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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무신, 무림학관을 제패하다-78화 (76/250)

제78화

제78화

설화린과 남사익의 승부는 결국 결판이 났다.

남사익의 열양장은 설화린의 빙백장과 빙백검하고 우열을 가리기 힘들었지만.

“허억……. 허억.”

열기에 온몸이 땀투성이가 되었고, 바짝 말라 버린 입술은 건조하다 못해 찢어졌다.

“정말로 잘 싸웠소. 설 소저.”

“……분명 말했죠. 소저가 아니라 후보생이라고.”

서슬 퍼런 설화린의 표정에 남사익이 짧게 헛기침을 했다.

“크흠, 알겠소. 아무튼. 그대와 나의 무공이 워낙 상극인 것은 알 것이오. 그렇다 보니 결국 승부를 낼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 내공의 차이뿐이지.”

그리고 내공은 미세하게 남사익이 앞섰다.

단전이 텅 비어 버린 것이 보일 만큼 빙백신공 특유의 한기가 느껴지지 않는 것을 깨달은 남사익이었다.

“어떻소? 이 정도면 적어도 그대의 배필로 부족하거나 모자람이 없지 않소?”

흐뭇한 표정을 짓는 남사익의 모습에 설화린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남사익의 말처럼 이미 그녀의 단전은 텅 비어 버렸다. 단 한 줌의 내공도 끌어올 수 없었기에 그녀 역시 깨닫고 있었다.

그러나.

여기서 포기하면.

여기서 내려놓으면.

꽈악.

검을 잡은 두 손에 힘이 실린다.

“헛소리하지 마세요. 배필이니 나발이니.”

“서, 설 소저?”

설화린은 수십, 수백 번도 더 휘둘렀던 사천검법의 초식 중 구궁(九宮)으로 남사익을 공격했다.

그 기세에 남사익은 순간 움찔하더니, 한 걸음 물러나 열양장으로 설화린의 검면을 후려쳤다.

카앙!

내공 한 줌 없는 검은 맥없이 튕겨 나갔고, 설화린 역시 충격에 몇 걸음이나 휘청거리며 뒤로 물러나야 했다.

“큽.”

왼손으로 급하게 입을 막아도 새어 나오는 핏물은 남사익의 열기가 설화린의 내부를 진탕으로 만들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녀는 검을 바닥에 세워 지팡이로 삼은 채 몸을 지지하며 쓰러지지 않았다.

“설 소저, 이제 그만 포기하시오! 더하면 그대의 몸이 망가질 것이오!”

“……하아, 하아.”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도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아직이에요.”

그러곤 자신도 모르게 고갤 돌려 비무장 아래 8기 후보생들이 있는 곳을 바라봤다.

천무린 역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딜 가도 빛이 날 인물이다. 아마 이 비무대회가 끝나고 나면 더욱 자신에게서 먼 사람이 될 것이다.

세상이 그를 주목할 것이고,

낭중지추(囊中之錐).

군계일학(群鷄一鶴),

어떤 수식어를 갖다 붙여도 부족하다 느껴질 그를 탐내는 곳이 더욱 많아질 것이고.

한없이 멀리멀리 나아갈 사람이다.

그런 그에게 설화린이 할 수 있는 건.

“이기기 위함이 아니에요.”

그저.

그저 자신이 저토록 빛나는 사람 옆에 같이 서 있을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족했다.

그것이면 될 것 같다.

적어도 지금은.

천무린의 시선을 느낀 설화린은 마음을 부여잡고 일어나려고 하는 순간,

피잉.

눈앞이 빙글 돌았다.

무리한 내공 운용과 터무니없는 체력 소진으로 인해 현기증이 일어나며 지탱하고 있던 다리의 힘이 풀렸다.

“서, 설 소저……!”

남사익의 음성이 들려오다 마는 것을 느끼며 누군가의 포근한 온기에 눈을 감는 설화린이었다.

“……제1조 비무장, 사천무관의 남사익 승리!”

* * *

“후우, 남은 건 우린가?”

백리무영이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눈앞에 보이는 자신과 묘하게 다르지만, 분위기 자체는 그대로 빼다 박은 하나밖에 없는 동생이 마주 보며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백리후였다.

둘 사이에 묘한 기류가 흘렀다.

“넌 나한테 비비려면 아직 멀었다. 그만 내려가라.”

“너나 내려가.”

“형한테 그게 무슨 말버릇이냐!”

“고작 반각 일찍 태어난 게 뭐 그리 대수라고.”

