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3화
제53화
“이런 미친놈들을 봤나. 돈도 없이 여길 기어 들어와?”
두몽이 기가 찬다는 표정으로 다섯 명을 쭉 훑었다.
“허, 나 참.”
옷소매를 걷으며 역팔자로 꺾은 두 눈썹으로 역정을 내는 그를 보고도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본래 같으면 무슨 개뼈다귀 같은 소릴 하느냐며 양손에 금은보화를 쥐어 주고 그의 뚝배기를 깨뜨렸을 것이다. 어디서 감히 망발을 하느냐고.
괴리감이 들었다.
여태 돈이 부족해 본 적이 있었나. 돈이 부족해서 남에게 험한 말을 들어 본 적이 있었나.
내 개인 비고에는 늘 금은보화며, 기보며, 무가지보에 번쩍거리는 병장기들이 굴러다녔다. 남들은 가지지 못해 안달이던 것들을 걷어차며 놀았던 때가 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아마 순위를 매길 수는 없겠지만, 그 재산을 놓고 보면 천하에서 손꼽히는 부자였지 않았을까.
애당초 나는 싸움광이었지 돈에 신경을 써 본 적이 없었다. 어딜 가도 내 옆에 붙어 있던 수족 놈들이 알아서 다 해결했지. 천마신교 내에서는 재무관에서 자금을 관리했었으니까.
그뿐 아니라 다시 태어나도 여태까지 무관에서 좋은 옷, 좋은 음식을 먹었으니 딱히 돈에 대한 갈망은 없었는데.
그랬는데.
“어린노무 새끼들이!”
힘줄이 빡 하고 솟은 두몽이 근육 한 점 없는 팔뚝으로 고래고래 소리치는데 어째 주눅이 들었다.
“어디서 나쁜 것만 배워 가지고! 어? 이래서 사천무관 놈들이 매일 꼴찌를 면치 못하는 게지! 인성은 안 가르치고 말이야!”
사천무관까지 들먹이네.
그런다고 나랑 크게 상관은 없는데, 괜스레 빙긋 미소를 짓게 되네?
힘이 들어갔지만.
「절대 사고 치지 마라. 부디 숙소 잡고 그 안에 가만히 있어라. 제발 부디!」
악교운의 신신당부에 내가 무슨 어린애냐며 큰소릴 쳤는데, 괜히 사고 치면 자존심 상하는 일이잖아.
그렇게까지 말했으니 한 번은 넘어가 준다.
그러면서 넘어가려고 했는데.
“여하튼 어린노무 새끼들이 암만 세상 물정을 몰라도 그렇지. 어쩐지 책임자 한 명 없이 달랑 애새끼들만 보낸다 싶더라니, 쯧쯧.”
허허.
어린노무 새끼들이라.
누가 평소에 자주 쓰던 말인 거 같은데……?
아, 나구나?
찔리는 탓에 나는 최대한의 인내를 발휘해 흐뭇하게 웃었다. 아주 흐뭇하게.
그리고.
후우웅!
따아악!
이마에 딱밤을 맞은 당사자는 고개가 뒤로 팍 하고 넘어가더니 그대로 벌러덩 자빠졌다.
“끄으아악!”
송무는 이어지는 격통에 두 손으로 이마를 부여잡고 땅바닥을 굴렀다.
나는 흐뭇한 미소를 유지한 채 최대한 웃는 낯으로 두몽을 바라봤다.
“……허허, 돈을 구해 오겠소. 반나절만 기다려 주시겠소?”
그 말에 두몽은 벌러덩 넘어져 눈물이 맺힌 송무를 힐끔 쳐다본다. 이마에 딱밤 하나 맞고 뭐 저리 난리를 친단 말인가.
그것도 고작 어리디어린 청년이 때린 딱밤이 아프면 얼마나 아프다고.
“개소리를 어디……!”
당장 한마디를 하며 큰소리를 치려는 찰나,
두몽의 뒤에 서 있던 호위 무사 중 가장 직급이 높은 이가 한 걸음 나서더니 포권을 취했다.
