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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무신, 무림학관을 제패하다-74화 (72/250)

제74화

제74화

“이거, 이거. 누가 승자고, 누가 패자인지 모르겠는데. 아주 걸레짝이 돼서 돌아왔구먼.”

누구도 천무린의 말에 반박할 수가 없었다.

틀린 말이 아니었으니까.

누더기가 된 무복은 물론이거니와 이백의 몸뚱어리는 아주 너덜너덜한 상태였다. 이미 몇 대는 나갔던 늑골과 온몸의 피 범벅은 그의 상태가 이미 한계를 넘어섰음을 보여 주었다.

“괜찮…… 어억!”

그의 상태를 보려 다가간 7기수 문호와 구태현은 비무장을 내려오자마자 거의 쓰러지다시피 하며 엎어지는 이백을 부축했다.

“고생했다. 푹 쉬어라.”

“……부탁할게.”

그 말을 끝으로, 이백은 그만 정신줄을 놓고 혼절해 버렸다.

승리자의 몰골은 아니라고 하나 그의 모습은 사천무관의 생도들과 후보생들의 심금을 울렸다. 특히 7기수들 대부분은 제대로 고개를 들지 못하는 모습으로 씻을 수 없는 죄책감에 빠졌고, 8기수는 패배 의식의 고리를 끊어 낸 7기수의 모습을 보고 다시금 새롭게 도약할 수 있다는 희망에 부풀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장내에 울려 퍼지는 사천무관의 승전보가 그들의 마음을 벅차게 만들어 주었다.

“……이로써 내일은 8기수의 최종 시합이 있을 예정입니다. 7기수와 동일하게 최후의 10인은 비무를 통해 단 두 명만 최종 결승에 올라가게 됩니다. 최상의 상태를 유지하여 비무에 임할 수 있도록 하십시오. 이상입니다.”

담백한 하후성의 한마디로 치열했던 7기수의 시합은 끝나 버렸다.

* * *

“……으으. 어떻게 그놈 따위가, 그런 놈 따위가 우승을!”

팔짱을 낀 채 손톱을 세운 손가락이 팔뚝을 불안정하게 긁어내렸다.

손톱 끝이 파고든 살결에 핏물이 배어 나왔지만, 전혀 개의치 않는 진량의 눈가에는 시뻘건 핏발이 서 있었다.

참을 수가 없었다.

자신이 올라서야 할 자리에 이백이라는 떨거지 놈이, 그것도 한참 뒤떨어지는 이백 놈이.

만일 그놈이 사일검법을 마지막까지 펼치지 못했다면.

최후의 10인은커녕, 진즉에 탈락하여 손가락이나 빨고 있었을 텐데.

절로 이가 갈렸다.

그러나 아무런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잠깐의 휴식 시간이 찾아왔을 때.

진궁을 찾아갔다.

그래, 아버지라면 뭔가 수를 쓸 수 있을 터였다.

아무리 그래도 점창의 주인이 아닌가.

고작 이백 따위는 손가락으로 눌러서 소리 소문도 없이 사라지게 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자가 바로 자신의 아비였다.

그런데.

짜악!

“……이놈이! 아비 망신을 시키더니 이젠 점창까지 망치려 드느냐! 망하려거든 너 혼자 망하거라! 괜히 아비의 발목을 잡지 말고!”

벙찌게 만든다.

진궁이 날린 귀싸대기가 그리 맵진 않았다.

다만.

마음 속 저편에서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무언가가 진량의 마음 한구석에 자리잡기 시작했다.

그저…… 헛웃음이 나올 뿐이었다.

“……점창을 제가 망친다고 하셨습니까? 고작 이백 놈이 조금 성과를 보였다고 그놈에게 정신이라도 팔리신 겁니까!”

희번덕거리는 진량의 눈을 보고 진궁은 눈살을 찌푸렸다.

이게 무슨.

“전에도 말했지만 내 너무 오냐오냐 키웠더니 이젠 아비에게 바락바락 대들기까지 한단 말이냐! 감히이!”

대노한 진궁의 기세가 순식간에 진량을 찍어 누르며 그의 숨을 턱 막히게 했다.

“커, 컥!”

“고작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정신머리이니 네가 이백보다 더 나아가지 못한 것이다. 대체 네가 이백보다 부족한 점이 무엇이냐! 너의 뒷배경이 모자라길 했느냐, 무공 비급이 부족했느냐, 그도 아니면 밥 한 끼 먹을 여력이 없었느냐! 어느 하나 이백보다 모자람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검 하나 제대로 휘두르는 게 그리 어렵더냐!”

점점 커지는 언성에 맞춰 진량을 옥죄는 기운마저 강력해졌다.

