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0화
제70화
“……뭐 하냐, 너.”
“어, 엇!”
분명 아무 기척도 느끼지 못했는데, 어느새 옆에 나타난 천무린의 모습에 화들짝 놀란 송무는 그만 몸이 딱 굳어 버리고 말았다.
“뭐 하냐고? 피로부터 풀라고 내가 말했을 텐데.”
예선부터 본선까지 쉼 없이 달려왔다.
비록 그리 치열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아직 자기 몸을 제대로 다룰 줄 모르는 녀석이 아닌가.
피로는 제때 풀어 주지 않으면 쌓이기 마련이니까.
“……풀어야 하는데.”
하아.
우물쭈물하는 녀석이지만, 여전히 두 손에서 검을 내려놓을 생각이 없는 듯 보였다.
“이 고집불통 새끼.”
꼴통 기질도 있고 말이지.
“남궁호……. 그놈을 반드시 꺾고 싶어.”
유순하다 못해 우유부단하기 짝이 없던 송무의 표정이 제법 비장했다. 그리고 내가 실력 차가 나서 안 될 거라고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녀석을 꺾고 싶다고 말한다.
「무린, 난 반드시 그놈을 꺾고야 말겠다.」
전생에 자신의 등 뒤를 지키던 어느 누구의 목소리와 겹쳐졌다.
왜 내 주변엔 이런 꼴통 놈들밖에 없는지.
「알고 보면 무린, 네가 제일 꼴통인…….」
어허!
감히! 망령아, 물렀거라!
나는 고개를 한 번 젓고는 송무를 바라봤다.
“내가 아까 한 말, 기억 못 하는 것은 아닐 테고.”
“……알아. 무린이 네가 말한 거면 정말 난 남궁호와 실력 차이가 나는 거겠지.”
“황태 녀석의 복수를 해 주겠다는 쓸데없는 감정으로 놈에게 달려드는 것이면 더욱 무의미하고.”
단호하리만치 나는 말했다.
내 눈을 피해 갈 순 없다.
직접 이 코흘리개를 키웠지만, 각원과 남궁호는 확실히 송무와 실력 차가 크다.
벌써부터 재능을 인정받아 제왕검형을 익혔다는 것은.
불과 몇십 년만 지나도 정파 무림에서 남궁호의 이름이 크게 울려 퍼질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녀석의 눈빛은 죽지 않는다.
피식.
“그리도 이기고 싶냐?”
“……응.”
“그럼 이겨야지.”
내 말에 떨궜던 고개를 들어 올린 송무였다.
“어? 뭐라고?”
“이기게 해 주겠다고.”
“이, 이기게? 정말로?”
아니, 기껏 이기게 해 주겠다니까 왜 내 말 못 믿는 건데.
“……이기겠다며? 막상 말해 주니까 자신 없어 하는 그 표정은 뭘까.”
“아, 아냐! 그럴 리가.”
송무가 손사래까지 치며 말하는 것을 보고 나는 정색했다.
“시간이 얼마 없다. 난 네게 다른 것을 요구하지 않을 거야. 오로지 단 하나.”
내 말에 마른침을 꿀꺽 삼키는 송무였다.
“천하삼십육검법(天下三十六劍法).”
“어?”
천하삼십육검법, 오로지 그거 하나면 된다.
“남궁의 검은 공격적이지. 그것도 매우 공격적인 기질이 다분한 검이야. 그에 반해.”
스르릉.
나는 검을 빼내 천하삼십육검법의 기수식을 취했다.
그러고는 생기 있는 나뭇잎이 가지런히 달린 나무를 걷어찼다.
콰직!
흔들리는 나무에서 수없이 많은 나뭇잎이 살랑살랑 떨어져 내렸다.
“어디서 어떻게 올지 모르는 공격을 막는 것은 쉽지 않지.”
나뭇잎은 바닥으로 떨어져 내리면서 바람을 타다 보니 그 움직임이 일정하지 않았다. 변칙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수많은 나뭇잎에 시선이 따라가는 일조차 벅찰 정도였지만.
“남궁호의 검은 모든 것을 철저하게 부수는 패도적인 검식과 무수하게 휘두르는 검결의 향연이지. 그렇기 때문에.”
사락. 사라락.
눈도 제대로 따라갈 수 없을 만큼 빠르게 움직이는 검결이었지만, 송무에게는 익숙한 검식.
천하삼십육검법의 초식이었다.
“네게 전 방위를 다 막으라고는 하지 않겠다. 단, 네 앞에 오는 공격만 제대로 막아.”
후두두둑.
나뭇잎을 피하기 위해 움직이지도, 그렇다고 점창의 사일검법처럼 검이 강맹하거나 쾌속하지도 않았다.
