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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무신, 무림학관을 제패하다-80화 (78/250)

제80화

제80화

남궁호는 이미 비무장에 올라와 검의 이가 다 나가 있는 패검을 든 채, 하품을 크게 하고 있었다.

그게 바로 창천검존의 손자인 창천검룡이 가진 여유였다.

저벅, 저벅.

하품을 하고 있는 가운데, 누군가 올라오는 모습을 바라보며 남궁호는 이채를 띠었다.

“용케 도망 안 가고 올라왔네. 같잖은 복수라도 할 셈인가?”

올라온 송무는 남궁호의 말에 반응하지 않고 그저 호흡을 짧게 내뱉을 뿐이었다.

“약자의 목을 따는 악취미는 내게 없는데. 여기까지 올라와서 나와 대면한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 말에 송무가 고갤 들어 마주 바라봤다.

“누군가 그러더라고.”

스르릉.

출검(出劍)한 송무의 검이 느릿하게 뽑혀 나왔다.

“쫑알쫑알 말이 많은 사람치고 강한 놈은 없다고.”

“뭐?”

여유롭던 남궁호의 미소가 딱딱하게 굳어졌다.

“복수? 그런 건 이제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어. 그저 너라는 벽을 뛰어넘을 뿐이야.”

“후후……. 건방진 새끼.”

비틀린 미소가 남궁호의 입가에 걸렸다.

“조용! 아직 시작하지 않았다.”

두 사람의 대화에 하후성은 좌중을 바라보더니 손을 서서히 들어 올렸다.

“……제1조 비무장, 사천무관 송무! 산동무관 남궁호! 비무 시작!”

하후성의 주먹이 불끈 쥐어짐과 동시에,

쾅!

청강석 바닥이 깨지는 소리와 함께 땅을 박찬 남궁호의 검이 송무의 어깻죽지를 단숨에 베기 위해 길게 내리그어졌다.

순식간에 공간을 접어 달렸다고 느낄 만큼 쾌속한 움직임이었고, 검격은 매섭기 짝이 없었다.

카가가강!

날카로운 금속음이 고막을 자극할 만큼 길었지만, 송무의 검은 그것을 도로 튕겨 내며 흘려 내는 데 집중할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겁다. 그리고…… 말도 안 되게 빠르다.’

그저 무겁고 패도적인 기운만이 담겨 있는 중검(重劍)이라고 생각했던 송무의 오산이었다. 어깻죽지에 닿기 전부터 검을 들어 막아 냈음에도 불구하고 어깻죽지가 피로 축축하게 젖어들었다.

찌릿!

붉은 핏물이 스멀스멀 배어 나왔다.

단 일합 만에.

“……고작 그 정도 실력으로 내 앞에서 허풍을 떨었나.”

남궁호가 검을 고쳐 잡으며 중단세 자세를 취했다.

“네 자존심이 얼마나 알량하고 보잘것없는 것인지 보여 주마.”

오만하고도 상대를 오시하는 두 눈. 그리고 남궁호의 주변으로 퍼져 나오는 끈적한 기운은 명백한 살기(殺氣)였다.

그 살기는 송무의 두 발을 묶었고, 송무의 온몸을 휘감으며 그의 움직임을 봉쇄했다.

살기와 살의를 자유로이 끌어내 상대에게 무언의 압박을 가하는 것은 남궁호가 즐겨 펼치는 공격 중 하나였다.

애초에 사람의 마음가짐은 곧 정신을 뜻하는 바.

상대를 죽이고자 달려드는 사람의 의지와, 상대를 단순히 이기겠다고 마음먹은 자의 차이는 이렇듯 명백할 수밖에 없었다.

그 작은 차이가 실전에서 엄청난 격의 차이를 보여 줄 것이기에 남궁호는 단숨에 송무를 찍어 누를 것이다.

“사자는 토끼 한 마리를 잡을 때도 최선을 다하지.”

꽈악.

검의 손잡이를 고쳐 잡은 남궁호가 날랜 몸놀림으로 허공을 향해 뛰어올랐다.

단전에서부터 뿜어져 나오는 무수한 기운이 손끝을 타고 검면을 가득 메웠다.

“왜 이 검을 제왕의 검이라고 부르는지 아냐?”

제왕검형(帝王劍形).

네 글자에 담긴 검의 기운이 급속도로 비무장 전체를 휩쓰는가 싶더니, 이내 송무의 두 눈에 들어오는 거대한 검의 형상.

“하늘을 담는 창궁무애검도.”

한 걸음씩 내디딜 때마다 주변을 엄습하는 위압감은 제왕검형을 펼쳐 내는 남궁호의 품격이었다.

“뇌우를 동반하여 몰아치는 섬전십삼뢰도.”