점창 장문인의 대리인 자리를 허투루 차지한 게 아님을 보여 주었다.

“커억!”

숨이 턱턱 막힌 진량의 손이 부들거리며 허공에 헛손질을 몇 번이나 하는 모습을 보고서야 겨우 기운을 거둬들인 진궁이었다.

철퍼덕 하고 쓰러져 제 목을 어루만지는 진량의 처량한 모습 앞에서 진궁은 단호히 입을 열었다.

“못난 놈……! 사천무관 졸업 후 대제자의 자리를 네게 주려 하였으나, 그것 역시 다시 재고해 볼 생각이다.”

“아, 아버지……? 그게 무슨!”

“사천무관을 졸업할 때까지 다시는 아비라고 부를 생각도 말거라. 또한 말했다시피 네 자질이 대제자의 자리에 걸맞지 않고 부족하다고 판단되면 과감하게 쳐낼 생각이다.”

대제자.

점창파의 대제자. 점창파의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장문인의 후계를 정하는 것으로, 대제자의 자리는 실로 큰 것이었다.

그런 대제자의 자리가 내 것이 아닐 수도 있다고…….

“아, 아버지!”

“아비가 아니라 점창의 장문인이다!”

진궁의 표정은 잔뜩 굳은 채 호통을 쳤고, 진량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한 채 그대로 얼어 버렸다.

진궁의 발언이 진심임을 깨달은 것이다.

청천벽력(靑天霹靂)과도 같은 소리에 진량은 옴짝달싹할 수가 없었다.

이내 몸을 돌린 진궁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는 옳지 않은 방법으로 점창을 차지했다곤 하나 그렇다고 점창을 망칠 생각은 없었다. 되레 그는 점창을 천하제일의 문파로 거듭나게 할 야망을 품고 있었다.

그리고 부족한 조각 중 한 조각을 찾았다.

그것이 바로 이백이었다.

고작 18세, 약관도 되지 않은 이백에게서 그 가능성을 보았다. 사일검법의 최후 초식인 구곡전천을 벌써부터 펼칠 수 있는 그의 재능은 진궁의 마음을 송두리째 사로잡았다.

또한, 인품까지 갖췄으니 그가 이끌어 갈 점창의 대제자로 딱 걸맞지 않는가.

“……흠!”

짧은 소리와 함께 멀어지는 진궁의 뒷모습을 허망하게 바라보는 진량이었다.

진궁은 단 한 번도 자신을 내친 적이 없었던 아비였다. 그런 그가 갑자기 저렇게까지 바뀐다는 건.

대제자까지 거론한다는 것은 그에게 심경의 변화가 있었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이백, 이백, 이배액!”

언젠가 반드시……!

진량의 처량한 소리만 빈 공간을 울려 퍼질 뿐이었다.

* * *

“비무대회에 참가한 지 벌써 칠 주야가 넘어간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삐 돌아가는 일정에 정신이 없을 줄 안다만, 어쩔 도리가 없지.”

여전히 딱딱한 말투에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말하는 악교운을 보고 사천무관의 생도들과 후보생들은 서로 고갤 돌려 가며 소곤거렸다.

‘그러니까 우리보고 처음 한다는 말이 7기수 우승 축하도 아니고, 그냥 어쩔 수 없으니 받아들이라고 그런 거지?’

‘누가 야차 아니랄까 봐, 하여간 표정 변화도 없어요.’

‘야야, 아니야. 속으로 좋아하고 있을걸? 우승하면 성과금이나 보상을 받겠지.’

‘와, 그런가? 생각해 보니.’

“……누가 잡담을 하랬지?”

단숨에 잡소리를 차단해 버리는 악교운이었다.

“나 참, 총교관이라는 분이 사기를 진작시킬 생각도 안 해, 공로를 치하해 줄 생각도 안 해, 대체 뭘까. 정말.”

불량스러운 말투. 악교운에게 이와 같이 까부는 말투를 구사할 수 있는 중원 무림 내 유일한 한 사람.

“……공과 사는 구분해라. 천무린 후보생.”

무게를 잡고 있는 악교운은 평소엔 천무린과 대화를 나누며 녀석의 방정맞은 말과 행동을 일일이 꼬집진 않았지만, 지금은 7기수까지 다 보고 있는 상황이라 탐탁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눼에, 눼에.”

팔자주름을 세우며 말하는 모습에 악교운의 눈가가 꿈틀거리며 더 크게 한 소리를 하려다가.

“틀린 말도 아니군, 악 교관.”

존재감을 숨길 수 없는, 아니 존재 자체만으로도 주변에 위압감을 한껏 풍기는 당백진이 등장했다.

“……관주님!”

“천무린 후보생의 말에 어디 하나 반박할 구석이 없군.”

