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5화
제65화
예선전이 끝나고 본선에 접어들면서 비무대회는 더욱 열기를 더해 갔다.
삼대 무관의 최약체라고 평가받던 사천무관이 초반에 약진을 펼치는가 싶었으나.
“제1 비무장! 섬서무관 곡현기 승!”
“제2 비무장! 산동무관 탁궁 승!”
“제3 비무장! 섬서무관 구양표 승!”
…….
초반의 약진이 무색하리만치 연거푸 패배를 거두고야 말았다.
예선전을 통과한 총 40명 중 사천무관 소속은 고작 4명밖에 되지 않았다.
“……음.”
송무의 침음에 따라 8기 후보생들이 머리를 긁적였다.
황금 기수라며.
7기 황금 기수라며!
“황금 기수 좋아하네. 누가 그런 별호를 갖다 붙였어? 황태가 삼호(三虎)라고 별호를 달았던 것보다 더 수치스러운데. 어디 가서 사천무관이라고 말하지 말자.”
천무린의 말에 황태가 발끈하며 달려들었다.
“그 말이 지금 여기서 왜 나와! 으으!”
“아니, 말이 그렇다고. 왜 발끈해. 찔리냐?”
“으으.”
아마 평생 황태를 따라다닐 별호 중 하나가 되지 않을까.
“아까 그와 같은 사건 사고가 있어도 점창에서 2명이나 올라왔는걸?”
한창 드잡이를 하고 있는데, 송무는 남은 4명을 바라봤다.
“이백 선배랑 진량 선배가 올라갔네.”
“명문은 명문이라는 이야기겠지.”
“……그게 다 뭔 소용이냐? 이제 겨우 본선 올라갔는데.”
하긴.
그도 맞는 말이다.
섬서무관만 해도 본선에 진출한 인원이 스무 명이 넘었고, 산동 역시 십여 명이 넘어갔다.
“야야, 저기 좀 봐. 무관주님 좀 화난 거 같지?”
“잘 안 보이는데?”
“아냐, 잘 봐 봐. 약간 의자 모서리가 부서진 거 같은데.”
“……에이! 그럴 리가 있겠냐.”
그 이야기를 듣고 있는 악교운은 목울대를 겨우 넘겼다. 의자 모서리 부분이 아주 가루가 되어 흩어지고 있는 것이 눈에 보였기 때문이다.
“근데 7기 선배들 우승 못 하면 어떻게 되는 거야?”
송무의 해맑은 물음에 천무린은 월병 하나를 입에서 우물거리며 뭘 그런 것 묻느냐는 어조로 대답했다.
“어떻게 되긴. 어? 그냥 사람대접 못 받는 거지. 인간 대우를 하지 마.”
“……그 정도라고?”
“지금 저 인간 열 받은 거 보면 충분히 그럴 거 같은데?”
“무관주님한테 저 인간이라니…….”
“뭐, 어때? 안 보이고 안 들리는 곳에서는 나라님 욕도 한다는데.”
아니, 사실 들으라고 하는 말이다.
천무린은 아직도 당백진을 보면 피가 거꾸로 솟았으니까.
“우리도 그렇게 되는 걸까……?”
송무의 걱정에 태강이 걱정하지 말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무슨 소리야, 송무야.”
“응?”
“우리가 다른 걸 걱정할 처지냐.”
“그게 무슨 뜻이야?”
고개를 갸웃하던 송무는 태강이 가리킨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옮기자,
흐뭇.
“우리의 걱정은 저거야. 저거.”
천무린이 흐뭇하게 송무를 비롯한 후보생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잘 알고 있네. 우승 못 하면 사람 취급은 고사하고 사람으로 살아갈 생각일랑 하지 말자. 하하.”
송무와 태강이 서로를 바라보며 빙긋 웃었다.
그래, 우리가 더 이상 무얼 걱정하랴.
“제1 비무장! 사천무관 이백! 섬서무관 우각!”
온몸에 붕대를 감은 이백의 몸은 본선에 얼마나 치열하게 올라갔는지를 보여 주었다.
“이백 선배 차례인데.”
“뭐 예쁘다고 시합 열심히 봐 주냐?”
퉁명스러운 신혁건의 말에 송무가 헤헤 웃으며 대답했다.
“모르겠어. 근데 저 선배는 매 순간 최선을 다하는 것 같아서 보기 좋아.”
신혁건은 고갤 돌려 이백이 중단세를 취하고 있는 모습을 봤다. 아직도 이백을 생각하면 마음속 앙금이 풀리지 않았다.
