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6화
제66화
“우리 그냥 도망가는 게 어떤가?”
“도망……? 어디로 도망가야 그놈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는데, 공가야?”
“그리고 나중에 잡히면 우린 어떻게 되는데?”
“그야 나도 모르…….”
공야찬과 조수강은 눈을 질끈 감았다. 눈앞에 수많은 금전 다발과 돈주머니가 즐비하게 놓여 있었다.
“이 돈만 있으면 평생 떵떵거리며 살 수 있을 텐데.”
“떵떵거리는 게 아니라, 삼대가 먹고살 수도 있지 않을까 싶네만.”
“……그런데, 우리가 고생해서 번 이 돈이 왜 우리 것이 아니란 말인가.”
이런 우라X.
그들의 입에서 욕지거리가 안 나오려야 안 나올 수가 없었다.
“……곧 8기 후보생들의 비무가 시작된다지?”
“사천무관의 후보생들에게 모두 걸라고 했네.”
하아.
사천무관.
황금 기수라고 불리는 7기수도 고작 1명만 최후의 10인으로 선발됐다. 근데 뭐?
검증도 안 된 사천무관 8기 후보생들에게 이 돈 전부를 걸라니. 결국 돈을 그냥 다 내버리라는 말과 무엇이 다르랴.
“……조금만 견디세. 비무대회가 끝나면 어차피 그 야차 놈도 돌아가겠지. 제깟 놈이 어쩔 텐가.”
으음.
“그것도 맞는 말일세.”
그래, 조금만 견디자. 조금만.
* * *
“제1 비무장! 사천무관 천무린! 섬서무관 종리삭!”
하후성의 시원시원한 음성이 경기 시작을 알렸다.
“무린아, 너 부른다.”
“첫 시작이 저놈이라니.”
“어떡하지. 종리삭이라고? 불쌍해서.”
“……지금이라도 중단시킬까요?”
사뭇 진지한 설화린의 반응에 두 눈이 밤탱이가 된 이백이 의아한 표정으로 비무장 위를 바라다봤다.
“무슨 말인지 도통 알 수가 없는데.”
“……보면 알게 될 거예요.”
“무당파라는데, 그래도 꽤 버티겠지?”
“무당파건 뭐건 뭐가 그리 중요할까.”
이백은 후보생들의 반응이 얼토당토않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그때 하후성의 목소리가 장내에 다시 한번 울려 퍼졌다.
“비무 시작!”
“……섬서무관의 종리삭이라 하오. 천무린 후보생에게 비무를 청하오.”
예를 갖춰 종리삭이 가벼이 포권을 취한 뒤, 천천히 검집에 손을 가져다 대려는데.
응?
웬 그림자가…….
쾅!
“끄아아악!”
종리삭이 검집에 손을 가져가는 순간, 그의 눈앞이 순식간에 캄캄해졌다.
“비무 시작했어. 전장이었으면 넌 이미 뒈진 거나 다름없어.”
비무장을 넘어서 멀리까지 날아간 종리삭은 몇 바퀴나 굴러 벽에 부딪힌 뒤에야 겨우 멈출 수 있었다.
“아오, 몸풀기도 안 됐네.”
“어…….”
“아아…….”
후보생들의 탄식.
그러나 8기의 시작은 분위기가 사뭇 다르게 흘러갔다.
“제1 비무장, 사천무관 천무린 승리!”
“……천무린?”
“어디선가 많이 들어 본 이름인 것 같은데.”
“아! 천무린! 설마 산동무관의 황보권을 단 한 수에 제압했다는?”
“의와 협을 아는 바로 그!”
“와…….”
관중은 크게 술렁였고, 천무린의 요모조모를 뜯어보며 감탄에 감탄을 이었다.
“무공도 무공인데, 정의와 협의를 아는 인물.”
“……그보다 헌앙하구먼! 아니, 수려하다고 해야 하나!”
사람들은 영웅을 좋아한다. 이른바 영웅주의.
태곳적부터 지금까지 영웅의 이야기는 사람들의 입에 수없이 오르내렸고, 영웅의 활약상은 보는 이의 가슴을 뛰게 만들었다.
괜히 신화와 전설 속 영웅들을 현재까지도 목 놓아 외치겠는가.
정마대전 이후, 활약을 벌이는 걸출한 인물들은 많았지만 이토록 젊은 신예의 등장은 아주 오래간만이었다.
그런 관중의 관심조차 귀찮다는 듯 천무린은 무심한 얼굴로 비무장을 벗어났다.
