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5화
제55화
“……여, 여깄소.”
만신창이가 된 공야찬은 접혀지지도 않는 무릎을 억지로 꿇은 채 돈주머니를 건넸다.
그가 본격적으로 암흑가의 생활에 뛰어든 이후 누군가의 돈을 뜯었으면 뜯었지, 이렇게 뜯긴 적이 있었던가.
거기다 쥐소굴은 낙양 내에 존재하는 암흑가 단체들 중 가장 클 뿐, 모든 암흑가 단체를 전부 관리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어느 정신 나간 소매치기범이 이자의 심기를 건드렸는지 모르겠지만, 사실 그자가 쥐소굴 소속인지 아닌지도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당최 말이 통하질 않는데.
자꾸 말을 꺼낼 때마다 정수리부터 쪼개 오는데, 무슨 수로 당해 낸단 말인가.
“이제 전부 된 것 아니겠소이까……?”
그러니 울며 겨자 먹기로 돈을 주고서라도 어서 빨리 내보내는 것이 상책이었다.
잃었다는 금전보다 웃돈을 더 얹어서 건넸다. 이 정도면 대라신선이 와도 만족해하며 돌아갈 터였다.
그런데.
“무슨 소리야. 이건 이자잖아.”
“예?”
갑자기 무슨 이자를 논한단 말인가.
공야찬의 두 눈동자가 커졌다.
“……분명 오늘 돈을 소매치기 당했다고.”
“계산법이 특이한 인간일세.”
누가 특이한 건데, 대체.
공야찬과 조수강이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X랄 맞게도 악랄한 인간에게 걸려들었다는 눈빛을 교환했다.
온몸을 두들겨 맞아 성한 곳이 하나도 없는 공야찬과, 오른손 손목이 거의 너덜거리다시피 어긋난 조수강까지.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되었을까.
두들겨 맞은 것도 모자라 돈까지 뜯기다니.
두 눈에 자꾸 습기가 차오르는 두 사람이었다.
“아니, 생각해 봐. 기껏 멀쩡한 사람의 돈을 훔쳐 가서 내가 여기까지 찾아오느라 수고한 노력하며, 재깍재깍 안 내놓고 자꾸 모른 척하면서 나를 직접 움직이게 했잖아. 내 수고로움을 정녕 모르는 거야?”
……미친 논리였다.
그러나 차마 반박할 수가 없다.
반박했다가는.
아까 맞은 부위들이 또다시 욱신거린다.
“그, 그럼 얼마를 더 원하시는…….”
공야찬은 눈을 질끈 감으며 말했다. 그러고는 다짐했다.
‘내 이 인간이 사라지는 즉시, 낙양 땅에 있는 소매치기범들을 깡그리 잡아다가 단죄하리라.’
“돈은 됐어.”
응?
금전이 아니라니.
“갖고 있는 정보 죄다 내놔.”
그 말에 공야찬의 식은땀이 등 뒤를 적셨다.
“……그게 무슨, 하하.”
조수강 역시 나서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저어……. 천 공자, 여기는 정보 단체가 아니라서 정보를 취급하진 않는…….”
두 사람의 말에 천무린의 팔짱이 풀어지며 바닥에 떨어진 몽둥이를 잡고 다시 손에 쥔다.
“응? 잘 안 들렸어. 다시 말해 줄래?”
그 반응에 두 사람은 다시 한번 다짐했다.
낙양 땅에 있는 모든 암흑가의 소매치기 잡범들을 쓸어버리고 아주 씨를 말려 버리겠다고.
툭, 툭.
몽둥이를 들고 천천히 다가오는 천무린의 모습에 두 사람의 표정이 풀어지며 비굴한 웃음을 지었다.
“저, 저…… 천 소협! 천 공자님! 저희는 정말로 정보를 취급하지…….”
“하하. 왜 그래, 너희들?”
“예?”
“내가 언제 천씨라고 말해 준 적 있었나?”
그 말에 두 사람의 눈동자가 급격하게 흔들렸다.
“내 인상착의만 보고 사천무관 소속의 후보생이며, 내 성씨까지 바로 말할 정도면 하오문보다 정보를 착실히 모아 놨나 본데?”
공야찬과 조수강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아주 지독한 놈한테 걸렸다.
말 한마디 잘못한 것 때문에 진짜 쥐소굴의 모든 것이 다 털리게 생겼다.
어쩌다가 이런 놈한테 걸려서는.
“괜찮아, 괜찮아.”
무엇이 괜찮다는 말인가.
“포기하면 편해.”
토닥거리던 두 사람은 결국 자신들이 가진 정보란 정보는 모조리 뱉을 수밖에 없었다.
