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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무신, 무림학관을 제패하다-82화 (80/250)

제82화

제82화

“……사천무관에 기권자가 왜 이리 많아?”

“하다못해 저 녀석 기운을 좀 빼놨어야 하는 거 아니야?”

태강이 가리킨 곳에는 각원이 단 한 곳의 부상도 없이 기권승으로 올라오는 모습을 보며 투덜거리고 있었다.

“이게 무슨 단체전이냐? 기운을 빼놓긴 뭘 빼놔.”

“아니, 좀 그렇잖아. 쟤는 대체 무슨 생각인지 도통 모르겠다고.”

당지운을 바라보는 태강의 말에 진무양도 머리를 긁적였다.

“그건 그렇지.”

“혁건이나 무영이는 그래도 좀 알지 않을까?”

“걔들이라고 뭐가 다르겠어.”

“뭉쳐 다니지 않았을까? 그래도 7기수 눈치 보느라 단합했을 거 같은데.”

“그런 게 있었으면 우리랑도 잘 어울렸겠지.”

당지운을 바라보는 태강이 머리를 긁적이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근데 말이야.”

“응?”

“지운이는 대체 어디서 숙소를 써?”

“뭐?”

“아니, 워낙 존재감이 없어서 이제 막 생각이 난 건데……. 지운이는 어디 숙소를 썼지?”

“그야 물론 자기 방을 썼겠지.”

“내가 지운이 옆방인데…… 어떻게 5년간 같이 씻어 본 적이 없다?”

“엥?”

8기 후보생들이 쓰는 전각 내 숙소는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다만 후보생들의 사생활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졌기에 개인당 1인 1실을 내주었다.

문제는.

“목욕실은 공용이잖아?”

공동체 생활을 위해 함께 써야 하는 공간도 많다는 것.

“……그러니까 이상하지 않느냐고.”

“음. 그러고 보니.”

진무양은 당지운이 비무장을 내려오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골똘히 생각했다.

그러다가.

당지운이 멈춰 서서 바라보는 사람을 좇아 시선을 옮겨 보니.

“……천무린?”

송무에게 잔소리를 하고 있는 천무린이었다.

“뭐라고?”

“왜 저 녀석이 무린이를 보면서 미소 짓고 있냐.”

흡사 그 모습은,

“설마, 아니지?”

“아니겠지. 설마. 그런 취향…… 아니지?”

태강과 진무양이 서로를 바라보며 눈을 화등잔만 하게 떴다.

“무슨, 암만 그래도 그럴 리 없지.”

태강이 고개를 저으며 손사래를 쳤다.

“근데 지운이가 좀 예쁘장하게 생기긴 했지?”

“예쁘장? 그런가?”

당지운의 얼굴 요모조모를 뜯어보던 태강이 진무양의 귀에 입을 갖다 대고 소곤소곤 말했다.

“……처음에 쟤 들어왔을 때 여자인 줄 알고 호감 가진 애들 몇몇 있었어.”

“진짜로?”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진무양이 화들짝 놀랐지만, 태강이 킥킥댔다.

“당지운에게?”

고개를 갸웃하던 진무양이 당지운을 바라봤다.

치렁치렁한 앞머리 때문에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그저 오뚝한 코에 분을 칠하지 않은 것 같은데도 불구하고 잡티 하나 없는 하얀 피부는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그러고 보니.”

남정네의 입술이라고는 보기 어려울 만큼 연분홍빛을 띠는 당지운의 입술까지.

저 정도의 외모라면 충분히 오해할 만하겠군.

그러나 애초에 남자라고 판단했던 진무양의 입장에서는 거부감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진무양의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태강은 몇 명을 가리켰다.

“쟤, 쟤, 쟤.”

그중에는 명진도 포함되어 있었다.

진무양이 그 이야길 들으며 이마를 부여잡았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남자한테 호감을……. 근데, 그건 그렇고 얘는 왜 이렇게 잘 알아?

“넌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

“응?”

게슴츠레 눈을 뜬 진무양이 태강을 쓱 하고 바라본다. 그러곤 씨익 웃으며 물었다.

“너도지?”

“뭐?”

“너도 지운이한테 호감 가진 거지?”

“악! 무슨 개소리야!”

