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무신, 무림학관을 제패하다-83화 (81/250)

제83화

제83화

남사익과 각원의 승부에서 남사익은 설화린과의 승부에서 고갈된 내력을 아직 다 회복하지 못했고, 그런 반면 각원은 당지운의 기권으로 제 기운을 온전히 보전한 상태였기에 남사익은 각원에게 밀릴 수밖에 없었다.

열양장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려 각원의 나한권과 겨뤘으나.

역부족이었다.

과연 섬서무관의 우승 후보답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는 남사익의 모습에 후보생들은 놀랐고, 관중들은 그가 뿜어내는 열기만큼이나 화끈한 성정에 크게 환호했다.

하지만.

“제2조 비무장, 섬서무관 각원 승리!”

승부는 승부였다.

* * *

“난 혁건이처럼 도망가지 않는다.”

백리무영은 자신의 이마에 영웅건을 꽉 하고 묶었다.

군데군데 상처가 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굳은 의지를 드러내며 비무장에 섰다.

“낄낄. 좋아, 좋아. 거기 달고 태어난 사내새끼가 도망가거나.”

신혁건을 한 번 바라보는 천무린이었다.

뜨끔.

“고의적으로 패배를 한다든가.”

다시 한번 뜨끔.

신혁건이 그 시선을 피했다.

“기권보다 못한 행동을 한다든가.”

또 뜨끔.

신혁건의 고개가 거의 바닥에 닿을 듯 숙어졌다.

“그런 쓸데없는 행동은 말자고.”

뚜둑. 뚜둑.

가볍게 몸을 푸는 모습이었지만 왠지.

“……몸을 푸는데도 살기를 담아 내뿜을 수 있는 거냐.”

백리무영은 그 소리가 어지간한 파육음보다도 소름 끼치게 들렸다.

“왜 벌써부터 약한 소릴 하고 그래? 이번에 매화쌍절(梅花雙絶)이라고 불리는 백리무영 소협께서 말이야. 낄낄낄.”

그 말에 백리무영의 얼굴이 순식간에 벌게졌다.

매화쌍절(梅花雙絶).

비무에서 보여 준 매화의 아름다움과 쉬지 않는 파상공격, 그리고 형제간의 처절한 사투를 보여 준 두 사람의 모습에 관중들은 백리무영뿐 아니라 백리후에게도 같은 별호를 붙여 주었다.

매화쌍절이라고.

“크으, 매화향 좀 풍겼다고 아주 거창한 별호까지 생겼네. 안 그래?”

“……놀리는 거냐?”

“낄낄, 알면서 왜 물어? 아이고, 매화쌍절이라니, 매화쌍절! 세상에나 마상에나.”

배를 잡고 웃는 천무린의 모습에 백리무영은 이를 바득바득 갈면서 검을 꺼내 들었다. 그 모습을 힐끗 본 천무린은 순수하게 감탄했다.

“진짜 신혁건이랑은 다르네.”

올라오자마자 떨다 못해 창을 놓칠 뻔한 신혁건이었는데 말이야.

“……흥! 그놈과 나는 다르다. 그런 겁쟁이 녀석은!”

“오오, 역시. 매화쌍절은 달라. 낄낄낄.”

웃어 젖히는 천무린의 모습에 백리무영의 관자놀이에 힘줄이 빡 하고 튀어나왔다.

분노에 일그러진 백리무영의 모습과는 달리,

검은 무정(無情)했다.

십사수매화검법(十四手梅花劍法).

매화란구주(梅花亂九州).

백리무영이 가진 최고의 수.

십사수매화검법의 초식 중 가장 강한 초식.

첫 수부터 백리무영은 자신이 펼칠 수 있는 최고의 초식을 펼쳤다.

소용돌이치는 붉은 매화 한 잎, 한 잎에 검기와도 같은 매서운 기운이 담겼다.

일류 초입을 넘어서 8기수에서 가장 강한 이들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백리무영이었다.

백리후의 선매청고 초식을 막기 위해 펼친 매화란구주와는 달리, 남궁호의 제왕검형과도 같은 공격 일변도와 같은 자세.

어차피 이번 초식이 막히면 더 이상의 공격은 무의미하다고 백리무영은 판단했다.

“……전심전력(全心全力). 제법인데?”

이번엔 꽤 후한 점수를 줘야겠다.