이를 지켜본 이백은 그저 황당하다는 눈빛으로 천무린과 넘어간 종리삭을 바라봤고, 후보생들은 혀를 차며 고개를 저을 따름이었다.
“……얘들아, 너희가 말한 게 바로 저런 광경을 뜻하는 거였구나.”
멍한 눈으로 응시하던 이백이 후보생들에게로 고개를 돌리자, 후보생들의 표정이 뻣뻣하게 굳어 있었다.
“제2 비무장! 사천무관 송무! 산동무관 남궁갈!”
흠칫!
화들짝 놀란 송무가 천천히 걸어 내려오는 천무린에게 시선을 주자,
속닥속닥.
그 말에 송무는 질린 얼굴로 비무장을 뛰어 올라갔다.
걸어 내려온 천무린에게 이백이 다가와 수고했다며 말하면서 호기심을 내보였다.
“방금 뭐라고 말해 줬기에 송무가 저런 반응을 보이는 거야?”
“쥐어 패고 와. 안 그럼 네가 맞는 거야. 몽둥이찜질 알지?”
어……. 그래.
긴장하고 있는 사람에게 퍽이나 어울리는 조언이었다.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던 이백이 뭐라고 한마디 더 하려는 순간이었다.
“이백 선배! 시합 시작해요!”
“오!”
이백이 다른 후보생들과 함께 몸을 돌려 송무의 비무를 견식하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송무야! 침착하게 천천히! 상대를 알아 가면서……!”
콰앙!
으응?
아낌없이 조언을 하려는 이백의 응원이 무색해질 만큼 큰 소리에 묻혀 버렸다.
그리고.
송무 역시 벙찐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왜 네가 억울하다는 표정 짓고 있는 건데!
이백이 떨떠름하게 송무를 바라보고 있는데, 황태와 설화린이 나서서 송무에게 시선을 줬다.
“왜 그래! 왜 멍하니 있어? 다친 거야?”
“……상대방은요? 상대방은 어딜 간 거예요?”
“얘, 얘들아, 그게 말이야…….”
두 사람은 혹여 송무가 다친 것인지 궁금하여 황급히 그의 반응을 살폈으나,
“나는 침착하게 하려고 했거든? 근데 검이 너무 느리게 보이길래…… 빈 곳에다가 검을 갖다 박았을 뿐인데…….”
으응?
저게 지금 대체 뭔 말을 하고 있는 거람.
하지만 그것이 곧 시작이었다.
송무에 이어서,
“제2 비무장! 사천무관 태강 승리!”
“제3 비무장! 사천무관 설화린 승리!”
…….
조기 진급을 하였던 신혁건과 백리무영, 당지운은 물론이고.
백리후와 진무양, 명진, 낭소소의 절치부심이 통했는지 단 한 명도 나가떨어지지 않았다.
거기다 황태까지 올라서며 사천무관의 8기 후보생들은 탈락자보다 승리자가 훨씬 많았다.
55명 중 탈락자는 고작.
“……15명?”
“아무리 예선이라지만 40명이나 올라갔다고? 우리가?”
선별하지 않고 전체 참여에 초점을 둔 결과는 곧 사천무관을 돋보이는 선물로 찾아왔다.
“아니, 어…….”
영단을 먹은 것도 아니고, 최상승의 절기를 익힌 것도 아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그래, 훈련. 훈련이 조금 달라졌다. 아니, 조금이 아니라 많이 달라졌다.
송무가 고개를 돌려 천무린을 바라봤고, 천무린도 고갤 돌려 마주 본다.
“……뭘 봐. 사람 얼굴 처음 봐?”
……이 결과가 아무렇지 않나 보다.
“아, 아냐.”
“아니긴 뭐가 아니야. 아오, 열심히 가르쳐 놨더니 15명이나 나가떨어지고 염X이야. 아주 X랄들을 해라. X랄들을.”
욕지거리를 살벌하게 내뱉은 천무린은 탈락자들을 쭉 바라본다.
“야야, 너희들은 돌아가서 보자.”
……죽었다.
탈락자들의 심정이 애처로웠지만 다른 후보생들은 애써 자기가 아님을 다행이라고 여기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괜찮아, 너무 슬퍼하지 마. 몇 명 더 떨어질 거야.”
저 개XX가.
* * *
“……제법 한 수를 숨겨 두셨구려. 당 관주.”