그런데.
비무대회에 임하는 이백의 모습에서는 평소에 자신을 괴롭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매 순간이 진지했고 아주 진중했다.
“왜 갑자기 사람이 달라진 건지.”
조용히 읊조리고 있는 와중에,
“시작한다!”
“엇!”
척.
검을 쥔 이백은 숨을 천천히 내쉬면서 지금껏 보인 적 없던 자세를 취했다.
“저건 이백 선배가 평소에 펼치던 검법이 아닌 것 같은데?”
“음……. 저건 진량 선배가 펼치던 검식과 비슷한 거 같아.”
“그럼 저게 바로 사일검법?”
여태 금지됐던 사일검법의 기수식을 취한 이백은,
“비무 시작!”
쾅!
“……어?”
“뭐, 뭐야.”
모두가 멍한 눈으로 제1 비무장을 바라다봤다. 갈 곳 잃은 눈동자가 제1 비무장을 이리저리 훑었다.
“이야, 간만인데.”
오직 천무린만이 짧은 감탄사를 내뱉고 있을 따름이었다.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던 이백이 비로소 그 옷을 벗어버리고 진짜 본모습을 되찾았다. 처져 있던 어깨를 늠름하게 편 채 이쪽을 바라다봤다.
“……제1 비무장! 사천무관의 이백! 승리!”
사일(射日). 즉 ‘해를 쏘다’란 뜻을 품고 있는 점창의 검은,
육안으로는 그 움직임을 좇기 힘들 정도의 강맹한 쾌속함을 담고 있다. 붕대로 감고 있지만, 알알이 차 있는 응축된 근력의 힘에 더해진 사일검법의 정수.
“꽤 높이 올라가겠어.”
“저게 사일검법이야? 진량 선배랑은 좀 다른데?”
“원래 같은 검법이라도 쓰는 사람에 따라 다르지.”
“달라도 너무 달라서 하는 말이야.”
송무의 말에 진량에게 시선을 주는 천무린이었다.
“재능의 수준, 노력의 여하, 검에 대한 이해. 그리고 어떻게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느냐. 이 모든 것이 같은 검도 다르게, 훨씬 강대한 힘을 펼칠 수가 있게 만드는 법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진량은.
“오래 못 가겠네.”
천무린의 예상대로 다음 날, 본선 진출을 한 사천무관 7기의 4명 중 오로지 한 명만 남았다.
진량은 이백과 알 듯 모를 듯한 경쟁심을 가지고 본선에 임한 듯했지만, 곧 입증이 되었다. 진량보다 이백이 더 뛰어남을.
이를 갈며 이백을 한껏 노려본 진량이었지만, 단상 위에 앉아 있던 진궁의 눈치를 한 번 보고는 아무 말 없이 비무장을 벗어났다.
“와……. 여태 저런 실력을 숨기고 있었어?”
“진짜 강하다. 다른 이들이 상대가 안 되는데?”
“상대방이 맥을 못 추는데?”
8기 후보생들은 순수하게 감탄하며 이백을 바라봤다.
그런 그들의 감탄처럼 관중 역시 이백에게 열렬한 환호를 보내고 있었다.
“이배액! 이백! 이백! 최고다!”
“이거, 이거! 사천무관에서 일 한번 내겠는데!”
“눈으로 좇기도 힘들 정도야. 벌써 몇 번째 일격에 무너뜨린 겐가!”
비무 시작과 동시에 전심전력을 다해 상대방을 깨부순 이백이었다.
그런 그의 모습에 감탄하는 이들은 또 있었다.
“……저 정도란 말인가.”
점창의 대리인이자 장로인 진궁 역시 속으로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비록 자신의 아들이 본선에서 떨어져 안타까웠지만, 이미 진량에게 오만 정이 떨어진 그가 아닌가.
거기다 자신이 사일검법에 대한 금지령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해 원한을 품고 있는 것이 아니라 되레 점창의 검으로 점창을 널리 알리고 있었다.
‘점창의 검에 대한 이해도가 남다르다. 이건 마치 사일검법을 위해 태어난 검수(劍手) 같지 않은가.’
인정하기 싫어도 이백의 재능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젠 진궁도 호의적인 눈으로 이백을 바라보고 있는데,
“야야, 무관주님 처음으로 웃기 시작하셨는데?”
“최후의 10인 안에 압도적인 실력으로 들었으니까.”
“아무리 그래도 섬서무관은 총 6명이 진출했고, 산동무관은 3명이 진출했는데?”