그러면서 7기수와 8기수를 쓱 훑는 당백진은 입가에 미소를 띤 채로 말을 이어 갔다.

“7기수가 잘한 것은 잘한 것이고, 내일 있을 비무대회에 참가하는 인원 중 8할이 우리 무관의 8기 후보생들이니 충분히 사기를 진작시켜 줄 법하지 않은가.”

당백진의 말이 맞아도, 혹은 틀렸다고 한들 악교운은 응당 받아들여야만 했다.

그래서 가만히 고개를 숙이며 수긍하는 자세를 취했다.

“……맞습니다. 관주님.”

“하하, 내가 자네에게 고압적인 태도를 취하려던 게 아니니 굳이 그런 과한 예는 갖출 필요가 없네. 그저 즐거울 때는 즐거움을, 기쁠 때는 기쁨을 표출하란 말이었네.”

이미 7기수가 우승하여 다른 무관의 관주들의 콧대를 꽉 눌렀다는 사실만으로도 한껏 들뜬 당백진이었다. 게다가 8기수는 최후의 10인에서 8할을 차지했다.

말 그대로 압살해 버린 것이다.

악교운을 타이르며 생도들과 후보생들을 아우르는 무관주의 기세에 자연스레 압도되는 후보생들이었다.

‘역시, 무관주님.’

‘좌중을 압도해 버리고 있어.’

‘이런 분위기엔 그 누구라도 말문을 열기가 쉽지 않겠는데.’

‘악 교관님마저도 그저 받아들일 뿐이니까.’

그때,

“……당백진 무관주님!”

홱! 홱!

이런 상황에서 무관주에게 편히 말을 걸 수 있는 대담함을 가진 이가…….

해맑게 웃고 있는 천무린이 번쩍 손을 들고 있었다.

……있구나.

그래, 있었어. 그런 편견 따위 깨부수고 미친놈처럼 행동하는 녀석이.

당백진을 부르는 천무린의 모습에 악교운이 눈에 쌍심지를 켰지만.

“하하, 천무린 후보생이 아닌가. 무엇인가? 무엇 때문에 손을 들었는지 어서 말해 보게나.”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눈부신 활약을 보여 준 천무린이었기에 당백진은 그의 무례에도 전혀 기분 나빠하지 않았다.

“궁금한 게 있습니다!”

“궁금한 게 있다니, 어서 말해 보게. 내 천기신사 제갈궁을 찾아가서라도 자네의 물음에 답변해 줄 생각이 있으니.”

흔쾌히 말해 보라는 당백진의 말에 천무린이 흐뭇하게 웃으며 말했다.

“……7기수도 우승하고, 8기수도 우승하면 주어지는 게 어떤 것인지 궁금합니다!”

으응?

천무린의 말에 당백진이 반문하기도 전에 악교운이 먼저 나섰다.

“……이놈! 당연히 우승하면 애초에 말했던 것과 같이 7기수에게는 명예가, 8기수에게는 전원 생도 진급이 보장된다고 하지 않았더냐.”

그 말에 천무린은 맥 빠진 표정을 지으며 한숨을 푹 내쉰다.

“에휴, 사천무관에서 우승하면 고작 그것만 해 주는 건가요? 나 참. 8년 만에 첫 우승이니 명예니, 진급이니 하는 조건은 당연한 거고 물질적인 게 없잖아요. 물질적인 게. 피 터져 가며 싸우는 우리가 누구 좋으라고 비무대회에 참가하는 거겠어요?”

그야…… 좋은 결과를 보이면 보일수록, 당연히 너네 좋은 일이지……!

턱 하고 말문이 막힌 악교운의 입이 벙긋거리기도 전에 천무린은 기세를 몰아 말을 이어갔다.

“사천무관의 명성이 올라가 심지어 7기수, 8기수 연속 우승이라는 명예 때문에 관심을 가지는 문파가 몇 곳일 거며, 사실상 다음 비무대회 역시 8기수가 또 참가하게 될 텐데, 이 정도 실력이면 또 우승할 거 이미 따 놓은 당상이겠죠. 거기다 사천무관에 투자할 상단과 표국들을 생각하면 뭐 거의 노다지판을 만들어 줬는데.”

김샜다는 표정을 한 차례 지은 천무린이 엄지와 검지를 붙이더니 동그란 모양을 만들었다.

“가장 중요한 물질적인 게 없잖아요. 물질적인 게.”

그 말에 당백진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고, 악교운은 게거품을 물고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표정으로 뒷목을 부여잡았다.

고작 후보생이 사천무관주 앞에서 말도 안 되는 거래 조건을 말하며 물질적인 걸 뱉으라고 요구하다니.

……꼬르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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