천무린의 검은 중단세를 취하고 흔들리지 않는 중심을 잡았다.
떨어져 내리는 나뭇잎은 그 속도를 더해 당장이라도 땅에 닿을 것 같았지만.
솨아아아.
사악.
검 끝이 흔들리는가 싶더니, 이내 나뭇잎들은 모조리 반절씩 깔끔하게 잘린 채 땅에 닿았다.
영롱했던 달빛과 어우러진 검면이 움직이는가 싶더니 이내 송무의 귓가로 파고드는 한 마디.
“……과연 할 수 있을까.”
흠칫.
내 음성에 벙쪄 있던 송무가 정신을 번뜩 차렸다.
매일같이 갈고닦던 천하삼십육검법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펼친 검격이 과연 저와 같은 위력을 보일 수 있을까.
천무린이 잘라 낸 나뭇잎은 하나같이 깔끔하게 잘려 나가 있었다. 그것도 아주 정중앙에 딱 맞춰서.
바닥에 떨어져 내린 나뭇잎만 해도 족히 수백 장.
그 모든 나뭇잎이.
모골이 송연해질 정도로 소름 돋는 정확도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암.”
별것도 아닌 것 가지고.
제발 턱 좀 닫아라.
“나는 이만 간다. 알아서 해라.”
스릉.
검을 집어넣은 나는 전각으로 걸어가며 힐끗 뒤를 돌아봤다.
송무는 여전히 충격 받은 얼굴을 한 채 멍하니 서 있을 뿐이었다.
자, 어디 과연.
두 번째 껍데기도 깨고 성장할 수 있을지 지켜볼까.
「……이걸 나보고 하라고?」
투덜거리면서도 몇 번이나 나를 놀라게 했던 전생의 그놈처럼.
* * *
비무대회를 지켜보는 관중의 열기는 날이 갈수록 뜨거워져만 갔다.
최후의 10인. 그것도 7기수의 시합이었다.
“섬서무관에서 알아주는 7기수 우승 후보들은 참 여전하구먼.”
“각신, 곽도하, 곡현기, 구양표……. 하나같이 다 쟁쟁하구먼.”
“과연 섬서일세. 소림, 무당, 화산의 인물들이 즐비하지 않은가.”
“어허, 산동은 또 어떻고! 탁궁, 모용강, 팽완, 이 세 사람이 있지 않은가.”
“개방의 탁궁 말인가? 호오, 젊은 나이에 사결개가 되었다는 그 탁궁?”
“그렇다네. 타구봉법을 기가 막히게 쓰는 그 탁궁 말일세.”
“그것 참 기대되는구먼!”
“사천은? 사천은 누가 있었지?”
“사천은…… 한 명 있지 않던가.”
“이백이라 했던가.”
“그래, 이백. 그자도 갈수록 강한 면모를 보여 주었으니 충분히 기대해 볼 법도 하지.”
그 말에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거리긴 했지만, 그리 호의적인 반응이 이어지진 않았다.
“사천무관은 아무래도 7기수가 아니라 8기수를 기대해야 하지 않겠나. 고작 혼자 올라가서 무엇을 어찌하겠다고.”
“내 생각도 그러하네. 다음 시합의 상대가 섬서무관 화산 출신의 곽도하라고 들었네.”
“허어, 그것 참.”
편견이라는 게 있다.
사천무관의 약진은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8기수에 한해서였다. 심지어 황금 기수라고 떠들던 사천무관의 7기수가 개박살이 났으니 기대감은 한층 더 낮아질 수밖에 없었다.
듣고 싶지 않다고 사람들의 이야기가 안 들리는 건 아니다 보니 이백은 그런 이야기를 고스란히 들어야만 했다.
그러니 마음이 씁쓸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응원에 힘입으면 더 강해지기라도 할까 봐?”
쓰디쓴 미소를 짓고 있는 이백의 옆에 다가와서는 삐딱하게 그를 바라보고 있는 천무린이었다.
“……없는 것보다야 낫겠지.”
“하여간. 이기면 저 인간들이 세상을 준대, 돈을 준대? 다 필요 없어. 원래 인생은 혼자야.”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응원에 힘입어 이긴다고 한들 세상을 얻는 것도 돈을 받는 것도 아니다. 여전히 험난한 세상인 건 변하지 않는다.
“혼자라니. 네 녀석이 이렇게 응원해 주고 있잖아.”
“윽.”
소름 끼치게 오글거렸다.
그런 오글거리는 말을 잘도 하는 이백의 모습에 나는 넌더리가 난다는 표정으로 한 걸음 물러났다.
“됐고. 빨리 올라가기나 해.”
“하하, 오냐. 이기고 돌아올게.”
왠지 마음이 푸근해졌다.
