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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무신, 무림학관을 제패하다-54화 (52/250)

제54화

제54화

“……제, 제발 살려 주세요.”

성한 곳 하나 없이 눈물 콧물 범벅이 된 사내 하나가 무릎을 꿇고 천무린의 바짓가랑이를 잡은 채 빌고 있었다.

나 참, 왜 저런대?

“누가 죽인대? 말만 하라니까.”

“그러니까 무엇을 말하면 되는지…… 말씀해 주셔야.”

아, 그걸 말 안 했나?

“낙양 뒷골목 대가리가 누구야?”

원래 모든 도시에는 뒷골목, 즉 암흑가가 있기 마련이다. 화려한 도시일수록, 대규모의 도시일수록 암흑가의 규모도 클 가능성이 아주 농후하다. 빛이 밝으면 밝을수록 그림자도 큰 법이니까.

“예?”

“아직 귓구멍이 덜 열렸나 보네.”

내가 주먹을 들어 올리자, 사내가 파르르 떨며 크게 소리쳤다.

“쥐, 쥐소굴입니다!”

“쥐소굴? 이름이 뭐 그래?”

사람 이름이 쥐소굴이라니, 거 참.

“이, 인물의 이름이 아니라 낙양의 암흑가를 주름잡는 단체의 이름입니다…….”

거무죽죽한 입술을 바르르 떨던 사내는 이제 다 말해 줬으니 제발 살려 달라는 표정으로 바라본다.

그 모습을 송무와 설화린은 뒤에서 입을 쩍 벌린 채 보고 있었다.

“……입장이 서로 바뀐 거 같지?”

“아마 지금 뒷골목에 진출해도 하루아침에 접수 가능할 거 같은데요?”

누가 왈패고, 누가 정파를 대표하는 삼대 무관의 후보생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자자, 진정해, 진정해.”

천무린은 부드러운 손길로 사내의 머리를 어루만졌다.

“당연히 살려 주지.”

“가, 감사합니다!”

사내는 드디어 살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만면에 화색을 띠었다.

그 반응에 송무와 설화린이 고개를 저었다.

“진짜 야차나 다름없다, 그렇지?”

“……악 교관님은 아무것도 아니었어요.”

“악 교관님은 양반이었지.”

“정말 악 교관님께 미안하다고 말씀드리려고요.”

두 사람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천무린은 사내의 머리를 쓰다듬다 말고 조용히 말했다.

“살려 주는데…… 그래서 어떻게 간다고?”

“……예?”

“예가 아니라 대답해야지?”

흐뭇하게 미소를 짓고 있는 천무린의 모습에 사내가 고개를 들다 말고 우물쭈물한다.

그 반응에 천무린은 사내의 머리를 여전히 쓰다듬었다.

“허허, 말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

“그, 그게 쥐소굴에 대해서 말하는 순간 낙양 땅에서는 더 이상 살아갈 수가 없기 때문에 한 번만 양해를…….”

“아아, 그렇지? 낙양 땅에서 살아갈 수가 없구나?”

나는 씨익 웃으며 사내의 머리를 계속 매만졌다.

“괜찮아, 괜찮아. 내가 다른 데는 다 팼는데 머리는 남겨 놓은 이유가 여기에 있지.”

“예?”

“아니야. 말하기 싫음 안 해도 돼. 일단 뚝배기부터 깨지고 시작하지 뭐. 하하.”

머리를 매만지던 손길이 뚝 하고 멈췄다.

그러자 고개를 들던 사내는 자신의 눈에 들어오는 거대한 주먹에 놀라 소리쳤다.

“으아아! 아, 알려 드릴게요오!”

자신도 모르게 살고자 튀어나온 말에 그 거대한 주먹은 바로 눈앞에서 딱 하고 멈췄다.

그리고 천천히 주먹이 펴지는가 싶더니 다시금 사내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하하, 진작에 그랬어야지. 왜 그랬어? 나쁜 짓할 뻔했잖아. 그렇지?”

“예, 예…….”

어무이 아들이 평생 나쁜 짓을 했다고 이런 천벌을 받는가 봅니다.

사내는 눈물을 주르륵 흘리며 쥐소굴에 대한 이야길 줄줄 읊을 수밖에 없었다.

“……와, 진짜 사악하다.”

“저 인간이 대체 왜 이리로 왔을까요? 사파인이었으면 아마 지금 최고의 후기지수로 인정받았을 것 같은데 말이죠.”

“에이, 그거 사파인들한테 너무 미안한 말 아닐까?”

“……앗, 제가 실수했네요.”

무엇이 실수란 말인가.

