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2화
제72화
이백은 한시라도 빨리 몸을 움직여 비무대회에서 준비한 사천무관의 의약당 당주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비무대회이지만 사실상 하후성이나 각 비무장의 심판들이 개입하여 치명상은 입지 않도록 관리하는 편이지만, 그래도 부상을 입고 그 부상으로 인해 곪는 것까지는 비무대회에 출전한 참가자로서 감당해야 하는 본인의 몫이었다.
다음 시합 때까지 자신의 체력을 안배하는 것도 마찬가지였고.
의약당 당주들은 비무대회가 시작된 직후부터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가운데, 사천무관의 생도가 결승에 올랐다는 말에 아주 기꺼워하며 다음 시합까지 최선을 다하라는 말과 함께 치유에 아주 지극정성을 쏟았다.
“……으, 따끔하네.”
이백의 말에 나는 상처 부위를 툭툭 건드렸다.
“으갸갸갸! 인마! 나 아파 죽어!”
금창약까지 발라 가며 만사를 제치고 오로지 치유에 집중했지만, 이제 고작 반 시진 정도 남은 시간 안에 몸을 회복해 결승에 참가하기에는 다소 힘든 모습이었다.
“이래서 결승에 나갈 수나 있겠어?”
“……무슨 소리야.”
천무린의 말에 얼토당토않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이백이었지만, 사실 그는 전신이 난자된 듯한 극심한 고통과 통증으로 당장이라도 쓰러질 판이었다.
“……무슨 소리인지 자신이 더 잘 알 거고, 스스로의 몸 상태를 알고 포기하는 것도 용기야.”
“뭐래. 아까 전까지만 해도 지면 선배 대접 못 받을 거라고 해 놓고. 초 치지 말지. 죽는 한이 있더라도 결승엔 올라야지.”
그 말에 천무린이 피식 웃으며 고갤 저었다.
“올라가서 뒈지든 쓰러지든 상관없는데, 너무 무식하게 싸워서 하는 말이야.”
“뭐?”
“뭔가 이상하지 않냐.”
천무린이 천천히 다가와 상처 부위 여기저기를 꾹꾹 누르자 이백은 저릿한 감각에 그만 눈이 뒤집힐 정도였다.
온 전신에 입은 상처와, 오호단문도를 막아 내느라 부러진 늑골까지.
어지간한 사람이라면 벌써 혼절을 했어도 이상하지 않았을 정도의 큰 부상이었다.
“……뭐가 이상하단 거야?”
“사일검법을 쓰면서부터 검이 훨씬 강맹하고 쾌속해져서 아주 신났지?”
“그야 뭐…….”
그게 문제인 줄도 모르고.
“갖춰진 육체, 그에 걸맞은 검술, 그리고 검에 대한 이해도까지 탁월해. 아마 이 비무대회를 거치면서 조금 더 성장했을 거야.”
“큼, 뭘 그리 칭찬까지.”
이백이 쑥스러운 듯 고개를 숙이자, 천무린이 헛웃음을 지었다.
“말귀를 못 알아먹네. 고작 거기에서 멈출 셈이야? 매 순간 그 검에만 매몰돼서 동귀어진(同歸於盡)이라도 할 셈이냐고?”
그게 무슨…….
이백이 미간을 좁히며 고갤 들어 천무린을 바라봤다.
“아직도 머리가 안 돌아가나 보네. 진짜 재능이 있는 거 맞나 몰라. 선배라서 뚝배기를 안 깨고 말을 해서 그런가.”
8기 놈들은 이제 뭔 말 하면 어지간해선 다 알아먹던데 말이야.
눈을 부라리자, 이백은 흠칫하면서 입을 열었다.
“사일검법의 특성상, 강맹함에 집중하고 쾌속함에 전신의 잠력을 끌어올려야 해서 어쩔 수 없어. 사일검법이 아니었으면 내가 여기까지도 오르지 못했을 테지.”
“누가 사일검법을 쓰지 말래? 유운검법 따위랑은 당연히 비교도 안 되겠지.”
그 말에 이백이 미간을 좁히며 표정을 굳혔다.
“유운검법도 좋은 검법이다. 특히 보법과 함께 어우러지면…… 어?”
고개를 저으며 천무린의 말에 반박하던 그의 눈동자가 화등잔이 되었다.
보법……?
그리고 자신의 몸에 난 상처 부위 이곳저곳을 살펴보던 이백은 아주 천천히 천무린에게 고갤 돌렸다.
“너, 너어…….”
