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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무신, 무림학관을 제패하다-63화 (61/250)

제63화

제63화

“……하, 진짜 X발. 이 새끼가 돌아 버린 건가.”

진량은 이를 바득바득 갈며 한층 살벌한 기세로 이백에게 한 걸음 다가서려는데,

“진량! 사천무관의 진량! 어디 갔습니까! 대체 사천무관 생도들은 왜 죄다 한 번에 부르면……!”

그를 찾는 음성이 들려왔다.

바득.

“다녀와서 보자. 이 새끼들. 다 뒈질 줄 알아. 아랫놈 앞이라고 꼴에 잘 보이고 싶은가 본데, 뒈질 각오하라고.”

한 차례 이를 갈아붙인 진량은 콧김을 내뿜으며 비무장으로 향했다.

“……후우, 괜찮냐.”

이백이 부은 뺨을 쓰다듬으며 고갤 돌렸다.

“언제는 8기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더니 갑자기 내게 왜 이러는 거요?”

내 말에 이백이 한숨을 쉬더니 어깨를 으쓱였다.

“……저놈한테 찍히면 너희도 답도 없는 걸 아니까. 어차피 나야 진작에 찍힌 지 오래고.”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하는 이백은 부상 때문인지 무거운 몸을 이끌고 걸음을 옮겼다.

꽤나 멋있는 척하는 게……. 쯔쯧, 용쓴다. 용써.

기가 찼지만, 그 모습이 나빠 보이진 않았다.

굳이 악역을 자처하며 진량이 8기를 괴롭히기 전에 먼저 자신이 난리를 친 모습이 꽤나 어설펐다는 것을 본인은 모르겠지만.

나는 엉거주춤 걸어가는 이백을 부축하며 말했다.

“……궁금한 게 있는데.”

“있는데? 반말이냐. 자식아.”

그럼에도 기분 나빠하지 않는 이백은 시원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내 부축을 자연스럽게 받았다.

“말해 봐. 뭔데?”

“아니, 저 인간보다 강하면서 왜 약한 척하는 거지? 실력은 왜 또 숨기고 있고?”

“……뭔 소리야? 진량에 대해서 잘 모르는 모양인데, 7기수 중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녀석이야.”

시치미를 뚝 떼며 말하는 이백의 말에 나는 부축을 하고 있는 반대편 손을 번개처럼 내뻗었다.

후웅!

휙!

“거 봐. 피할 수 있었는데, 안 피하고 있었잖아.”

내가 뻗은 가벼운 손길에 이백은 정확히 고개를 틀면서 피해 버렸다. 진량이 뻗는 손길보다도 더욱 매서웠음에도 불구하고.

“……그건.”

몇 년을 숨겨 왔는데, 일각도 채 보지 않은 천무린에게 탄로 난 사실에 심히 당황스러움을 느끼는 이백이었다.

그가 당황스러움을 느끼든 말든 상관없었다. 나는 그저 내가 궁금했던 질문을 쏟아 낼 뿐이었다.

“몸에 맞지도 않는 유운검법 따위나 익히고 있고.”

“유운검법 따위라니! 엄연히 점창에서 제일가는……!”

“점창파는 무겁고, 쾌속하고, 강맹해. 유운검법은 점창과 맞지 않는 검법이지. 점창에 속한 여제자들한테나 맞게 창안된 것이 유운검법인 줄 모르진 않을 텐데?”

내 말에 이백은 말문이 턱 하고 막혔다.

“너, 너 대체…… 정체가!”

“점창에서 쓸 만한 검은 사일검법(射日劍法). 나머진 죄다 쓰레기야.”

점창파는 구파일방에 속하는 명문 문파 중 하나로, 사천무관 내에서도 공동파와 청성파, 아미파보다도 뛰어나다고 알려진 문파다.

그런 문파에 속해 있는 다른 무공들을 쓰레기라고 표현하다니!

그 말에 이백이 절대 그렇지 않다고 소리치려는 찰나, 그의 말머리를 끊어 먹으며, 나는 말을 이었다.

“몸은 사일검법에 맞게 키워 놨으면서 유운검법을 쓰는 너. 그리고…… 저놈도 점창, 네 양옆에 있던 놈들도 점창이고. 이게 다 무슨 개 같은 상황인 건데.”

“…….”

“나는 너희들 싸움에 관여할 생각 따윈 없어. 근데 말이야.”

나는 이백의 눈을 보면서 미간을 좁혔다.

“거슬리게 하는 건 질색이야. 나는 이미 녀석들을 데리고 다니는 것만으로도 삭신이 쑤셔.”

아직도 곡료에 취했던 설화린과 일행을 떠올리면 부아가 치밀어 오를 정도였다.

무신? 천마? 천마신교의 일만 교인을 이끌고 검은 물결을 주도했던…… 그땐 일단 내가 제일 강했으니까 가능했던 일이고!