짙은 미소를 띤 천무린은 일격필살로 뻗어 오는 백리무영의 매화결을 보고 허리춤에 있는 검집에서 검을 천천히 뺐다.

스르릉.

웃음기를 뺀 천무린이었다.

“무릇 모든 무공은 중심을 잡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중심을 제대로 잡으려면 먼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중심을 잡기 위해서는 기본을 잡아야 한다. 근간이 되는 기본이 없다면 응용도 없다.”

보고 듣고 느끼고 받아들여라.

오감으로 느끼고, 육감으로 받아들여라.

천무린은 비무대회에서 처음으로 검을 진지하게 잡았다.

꽈악.

“후우…….”

들이닥치는 홍매화의 폭풍 속에서도 느릿하게 검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가 아주 천천히 내리그었다.

후우웅.

매화의 폭풍 속에 내리그어지는 연약한 검광(劍光) 한 줄기.

그 검의 모습을 보고 백리무영은 천무린이 자신을 무시한다고 여겼다.

“고작 그 정도의 검으로……!”

서걱.

화아아악!

파공음과 함께 무언가가 베이는 소리가 들리더니,

투두둑.

툭.

비무장을 가득 메우던 매화의 꽃잎이 연기처럼 화했다.

그저 내리그은 검광의 한 줄기에.

“…….”

“멀었다. 무영.”

스르릉.

납검을 하는 천무린이었다.

“모든 무공에는 오의(奧義)라고 불리는 초식이 있지. 네가 방금 펼쳤던 매화란구주 역시 십사수매화검의 오의겠지만, 그 오의를 마치 대성한 것처럼 구는 네 검술에는 빈틈이 너무 많다. 겉만 번지르르하기 짝이 없는 그 공격이, 쓸데없이 동작만 큰 그 초식이, 되레 너의 발목을 붙잡는 날이 올 거다.”

스승에게도, 무관의 교관에게서도 배울 수 없었던 가르침이었다. 그런 가르침은 억만금을 주어도 들을 수 없다.

오의가 되레 발목을 잡는다니.

하지만 이미 눈앞에서 보지 않았던가. 단순히 검을 내려치는 초식이었다.

그 검식만으로 매화란구주를 무(無)로 만들어 버렸던 광경을 두 눈으로 뻔히 보고도 부정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자, 가르침은 끝났고.”

응?

그렇게 말한 천무린은 검집째 잡더니 백리무영을 바라본다.

흐뭇하게.

“이제 승리의 보상을 받아 보실까.”

비무장 위에서 무슨 보상?

백리무영의 눈의 초점이 마구 흔들렸다.

“보상……?”

“같은 말 두 번 하게 했잖아.”

“무슨…….”

“하하, 기억이 안 나나 본데. 방금 내가 한 말들 전부 훈련하면서 가르쳐 준 말이야. 내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듣고 개나 소나 오의부터 펼치려 드는 네 녀석들을 보고 내가 속으로 답답함을 금치 못했거든.”

촤르륵.

검집을 묶고 있던 복대가 풀린다.

“걱정 마. 검으로는 베지 않을게. 아무리 그래도 내가 무슨 살인귀도 아니고.”

살인귀보다 더 무섭고 악독한 놈이잖아.

특히.

철거덕.

저렇게 검집을 들었을 때는.

백리무영이 순간 주춤했다.

왜 신혁건이 고의로 패배를 선언했는지 알 것 같았다.

“왜? 너만 검술을 펼치고 도망갈 생각이었어?”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이제 내 공격도 막아 봐야지. 히히.”

히히라니. 저 미친놈이! 눈은 왜 희번덕거리는 건데!

광기 어린 저 눈빛을 보라.

때리지 못해 죽은 귀신이라도 붙었나.

“……네 공격을?”

백리무영이 재빠르게 손을 들어 올리며 하후성을 바라봤다.

“기권……. 꾸엑!”

하겠다고만 하면 되었는데, 그 틈을 기다려 주지 않은 천무린이 보이지도 않을 빠른 속도로 백리무영에게 다가와서는.

빠각!

검집으로 옆통수를 후려쳤다. 그 탓에 비무장을 구른 백리무영이 고갤 애써 들었다.

“마, 막을 수가 없었다. 기, 기권을…….”

“X랄하네. 걸핏하면 기권이냐? 내가 언제부터 그 따위로 가르쳤어? 앙? 뒈지려고. 다시는 기권? 고의 패배? 그런 생각 따윈 하지 못하게 만들어 주지.”