태강의 얼굴이 시뻘게진 채 소리쳤다.

“강한 부정은 긍정이다. 옛 선인들의 말씀에 틀린 건 없어. 딱 네 꼴을 보아하니 그 말이 맞네.”

약점을 잡은 진무양은 장난스러운 눈빛으로 크게 소리치려고 자세를 잡자, 우악스러운 손길이 그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래! 그래, 맞으니까 제발. 제발 그 입 좀 닥쳐! 죽여 버릴 거야! 발설하면 살인멸구(殺人滅口)해 버릴 거라고!”

울부짖는 태강의 말에 진무양은 자신의 입을 틀어막은 손을 치면서 컥컥거렸다.

“마, 말 안 할 테니 제발 이 손 좀 놔! 나 죽, 죽어……!”

아차.

그제야 태강이 정신을 차렸다.

“아, 미안.”

“허억, 허억. 진짜 살인멸구하려고 했어. 이 새끼…….”

진무양이 가쁜 호흡을 뱉어 내며 태강을 노려보자, 태강은 그제야 제정신으로 돌아온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아, 아하하.”

“이 새끼…….”

“아무튼 당지운에 대한 의구심을 그냥 넘어가면 섭섭하지?”

태강과 진무양이 서로의 얼굴을 쓱 바라보면서 씨익 웃었다.

“오늘부터 파 보는 거야.”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더니 양손을 교차했다.

“당지운의 비밀을 캐내자.”

“근데 당지운이 진짜 사천무관주님의 손자가 맞는 걸까?”

“에?”

“그게 아니라면 어떻게 조기 진급을 했겠어.”

“그야 당연히 실력으로 입증한 거 아니야?”

“성적이 그렇게나 좋았다고?”

두 사람은 어리둥절해하며 여태 당지운에 대해 얼마나 모르고 있었는지 새삼 실감했다.

“좋아, 가 보자고.”

* * *

“……그 아이에게 흥미가 생겼다고?”

“네! 흥미가 생겼어요.”

“왜 하필 그 아이인 것이냐?”

“음……. 그냥?”

당백진은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눈앞에 있는 자신의 손주를 바라봤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귀여운 손주다.

그래서 여태 이 손주에게는 그 어떤 강압적인 요구도 하지 않았다.

“무슨 관심이더냐. 그, 그저 호기심일 뿐이겠지?”

“……음, 일단은요?”

당백진은 눈앞에 있는 당지운을 바라보며 눈을 질끈 감았다.

“네가 원하는 대로 사천무관 입관도 허락해 주었고, 네가 해 달라는 대로 요구 사항을 들어주기도 했다.”

“잘 알죠. 다 할아버지 덕분인 걸요.”

“그렇게까지 해 준 이유를 알고 있느냐?”

“그야, 제게 삶에 대한 의욕이 생기길 바라시는 거잖아요.”

설핏 웃는 당지운의 미소에 당백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웃는 당지운의 모습에서 당백진은 남아 있는 모든 걱정이 싹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네 기행도 모두 눈 감아 주고 있는 것도 알고 있겠지?”

“흐음, 근데 이 놀이도 별로 재미가 없어지려 해요.”

당지운이 자신의 앞머리를 돌돌 말더니 깊게 한숨을 내뱉었다.

“그런데 때마침 그 사람이 나타났고요. 참 신기한 사람이에요. 할아버지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하루아침에 사람이 그렇게 바뀌는 것도 그렇고, 살을 뺐다고 그렇게 잘생겨질 건 또 뭔지. 무공도 소림? 남궁? 개방? 온갖 무공까지 다 쓰는 걸 봤다니까요. 심지어 오십 명도 넘는 후보생들을 막 매타작을 하면서…….”

쉼 없이 떠드는 당지운이었다.

조잘조잘 떠드는 그의 표정은 밝아 보이기만 했다.

그 모습에 당백진은 깊은 한숨을 쉬면서도 한편으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뭐라도 관심이 생기고 흥미가 생겨서 정말 다행이란 생각.

“천무린…….”

세상에 등을 돌리다시피 한 자신의 손주에게 즐거움 이상의 의미가 된 존재라.

자신의 제자로 눈여겨보기까지 했으나 사천당가를 깎아내린 말에 괘씸하게 여겼는데.

