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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무신, 무림학관을 제패하다-71화 (69/250)

제71화

제71화

“제법이네.”

역시 사일검법이 제격인 녀석이다. 이백은.

강맹하고도 쾌속한 검인 데다 후예사일과 같은 초식을 써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육체를 적합하게 만들어 놨으니.

그런 녀석이 사일검법이 아닌 다른 무공을 익혀 억지로 검술을 펼쳤으니 그동안 얼마나 갑갑했을지.

“……쯧.”

그런 녀석도 못 알아보고 그냥 찍어 누르려고만 하다니.

단상 위의 진궁이 입을 떡 벌린 채 비무장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후회되겠지.

금지령 따위로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고 오로지 사일검법을 정진하여 익히게 했다면, 지금보다 훨씬 뛰어난 실력을 선보였을 것이다.

7기수는 물론이고, 그 위 기수가 누구라도.

다 씹어 먹었을 정도의 뛰어난 재능이다.

이러니 정파 무림이 퇴보하는 것이다. 재능이 있는 놈을 제대로 발굴하지도, 키우지도 못한다.

제 핏줄이 어떻고, 혈육이 어떻고. 다 부질없는 짓이다.

보라.

당백진 역시 눈빛이 깊어진 것이 이백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이 심상치 않았다.

당백진도 그렇고, 진궁도 그렇고, 심지어는.

“……이미 알고 있었나.”

“뭘요?”

악교운 역시도 이백을 바라보는 시선이 심상치 않았다.

“이백이 저리도 강하다는 것을.”

“척 보면 몰라요?”

그걸 어떻게 알아. 척 봐서 알면, 내가 이러고 있을…….

“후우.”

고개를 저으며 이백을 바라보던 악교운이 나직이 이야길 꺼냈다.

“무관이 잘못했군. 저토록 뛰어난 인재를 알아보지도 못했다니.”

“어쩔 수 없죠. 제 문파에서 걸고넘어지는데. 그리고 본인이 자신의 실력을 악착같이 숨기려 들면 알아낼 수 없는 법이죠.”

그 말에 악교운은 뜨끔한 표정을 지었다.

“왜요. 찔려요?”

“뭐가…… 찔린다는 말이냐?”

“관심이 없었던 거요. 후보생이나 생도가 숨기려고 해도 얼마나 잘 숨겼겠어요? 그 심계가 깊어 봐야 뻔한 깊이지. 관심이 있었으면 진작에 알아차렸을 거라고요.”

내 말에 악교운은 헛기침을 했다.

물론 그가 7기수의 교관은 아니기 때문에 이백을 못 알아본 것은 어쩔 수 없다. 다만.

눈앞에 천무린은 그가 생각해도 터무니없는 재능을 가진 이가 아닌가.

하늘에서 갑자기 뚝 떨어진 사람처럼.

그뿐만 아니라 8기수가 이토록 많이 진출할 줄은.

애써 고갤 돌리는 악교운의 모습에 나는 피식 웃었다.

곤란한 표정도 지을 줄 알고, 아주 재밌는 인간이야.

“……위에서 그랬다고 잘못을 답습하면 되겠습니까. 이 정도 봐 왔으면 무관의 관리 소홀이라고요.”

단호한 내 말에 깨닫는 바가 있는지 악교운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무관에 입관한 이들의 재능을 깨우치게 하는 것은 무관의 교관들이 해야 할 임무이자 업이다.

“……정말 너란 녀석은.”

“말로 때우지 말고 좋은 걸로 줘요. 거, 그, 빛나는 거 있잖아요. 맛있는 것도 사먹을 수 있고, 그, 알죠?”

그 말에 악교운은 흐뭇하게 웃었다.

조금만 방심해도 기어오른다. 흐뭇해지게.

악교운의 흐뭇해진 반응을 본 나는 저도 모르게 한 걸음 물러나며 미소를 지었다.

웃는 낯에 침 못 뱉는다고, 웃는 사람한테 주먹질하는 광인(狂人)은 아닐 거니까.

“……그보다 어딜 갔느냐.”

“누굴 말하는 건가요?”

8기 후보생들 대다수가 비무를 지켜보고 있는 것을 본 악교운은 고개를 갸웃한다.

“송무.”

관심 없을 줄 알았더니, 그건 또 어떻게 알았대.

“뭐야, 제법 관심이 많은데요?”