척!
“그렇게 해 주신다면 저희도 기다리겠습니다. 단, 오래는 기다리지 못합니다.”
“……뭐, 뭣!”
두몽이 무슨 헛소릴 하느냐며 제 호위 무사에게 말하려는 순간,
“그럼 이만!”
나는 호위 무사에게 가벼이 목례를 하고는 송무의 뒷덜미를 낚아채고 돈을 훔쳐 간 놈을 찾으러 뛰어갔다.
“이 개XX들, 잡히면 뒈질 줄 알아. 감히 내 것을 탐해? 다 뒈졌어!”
불같이 화를 내는 천무린의 모습을 보고 두몽이 손을 뻗어 잡으려다 말고 자신도 모르게 딸꾹질을 했다.
“딸꾹!”
뭔 어린놈의 기세가 저리도 살벌하단 말인가.
그러다가 말고 자신의 행동을 제지한 호위 무사에게 눈에 쌍심지를 켜며 바라보는 두몽이었다.
“……두소! 네가 감히!”
“죄송합니다, 두 상단주님.”
담백하게 고개를 숙이는 호위 무사 두소의 말에 두몽은 가벼이 한숨을 내쉬었다. 단 한 번도 헛짓거리를 한 적이 없는 두소가 아닌가.
“대체 연유가 무엇이냐!”
“…….”
“내 너를 한두 해 보느냐. 쓸데없는 짓을 할 리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다만 네가 왜 그리 나서서 저 아해들의 편의를 봐주었는지 그 이유를 알아야겠다.”
그 말에 호위 무사 두소가 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고 무거운 입술을 뗐다.
“실은.”
두몽이 지그시 호위 무사를 바라봤다.
“저 청년은 감히 제가 범접할 수 없었습니다.”
응?
두몽이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눈썹을 모았다.
“……소상히 말해 보라.”
“자기 동료에게 펼치는 손속을 제 두 눈으로 따라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움직임이 좀 빨랐던 것 같기도 한데.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두소가?
“자네, 그게 무슨 뜻인지 알고 하는……?”
“나름 낙양에서 이름 꽤나 날린다고 하는 수많은 고수들을 숱하게 봐 왔으나, 그런 고절한 수법은…….”
그 뒷말을 굳이 잇지 않는 두소였다. 그도 무사였기에 제 못난 것을 계속 떠들어 봐야 제 낯짝에 침 뱉기밖에 더 되겠는가.
그게 즐거울 리 없었다.
그 말에 두몽의 두 눈은 깊어졌다.
두몽은 이기적이고 욕심 많은 상인이다. 돈만 보면 눈이 돌아가는 그였고, 돈이 되지 않는 일이면 극히 혐오하는 인물이었다.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겪으며 이 험난한 낙양 땅에서 자리를 잡는 데 성공했다.
돈 냄새에 반응하는 감각이 기가 막히게 발달했지만, 그래도 살아남기 위해서 적절한 무력 역시 필요한 법.
낙양 땅에서 자신의 상단을 지키기 위해 고용한 호위 무사들이었지만, 그중 두소는 가장 믿을 만한 인물이었다.
출중한 실력도 실력이었지만, 입이 천금처럼 무거웠고 자신의 책임을 다하는 모습에 두몽은 그를 항시 옆에 두었다.
그런 그가 방금 자신이 소리친 어린 청년에 대해 이런 이야기를 하다니.
코끝에 돈 냄새가 진동한다.
그렇게 천무린이 사라진 자리를 두몽은 그저 바라볼 뿐이었다.
* * *
송무의 멱살을 잡고 흔들어 젖히고 있는 나를 진정시킨 건 신혁건과 황태였다.
“오늘 초상 치를 일 있냐, 친구?”
“이런다고 상황이 나아지진 않아.”
답답한 건 두 사람도 매한가지겠지만, 어쩌겠는가.
그 말을 들은 나는 컥컥거리는 송무의 멱살을 놓았다.
“기억 못 해내면 너 죽고 나 죽는 거야.”