송무와 설화린의 대화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해맑게 웃었다.

“자, 가자! 우리 돈 찾으러.”

* * *

콰아앙!

발라당 넘어진 공야찬은 눈앞에 펼쳐진 이 광경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그가 비록 육중한 덩치에 말도 안 되는 살집을 갖고 있다곤 하지만 무공을 익힌 지 수십 년이다.

근데.

‘막을 수가 없어?’

발차기 한 방에 이렇게 나가떨어지다니.

공야찬이 벙찐 반응을 보이고 있는 와중에, 정신을 차린 조수강이 황급히 달려들어 손을 갈고리 모양으로 꺾으며 천무린의 목덜미를 낚아채 제지하려 했다.

“이놈이 어디서 행패냐!”

그의 금나수는 낙양 암흑가에서도 일절로 쳐줄 만큼 뛰어남을 자랑했다.

자신만만한 손길로 천무린의 옷을 낚아채어 그대로 엎어뜨리며 제압할 수 있을 거라고…….

“으아아아아!”

응?

우드득!

뻗어 가던 조수강의 손목이 천무린에게 잡혀 되레 뒤틀려 꺾였다.

“끄으아악!”

눈가의 실핏줄이 다 터질 만큼 극심한 고통에 절로 비명이 터져 나왔지만,

“시끄럽게!”

손목을 그대로 끌어당긴 천무린은 가볍게 도약하며 무릎을 들어 올렸다.

콰직!

단단한 무릎이 조수강의 턱에 박히며 그는 그대로 비명을 지르다 말고 기절해 버렸다.

“……이게 무슨?”

2수 만에 쥐소굴에서 무공 2인자인 조수강을 단숨에 제압해 버리는 모습을 공야찬은 그저 넋 놓고 바라만 봤다.

심지어 자신의 모습은 어떠한가.

방심을 했다고는 하지만, 늘 품속에 비수 한 자루와 기습에 대한 대비를 하며 살아가야 하는 비정한 강호에서 이런 꼴을 당한 건 그저 핑계이자 변명만 될 뿐이었다.

‘그러니까 이게 지금 무관의 후보생이 펼칠 수 있는…… 무위라고?’

공야찬은 삼대 무관과 각별한 사이다.

삼대 무관은 공야찬의 존재를 모르겠지만, 공야찬은 삼대 무관을 아주 잘 안다. 삼대 무관의 비무대회 덕에 먹고산다고 할 수 있을 정도이니 삼대 무관을 아주 잘 알 수밖에.

그래서 삼대 무관의 수준 역시 잘 알고 있다. 생도들의 평균치가, 후보생들의 능력치가 대략 어느 즈음인지 말이다.

아마 공야찬보다 삼대 무관의 수준을 잘 아는 이는 손에 꼽을 정도일 것이다. 삼대 무관의 관계자가 아닌 이상.

그런 그가 봤을 때 이건.

‘……상식을 벗어난 수준이 아닌가?’

삼대 무관의 생도가 갓 되었을 때의 수준은 대략 일류 초입이다. 제아무리 불세출의 천재라고 할지라도 일류의 극의에 미칠 수 있을까 말까 하는데.

‘흡사 절정의 경지에 도달한 이의 움직임처럼…….’

“뭔 생각을 그리해?”

손목을 우둑우둑 꺾어 가며 다가오는 천무린이었다.

음성이 싸늘하기 그지없었다.

“……왜, 왜 이러시오. 내게?”

공야찬은 그를 처음 본다.

난생처음 보는 그가 이리도 자신에게 적의를 드러내는 것이 도통 이해가 가질 않았다.

“뭐, 뭣 때문인지 말을 해 주시오!”

“……맞는데 이유가 필요한가?”

그 말에 공야찬의 입이 딱 벌어졌다.

흑도 사파의 무리도 이리 이유 없이 사람을 개 패듯 패진 않는다. 다짜고짜 문짝을 부수고 쳐들어와서는 날아차기를 하질 않나, 사람을 때려서 기절시키질 않나.

“일단 맞고 시작하자. 자, 어디 보자.”

나는 주변을 둘러봤다.

“어디 괜찮은 놈이……. 오, 저깄다.”

방 한구석에 놓여 있는 몽둥이를 손을 뻗어서 잡았다.

“뭐, 뭐 하는 거요?”

“응? 보면 몰라? 몽둥이 잡잖아.”

천무린의 말에 흔들리는 동공을 한 채 공야찬은 입술을 부르르 떨었다.

“그, 그러니까 그걸로 대체 뭘 하려는 거냐는…….”