그 말에 악교운은 어깨를 으쓱였다. 말은 안 해도 송무는 8기 후보생들 중에서 제법 존재감이 있는 녀석이다. 말없는 녀석들에 비해 질문도 많이 하고, 근래에는 실력이 급상승한 후보생들 중 한 명이니까.

“……이래 봬도 8기 총교관이다.”

아아, 그렇습니까.

“뭐지, 그 의심쩍어하는 눈빛은.”

“아……. 들켰어요?”

“쓰읍.”

“툭하면 때리려고. 아주 나쁜 습관이에요. 그거, 알죠?”

내 말에 악교운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 누가 누구에게…….

“녀석이라면 아마 지금쯤 칼질하고 있겠죠.”

“칼질?”

“알아서 때가 되면 나타날 거예요.”

“또 무슨 꿍꿍이를 꾸미고 있는 거냐.”

“꿍꿍이라니요? 보면 놀라실 텐데.”

물론 그 녀석이 껍데기를 깨고 나왔을 때의 이야기겠지만.

그렇게 악교운과 잡담을 나누고 있는 가운데, 이백은 벌써 두 번째 비무에 임하고 있었다.

카앙! 챙챙–. 채채챙!

한 자루의 검과 도가 치열하게 부딪히는 것이 보였다.

하북팽가 특유의 직선적인 도세(刀勢)가 이백의 검세를 몰아붙이고 있었다.

도는 검과 다르게 한쪽만 날이 있어 검보다는 떨어지는 병기라는 취급을 받고 있지만.

나는 고갤 저었다.

하북팽가의 도법은 그런 단점을 모조리 메우고도 남는다.

“제법 잘 받아 내는군! 이것도 한번 받아 보도록!”

청강석의 땅바닥을 차고 오른 팽완은 허공에서 찍어 누르듯이 직선적인 기세를 표출했다.

하북팽가의 절기이자 도법으로는 천하에서 따라올 것이 없다는 오호단문도(五虎斷門刀)는 직선적이고 강인하며 무시무시한 기세로 상대를 제압한다.

웅패군산(雄霸群山)이라는 초식명에 걸맞게 뿜어져 나오는 기세는 당장이라도 호리호리한 이백의 몸을 납작 내리누를 것처럼 짓쳐들어왔다.

후와아아앙!

“……흐읍.”

단순하지만, 오히려 단순해서 피하기가 더욱 어렵다.

이백에게는 가장 상성이 나쁜 인물이다.

“팽완이라 했던가. 꺾고 나면 결승이다.”

“결승이라고 생각하니 막 피가 끓어요?”

“피가 끓다니?”

“결승 가서 우승이라도 하게 되는 날에는 당백진이……. 아니, 무관주님이 우승한 결과로 뭐라도 해 주시겠죠.”

나도 모르게 당백진이란 이름이 튀어나왔다가 쏙 들어갔다.

하지만 내가 당백진의 이름을 거론한 것보다 다른 데 초점이 맞춰진 악교운이 순간 흠칫한다.

결승이라.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던 일이다.

하지만 만약 결승에 진출하고 그게 우승으로 직결된다면?

……불끈.

주먹을 불끈 쥔 악교운은 저도 모르게 창창한 자신의 장밋빛 미래를 상상했다.

“……아니, 피가 끓는 수준이 아니라 아주 좋아 죽는구먼?”

낄낄거리는 내 모습에 악교운이 헛기침을 하며 고갤 돌린다.

“쓸데없는 소리.”

“아유, 그렇게 말해도 표정 관리가 전혀 안 되고 있거든요? 이 양반아.”

내 말에 악교운은 평소에 하지 않던 손사래까지 치며 자리를 벗어났다.

당백진에게 얼마나 시달렸으면 저 말 한마디에도 저리도 좋아하나.

하여간.

당백진을 힐끗 쳐다본다.

……아오, 씨. 또 팔자 좋게 처웃고 있네.

당백진을 보니까, 열이 뻗치면서 스멀스멀 기어오르는 살의 때문에 금방이라도 금제가 발동할 것 같았다.

으으…….

그때.

“우와아아아!”

“또, 또……!”

“와!”

터져 나오는 환호성에 고갤 돌렸더니,

“하악, 하악.”

“……크으윽.”

숨소리가 거칠어진 두 생도가 극명한 모습으로 비무장 위에 서 있었다.

