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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무신, 무림학관을 제패하다-56화 (54/250)

제56화

제56화

숙소까지 잡았으니 이제 문제될 것이 없었다. 아직 사천무관 일행이 도착하기까지 이틀이라는 자유 시간이 그들에게 주어졌다.

그간 풀이 죽어 있던 송무 역시 밝은 표정으로 돌아왔고, 일행들과 어울려 잔뜩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낙양에서의 첫날이라니! 너무 즐거운걸!”

그 말에 신혁건과 황태가 공감한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드디어 그들에게도 자유가 주어졌다.

몇 날 며칠, 심지어 낙양에 도착해서도 저잣거리를 돌아다니며 소매치기를 잡느라 온갖 고생을 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사고 치지 말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악 교관님의 말씀대로.”

잔뜩 달아오른 분위기는 설화린의 말 한마디에 차갑게 식었다.

송무가 풀이 죽은 눈으로 한숨을 푹 하고 내쉬다가 다시금 또랑또랑한 눈빛을 빛낸다.

“그, 그럼 술만 구해 와서 숙소에서 마시는 건 어때……?”

“그것 참 좋은 생각이로군!”

“묘안일세, 묘안이야.”

기막힌 생각이라는 듯 황태와 신혁건이 송무의 손을 들어 주며 이야길 하자, 설화린은 차마 그것까진 제지하지 못하겠다는 듯 그저 고개만 절레절레 저었다.

“기껏 낙양까지 와서 숙소에 틀어박혀 술을 마시겠다고? 그게 할 짓이야? 이 창창한 청춘에?”

듣던 천무린이 자리에 벌떡 일어나자, 설화린이 황급히 손을 뻗어 제지한다.

“다른 사람은 다 되어도 당신은 절대 안 돼요!”

“왜?”

“오늘만 해도 사고를 얼마나 쳤는지 아세요?”

“……응? 사고는 내가 아니라 쟤가 쳤고.”

손을 뻗어 송무를 가리켰다가 바로 앞에 있는 설화린을 가리킨다.

“신경 못 쓴 너 아닐까?”

뼈아픈 한마디에 설화린은 입을 꾹 닫았다. 아직도 아까 맞은 이마가 욱신거리는 듯했다.

“이 씨…….”

씩씩거리는 설화린을 바라보며 피식 웃은 천무린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도 5년 동안 무관에 갇혀서 오직 수련만 하던 놈들인데, 이럴 때 콧바람 안 쐬면 언제 쐬겠어.”

그 말에 송무와 신혁건, 황태가 ‘옳소, 옳소’ 하고 외쳐 댔다. 그러자 설화린이 한숨을 푹 하고 내쉰다.

“이번엔 저도 책임 안 질 거예요.”

“알았어, 알았어. 내가 책임질게.”

그렇게 말한 천무린은 불과 일각 만에 자신이 책임지겠다던 발언을 후회해야만 했다.

이유는.

“딸꾹! 여기, 여기이! 점소이이!”

뭐야, 이 새끼들.

낙양의 밤을 빛내는 객잔 중 한 곳에 들어가 자리를 잡은 삼대무관 후보생들 뿐 아니라 갓 스물도 안 된 이들이 취한 반응을 보이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천무린이 황당한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자신도 함부로 마시고 있지 않는 술을 꼬맹이들이 술판을 벌이고 있으니 이게 무슨 난리란 말인가.

그러나 곧 의문을 풀 수 있었다.

잠시 뒤 점소이를 외치는 목소리는 잔뜩 취해 있었다.

“예에! 예, 갑니다요! 가요!”

점소이의 표정이 밝기만 했다.

“여기 곡료(穀料) 두 병 더어! 딸꾹! 헤헤.”

곡료(穀料)?

“곡료가 뭐야.”

그 말에 바쁜 걸음을 뒤로 하고 점소이가 구슬땀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곡료(穀料)를 처음 들으십니까? 아이고, 시골에서 오셨군요!”

팍 씨! 시골? 그래! 시골에서 왔다 왜!

그나저나 빨리 설명이나 해.

“헤헤, 삼대무관 나리들을 위한 음료라고 생각하시면 될 겁니다. ”

삼대무관? 음료?

이게 다 뭔 개소리람.

“맛 한번 보실래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천무린을 뒤로하고 설화린은 곡료라고 불린 한 잔을 쭉 들이켰다.

“……!”

얼굴을 잔뜩 찌푸리는 설화린이었다.

“이게 무슨…….”

“톡 쏘지요? 이게 요즘 제일 인기 많은 곡료라는 놈이지요! 삼대무관에 특히 술은 절대 안 된다고 규율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와 같은 다양한 곡료들이 개발되었지요!”

곡료라는 놈이 제법 다양하게 만들어진 듯했다. 천무린 역시 가볍게 입술에 대어 보니.

쓰디쓴 독주거나 뱃속을 뜨끈하게 만들던 술과는 달리 도수가 일절 없는 음료였다.

다만.

“……먹을 만한데?”