내 기세를 읽은 것인지 이백 역시 우물쭈물하다 말고 고개를 떨궜다.

“미안하다. 8기에겐 진심으로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어.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리고 나면 언제든 사과할 생각이었어.”

“제자리고 나발이고.”

“네가 말한 대로 진량과 나, 문호, 구태현은 모두 점창의 제자야.”

이백, 진량, 문호, 구태현.

점창이 낳은 수많은 삼대 제자들 중 가장 뛰어나다고 각광받는 4인.

점창파가 자랑하는 사일검법을 익힐 권리는 아무에게나 주어지진 않았지만, 점창의 장문인은 이 4인에게 사천무관에서도 좋은 성과를 보일 수 있도록 사일검법을 전수했다.

그렇게나 점창의 기대를 받고 들어온 사천무관에서 4인은 황금 기수라고 불리는 7기수들 중에서도 뛰어난 활약을 보였고, 좋은 평가를 얻었다.

“그런데, 어그러지기 시작한 건.”

점창파 내부에서의 분열이 그 시작이었다. 장문인의 힘이 쪼개지면서 생겨난 공백을 차지한 것은.

“진량의 아버지이자 점창의 진궁 장로님이 그 공백을 메웠지.”

에휴,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날 리 없지.

“그 뒤에는 뻔한 이야기이겠군. 아버지를 등에 업은 놈이 날뛰기 시작하면서 옆에 있던 너희에게도 불똥이 튄 거겠지.”

“……응.”

“그리고 아마 놈은 너를 평소부터 질투와 시기를 했을 거고.”

그 말에 이백의 눈이 화등잔이 되어 나를 바라봤다.

“그걸 어떻게…….”

“지금 네가 사일검법을 쓰지 못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을 테니까.”

적나라한 내 말에 고개를 축 늘어뜨리는 이백이었다.

시기와 질투에 눈이 먼 진량은 진궁을 통해 자신을 제외한 다른 세 사람이 사일검법을 쓰지 못하도록 금지령을 내렸다. 독단적이고 지독하리만치 악질적인 처사였다.

“이래서 썩어 빠졌다니까.”

아무리 물갈이를 해도 썩다 못해 고인 물은 사라지지 않는다. 마도와의 전쟁 이후에도 여전히 이렇게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니.

“뭐라고?”

“여하튼 그래서 계속 사일검법은 쓰지 않을 생각이고?”

“쓰지 않는 게 아니라 못 쓰는 거지.”

그렇게 말을 하는 이백의 입가에는 씁쓸함이 감돌았다. 천무린의 말대로 그는 사일검법 금지령 이후 몸에 맞지 않는 검을 계속해서 쓰고 있었다.

사일검법에 혼신의 힘을 기울였던 노력이 허무해질 만큼.

그 처연한 미소에 나는 그만 혀를 찼다.

평생 자신이 갈고닦은 무공을 쓰지 못하는 갑갑함을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으랴. 하물며 이백과 같이 한창 창창한 나이에 무공에 대한 재능까지 있는 이가 윗대가리들의 정치질에 이렇듯 농락을 당하고 있으니.

“그래도 희망은 있어. 점창의 다른 검으로 소기의 성과를 보인다면 점창에서도 나를 인정해 주지 않을까?”

미소를 잃지 않고 그다음을 생각하는 녀석.

희망적인 말을 읊조리는 녀석의 모습에 나는 그만 할 말을 잃었다.

제법 무게감이 있는 녀석. 충분히 어리광을 부리고 떼를 써도 될 텐데, 그리고 위아래에서 들어오는 압박에 무너질 법도 한데 이렇듯 꾸역꾸역 버텨 내는 모습이라니.

그래.

‘윗대가리들은 여전히 고여 있고 썩었어도 아랫물이 맑을 수 있다는 게.’

이런 게 바로 정파 무림인 것인가.

거친 풍랑에도 버텨 내는 잡초처럼, 무너질 듯 무너지지 않는 정파 무림.

“네 싸움을 응원하지.”

* * *

“제3 비무장, 사천무관 진량 승리!”

다시 한번 사천무관의 승리라는 말에 장내가 술렁였다.

“우오아아아아! 점창의 검이 저리도 강하던가! 사일검법 최고다!”

“아까 이백의 유운검법도 대단치 않던가?”

“허허, 자네. 뭘 모르는구먼! 점창의 사일검법은 천하 정파 무림의 일절(一絶)로 꼽히네!”

“그렇게나 차이가 있단 말인가?”

“당연하지!”

진량은 자신에게 쏟아지는 함성과 환호를 만끽했다. 이백보다 한 단계 높은 수준의 경기력을 선보이면서 비무장에 있었던 이백의 흔적을 모조리 지워 버렸다.

“후후, 당연한 결과지.”