저벅, 저벅.

머리끝이 바짝 곤두설 만큼 다가오는 검의 형상은 무섭게 압박해 올 뿐이었다.

남궁호의 매서운 기세에 관중들은 그저 숨죽여 바라볼 뿐이었다.

“격을 담아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천천히 떨어져 내린다.

차츰차츰 떨어지는 그 검은 송무를 비롯한 비무장 전체를 쪼갤 듯이 무서운 기세로 내려왔다.

그것이 검기나 검강과 같은 내력의 일환이 아니라 일종의 기운과 무언의 기세라는 것을.

‘알면서도 쉽게 움직여지지 않는다.’

남궁호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지어진다.

“오롯이 이 검만이 제왕의 검이라 할 수 있다.”

감히.

어느 누가 감히.

이 검을 막을쏘냐.

저런 애송이 따위는 이미 이 격에 무너져 버릴 것이고, 그대로 주저앉아 다시는 검을 들지 못하게 될 것은 자명한 일.

이 기세를 타서 비무대회에 우승해 남궁가가 천하제일의 세가임을 다시 한번 입증할 것이다.

제왕검형의 무시무시한 기운을 버텨 내지 못하고 송무는 속절없이 물러섰다.

얇디얇은 검 한 자루로 그 기운에 대항하면서.

덜덜덜.

“상대를 몰라본 네 어리석음을 자책하라. 그리고 다시는 검을 들 생각 따윈 하지 마라. 그저 제왕의 일검을 맞이한 이 순간을 영광으로 기억하고, 또 기억하라.”

덜덜 떨리는 송무의 다리가 이내 휘청거렸다.

그리고 한쪽 다리에 힘이 풀리며 땅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지는 건 시간문제였다.

꾸구국.

꾸욱.

기세에 짓눌린 송무의 모습에 8기 후보생들이 안타까운 나머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제대로 된 검술 한번 펼쳐 내지 못한 송무는 이렇다 할 반항조차 하지 못하고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그 모습은 오랫동안 동고동락한 후보생들로서는 차마 보기 어려운 것이었다.

온몸이 오싹해지리만치 강렬한 기운에 후보생들은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말을 애써 삼켜야 했다.

저 거대한 기운에 맞서지 말고 그냥 기권하지.

차라리 그랬다면.

그랬다면…….

저리 처참하게 무너지진 않을 텐데.

수많은 후보생들과 관중들이 허망하게 무너져 내리는 송무의 모습에 침음성을 내뱉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누가 봐도 명백한 승부.

그런 상황에서 유일하게 가라앉은 두 눈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는 이는 천무린뿐이었다.

「 허억, 허억……. 나는 아직 포기하지 않았소이다. 더 나아가려거든 이 손에 잡고 있는 검을 놓게 만들어야 할 것이오! 」

종남검성 진곤이 천무린의 손에 왼팔이 잘려 나갔을 때 그가 부르짖던 말이었다.

‘검을 놓지만 않는다면 진 게 아니다.’

진곤의 영혼은 그 후예에게도 그렇게 가르친 듯했다.

까가강. 까앙.

단숨에 무너질 것이라고 느꼈던 관중들이 슬며시 눈을 떴다.

금방 승패가 나리라고 생각하고 눈을 감았던 이들의 귀에 예리한 금속음이 들렸다.

“……머, 멈췄다?”

남궁호의 검이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단숨에 베어 버릴 거라고 생각했던 그 검격이 말이다.

그런 상황에서 가장 당황하는 이는 다름 아닌 남궁호였다.

“아까도 말했지만.”

……음?

“……말이 많은 사람치고 강한 놈 없다고 했는데, 넌 말이 너무 많아.”

차갑게 가라앉은 눈을 한 송무는 이를 악물고 한차례 검에 힘을 주더니 그대로 끌어올려 버렸다.

천하삼십육검(天河三十六劍).

천하도도(天河濤濤).

천하를 오시하듯 쏟아지는 검의 기운에 대항하는 철벽의 검막을 펼치는 송무였다.

쿠웅!

일시에 찍어 누르던 기운에 대항하여 전신잠력을 끌어올려 검 끝에 모아서는 단숨에 제왕검형의 기운을 날려 버린 송무였다.

“허억, 허억.”

비틀.

휘청거리는 다리에 힘을 주어 자세를 잡는 송무의 모습을 눈을 부릅뜬 채 바라보는 남궁호였다.

“……제왕검형이.”

무너질 리 없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무너질 리 없는데.

절대 그럴 수가 없는데.

그런 남궁호의 앞에 송무가 호흡을 고르더니, 검을 고쳐 잡았다.

“어떻게 한 거냐…….”