비교적 괜찮은 안색의 팽완에 비해 창백하리만치 시퍼렇게 변한 안색에다 부들부들 떠는 두 손으로 검 끝을 지지대 삼아서 겨우 몸을 버티고 있는 이백이었다.

“……좋은 승부였습니다. 섬서무관의 팽완 생도께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창백한 표정에도 불구하고 많은 것을 배웠다는 이백의 모습에 팽완은 치열하고 격전적인 비무를 펼친 직후임에도 불구하고 미소를 띨 따름이었다.

“제가 더 많이 배울 수 있었소이다…….”

파아앗!

그렇게 말하는 팽완의 가슴팍이 길게 베어지며 선혈이 솟구쳤다.

팽완의 눈동자가 흰자위로 넘어가면서 육중한 몸도 천천히 뒤로 넘어갔다.

쿠웅!

“……제1 비무장, 사천무관 이백 승리!”

그렇게 쓰러진 팽완에게 천천히 다가간 이백은 선혈이 솟구친 부위에 지혈을 하고는 하후성을 바라본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하후 대협.”

“걱정하지 마시고 자신의 몸을 돌보십시오, 이백 생도. 결승전까지 고작 한 시진밖에 남지 않았다는 점을 염두에 두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 말에 이백이 고개를 끄덕이며 팽완을 하후성에게 인계해 주고 나서야 천천히 걸어 내려왔고, 그를 반기는 것은 다름 아닌.

“우와아아아! 이백! 이백! 이백!”

“실력도, 인성도 네가 최고다!”

“사천무관에 저리도 뛰어난 인재가 있다니! 내 다음 시합조차 이백이 이기리라는 생각이 드는구먼!”

이백의 승리를 환호하는 이들로 가득 찼다. 사천무관의 이백이 결승까지 도달한 것은 이제 곧 우승도 점칠 수 있다는 뜻이 아닌가.

여태 단 한 번도 우승한 적 없었던 사천무관에서 이백이 보여 주는 결과물은 보는 관중의 마음을 설레게 할 정도였다.

어릴 적 들은 이야기들 중에 흔한 이야기가 있지 않던가.

약자가 강해져서 강자를 이기는 그런 흔하디흔한 진부한 이야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런 이야기에 환호하게 된다.

이백이 낳은 결과는 그것과 마찬가지였다.

매해마다 연전연패를 기록하던 사천무관의 생도가 첫 우승에 한 발 다가선 결과를 보여 주었다.

그러나.

“하지만 이백 생도의 상태를 보게.”

“응?”

“당장 결승이 한 시진 뒤를 앞두고 있는데, 그때까지 치유가 온전히 되겠는가? 지금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위태위태하구먼.”

“……과연.”

군중이 바라보는 것은 대동소이했다.

팽완을 이긴 그였지만, 팽완의 도격을 막아 내느라 전력을 다한 이백의 모습 또한 성치 않아 보였다.

바들거리는 팔다리는 물론이거니와 몇 번이나 토해 낸 핏물이 무복의 앞섶을 적시고 있었다. 그런 그가 상대해야 할 이는.

“심지어 다음 상대는 섬서무관의 각신일세. 철권(鐵拳)이라 불리는 각신이 아니던가.”

철권(鐵拳) 각신.

그 역시 소림이 낳은 7기수 최고의 생도였다.

“무려 무당의 곡현기, 개방의 탁궁까지 꺾은 각신일세.”

그런 군중들의 걱정 어린 시선과 달리,

“살 만한가 보네.”

“그럴 리가.”

창백한 안색과 달리 입가에는 미소를 머금고 있는 이백이었다.

나는 절뚝이며 내려오는 이백을 바라보며 말했다.

“……죽을 지경이다.”

“그런 것치고는 표정이 꽤나 밝은데?”

“하하, 그렇게 보이나. 뭐, 나쁘지 않아.”

이백은 군중의 환호와 탄성, 그리고 그것에 섞여 있는 우려의 시선을 겸허히 받아들였다.

여태 받았던 손가락질이나 비아냥거림만 가득했던 시선을 스스로의 실력으로 뒤바꾼 이 상황이 그저 기분 좋았고, 기꺼웠다.

그래서.

“……반드시 이길 거다.”

이백의 두 눈은 맹렬하게 불타오르고 있었다.

그 말에.

“내 선배라는 인간이 여기서 지면, 선배 대접 못 받을 줄 알아.”

……으응?

흐뭇하게 웃고 있는 천무린이었고, 왠지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이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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