“두고 보면 알겠지.”
비무장에 선 이백을 바라보는 관중의 눈빛에는 그가 언제 떨어질지에 대한 호기심과, 어디까지 올라갈지에 대한 기대감이 동시에 어려 있었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예선과 본선을 거쳐, 드디어 최후의 10인이 선발되었습니다. 3일간의 고행을 거친 이들에겐 잠깐의 휴식을 주어집니다.”
천성검협 하후성의 육합전성이 장내에 크게 울려 퍼졌다.
“휴식기 동안 8기 후보생들의 예선전이 시작될 예정입니다. 대진표는 알려 드린 대로 삼대 무관주님과 각 관계자들이 공정하게 구성하였으니 일체 불평불만은 받지 않겠습니다. 그럼, 내일 뵙도록 하지요.”
어느새 뉘엿뉘엿 저물어 가는 해를 바라보며 하후성은 마무리 인사말을 남겼다.
“……후, 내일부터 시작인가.”
송무의 말에 다른 8기 후보생들은 그동안 잊고 있었던 긴장감이 다시 감돌며 어깨가 딱딱하게 굳어졌다.
내일 저 비무장 위에 올라가서 비무를 한다고 생각하니,
뻣뻣.
다리에 힘이 절로 들어가고, 양 손아귀가 꽉 쥐어진다.
“뭘 벌써부터 긴장들 하고 난리야.”
뻣뻣하게 굳은 자세와 잔뜩 긴장한 얼굴을 한 8기 후보생들을 한심하게 바라보는 천무린.
“이런 미친, 저렇게 큰 대회면 긴장하는 게 당연한 거야!”
“으휴, 저 괴물이랑 말해 뭐하냐! 내 입만 아프지.”
“됐다, 됐어!”
후보생들이 천무린에게 한껏 손가락질을 하고 있는 와중에 반가운 인물이 다가왔다.
“……다들 내일부터 시작이네?”
이백이었다.
“이백 선배?”
송무를 비롯해 먼저 낙양에서 숙소를 구한 선발대 일행은 비교적 이백에게 호의적이었다. 신혁건을 제외하고는.
그와 그 어떤 갈등도 없었으니까.
“정말 멋있었어요!”
“사일검법이 왜 일절이라고 평가받는지 알 것 같았습니다.”
송무와 황태가 이백을 반겼다.
그런 두 사람의 반응에 기꺼워하던 이백이 옆에 있던 신혁건과, 자신을 경계하듯 바라보는 8기 후보생들에게 시선을 번갈아 주었다.
“……먼저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싶었어.”
이백의 표정은 최후의 10인에 들었다는 결과가 그리 중요하지 않은 듯 보였다.
“흥.”
신혁건이 마치 들리라는 듯 코웃음까지 쳤으나.
“그 어떤 변명도, 핑계도 말하지 않을게. 욕을 먹어도 감수할게.”
반성을 하는 그의 모습에 천무린이 씨익 웃으며 장난스레 말한다.
“……이제 와서? 괴롭힐 거 다 괴롭혀 놓고 사과만 하면 끝인가.”
그 말에 이백이 당황스러운 눈빛으로 어쩔 줄 몰라 했다.
사과를 하긴 했으나, 무엇을 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
“……대체 어떻게 해야 너희의 마음이 풀릴지 계속해서 고민해 볼게. 지금 당장 쌓인 응어리를 풀라고 부탁하진 않을 테니.”
사실 이백이 후보생들을 괴롭힌 것은 그리 길진 않았다. 그러니 당연히 속사정을 몰랐던 후보생들의 입장에서는 이백의 진심 어린 사과에 흔들릴 수 밖에 없었다.
다만, 신혁건과 당지운, 백리무영만은 달랐다. 고작 함께 한 시간이 칠주야에 불과했던 후보생들과 달리 셋은 치가 떨릴만큼 당해왔으니까.
빠득 이를 갈던 세 사람을 지그시 바라보던 천무린이 히죽 웃더니.
“뭐긴 뭐야. 선배.”
“응?”
“뒈지게 맞으면 풀리는 거지!”
천무린이 이백의 위로 뛰어올랐고, 덩달아 신혁건과 응어리가 가장 크게 진 백리무영, 당지운까지 달려들었다.
쿠당탕탕!
“으아아아!”
“죽여! 죽여!”
“아, 안 돼. 죽이진 마! 반병신만 만들어!”
……차라리 반병신보단 죽이는 게 나아, 얘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