“삼대 무관에 대해 아주 빠삭한데?”
나는 진심으로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삼대 무관의 1기수부터 현존하는 8기 후보생들의 정보를 줄줄이 읊을 정도로 방대한 정보는 사실상 옆에서 지켜보지 않는 이상 절대 알 수 없었다.
공야찬과 조수강이 달리 보일 정도였다.
그리고 정보를 줄줄이 꿰며 흥미롭게 바라보고 있던 와중에,
삼대 무관주부터 관련된 장로들, 교관들에 대한 정보들까지 말하는데.
‘사천무관주 당백진, 섬서무관 공동 관주 혜공과 청강, 산동무관주 남궁도.’
총 4명의 무관주들의 이름을 듣자마자,
“허, 이 개XX들.”
내가 다짜고짜 욕지거리를 하자, 공야찬과 조수강은 순간 움찔거렸다.
또 무슨 잘못을 저질렀을까, 하고 두 사람은 가슴이 조마조마할 따름이었다.
두 사람의 이런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천무린은 씩씩거리며 분통을 터뜨렸다.
“아니, 나 막겠다고 연수합격이나 펼치던 것들이 무관주가 되었다고?!”
천마이자 무신이던 시절, 정마대전에서 천무린의 발목을 잡으려고 난리를 치던 정파 강호의 가장 강한 무인들 중 4명이 나섰다.
만독암제(萬毒暗尊) 당백진,
권왕(拳王) 혜공,
검왕(劍王) 청강,
그리고 창천검존(蒼天劍尊) 남궁도까지.
네 사람이 손발을 맞춰 천무린을 상대했다.
이 다섯 사람의 난전이 이어지며 천지가 개벽했고, 그들 주변을 둘러싼 모든 땅이 초토화되었다. 그들은 모든 힘을 끌어 생사투를 펼쳤다.
수많은 독과 암기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수준을 넘어서 만천화우(萬千花雨)를 뿌려 대던 당백진에,
소림의 모든 권법에 능통하고 단단한 육체를 앞세워서 극성까지 끌어올린 백보신권(百步神拳)을 펼치던 혜공,
태극의 정수라고 불리는 태극혜검(太極慧劍)을 살벌하게 펼치던 청강과, 창궁무애검(蒼穹無涯劍)과 제왕검형(帝王劍形)으로 태산도 쪼갤 듯이 공격했던 남궁도까지.
“아주 그땐 나도 뒈질 뻔했지.”
정파 무림에서 가장 강하다는 인물들 중 4명이나 동시에 내게 덤벼들 줄 그 누가 알았을까.
더럽게도 자존심이 센 인간들이.
“하여간! 맨날 말만 정파지 하는 짓은 사파라니까!?”
내 혼잣말에 공야찬과 조수강의 표정이 묘해졌다.
‘본인을 두고 하는 말인가?’
‘자기 욕을 왜 자기 혼자 하는 거지. 드디어 미쳐 버린 건가.’
“으득, 아무튼 그 인간들이 그 공을 인정받아 삼대 무관주가 되었다라…….”
네 사람은 삼대 무관이 세워질 당시, 무신이자 천마였던 천무린과 생사투를 벌였던 공로를 인정받아 각 무관의 무관주로 추대되었다.
섬서무관의 경우도 본래 한 명의 무관주여야 했으나…….
북숭소림(北崇少林), 남존무당(南尊武當).
북에는 소림이 숭상을 받고, 남에는 무당이 존중받는다는 말처럼 소림과 무당의 명예를 양분할 수 없어 결국 공동 관주가 되었다.
“허허, 그렇다 이거지.”
억울해 죽을 것 같았다. 자신과 싸운 저들은 저리 떵떵거리며 배부르고 풍족한 노후 생활을 보내고 있는데!
지금 자신은 어린 아해들이랑 뒹굴면서 이리 고생하지 않는가!
으으으!
나도 모르게 살의(殺意)가 피어올랐다.
두근!
두근!
그리고 두근거리는 심장에 이어져 오는 격통!
“끄으억!”
심장을 옥죄며 찾아오는 극심한 격통과 두통에 그대로 땅바닥을 굴렀다.
“……진짜 미쳤나 본데?”
“대체 뭐 하는 인간이지, 진짜?”
공야찬과 조수강은 그런 천무린을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지금이 기횔까? 죽일 수 있는?”
“그러다가 저게 연기면? 감당할 수 있을 거 같아?”
분명 연기 같진 않았다. 연기처럼 보이진 않았다. 그래서 지금 저토록 무방비한 인간을 칼로 찌르면 죽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에 하나, 단 일 수에 죽이지 못하면 정말로 우리가 죽는 거야.”