“응? 그것도 보면 몰라? 패려는 거잖아. 원래 개XX들 팰 때는 몽둥이만 한 게 없거든. 너도 들어는 봤지? 개방의 거지새끼들이 왜 타구봉으로 맨날 사람을 두들겨 패는지.”

개방의 일절로 평가받는 타구봉법(打狗棒法).

단순하기 그지없는 이 타구봉법은 총 36가지 초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타구봉법은 극히 기기묘묘한 변화를 자랑할 뿐 아니라 쾌(快)의 묘리까지 담은 강력한 초식을 자랑한다.

그러나 어원을 풀어 보면 그 뜻이 굉장히 단순했다.

개를 패는 봉법.

왜 개를 패는 봉법이냐?

거지가 동냥할 때 가장 위협적인 존재가 덤비는 개라서 개를 쫓기 위해서였다. 다만 문제는.

상대가 개가 아닐 시인데.

“즉, 개XX들을 팰 때도 타구봉법을 쓴다고 하지.”

개가 아닌, 개 같은 놈들에게 아주 적합한 무공인 셈이다.

공야찬이 부들부들 떨리는 지방 덩어리를 주체하지 못한 채 뒤로 조금씩 물러났다.

“나한테 왜 이러는 것이오?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잘못? 여기가 낙양 암흑가의 대장 격인 곳이라며?”

“그, 그렇소만, 그게 무슨 잘못이란 말이오?”

“쯔쯧.”

나는 혀를 차며 몽둥이를 손에 쥔 채 이리저리 돌리며 손에 익도록 움직였다.

“그러니까 아랫놈들도 보살폈어야지. 그저 욕심만 많아서는 아주 자기 배 부르는 데만 급급해서 말이지.”

“그게 무슨…….”

“아니, 됐고!”

나는 몽둥이를 들고 그대로 땅을 박찼다.

그러고는.

빠아악!

그대로 뚝배기를 깨 버렸다.

퍼억! 퍼억! 퍼억!

이어지는 난타는 기기묘묘한 소리를 냈고, 복날에 개 잡듯이 마구 두들기는 몽둥이였다.

“왜 거지 놈들이 타구봉법을 펼치는지 몰랐는데, 손맛이 아주 좋네. 손맛이.”

그렇게 개방의 타구봉법이 재현되는 순간이었다.

퍼억! 퍼억!

공야찬은 정신이 아득해졌다.

얼마나 변화무쌍한지, 손을 휘적거리고 양손을 뻗어 천무린의 움직임을 제지하려 했으나.

“소용없다, 이놈아! 그냥 처맞아!”

옷깃조차 스치지 못하고 그저 두들겨 맞을 뿐이었다.

“네가 뭘 잘못했는지 한번 생각해 보자꾸나!”

“끄륵, 끄르륵.”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또 다른 이가 있었으니.

“딸꾹!”

“응? 뭐야, 한 명 더 있었네?”

스윽 하고 훑어보자, 사내는 손사래를 치며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나, 나는 아니오!”

“뭐가 아니란 거지?”

“나는 이들과 일행이 아니오. 오, 오늘 처음 본 이들이오.”

원방현이었다. 그의 말은 진짜였다.

오늘 첫 쥐소굴 방문이었고, 비무대회에 처음으로 투기하고자 들어온 것이었으나 엄청난 광경을 보고 저도 모르게 딸꾹질이 나왔던 것이다.

약관도 안 된 청년이 펼치는 한 수, 한 수가 눈이 다 어지러울 정도였다.

이게 당최 있을 수 있는 일일까.

‘이게 삼대 무관 생도의 수준이라고? 그것도 삼대 무관 중 가장 약하다고 평가받는 사천무관의 생도가?’

원방현은 그간 자신이 생각했던 선입견이 뿌리째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이토록 강하다니.

“끄르륵.”

그 와중에 공야찬은 그만 기절해 버렸다.

“에이, 뭐 이리 약해?”

공야찬을 한동안 두들기던 천무린이 원방현을 바라봤다.

“뭐 해?”

“에, 예?”

천무린의 불량스러운 눈빛이 원방현을 직시하며 흐뭇하게 웃고 있다.

“안 오고? 내가 가 줘?”

“아, 아니. 나는 일행이 아니…….”

“그걸 내가 어떻게 믿고!”

천무린은 그대로 몸을 날렸고, 원방현은 등 뒤에 있는 검을 미처 뽑을 새도 없이 도달한 그의 몽둥이에.

“……원시천존이여.”

다시는 암흑가에 발을 들이지 않겠다고 맹세하는 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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