“다음 시합을 포기할 생각이 없어 보이니 그냥 내버려 두는데, 조만간 좀 맞자.”
한숨을 푹 하고 내쉬던 천무린이 그 자리를 떠났다.
“……검에만 매몰되었다라…….”
여태 너무 많은 것을 놓치고 있었다.
사일검법 하나만 바라보느라.
나무를 보느라 전체 숲을 보지 못하는 어리석은 짓을 저질렀다.
……과연.
심호흡을 몇 번 한 그는 가부좌를 틀었고, 팽완과의 비무를 다시금 되새겼다.
그리고 그와의 비무에서 자신이 무엇을 놓쳤는지, 사일검법만이 전부라고 생각하고 다른 장점들은 제쳐 놓고 임하진 않았는지.
떠오른 수많은 생각들이 차츰차츰 정리되어 갔다.
그렇게 그는 홀로 남겨진 곳에서 점차 무아지경(無我之境)에 빠져들었다.
* * *
“과연, 철권이라는 명성이 허명은 아닌가 봅니다.”
“소림이 내세운 인물이 아니오.”
“천년소림이라는 말이 괜히 있겠소.”
“7기수든, 8기수든 소림의 생도와 후보생이 가장 강력해 보이지 않소? 괜히 역대 가장 많은 우승자가 소림에서 나왔겠소?”
각신의 우승을 점치는 수많은 관중들은 각신의 강철 같은 탄탄한 육체와 얼마나 단련했는지 모를 강인한 주먹을 보며 수없이 감탄했다.
“……심지어 결승에 오면서까지 별다른 부상도 없었지, 아마?”
“더 말을 붙여 뭐 하겠소. 소림이오! 소림!”
“하, 거참. 누가 보면 그쪽이 소림승인 줄 알겠소!”
“말이 그렇다는 게지. 에헴. 아무튼, 내 장담하건대 각신 생도가 무조건 우승이오.”
“어찌 그렇소?”
“각신 생도에 비해 이백 생도가 얼마나 큰 부상을 입었는지 모르시오? 걷는 것조차도 버거워 보이던데 말이오.”
“하긴, 그런 몸을 고작 한 시진 만에 다 치유할 수는 없겠지.”
“암암, 그렇고말고.”
“어어? 저기 보시오!”
시합 시작까지 아직 일각이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먼저 비무장에 오른 각신을 보며 군중들은 다시 감탄을 이어 갔다.
“저게 바로 여유 아니겠소.”
“자신감에서 비롯된 강자만이 가질 수 있는 여유인 게지.”
“허어, 역시 대단하오.”
굳게 다문 입술과, 두 눈을 온전히 다 뜬 것인지 반만 뜬 것인지 구별조차 가지 않는 눈을 한 채 꼿꼿이 서 있는 각신이었다.
“……정말 눈꼴시네.”
“빨리 오라고 재촉이라도 하는 것 같지?”
“자기 강하다고 유세 떠는 거야, 뭐야.”
그런 각신을 보고 감탄을 하는 이들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태강과 명진, 남사익은 어느새 비무장 위에 있는 각신을 보며 조롱 아닌 조롱을 하고 있었다.
“사람을 우습게 봐도 유분수지. 그렇지 않아?”
“막돼먹은 거지. 소림 놈들은 머리통으로 바위 부수는 연습도 한다던데, 그러면서 머리가 살짝 잘못된 거 아냐?”
“하여간 저저, 무식한 새끼들.”
세 사람이 언제부터 이렇게 친했을까.
그 모습에 설화린이 헛웃음을 지으며 옆에 서 있는 천무린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보다 어째 송무 후보생이고, 이백 선배님이고, 죄다 당신이 다가가기만 하면 나타나질 않네요?”
응?
“뭐야, 송무랑 이야기한 거 훔쳐본 거야?”
“……후, 훔쳐보긴요. 그냥 당신이 어디론가 가는 걸 본 것뿐이에요. 그리고 시간 지나서 가 보니까 송무 후보생 혼자 훈련하는 걸 봤을 뿐이고.”
집중하지 않았으면 기척을 알아차리기 쉽지 않았을 텐데 말이야.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설화린을 바라보자, 눈을 마주친 설화린이 발그레 볼을 붉힌 채 고갤 돌렸다.
“너……?”
“뭐, 뭐요!”
두근두근.
혹여 심장 소리가 너무 크게 들릴까 조마조마한 설화린이었다.
그런 설화린에게 한 걸음 성큼 다가온 천무린은,
“남이 무공 훈련 하는 거 훔쳐보고 그러면 안 된다고 내가 말했지?”