7기수 중에서도 자신을 응원하는 문호와 구태현이 있지만, 왠지 이 녀석은 며칠 보지도 않은 자신을 더욱더 잘 이해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것도 후배면서.
“……제1 비무장, 사천무관 이백! 섬서무관 곽도하!”
호명하자, 성큼성큼 비무장을 들어서는 이백이었다.
쓰디쓴 미소가 아닌, 시원한 웃음을 지은 이백은 눈앞에 있는 곽도하를 바라보며 포권을 취했다.
“사천무관의 이백, 섬서무관의 곽도하 생도에게 비무를 청합니다.”
물끄러미 이백을 바라보던 곽도하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섬서무관의 곽도하가 이백 생도의 비무를 받아들이오.”
그러고는 검을 마주하는 두 사람이었다.
“내 검에는 눈이 없소. 비무라고 방심하지 말기를 바라오.”
상대에게 그리 말해 주는 것은 곽도하의 자신감이었다.
화산에서도 촉망받는 곽도하다.
힐끗.
백리무영과 백리후가 보였다.
화산의 제자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섬서가 아니라 사천을 택한 녀석들.
쯧.
아무리 미운 오리 새끼들이라 한들, 고작 사천을 택하다니. 산동도 아니고.
용의 꼬리가 아니라 뱀의 머리가 되어서라도 사천에서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싶었던 모양이지만, 어림도 없는 일이다.
뱀의 머리는 뱀의 머리일 뿐, 용의 발끝에도 못 미치지 않은가.
그리고 그 격차를 지금 바로 눈앞에서 확실하게 보여 주리라.
곽도하의 검 끝에서 매화꽃이 피어올랐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이백의 눈이 깊어졌다.
……매화향.
매화의 향기와 더불어 한 송이의 매화꽃을 피울 수 있다면 이는 곧 매화검수로서의 이름을 날릴 수 있다고 들었다.
그런데,
이토록 젊은 나이에, 그것도 고작 1학년 생도가 매화 향기를 일으킬뿐더러.
“……아직 멀었소.”
솨라라락.
매화의 꽃잎이 피어났다.
“오오!”
“매화 향기에 취할 것 같구려.”
“매화 꽃잎이 선명해 보이는 것이 역시 섬서요! 아니, 화산을 높이 칭해야 하는가.”
군중의 탄성과 환호에 단상 위의 화산 장문인이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이와 같은 기분을 만끽하기 위해 촉망받는 인재를 무관에 입관시키는 것이 아니던가.
이백의 눈빛이 한층 깊어졌다.
그리고 손에 쥔 검 끝은 비무장을 내리쬐는 햇빛을 향해 있었다.
매화의 향이 어떻고,
매화의 잎이 어떤지.
그것이 뭐가 중요한가.
이백은 늘 갈고닦았다.
그는 점창의 절기인 사일검법에 혼신(渾身)을 갈아 넣었다. 그랬기에 늘 자신 있었다.
사일검법을 익히고 나서는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것이라고.
그 믿음이 실현된 것인지 그는 사일검법을 익히고 나서부터는 7기의 어느 누구에게도 패배하지 않았다.
그러나 사일검법의 금지령이 생기는 바람에 다른 검으로 대체하여야만 했고, 그날 이후로 갈증은 가실 줄을 몰랐다.
하지만.
‘이제는 원 없이 펼쳐 보일 수 있다.’
찌이이잉.
햇빛이 검 끝을 타고 검면을 비췄다.
“후우웁.”
검을 쥔 이백은 흡사 궁사가 궁술을 펼치듯이 검을 팽팽히 뒤로 당겼다.
“흥! 검을 던지기라도 할 셈인가 보지!”
곽도하는 코웃음을 치며 화산이 자랑하는 칠절매화검법(七絶梅花劍法)을 펼쳤다.
매화도식(梅花刀植), 곽도하가 자랑하는 칠절매화검의 초식이었다. 단숨에 매화 꽃송이들이 휘날리며 이백을 집어삼킬 듯 휘몰아쳤다.
“끝이……!”
파아앙!
휘날리던 매화의 소용돌이가 꿰뚫리면서 곽도하가 펼치고 있던 검이 그대로 공기 터지는 소리와 함께 튕겨 나갔다.
……어?
마치 강궁으로 쏟아 낸 화살촉 하나가 모든 것을 꿰뚫은 듯, 매화의 소용돌이는 점차 힘을 잃고 사방으로 흩날렸다.
“이게 무슨…….”
벙찐 곽도하가 입을 벙긋거렸다.
“……후예사일(后羿射日)이라고 하는 초식입니다. 사일검법이 담고 있는 초식이지요. 좋은 비무였습니다. 곽도하 생도.”
가벼이 포권을 취하는 이백이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