비무장을 내려오는 그는 눈을 희번덕거렸다.

경기는 끝났지만 아직 그의 유희는 끝나지 않았다.

“이백, 이 새끼…….”

아직도 8기 놈 앞에서 나서는 것을 보아하니 정신교육이 덜 된 듯했다. 그토록 깔아뭉갰는데도 아주 끈질긴 녀석이다.

생각만 하면 화가 아주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감히 누구 앞에서 멋있는 척을 한단 말인가.

제까짓 놈이.

사일검법만 없으면 아무것도 아닌 놈이다.

그런데 자꾸만 눈앞에 아른거린다.

점창에서는 삼대 제자는 물론이고 일대 제자들까지 모두 그의 눈치를 봤다.

그의 아비이자 장로인 진궁이 현 장문인의 대리로 가장 강력한 권한을 휘두르고 있었기.

아버지인 진궁의 힘을 빌려 진량은 자신을 제외한 다른 삼대 제자가 사일검법을 쓰지 못하도록 제재를 가했다.

불평이 터져 나왔지만 진궁은 그 모든 불평과 불만을 오로지 힘으로 찍어 눌렀다. 거기다 이백의 배경이 보잘것없었기 때문에 눈엣가시 같던 녀석을 드디어 짓밟았다고 생각했더니만.

유운검법 같은 돼도 않은 검법을 들고 나와서는 아직까지 꾸역꾸역 버티고 있다.

으득.

휙, 휙.

고갤 돌려 눈엣가시 같은 놈을 찾고 있는데 보이지 않는다.

발걸음을 성큼성큼 옮겨 드디어 이백을 찾았고, 그의 옆에는.

“8기 놈들?”

진량의 눈에 보이는 것은 치료를 받고 있는 이백과 문호, 구태현 그리고 원체 신경도 쓰지 않았던 ‘八’이라는 표식을 가슴 언저리에 달고 있는 8기 후보생들이었다.

그 모습을 보니 절로 비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가 비웃음을 흘리고 있음을 모르는지 인기척을 느낀 누군가가 이쪽을 바라보며 손을 흔들었다.

“여어! 7기 선배 아니야? 그것도 이번에 이긴!”

천무린이었다.

“푸흐흐……. 아랫놈들끼리 의기투합이라도 하는 건가. 아주 잘 어울리는군.”

“칭찬이야? 그거?”

천연덕스러운 물음에 진량은 대답치 않고 이백을 바라봤다.

몸 곳곳에 잔상처가 한가득했다.

“……점창의 수치 같으니.”

아랫놈들이 많은 데서 그를 깔아뭉개야만 직성이 풀릴 것 같았다.

“고작 황보권 따위에게 이기려고 그렇게나 상처를 입은 네놈이 어디 가서 점창의 제자라고 낯짝을 들고 다닐 것을 생각하면 치가 다 떨리는군.”

이백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고갤 들어 진량을 바라볼 뿐이었다. 담담하게.

고요한 눈빛에 진량이 미간을 좁히려는 찰나, 대답은 다른 곳에서 들려왔다.

“점창의 제자가 여기서 왜 나와? 우린 다 같이 사천무관의 소속 아닌가.”

천무린의 말에 진량이 코웃음을 친다.

“흥! 그건 고작 허울뿐인 테두리이고, 어차피 졸업하면 모두 제자리로 돌아갈 무관 따위!”

“논란이 좀 있겠는데, 그 말은.”

코웃음을 치는 진량의 말에 천무린이 대답했고, 동시에 송무가 말을 거들었다.

“사천무관에 들어와서 졸업하기 전까지 후보생과 생도는 본래의 문파와의 소통보다 사천무관에서의 규율을 따라야 한다는 기본적인 원칙은 알고 하시는 소리죠? 진량 선배?”

“후후, 그럴듯하게 만들어 놓은 규율 따위에 누가 관심을 가진다고 그런 헛소리를 하는 건지.”

진량은 8기 후보생들을 쭉 훑으며 야비한 미소를 보였다.

“세상은 곧 권력이 전부고, 권력으로부터 내 힘이 생기는 거다. 이 애송이 새끼들아.”

“……입관시킨 점창의 제자에게 특정 무공에 대한 금지령을 내리는 것도 권력의 일부인 것처럼 말인가.”

“그야 당연한 것 아니겠냐. 어차피 제 뿌리가 어디인지 안다면 절대로 쓰지 못할 것…….”

득의양양하게 소리치던 진량은 고갤 돌리다 말고 그만 몸이 경직되고 말았다.

거기엔 있어서도 안 되고, 들어서도 안 될 인물들이 있었기에.

“설마 했더니 정말일 줄이야……. 진궁 장로, 어떻게 된 일이오?”

악교운이 눈을 부릅뜬 채, 옆에 함께 동행한 점창파 장문인의 대리 자격을 지닌 진궁을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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