눈썹을 역팔자로 꺾어 가며 정색한 표정을 지었다.
……뭐?
이런 미친 놈…….
저도 모르게 주먹에 힘이 들어간 설화린의 상태를 아는지 모르는지 천무린이 혀를 차며 입을 나불거렸다.
“하여간 요즘 애들이 이래요. 어? 나 때는 말이야. 누구 무공 훈련하는 거 훔쳐보면……. 꾸엑!”
옆구리에 틀어박힌 설화린의 주먹에 천무린은 비명조차 제대로 내지르지 못했다.
“……이 미친놈! 이런 놈한테 내가 뭘 기대해!”
뭐라는 거야…….
주먹질을 한 게 누군데.
소리쳐야 할 사람은 나 아냐……?
하지만 너무 아프다.
이렇게 방심하면서 맞은 적은 환생한 이후 처음이었다.
빌어먹을.
언젠간 이 계집애를 제대로 참교육을 시키고 말 것이다.
“흥!”
아니, 왜 네가 고갤 돌리는 건데.
여전히 저릿한 옆구리를 부여잡으며 설화린에게 뭐라도 한마디 하려는데,
“우와아아아! 이백! 이백! 이백!”
“나왔다! 사일검룡! 사일검룡!”
“철권 대 사일검룡이다! 우와아아!”
“너희가 다 해 먹어라!”
봇물 터지듯 쏟아지는 환호 속에서도 명확히 들리는 ‘사일검룡’이라는 별호.
그것은 다름 아닌,
저벅. 저벅.
느릿하게 걸어 올라오는 이백을 향한 것이었다.
사일검룡이라는 별호가 무척이나 마음에 든 듯 이백은 입가에 미소를 걸고 있었다. 사천무관 7기수 중 최고의 검호에게 붙여진 별호였으니.
“……이래서 비무대회에서 좋은 성과를 올리라는 건가.”
“그러게. 어제까지만 해도 별호 따윈 없었는데.”
“심지어 용이라는 별호를 붙여 줬다는 건.”
“떠오르는 후기지수로 인정한 셈이겠지.”
백리무영과 신혁건, 당지운과 백리후는 이백에게 쏟아지는 수많은 찬사를 들으며 입을 떡 벌렸다.
후기지수(後起之秀).
말 그대로 다음 세대를 이끌어 갈 최고의 인재들을 뜻한다.
물론 이미 다음 세대를 이끌어 갈 후기지수들은 2, 3, 4학년의 빼어난 인물들로 지금 한창 중원 무림에서 활동하며 수많은 성과를 올리고 있지만.
“비무대회에서 얻을 수 있는 유일한 특권이자 혜택 아니겠냐.”
“……그만큼 이백 선배가 준 인상이 강렬했다는 거겠지.”
8기 후보생들은 절로 이백에게로 시선을 모았다.
저벅. 저벅. 척.
비무장에 겨우 올라선 이백이었다. 여전히 창백한 인상의 그였다.
“……어째 위태위태한데.”
“상대가 너무 강해 보이기도 하고.”
“과연 이길 수 있을까.”
아무리 치유를 받고 어느 정도 상태를 회복했다고는 하지만, 반대편에 선 각신과는 천지 차이였다. 천년이고 만년이고 제자리를 지키는 금강석과도 같은 기세를 보여 주는 각신과 달리, 이백은 강풍에 나부끼는 버들나무 같지 않은가.
절로 불안감이 엄습했다.
그런 불안감으로 설화린마저도 천무린을 바라보며 아랫입술을 꽉 물었다.
“이길 수 있을까요……?”
그 말에 천무린은,
“이겨 내야지. 못 이기면 나한테 뒈지게 맞을 텐데.”
흐뭇하게 웃었다.
“정말 당신은 미쳤…….”
“저 눈을 봐.”
응?
설화린이 고갤 돌려 천무린이 바라보고 있는 시선을 좇아 이백의 두 눈을 바라봤다.
눈빛이 아주 선명하리만치 빛나고 있었다. 그것도 활활 타오르고 있어 과연 그가 부상을 입은 사람이 맞는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
“저 정도 눈빛이면 그냥 믿고 지켜봐 주는 게 도리가 아닐까.”
승패를 떠나 무인으로서의 마음가짐으로, 그것도 더 나아가기 위해 집념을 불태우는 모습에 설화린 역시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비무장 위.
“……자, 그럼 제1 비무장, 사천무관 이백과 섬서무관의 각신. 최종 결승전을 거행하는 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