스윽 훑어본 곡료의 종류만 해도 수십 가지. 각종 과일 향이 나는 곡료에다, 술맛을 본뜬 곡료까지 가지각색이었다.

나 참.

삼대무관이 워낙 활성화되다 보니, 이런 상품까지 등장했단 말인가.

거기다 먹을 만했지만 천무린으로서는 옛 술이 더욱 그리웠다.

세상만사 뒤로 하고 신선놀음에 있어 반드시 필요한 술! 그것만한 것이 어딨겠는가. 어설프게 따라한 걸로는 만족되지 않는 천무린이었다.

천무린이 혀를 차며 일행들에게 나직이 입을 열었다.

“제대로 된 술맛이 뭔지 보여줄 테니 이동하지.”

쥐 소굴에 쳐들어가 술 갖고 오라고 으름장을 부리면 되겠지.

……라고 말하려 했건만.

“크으! 요놈 요고 차암 달달하네!”

“큭큭. 한 잔씩들 받자고, 다들.”

“캬아! 술맛이 뭔진 모르겠지만 요놈으로 충분할 거 같은데!”

다만 중요한 것은 비단 설화린뿐 아니라 송무에, 흑화한 황태에 신혁건까지 곡료에 취했다.

미쳐 돌아가는 모습에 나는 그저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이러려고 나한테 책임지라고 한 거냐.

지끈거리는 이마를 부여잡고서 네 사람의 목덜미를 쳐서 기절시켜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 와중에 주변의 웅성거림이 귓가에 들려왔다.

“사천무관 생도인 것 같은데.”

“허어, 비무대회에 참가하는 인원들인 것 같은데 다들 자제할 줄도 모르고 아주 퍼마시는구먼!”

“저들이 정말 정파 무림을 이끌어 가는 대들보가 맞는가? 내 참, 의심스럽구먼!”

“사천무관이 왜 꼴찌인지 내 알 것 같구먼!”

딱 듣기에도 여론이 그리 좋지 않네.

하하.

갑자기 흉신악살처럼 일그러진 악교운의 얼굴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

“다들 오랜 여행에 여독을 푸는 것이니 이해해 주길 바라…….”

나는 비난하는 이들에게 어쩔 수 없이 변명 아닌 변명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는 찰나,

“푸흡, 정말로 이래서 사천 놈들은 안 된다니까.”

“쯔쯧, 아주 난리구먼.”

“왜 그러십니까, 거 흐흠. 아주 아리따운 소저께서 몸도 못 가누고 있는 걸 보아하니 옆에서 좀 도와주어야 할 판인데.”

“원래 위험에 처한 여인을 보면 구해 주는 것이 당연지사니까, 흐흠.”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지금 흑도 무리들이나 나불거릴 이야기를 낙양에서 듣고 있다니.

암흑가 놈들이려나.

그런 마음으로 고갤 돌려 바라보니, 멀끔하게 생긴 사내들이 탁자 위에 가지각색의 요리를 시켜 놓고 곡료를 마시고 있었다.

하이고.

애새끼들이 어른 흉내를 내는 꼴을 보아하니 천무린의 입장으로서는 복장이 다 뒤집어질 일이었다.

그런데.

“산동?”

가슴팍에 새겨진 ‘산동(山東)’이란 글자를 쓰는 곳은 단 한 곳밖에 없다.

“산동무관 놈들인가?”

내 말을 들은 건지 앉아 있던 청년 한 명이 의자를 뒤로 물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성큼성큼 다가왔다.

“놈? 하하, 이 새끼 보게. 이거, 아주 못 하는 말이 없어.”

“……이거야 원.”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무얼 그리 잘못했다고. 오늘 몇 명이나 뚝배기를 깼는데 또 깨라고 아주 시비를 많이 걸어온다.

근데 생각해 보면.

고갤 돌려 일행을 바라봤다.

한 번은 송무 놈 때문에.

다시 고갤 돌려 바라본다.

또 한 번은 설화린 때문에.

내가 혀를 차며 푸념을 했다.

‘내가 그리도 전생에 죄를 많이 지었던가.’

그리 생각하자,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갈! 네놈이 해 온 역천(逆天)의 길을 생각하면 이 정도는……!」

저승사자로 느껴지는 듯한 목소리.

들려오는 환청을 무시하고 나는 눈앞에 있는 산동무관 사내를 바라봤다.

“그래서 한 푸닥거리하자고?”

“푸흐하하하, 한 푸닥거리? 지금 사천무관 놈 따위가 감히 대(大)산동무관에게 도전을 하는 거냐? 내가 누군지 알고 그런 말을 할 수 있단 말이냐!”

사내는 한순간에 내공을 끌어올리며 기세를 올렸다. 그 기세가 폭포수처럼 터져 나왔다. 이어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솥뚜껑만 한 주먹을 들이민다.

“내가 바로 대황보세가의 황보권이다.”

들어 본 적 없었다.

아, 아까 들었다. 쥐소굴에서 빼앗은 정보를 통해서.

