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9화
제59화
“……비무대회까지 이제 하루 남았으니 모두 숙소 밖으로 기어 나올 생각 따윈 하지 마라.”
칼날 같은 매서운 기세를 거침없이 뿜으며 7기 생도와 8기 후보생들을 압박한 악교운은 이를 바드득 갈았다.
“어휴, 아무튼 사고 좀 치지 말라니까. 대체 누가 총교관님을 저렇게 화나게 만든 건데?”
휙. 휙.
천연덕스러운 말투에 7기 생도와 8기 후보생까지 모두의 시선이 일제히 한곳으로 쏠렸다.
천무린이었다.
“응? 나? 왜? 얼굴에 뭐 묻었나?”
너.
너, 이 새꺄.
너 때문이라고!
모두가 입을 벙긋거리며 욕지거리를 내뱉었지만, 전혀 개의치 않고 어깨를 으쓱하며 넘어가는 천무린이었다.
“나 참, 대체 어떤 놈이람. 걸리기만 해 봐. 아주 내가 아작을 내줄 테다.”
천무린의 그 말에 악교운은 할 말을 잃은 듯,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천무린을 쏘아보다가 씹어뱉듯 말을 꺼냈다.
“……8기 후보생들은 모두 이놈을 확실하게 감시해라. 이번에도 사고 치면 다들 돌아가서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예!”
악교운의 살벌한 기세에 8기 후보생들은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혹여 숙소 이외에서 헛짓거리를 하는 놈이 있다면…… 단순 징계에 그치지 않을 줄 알도록.”
“곡료는 괜찮은 겁니까!”
“곡료! 그놈의 곡료! 불량스러운 음료 따위로 입을 희롱하는데, 그것도 역시 금지다!”
불량 식품쯤 되는 곡료에 대해 엄금하는 악교운의 모습에, 일말의 죄책감을 느끼고 있는 이들의 반응은 그저…….
단호한 그 말에 송무를 비롯한 일행은 그저 고개를 푹 숙일 뿐이었다.
그리고 그 모습에 더욱 기가 차다는 반응을 보이는 일단의 무리.
“……하, 정말 미쳐 가지고. 세상이 어떻게 되려고 그러지, 정말? 엉?”
“곡료? 어디 불량 식품 따위에 정신이 팔려 가지고! 나 때는 말이야. 물도 제대로 못 마셨는데. 후보생 주제에 벌써 놈팽 짓을 해!?”
“물은 무슨. 하늘에 비 오면 비 모아 가지고 마시고 그랬지. 으휴.”
7기 생도들이었다. 새로운 장난감을 찾았다는 듯한 눈빛. 심지어는 혀를 내밀어 입술을 축이는 놈도 있었다.
그리고 그런 생도들을 본 신혁건은 미간을 좁히고 고개를 돌려 그대로 숙소 안으로 들어가 버렸고, 표정 변화가 크게 없는 백리무영과 당지운마저도 불쾌한 기색을 내비쳤다.
“이것들 봐라? 선배 기수가 말을 하는데, 그냥 들어간다고?”
“와하하! 진짜 어이가 없네. 야, 몽둥이 갖고 와. 오늘 안 되겠다. 손 좀 봐야지.”
“저 새끼들을 진짜?”
8기 후보생들은 움찔하며 7기 생도들의 한마디, 한마디에 눈치를 봤다.
송무를 비롯한, 낙양에 먼저 온 일행이 의아해할 정도로 후보생들은 7기 생도들의 눈치를 삼하게 봤다.
당연히 선배 기수는 대하기 어렵다. 어려운 것은 당연하지만, 그렇다고 한들 악교운보다 눈치를 더 본다는 건 아무래도 이상하지 않은가.
“……태강아, 무슨 일 있었어? 왜 다들 눈치를 그렇게나 많이 보는 거야?”
송무의 말에 낙양에 오는 동안 7기수와 함께했던 8기 후보생 중 한 명인 태강은 숙소로 들어와서는 송무를 비롯한 선발대에게 이야길 꺼냈다.
“그게 말이지…….”
태강이 꺼낸 이야기는 실로 가관이었다.
“너희가 수발을 다 들었다고?”
7기수는 40명이 넘는다. 그리고 8기수 역시 50여 명이 넘은 인원이었기에 두 기수를 합치면 무려 90 여명이 넘는데, 그런 단체 생활을 며칠간 같이하면서 무지 고생했다는 소리였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송무와 일행은 기가 찬 표정을 지었다.
“매 끼니마다 음식을 챙기는 것은 물론이고, 물 한 잔까지 떠서 줘야 했다니 그게 무슨…….”
정도가 심했다.
“악 교관님이 그걸 그냥 보고만 있으셨다고?”