평소엔 감정의 동요를 보이지 않는 두 사람이었지만, 서로 마주 보면 감정의 깊은 골을 드러내고야 말았다.

으르렁거리는 형제의 모습에 천무린은 어깨를 으쓱한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형제를 챙겨 줘도 모자란 이 비정한 세상에서 서로 잡아먹지 못해 저리 안달하다니.

“왜 저러는 건데? 혹시 백리무영이 백리후의 연인이라도 뺏어 갔냐?”

그 말에 태강과 황태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본다.

농담도 못 하나. 왜 그리 정색해.

“크흠, 아니면 뭔데? 왜 저렇게까지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데.”

“이유가 딱히 필요하냐. 형제라는 게 원래 그런 거지.”

“원래 그런 건 없어. 뭔가 이유가 있겠지.”

안 싸우고 잘 지내는 형제자매가 얼마나 많은데, 일반화를 시키고 자빠졌냐고.

혀를 차고 있는데, 진무양이 조용히 이야길 꺼냈다.

“두 사람 다 화산파의 속가제자인 것은 알고 있지?”

“어어, 알지. 속가제자이긴 해도 화산파 무공을 대충 익힌 걸로 아는데.”

“속가제자 중에서도 출중한 재능을 인정받았으니까.”

“근데 뭐가 부족해서 저러는 건데?”

“화산파에서 조건을 걸었어. 화산의 이십사수매화검법을 단 한 명에게만 전해 줄 거라고. 그래서 화산파의 진신절기를 전해 줄 후인은 단 한 명으로 족하기에 졸업 성적을 보고 결정하겠다고.”

“에? 염X들을 하네.”

졸렬하네. 그냥 재능을 알아봤으면 두 사람 다 전수해 주면 되지.

어이없는 표정을 지은 천무린에게 진무양이 백리 형제의 비무를 지켜보면서 말을 이어 갔다.

“너도 알겠지만, 어느 문파가 속가 제자에게 진신절기를 전수해 주겠어. 화산파로서는 큰마음을 먹은 거지.”

진무양의 말처럼 속가제자는 문파의 정식 제자가 아니기 때문에 진신절기는커녕 문파의 무공 중에서도 하위 무공을 익히는 데 그친다.

그런 것에 비해 두 사람은 속가제자로서 최고의 행운을 얻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결국 경쟁 때문에 두 사람 사이가 저리되었다?”

“그런 셈이지.”

“화산파가 졸지에 형제 사이를 파탄 내 버렸네.”

화산파가 그것을 몰랐을 리 없었다. 그저 경쟁을 시켜 더 나은 제자를 뽑겠다는 못된 심산이 아닌가.

명문 정파라고 간판을 단 인간들이 하여튼.

혀를 차면서 백리무영과 백리후의 움직임을 눈으로 좇았다.

“저래선 승부가 안 나겠는데.”

이십사수매화검의 하위 검법이지만, 화산파의 인정을 받은 자만이 익힐 수 있는 십사수매화검법을 펼치는 두 사람이었다.

“……누가 형제 아니랄까 봐, 서로 합이라도 맞춘 것처럼 딱딱 맞지 않나.”

“사이가 안 좋은 것치고는 서로에 대해 너무 잘 아는 것 같지?”

“그러게. 무슨 검을 어떻게 쓸지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움직이니까.”

“두 사람 모두 실력에 별반 차이가 없는데?”

“그거야 당연하지.”

“그런데 왜 백리무영만 조기 진급하고 백리후는 남아 있었던 건데?”

후보생들이 천무린을 이상하게 바라봤다.

“넌 가끔 다른 사람처럼 말하더라. 우리 같이 입관하고 쭉 같이 있었는데, 왜 자꾸 모른 척을 하는 거야?”

“맨날 모른 척하고 되물어보더라.”

이 눈치 빠른 새끼들.

“……그딴 거에 내가 관심이 없잖아.”

“그렇긴 하지.”

“무관심했었나.”

“잘 모르겠네.”

“아무튼, 무영이가 후랑 대련 평가를 치른 적이 있었어.”

“대련 평가? 그땐 무영이가 이겼었나?”

“무승부였지.”

“무승부였는데, 왜 무영이만 올라가?”

“……다른 조별 평가에서 점수가 더 좋았으니까. 진급시험 역시 과목이 달랐어.”

어찌 됐든 졌다. 뭐 그렇게 생각한 건가.

그래서 저렇게 백리후가 이를 악물고 강해지려고 애쓰는 건가.

백리무영과 백리후는 너무도 닮았지만, 단 하나 차이가 있었다.