그 아이와는 왠지 인연이 있는 것 같군.

그렇게 생각한 당백진은 눈앞에 있는 손주의 머리를 쓰다듬을 뿐이었다.

“아참, 할아버지.”

“응?”

“세 번째 시합은 뭐예요?”

“세 번째 시합?”

“네!”

당지운이 해맑은 눈빛으로 당백진을 바라봤다.

“하하, 이 녀석.”

당돌하게 묻는 당지운의 이마에 가볍게 손가락을 튕기며 당백진은 미소를 지었다.

“아무리 네가 궁금해해도 그런 것까지 알려 줄 순 없느니라. 그렇지 않으면 비밀을 유지할 의미가 없지 않느냐.”

“흥! 어차피 전 기권도 했는데요!”

“이 녀석아! 말이 나와 망정이지, 기권은 왜 했느냐? 이 할아비를 욕먹일 셈이냐.”

“누가 저를 할아버지랑 연관지어 생각하겠어요.”

“보는 눈이 많은 만큼 조심해야 된다고 하지 않았더냐.”

“흥!”

“어허, 아무리 그리 기분 상한 척해도 이번만큼은 넘어가 주지 않…….”

“할아버지! 그냥 저 다시 당가 저 깊숙한 곳에 처박혀서 폐관이나 해 버릴까요?”

세상에서 당백진을 협박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 그것은 역설적이게도 당백진의 손주인 당지운이었다.

사천무관주 당백진.

만독암제 당백진.

정파 최고수 중 한 명이라는 당백진조차도.

눈앞에 있는 손주 앞에는 속수무책이었다.

질끈.

“어쩌다가 이런 협박까지 배워 와서는.”

“누구긴요! 당연히 그 사람이 하는 걸 보고 배웠죠! 후후.”

천무린, 이노오옴!

대체 내 손주에게 무슨 짓을!

표정이 와락 일그러지며 체면도 잊은 채 천무린에 대한 욕지거리를 마구잡이로 내뱉는 당백진이었다.

* * *

“누가 자꾸 내 욕을 하나? 근래에 왜 이렇게 귀가 가렵지.”

후비적, 후비적.

귀를 파는 천무린의 옆에 설화린이 혀를 찼다.

“……어디 한둘이겠어요?”

“어허, 그런 말은 섭해. 내가 무슨 욕먹을 짓을 했다고.”

“정말 뻔뻔하기 짝이 없네요.”

사람의 탈을 쓴 게 분명했다. 천무린은.

“크흠.”

뭐 좀 많이 패긴 했지.

“그보다 벌써 결승인가. 내 상대는 누구야?”

천연덕스러운 말에 한숨을 푹 하고 내쉰 설화린이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두드렸다.

“제 시합 아니고 당신 시합이거든요.”

“알아.”

“그걸 알면서 왜 시합 상대도 몰라요?”

“누구든 상관없으니까.”

아……?

그게 그렇게 되는 거였어?

황당한 눈빛으로 입을 딱 벌리는 설화린을 바라본 천무린이 씨익 웃었다.

“그보다 이제 몸은 괜찮아졌나 보네?”

“……에?”

“비무하다가 중간에 쓰러지고 말이야. 하여간 나약해.”

그 말에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씹는 설화린이었다.

인정받으려고 그동안 얼마나 노력했는데.

결국 돌아오는 말이 이런 말이라니.

고개를 푹 하고 숙이는 설화린이었다.

“제1조 비무장, 사천무관 천무린! 사천무관 백리무영! 비무장으로 올라오면 됩니다.”

그 와중에 천무린을 호명하는 하후성의 육합전성이 들렸다.

“어? 나 부르네. 다녀올게.”

태연자약한 얼굴의 천무린이 걸음을 옮기려다가,

멈칫.

그러곤 고개를 돌려 설화린을 바라봤다.

“……빙백신공 5성. 아주 훌륭했다.”

……어?

처진 어깨와 숙였던 고개를 들어 올리는 설화린의 눈엔 이미 걸음을 옮기고 있는 천무린의 뒷모습만 보였다.

저벅, 저벅.

그렇게 말 한마디만 남기고 비무장으로 홀랑 올라가는 천무린이었지만.

……그것으로 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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