되는 일단의 무리가 배를 잡고 낄낄거리고 있는 모습이 불쾌할 뿐이었다.
“풉, 푸흐흡. 꼴에 무관 후보생이라고 의연한 척하는 게 웃겨서 그랬소.”
“흐흐흐, 하긴 간만에 위로 올라갔으니 주체하지 못할 것 아니겠는가.”
“애송이들이 언제 그런 환호를 받아 봤겠는가. 후후후.”
대놓고 비아냥거리는 모습에 태강의 표정이 딱 굳어졌다. 모욕적인 언사는 점소이가 쏟은 음식물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지금 뭐라고 하셨소?”
“아아, 우리가 뭐라 하였소? 아니오, 아니오. 실컷 드시오.”
“헐레벌떡 잘도 먹더니만, 어여 드시오.”
“그런데 더러워진 옷이 아주 잘 어울리는 것 같소만.”
하하하하!
하하하!
노기를 띤 태강의 말에 웃음소리로 화답하는 그들의 행태에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벌떡 일어서는 태강이었다. 그 모습을 본 무리 예닐곱 명이 기다렸다는 듯이 동시에 일어났다.
송무가 황급히 일어나 태강을 막으려고 손을 뻗었으나,
“태, 태강아! 여기서 소란은 안 돼……!”
퍼어억!
이미 늦은 뒤였다.
격노한 태강의 주먹이 눈앞에 있는 각진 청년의 턱에 그대로 꽂혔다.
쿠당탕탕!
발라당 넘어진 청년을 뒤로하고 그 무리는 동시에 눈을 빛내더니 다가와 태강을 에워쌌다.
“감히! 우리를 건드리다니!”
“네 이노옴!”
“먼저 공격한 것은 네 녀석이니 용서는 기대치 말라!”
그러고는 태강을 향해 마구 주먹과 발길질을 했다. 그런 폭력에도 굴하지 않고 태강은 맞서서 권각술을 펼쳤다.
퍼억! 퍼억! 빠각!
그래도 낙양 바닥인 것을 알기에 검을 뽑을 순 없는 노릇이니 권각술이라도 펼친 것인데.
태강은 몇몇 이들은 제압했지만, 그래도 무수히 날아오는 주먹질과 발길질을 피할 수는 없었다. 결국 제 실력을 발휘하지도 못한 채 여럿에게 둘러싸여 제대로 된 반격도 하지 못하고 흠씬 두들겨 맞았다.
“어디서! 사천무관 나부랭이가!”
“감히! 감히! 네놈들 따위가!”
그 광경을 지켜보던 송무 역시 안 되겠다고 판단하고 권각술을 펼쳐 대항했지만, 비무대회에서 얻은 부상의 여파가 아직 남아 있어 그리 큰 위협이 되지 못했다.
서너 명이 송무에게까지 달라붙어 팔다리를 붙잡고 늘어지자,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하는 송무였다.
섬서무관이라고 생각되는 집단이 이렇듯 갑자기 공격을 하다니, 이게 당최.
그런 생각이 송무의 발목을 잡고 있는데, 무자비한 녀석들의 손속이 한차례 끝나고서야 그들은 황급히 사라졌다.
“크으윽.”
“태강아! 괜찮아?”
온몸에 성한 곳 하나 없는 태강이 침음을 흘리며 고통스러워하자 송무는 그를 둘러업고서 서둘러 지화루를 벗어났다.
그 광경을 점소이가 황망히 바라볼 따름이었다.
* * *
“아이고, 나 죽네.”
“금창약 좀 발라 줘.”
“도대체 얼마나 처맞아야 이렇게 되는 거야?”
송무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모두 다 당한 거야? 태강뿐만 아니라?”
태강뿐 아니라 8기 후보생들 일부가 습격을 당했다. 아니, 시비라는 그럴듯한 이유를 내세운 일방적인 구타를 당한 것이다.
“새끼들이 내력을 담아서 패는데……. 아파 죽겠네.”
“누구 소행인진 모르고?”
“겨를이나 있었겠어? 대뜸 시비를 걸더니 그냥 두들겨 패는데.”
낙양 저잣거리에는 구경거리가 많았다. 그래서 이 넓은 바닥에서 후보생들을 표적 삼아 공격하기는 아주 쉬었다. 마음만 먹는다면.
쾅!
사천무관 처소 내에 있는 의료원의 문이 거칠게 열렸다.
“어느 등신들이 처맞고 다녀? 다들 잘하셨네. 잘하셨어. 얼씨구, 저놈은 아주 판다가 되었구먼.”
……귀화(鬼火)를 두 눈에 시퍼렇게 켠 천무린의 등장이었다.
삐딱한 고개로 부상당한 후보생들을 쭉 둘러보며.
“송무!”
“어? 어!”
송무가 화들짝 일어나며 천무린을 바라봤다.
“누군지 정말 못 봤냐?”
“……확실한 건 아니지만.”
“아니지만?”
“섬서무관의 소행일 것 같…….”
뚜둑. 뚜둑.
어떻게 매번 관절이 이렇듯 경쾌하게 소리가 날 수 있는지 궁금해질 지경이었다.
“내가 전에 말했지. 강호는 은원 관계가 전부라고.”
씨익 웃는 천무린이었다.
분명 웃는 얼굴이었지만, 송무는 왠지 섬뜩하다고 느낄 따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