제왕검형을 익히고 나서는 단 한 번도 패배를 경험해 본 적이 없는 남궁호는 고작 이런 애송이에게 자신의 검이 막혔다는 사실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해.”

“뭐?”

다행이라니. 무슨 개소리를 하는 건가.

송무는 남궁호를 바라보면서 깊게 호흡을 내뱉고는 오만함이 무너진 남궁호의 얼굴을 직시했다.

“너라는 벽을 넘어 나는 비로소 오늘 더 높이 올라갈 거니까.”

빠직.

송무의 말에.

파앙!

쏜살처럼 달려드는 남궁호의 검에는 더 이상 거리낌이 없었다. 흡사 빛살과도 같은 검영들이 뿌려지더니 미친 듯이 송무의 전신 요혈을 노리고 들어왔다.

“검의 형이 바뀌었어?”

“조심해! 송무야!”

“저, 저 자식 진짜로 죽일 셈이야.”

중(重)과 패(覇)를 추구하던 남궁호의 검형이 변화하여 쾌속하게 뻗어 왔고.

후우우.

송무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순간적으로 남궁호의 검이 찬란하게 보였다.

‘허나, 단지 그뿐.’

「 네게 전 방위를 다 막으라고는 하지 않겠다. 네 앞으로 오는 공격만 제대로 막아. 」

불과 며칠 전 말했던 천무린의 음성이 들렸다.

그리고 그로부터 결과물을 완성하기 위해 빚어낸 단 하나의 초식.

천하삼십육검(天河三十六劍).

천하수조(天河垂釣).

수십 개의 참격이 송무를 수십 동강을 낼 것처럼 쏟아지는 남궁호의 움직임. 어지간한 수준으로는 감히 검을 갖다 대기에도 버거울 정도의 쾌검이었으나.

챙챙챙챙───!

금속음이 울리며 찰나의 순간에 수십 번의 불꽃이 튀었다.

굳건하게 자리 잡은 송무의 움직임에는 큰 변화가 없었으나 삼십육 개의 전방위를 막아 내는 천하삼십육검은 펼치는 그 순간부터 자신만의 공간을 형성한다.

겁화(劫火)가 일렁이는 남궁호의 두 눈에서 분노한 기세가 폭사되더니, 공격 일변도의 자세를 취했다.

자신의 몸을 전혀 돌보지 않고 오로지 공격만을 추구하는 자세를 잡은 남궁호는 콧김을 뿜어내며 그대로 다시 한번 검을 내리그었다.

다시금 찾아오는 세상의 정적.

그 무엇도 막을 수 없을 제왕의 품격이 비무장을 무겁게 짓눌렀다.

전체를 아우를 것 같은 그 기세가 오로지 한 명에게 집중되었다.

꾸구국.

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묵직한 무게감.

단숨에 찍어 누르겠다는 의지를 가진 포악한 힘이 송무를 위에서 아래로 그저 짓누를 뿐이었다.

“죽어!”

그 튼튼하다는 청강석 바닥에 자리를 잡고 있는 송무의 공간이 짓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남궁호의 검격을 바라보는 송무의 눈은 더없이 침착해졌다.

광폭한 기세는 변함이 없는데, 송무는 한없이 담담하다.

매우 대비되는 순간이었다.

꽈아악.

송무가 양손으로 검을 잡는다.

차원이 다른 그 강인한 검격에 그저 검을 천천히 가져다 댔다.

그리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어느 한 관중이 절로 입을 벌렸다.

“매서운 광풍(狂風) 속에서도 고고한 자태를 유지하며 사시사철 변함이 없는 소나무의 모습이 연상되는구나.”

모든 것을 앗아 갈 듯한 광풍 속에서 자기 자신의 모습을 유지하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송무는 그 어려운 것을 해내고 있었다.

다름 아닌 이곳에서.

천하삼십육검(天河三十六劍)

천하앙시(天河仰視).

천하를 오시하는 제왕검형과 달리, 천하를 우직하게 바라보는 천하삼십육검의 초식.

쏟아지는 것은 단 하나의 검격이지만, 그것을 막아 내는 것은 오직 서른여섯 번의 검결.

카가가강! 카앙!

“소용없다! 고작 그런 초식으로 제왕검형을 막아 낼 수 있으리라고 보느냐!”

남궁호의 울부짖음과 동시에 제왕검형은 천하앙시 초식을 무자비하게 박살을 내며 짓쳐들어왔다.

한 번의 검결은 사라졌고.

다섯 번의 검결은 박살이 났으며.

열 번의 검결은 무너졌고.

스무 번의 검결은 움직임을 늦췄다.

그리고.

서른 번의 검결은.

쩌적.

제왕의 검에 금이 가게 했으며.

서른여섯 번의 검결은.

파아앙!

마침내 제왕의 검을 부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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