“……교묘했어. 악 교관님 역시 우리랑은 다른 숙소에 묵으셨고, 7기 선배들 중 몇몇이 직접 교관님을 챙기더라고.”
태강의 말에 설화린이 표정을 찌푸렸다.
“그러니까 악 교관님이 알지 못하게 하고, 7기수가 아예 작정하고 8기 후보생들을 괴롭힌 거네요.”
매 끼니마다 수발을 든 것도 모자라 어깨를 주물러 보라는 주문부터 가지각색의 잔심부름까지.
“말해 볼 생각은 안 했고?”
“……기수 문화가 당연히 이런 것인 줄 알았어. 무영이와 지운이가 말해 주더라고.”
백리무영과 당지운이 한숨을 푹 하고 내쉬며 태강의 말을 도왔다.
“괜히 긁어 부스럼 생길 수도 있다. 건드렸으면 더 피를 봤을 거다.”
“똥이 더러워서 피하지, 무서워서 피하는 건 아니니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데, 한 사람이 불쑥 끼어들었다.
“그게 뭐든 다 쥐어 패면 될 일 아닌가? 뭐 그리 어렵게 생각해?”
“……그게 그리 해결되었다면 진작에 끝날 일이지.”
천무린의 말에 백리무영이 고개를 저었다.
“기수 문화를 무시하면 앞으로 무관의 체계는 모조리 무너져. 무관이 무관으로서 존재할 필요가 없어진다는 뜻이 돼.”
기수 문화?
나는 절로 입이 벌어졌다.
당최 그딴 게 있어서 좋을 게 뭐라고.
“……하아?”
갈수록 가관이었다.
“거기다 문제는 7기수의 배경에 있어.”
“배경?”
“7기수가 워낙에 뒷배경이 짱짱해야 말이지.”
“……뭔 소리야? 어차피 너네들이랑 크게 다를 것도 없잖아?”
그 말에 백리무영이 입을 꾹 닫았고, 송무가 자연스레 말을 이었다.
“각 문파에서도 밀어 주는 인원들이 있는데, 7기수들은 대다수가 각 문파에서 각광을 받고 있는 인물들이야.”
“에……?”
송무가 우물쭈물하며 말하기 싫은 말을 억지로 하듯 말을 이어 갔다.
“7기수는 대다수가 각 문파의 정식 제자인데 반해, 8기수는 대다수가 속가 제자거나…….”
“정식으로 인정받지 못한 미운 오리 새끼들이다?”
내 말에 송무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뭔가 이상한데?”
의아한 내 말투에 후보생들이 나를 바라본다.
“이해가 안 가서 그러는데, 쟤들이 강하냐?”
“……어?”
“황금 기수라며?”
“응. 황금 기수지. 아마 재능을 인정받은 이들이 대부분일 텐데……?”
“그런데 니들이 더 강한데?”
내 말에 후보생들이 서로를 바라보며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의아한 눈빛을 보였다. 자신들이 7기수보다 강하다니.
“……내가 거짓을 말한 적 있디?”
송무가 대표로 고개를 저었다.
헛소리를 한 적은 있어도 거짓말을 한 적은 없었다. 적어도 그가 알기엔.
“황금 기수고 나발이고, 너희가 보기엔 쟤들이 나보다 강해 보이냐?”
……어?
그 말에 후보생들은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천무린의 강함에 대해서 다시 한번.
그가 얼마나 강한지는 도통 모르겠다. 8기를 대표하는 강자인 신혁건과 백리무영의 연수합격에도 여유롭게, 그것도 아주 압도적인 무위를 선보이며 승리했던 천무린이 아니던가.
그 정도의 무위를 보일 수 있는 사람이 7기수에 있을까.
아니, 그건 있을 수 없었다.
적어도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결론적으로 7기수의 어느 누굴 갖다 대도 천무린보다는 약하단 이야기가 되는데…….
“자, 이제 내 말에 신빙성이 느껴지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스스로를 미심쩍어하며 서로를 둘러볼 뿐이었다.
으휴!
앓느니 죽지!
앓느니 죽어!
이 새끼들아!
“제아무리 명검을 쥐어 줘도 휘두를 줄 모르는 놈들한테 내가 뭘 더 바라냐.”
속이 터지는 답답함에 가슴을 두드리던 나는 우물쭈물하는 후보생들을 바라봤다.
“……등신들처럼 맞고 살지 마라. 가슴을 펴고, 어깨를 펴. 나 너희들 그렇게 약하게 안 키웠다.”
내 말에 후보생들이 움찔하며 그간 고생한 기억들을 새록새록 떠올린다.
그래, 그간 했던 훈련을 생각하면…….
“죽을 뻔했지.”