짙은 눈썹에 부리부리한 눈매가 인상적인 창천검존(蒼天劍尊) 남궁도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사천무관주인 당백진을 바라봤다.
“한 수라니요. 가당치 않소. 그저 즐겁지 않소? 우리도 저럴 때가 있었는데 말이오.”
남궁도의 뼈 있는 말에도 당백진은 그저 미소를 띤 채, 화제를 돌릴 뿐이었다. 굳이 입씨름을 하여 무엇하겠는가.
사천무관의 강세에 그저 즐거운 것을.
그가 비무대회에서 이토록 흥이 난 적이 있었던가. 말로만 삼대 무관 비무대회였지, 실제로 섬서와 산동의 각축전에 끼어 있는 들러리나 다름없었다.
괄괄한 남궁도의 목소리를 가볍게 받아 낸 뒤에 웃는 낯을 하고 있는 두 사람이 말을 걸어왔다.
“……아미타불, 당 시주께 찾아온 복을 축하드리외다.”
자애로운 미소와 처진 눈이 인상적인 소림승이 합장을 하며 불호를 외웠다.
소림의 칠십이종 무공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며, 주먹을 쓰는 일에서만큼은 중원 무림에 감히 따라올 자가 없다고 일컬어지는 자, 권왕(拳王) 혜공대사였다.
“무량수불……. 놀랍기 그지없습니다.”
혜공처럼 유순한 인상은 아니었지만 도기(道氣)가 감도는 선풍도골(仙風道骨)의 전형적인 모습을 한 이가 도호를 외웠다.
검 한 자루로 왕(王)이라는 별호를 받을 수 있는 자, 무당의 전대 장문인이자 현재는 섬서무관의 공동 무관주 직위에 있는 청강진인이었다.
비교적 호의적인 두 사람의 말에 당백진이 사람 좋은 미소를 머금었다.
“과찬이십니다. 이제 막 예선을 통과했을 뿐이니 조금 더 지켜봐야겠지요.”
물론 듣기 좋은 말, 호의적인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인사치레일 뿐.
당백진의 눈가에 스친 섬서무관주는 누구보다도 무서운 인물들이었다. 남궁도처럼 불편한 기색을 대놓고 드러내지 않을 뿐이지.
지난 8년간, 섬서무관이 배출해 낸 걸출한 인재는 아주 많았고, 그 중심에는 항상 소림과 무당이 있었다.
그런 그들이 가진 무수한 혜택과 욱일승천(旭日昇天)하는 문파의 기세를 감히 위협하는 사천무관에게 축하 인사라니.
대라신선이 와도 그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일 터.
“정파 무림의 대들보가 이리도 많이 보이니 이제 앞으로 걱정은 내려놔도 될 듯싶습니다.”
“하하하, 그렇다고 해도 아직 섬서와 산동의 숨겨진 저력을 다 내보이지도 않았으니, 당 관주님께서는 계속 긴장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혜공과 청강의 말에 당백진이 속으로 혀를 찼다.
“청강 관주께서 말 한번 잘했구려. 당 관주, 보시오. 이번에 8기 아이들 중에 산동을 빛낼 이들이 제법 나올 것이오.”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말이었다.
“그렇소이까. 알겠소이다. 내 한번 지켜보리다.”
당백진의 시선에 들어온 제1 비무장.
그곳에는 낯익은 사천무관의 후보생이 올라왔다.
입이 무겁다 못해 말을 원체 하지 않는 악교운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자주 이야기를 꺼내던 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왠지 기분이 나쁘게 지난 과거에 만났던 어느 누구와 참 많이 닮았다. 인상이.
그리고 우연이겠지만 이름조차 동명이인이라는 점이 내심 껄끄러웠지만.
“제1 비무장, 사천무관의 천무린!”
당백진은 묘하게 끌리는 천무린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그리고 산동무관의 팽한월!”
하후성의 목소리에 더욱 시선이 집중되었다.
그러다 팽한월이라는 후보생에게 시선이 닿은 당백진이었다.
하북팽가의 일원이면서 남궁도가 말한 것처럼 다른 후보생들과는 다르게 이미 무공이 갈무리된 느낌이었다.
“비무 시작!”
하북팽가가 자랑하는 거대한 도를 어깨에 걸친 팽한월은 자신만만한 미소와 함께 단단한 청강석의 땅바닥을 박차려는데……!
쾅!
“……어?”
“휴.”
사천무관의 요행처럼 여겨지던 일격 승부는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크흠.”
왠지 남궁도는 목이 껄끄러워 헛기침을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