아니, 왜 하필 그 차례가 나인 건데…….

뒷말은 차마 이을 수가 없었다.

복부에 틀어박힌 검집에 이미 비명이 터져 나오고 있었기에.

“꾸에엑!”

매화쌍절이라는 별호처럼 헌앙한 자태와 가슴을 설레게 하는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그저 덜 맞기 위해 몸을 번데기처럼 움츠린 한 명의 쫄보(?)만 있을 뿐이었다.

제 동기를 쥐 잡듯이 패는 천무린과, 흡사 몽둥이찜질에도 딴청을 피우는 비무장 아래의 후보생들을 바라보는 하후성이 멈칫했다.

“……이게 당최 무슨?”

난생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하지만 멈춰 있는 하후성을 간절하게 찾는 것은 다름 아닌.

“……사, 살려 주세요.”

승패를 가르는 그의 육합전성이 터져야 이 매타작도 끝이 날 텐데!

그러나.

하후성이 멈칫하는 바람에 백리무영은 매타작을 무려 반각이나 더 당해야 했다.

그 후로 백리무영은 저도 모르게 하후성을 원망하는 마음을 품었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 * *

“……대체 저 아이의 무공 수위가 어찌 되는지 알고 있소, 당 관주?”

독고황이었다.

방금 보여 준 한 수는.

그저 내려치는 단 한 번의 검세였다.

그 충격적인 광경에 관중들은 물론이고, 단상 위에 있는 이들까지도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저도 잘 모릅니다.”

“모른다? 당 관주가?”

“……부끄럽지만 후보생이라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그 말에 독고황은 당백진을 가만히 응시했다.

거짓인지 아닌지를 가려내기 위함이었으나 절로 한숨이 나올 뿐이었다. 당백진은 거짓을 고하지 않았기에.

‘정녕 몰랐단 말이렷다.’

독고황의 눈매가 깊어진 가운데, 단상 위에 앉은 많은 이들 역시 놀란 나머지 버벅거리며 말을 나누고 있었다.

“……저건 고작 스물도 안 된 나이에 보여 줄 수 있는 무위가 아니오.”

“대체 스승이 누구요?”

“이 중에 있는 것이 아니라면, 은거하고 있는 기인이사 중 한 명이 아니겠소.”

“……혈겁 이후에 누군가가 미리 대비하여 받아들인 것은 아닐는지요.”

추측이 난무하며, 이 혼란한 상황을 어떻게든 받아들이려 노력하는 이들이었다.

본래 그런 것이다.

너무 말도 안 되는 것을 보면 일단 납득부터 하고 뒤늦게 이해하려고 한다.

천무린이 보여 준 무위는 그들에게 크나큰 충격을 가져다줬다.

“과연.”

“문제는 단 한 번도 제 무공을 펼쳐 보인 적이 없구려.”

“굳이 무공을 선보일 만큼의 맞상대가 없었기 때문이겠지요.”

“……7기수, 아니 그 위 기수와 자웅을 겨뤘다고 한들.”

어느 문파의 장문인의 뒷말은 이어지지 않았다.

그 말이 이어진다는 것은 결국 제 낯에 침 뱉기였으니까.

인정해서도, 그 인정을 받아들여서도 안 될 문제가 아닌가.

고작 17세의 후보생이 그 위 기수들을 모조리 잡아먹는다는 사실은 무관의 정통성과 그간의 노고를 무시하는 발언이 되어 버리기 때문에.

모두가 마음이 불편해지는 상황이었다.

그것도 단 한 사람 때문에.

“크흠.”

독고황을 비롯한 단상 위에 앉은 정파 무림에서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이들의 표정은 전부 비슷했다. 단 한 사람만 빼고.

“허허, 왜들 그리 불편한 표정을 지으시는지요. 정파 무림의 홍복(洪福)이 아니겠습니까.”

당백진은 그저 흐뭇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왠지 열 받는걸.

단상 위에 있는 이들은 당백진을 바라보며 그저 썩은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이번엔 새로운 인물들이 대거 등장했다.

그리고 후기지수로 충분히 인정받을 수 있는 이들이 많이 등장했다.

이는 분명 정파 무림의 홍복이다.

그러나.

‘대다수가 사천무관의 인물들로 구성되었다는 점이 문제지.’

‘어쩌다가.’

‘끄응.’

사천무관의 관계자가 아닌 이들의 표정은 썩어 들어가는 중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