“황보권(皇甫拳). 18세. 산동무관의 7기 생도. 황보세가주에게 버림받다시피 하여 내쫓긴 서자 출신. 약자를 괴롭히는 데 거리낌이 없고 여자를 무지 밝힘. 후보생 시절, 이미 같은 여후보생을 겁간하려다가 발각돼 징계를 먹은 사례가 있으나 황보세가의 힘으로 그 일을 무마한 적이 있음.”

나는 황보권에 대한 정보를 기억나는 대로 줄줄이 읊어 대며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봤다.

내 입으로 말을 꺼냈지만, 쓰레기 중에 상 쓰레기가 아닌가.

“나 같으면 이미 자결하거나 할복해 뒈지거나 접시 물에 코 박고 죽었을 것 같은데, 왜 아직도 살아 있지?”

부들부들.

내 말에 황보권의 두 눈동자가 급격히 흔들리며 심히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가 금세 정신을 차리고 소리쳤다.

“무슨 개소리를 하는 거냐! 누가 사천 놈들 아니랄까 봐 아주 음흉하기 짝이 없군! 그깟 걸로 대황보세가의 이 황보권 님이 흔들릴쏘냐!”

그 말에 객잔에 있던 많은 이들이 웅성거렸다.

“저 말이 사실일까?”

“설마 그렇겠는가? 황보세가라지 않는가? 명문 중의 명문인데?”

“강호가 어디 없는 소문을 만드는 곳이던가!”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나겠는가.”

“그도 그렇지만, 설마 그런 일이 있었는데 버젓이 무관 생활을 한다는 것이…….”

웅성거림이 커지자, 황보권의 마음은 다급해졌다.

자신의 치부를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겠지만, 황보세가가 직접 나서서 처리한 일이다. 만약에 이 일이 세간에 밝혀지면 자신은 다시 일어설 수 없을 터였다.

모든 것을 되돌리려면 방법은 단 하나.

“네 이노옴!”

헛소리를 한 저놈을 어서 처리하는 수밖에.

정파 무림을 대표하는 무가 중 하나인 황보세가의 일원인 만큼 황보권의 풍채는 매우 좋았다.

8기 후보생들 중 온몸이 근육 덩어리인 명진보다도 큰 덩치를 자랑하는 것을 보니 황보가의 핏줄임은 틀림없었다.

그리고 그 타고난 신력에서 뿜어져 나오는 거력(巨力)까지!

우웅! 후우우웅!

어느새 말아 쥔 솥뚜껑만 한 주먹이 허리춤에서부터 뻗어 나오더니 대번에 천무린을 찍어 누를 듯 짓쳐들어왔다.

“어이! 단숨에 박살 내 버리라고! 황보권!”

“놈의 입을 짓뭉개서 다시는 헛소릴 못 하게 만들어 버려!”

“크하하하!”

황보권의 일행으로 보이는 세 사람이 그를 응원했고, 황보권이 벽력신권(霹靂神拳)을 펼치는 모습을 바라봤다.

그들은 믿었다. 황보권이 단숨에 그를 박살 내고 돌아오리라고.

다른 것을 다 제쳐 두고서라도 황보권의 권법은 패도적이고 극강의 무거움을 담고 있었다. 거기다 타고난 신체에서 나오는 힘까지!

산동무관 7기수 중에서도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실력자였으니까!

그리고 그 기대에 걸맞게.

콰아아앙!

“끝났군.”

“끝났겠지.”

“꼴좋구먼! 크하하하!”

단숨에 아작이 나서 혼절했을 것이 분명했기에 황보권의 친구들은 굳이 돌아보지 않았다.

그런데.

육중한 덩치가 세 사람이 앉아 있는 탁자 위로 날아오며 주위를 온통 난장판을 만들었다. 그것도 모자라 몇 장을 더 날아갔다.

“어이, 점소이. 이거 받고 여기 점주에게 미리 배상한다고 말해 줘.”

천무린은 옷소매를 걷어붙이며 씨익 웃고 있었다.

상인들이 왜 돈돈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역시 돈이라는 것은 좋은 것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돈으로 다 무마할 수 있으니까.

그 말에 벙쪄 있던 점소이는 자신에게 날아오는 묵직한 돈주머니에 입을 딱 하고 벌렸다.

“이, 이게 다 얼마……. 아, 알겠습니다!”

그러고는 일체 싸움에 신경 쓰지 않겠다는 듯 홀라당 안쪽으로 들어가 버렸다.

터벅, 터벅.

단숨에 기절해 버린 황보권에겐 시선조차 주지 않은 채, 의자에 앉아 있는 세 사람 앞으로 걸어간 천무린이 씨익 웃었다.

“헛소리가 어쩌고, 아까 뭐 아리따운 소저가 어쩌고, 사천 놈이 어쩌고, 말들이 참 많던데 좀 더 해 보시지그래.”

뚜둑.

관절 꺾는 살벌한 소리가 객잔 내에 울려 퍼질 따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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