“한쪽은 여유롭고, 한쪽은 조급해.”

백리후는 늘 누군가에게 쫓기는 것처럼 조급해 보였다.

이미 한 번 추월을 당했다고 생각하는 거겠지.

쯔쯧, 결판났구먼.

혀를 차고 있는 천무린과 8기 후보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백리무영과 백리후의 공세는 더욱 치열해져만 갔다.

카강! 카가가강!

십사수매화검법(十四手梅花劍法).

설매창연(雪梅蒼然).

푸른 매화 한 송이가 백리무영의 검 끝에서 피어나 바람에 휘날렸고,

십사수매화검법(十四手梅花劍法).

냉매섬락(冷梅閃落).

순식간에 매화를 뒤덮는 또 다른 매화들이 푸른 매화를 낙화(落花)시켜 버린다.

화산의 검은 뛰어나고 아름답기로 정평이 나 있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에 취해 수많은 변화를 읽지 못하거나 그 속에 담긴 날카로움을 눈치채지 못하면 끔찍한 결과를 초래하고 만다.

지금도 수많은 관중들은 매화의 향과 아름다움에 취해 넋을 놓고 바라보고 있었다.

거기다 그 매화의 검을 펼쳐 내는 이들의 모습 또한 헌앙하고 준수하니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아아, 정말 아름답구려.”

“과연 화산의 매화검이 아니겠소. 정말 눈을 뗄 수가 없소.”

“두 사람의 자태를 보시오. 헌헌장부가 따로 없구려.”

감탄에 감탄을 자아내는 두 사람의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는 한 사람이 더 있었다.

화산파의 장문인, 매진산은 그저 집중하며 지켜볼 뿐이었다.

단상 위에서 떠드는 다른 장문인들과는 달리 십사수매화검을 하나하나 펼쳐 매화를 꽃피워 내는 두 사람의 움직임에 매진산은 감탄보다는 분석하고 보다 실리에 집중하였다.

‘기대 이상이로군. 속가제자가 펼치는 십사수매화검이라…….’

눈이 빛나는 매진산이었다.

그렇게 백리 형제의 비무에 몰입감이 더해 가는 가운데 두 사람의 몸에는 잔상처가 늘어만 갔다.

핏!

피핏!

백리무영의 볼에 매화 꽃잎이 스쳐 지나가며, 피부가 쩌억 하고 갈라지는가 하면,

파앗!

나풀거리는 매화가 돌변하여 매의 발톱보다 더 쾌속한 움직임으로 백리후의 옆구리를 스쳐 지나가며 핏방울을 터뜨렸다.

터져 나오는 매화의 꽃잎에 두 사람의 핏방울이 방울방울 맺혀 비무장은 온통 붉은색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치의 물러섬이 없는 두 사람이었다.

“……후우, 후우, 제법이구나.”

“표현이 거슬리네. 여전히 내 위에 있다고 착각하나 보군…….”

백리후는 흔들리지 않는 눈빛으로 백리무영을 노려봤다.

매 순간 자신보다 우위에 있다고 착각하는 저 시선이 늘 거슬렸다. 단 한 번도 비무에서 진 적이 없건만.

“고작 그런 평가에서 이겼다고 날 뛰어넘었다고 생각하는 거라면 큰 오산이야.”

검을 고쳐 잡은 백리후가 눈을 부릅떴고, 호흡을 골랐다.

미미한 떨림이 그의 손끝에서부터 검 끝으로 전달되며 그대로 내달렸다. 비호처럼 달려드는 백리후의 예기에 백리무영은 저도 모르게 표정을 굳혔다.

마치 수많은 가시넝쿨이 피부 곳곳에 박히는 듯한 착각을 줄 만큼 예리한 기운이라니.

날카로운 내력을 머금은 백리후의 검이 위에서 아래로 떨어졌다. 내려치는 백리후의 단순한 검로에 백리무영은 코웃음을 치며 검을 위로 올려쳤다.

내력은 결코 백리후에게 밀리지 않는다.

내력이 전부는 아니지만, 내력이 없으면 무인으로서의 기량을 마음껏 펼치기 어렵다. 고로 백리후보다 뛰어난 실력을 갖고 있다고 자부하는 백리무영이었다.

그렇게 검이 맞부딪치려는 순간,

‘매화향……?’

코끝을 간질이는 매화향을 백리무영은 느꼈고, 순간적으로 변화하는 백리후의 검결을 봤다.

십사수매화검법(十四手梅花劍法).

선매청고(仙梅淸孤)!

‘……이건,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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