“불효자, 효도 한번 못 해 보고 세상을 먼저 뜰 뻔했지.”
“영영 갈 뻔했었죠.”
“하, 막막하다.”
으응?
기껏 키워 놨더니 이런 개……!
* * *
짜악! 짜악! 짜악!
“이 새끼들 제대로 하는 게 없네. 하는 게 없어.”
왼쪽 뺨부터 턱까지 길게 난 흉터가 강인한 인상을 주는 청년이 자신의 앞에 서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 세 청년의 뺨을 갈겼다.
손이 얼마나 매웠으면, 맞은 뺨은 금방 벌겋게 부어올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 미안해. 내가 제대로 잘할게! 한번만 더 기회를 주면 안 되, 될까?”
사과를 하며 바르르 떨고 있는 청년은 ‘七(칠)’이라는 자수를 사천이라는 글자 옆에 새겨진 무복을 입고 있었다.
“이백아, 이백아. 매번 내가 이렇게 기회를 주는데 자꾸 날 실망시키면 되겠냐. 아까 따라가서 조지고 오라고 했는데, 왜 안 간 거야?”
음산한 음성에 이백이라고 불린 청년이 움찔거렸다.
“그, 그건 악 교관님이 아직 남아 계셔서…….”
“이 새끼야, 변명하지 말고. 자꾸 중요한 순간마다 그냥 넘어가려고 하는 것 같은데, 다 보인다고.”
이백은 다시금 올라오는 손길에 눈을 질끈 감았다.
“내가 왜 너희에게 이렇게 시키는지 알아?”
“다, 당연히 8기수 기강을 잡으려고.”
짜아악!
그 말에 찰진 마찰음과 동시에 이백의 고개가 팍 하고 돌아갔다.
“아니야.”
고개를 돌리는 이백의 입술에 피가 터져 흘러나왔다.
“이렇게 해야 너희들이랑 내 눈높이가 맞는 거야. 나는 너희에게 지시를 내리는 쪽, 너희는 내 지시를 받는 쪽. 어? 알아들어?”
“……어.”
툭툭.
“잘해. 이번이 마지막이야. 기강도 잘 잡고. 자꾸 아랫놈들이 눈에 거슬리잖아. 여기 낙양 바닥에 오자마자 8기수 놈의 명성이 어쩌고저쩌고.”
이백의 뺨을 툭툭 두드린 청년은 다른 두 청년의 어깨도 두드려 줬다.
“이백, 문호, 구태현. 마지막이야. 어?”
“어, 어!”
“자, 잘할게!”
“믿어 줘.”
청년은 피식 웃으며 손을 흔들고는 자리를 떠났다.
그가 사라지고도 세 사람은 한참을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한동안의 침묵 후에 이백의 옆에 서 있던 문호가 조용히 입을 열며 이백의 얼굴을 바라봤다.
“……괜찮냐?”
“퉤.”
입가에 머금었던 핏물을 뱉어 버린 이백은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그러곤 핏물에 벌게진 입술로 미소를 머금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 이런 일 어디 한두 번이냐.”
“X랄, 하나도 안 괜찮아 보여서 하는 말이야.”
구태현의 말에 이백은 실실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나저나 어쩌냐.”
“뭘 어째?”
“8기수들 기강 잡는 거.”
“…….”
“아마 이번에도 제대로 안 하면 기수 열외 당할 텐데.”
그 말에 세 사람의 표정이 동시에 굳어져서 펴질 줄을 몰랐다.
기수 문화의 최고봉, 최악의 부조리 중 하나.
기수 열외.
이백이 문호와 구태현을 바라보다가 고갤 돌려 하늘을 올려다봤다.
“후우……, 이번에 함께 오면서 8기수를 우리가 얼마나 괴롭혔냐.”
“어쩔 수 없었잖아.”
“우리도 다 살기 위해서…….”
문호와 구태현의 말에 이백이 처연한 미소를 띤 채, 고개를 저었다.
“얘들아.”
문호와 구태현, 두 사람을 바라보던 이백은 자신의 가슴팍에 새겨진 ‘七’이라는 표식을 가리킨다.
“우리도 위 기수들한테 많이 시달렸잖아. 근데 또 그런 걸 후배들에게 그대로 물려주는 게 맞을까.”
문호와 구태현도 안다.
그건 절대 정당화될 수 없다는 사실을.
힘 앞에 굴복해 시키는 대로 했다고 그 일이 정당화될 순 없었다.
세 사람은 그저 땅 아래를 바라보며 서로를 다독일 뿐이었다.
그리고 숙소의 전각 위,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한 인영.
천무린은 입가에 나뭇가지 하나를 문 채 미소를 짓고 있을 따름이었다.
“기수 열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