“그런 모험을 하고 싶진 않구나.”
공야찬과 조수강은 서로를 바라보며 처연한 미소를 띠었다.
그래……. 이미 다 내준 마당에 목숨이라도 부지하자.
살아야 다음도 있는 법 아니겠는가.
억울함에 한껏 살기가 피운 탓에 시작된 금제인 금살(禁殺)이 조금씩 진정되면서 호흡을 가다듬은 천무린의 온몸에 금빛 서기가 둘러쌌다.
역근경의 기운이 격통을 씻은 듯이 치유해 주고서야 금빛 서기는 사라졌다.
눈을 찡그리게 만들 정도로 눈부신 황금색의 서기에 공야찬이 조수강을 바라본다.
“그, 금빛 기운이라면.”
“……소림의 대반야능력 혹은 그 이상의 무공이 아니라면 펼칠 수 없는 기운이 아니던가.”
정보만큼은 개방과 하오문에 못지않다고 자부하는 두 사람에게 천무린이 펼쳐 보인 기운은 눈을 번쩍 뜨일 만한 정보이자 새로운 소식이었다.
“그 말도 안 되는 무위가 이제야 이해가 되는구먼.”
“소림이 키운 제자란 말인가.”
“그게 아니지. 우리가 모은 정보가 어느 정도 맞는다는 말일세.”
“설마?”
조수강이 찢어 버린 사천무관과 관련된 정보 중 하나.
「아니, 글쎄. 사천무관에서 이번에 참여하는 후보생들 중 일류 극의에 다다른 인물이 있다지 않소. 거기다 명문정파의 비전절기를 남발하는 인물이 있다고.」
두 사람은 코웃음을 치며 정말 말도 안 된다고 말했던 인물이 바로 눈앞에 있었다.
“이 정도의 정보라면…….”
“지금까지 털린 정보보다 비싼 값을 받을 수 있을지 모르지.”
만면에 화색이 돌았다. 모든 정보와 금전까지 털려 우울했던 두 사람의 앞길에 새로운 꽃길이 보이는 듯했다.
분명 그랬는데.
“하하, 내 정보를 어쩌고 어째?”
흠칫.
두 사람은 목소리가 들린 곳으로 주뼛주뼛 고개를 돌린다.
거기엔.
사천무관 내 소야차(小夜叉)라고 불리는 천무린이 미소를 짓고 있었다. 몽둥이를 든 채로.
“어딜 내 정보를 갖다 팔려고! 이 새끼들이! 다 뒈져라!”
신기하게도 이번만큼은 살의가 피어오르지 않는 천무린이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사천무관 내에서 퍼진 천무린의 별호가 ‘야차(夜叉)’라는 소문을 몸소 입증하고 말았다.
* * *
“……정말로 돈을 갖고 오셨구려.”
짤그랑.
“그런데 이건 좀 많은 것 같은…….”
두몽은 자신의 손에 쥐어진 돈주머니 속 제법 묵직한 금전에 고개를 갸웃한다. 자신이 받기로 한 금액보다 적어도 두 배는 될 듯했다.
“깽값이지.”
“깨, 깽값?”
툭, 툭.
몽둥이로 여기저기 꾹꾹 눌러 가며 몸을 푸는 천무린이었다.
그러면서 겸사겸사 지는 해를 바라보며 감상에 젖은 표정을 지은 채 말한다.
“거, 패기 딱~ 좋은 날씨네.”
“패, 팬다고? 누굴 말이오?”
두몽의 말투가 왠지 조심스러워졌다. 그러자 호위 무사 두소가 조용히 한 걸음 나서며 천무린을 경계하는 듯한 자세를 잡았다.
“이미 깽값을 받았으니 따악 그 깽값만큼만 맞읍시다.”
그러더니 천무린은 서 있던 땅바닥을 박찼고, 신혁건과 황태, 송무, 설화린이 미처 말릴 새도 없이 그대로 공간을 접었다.
다가오는 천무린을 향해 검집째로 두소가 검을 들어 휘둘렀으나.
‘……사라져?’
운룡대팔식을 펼치면서 공간을 접어 버리고, 순식간에 두몽의 앞에 나타난 천무린은 씨익 웃었다.
“아까 뭐라 했더라?”
퍼어어억!
“이…… 어린노무 새끼가!”
그대로 혼절하는 두몽이었다.
고작 사람을 패기 위해 펼치는 곤륜의 운룡대팔식과 개방의 타구봉법이었다.
퍼억! 퍼억! 퍼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