그저 송무를 바라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그 모습에 소름이 쫙 돋은 송무는 황급히 머리를 굴려 봤지만, 어쩌겠는가.
당장 생각이 나질 않는 것을.
“아마 낙양에 들어와서 처음부터 모든 것을 의심해 볼 법해요. 지금 여기 인파가 너무 많잖아요.”
설화린이 주변을 쭉 둘러보며 제법 냉철한 목소리로 이야길 이어 갔다.
“성문을 통과한 순간부터 저잣거리를 지나쳐 두 상인을 만나기 전까지 모든 순간을 의심해야 할 것 같아요.”
“……그 전에 잃어버렸을 가능성은?”
그 말에 설화린이 고갤 저었다.
“저도 낙양 땅에 들어와서 신경을 못 썼지만, 그 전에 머물던 마을 숙소까지도 잔금 치를 때 제가 같이 확인했어요.”
“응?”
그 말에 내가 설화린을 바라본다.
내가 빤히 바라보자, 설화린이 마주 본다.
“왜, 왜요? 왜 빤히 바라봐요?”
당황해하는 그녀에게 다가가 내가 몸을 숙여 그 눈을 직시했다.
그 모습에 설화린의 볼에 홍조가 피어오르더니 내 눈을 피하며 입을 오물거린다.
“여, 여기서 이러시면…….”
설화린의 얼굴을 감싸려 드는 듯한 손길에 그녀는 그만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따아악!
“꺄악!”
이마가 부서질 듯한 격통에 설화린은 그 자리에 주저앉으며 비명을 질렀다.
“돈 관리를 같이하고 있었는데, 여태 혼자 쏙 빠져나가 송무의 책임인 척한 거야? 어허, 이거이거 날 속이려 들다니. 쯔쯧!”
그런 내 말에 옆에서 지켜보던 신혁건과 황태가 입을 쩍 벌렸다.
“무슨 저딴 미친놈이.”
“……돈 관리 안 하겠다고 말한 게 정답인 거 같은데.”
설화린이 이마를 부여잡으며 천무린과 드잡이를 하고 있는 와중에, 황태가 조용히 고갤 돌려 풀이 죽어 있는 송무를 바라봤다.
“정말로 기억나는 게 하나도 없는 거냐?”
송무가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게…… 아무래도.”
“응?”
“저잣거리에 들어갔을 때 누군가랑 부딪혔던 기억이 있어. 너무 순식간이라 제대로 보진 못했지만, 우리보다 어린 소년이었던 것 같아.”
그 말에 황태와 신혁건이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괜찮은 단서인데? 고작 한두 번으로 멈추지 않을 테지.”
“아마, 저잣거리에 지학(志學)쯤 되는 소년들을 위주로 찾아보도록 하자.”
그렇게 두 사람이 상황 정리를 하고 천무린과 설화린을 돌아보는데.
“야야야! 내 머리 다 뜯겨!”
“그게 무슨 상관인데!”
천무린의 머리채를 다 뽑겠다는 듯 매섭게 달려드는 설화린의 모습에 그만 혀를 내두르는 두 사람이었다.
“그냥 우리끼리 갈까?”
“그러자고. 더 지체할 순 없으니.”
“송무, 일단 우리가 먼저 움직이고 있을 테니 반나절 뒤에 아까 두 상인을 봤던 그 자리에서 만나자고.”
그 말에 송무가 고개를 끄덕인다.
“미안해. 나 때문에 쉬지도 못하고.”
“됐다. 그깟 일로 뭘.”
“너무 풀 죽지 마라.”
그러곤 황태와 신혁건은 금방 저잣거리로 사라졌다.
“후우…….”
사라진 두 사람의 모습에 미안함이 담긴 한숨을 내뱉고 있는 와중에.
“아악! 미안해! 미안하다고!”
“죽어! 죽어! 어디 다 큰 아녀자의 이마에!”
“아아악!”
두 사람의 드잡이는 끝이 보이질 않았다.
“후우…….”
다른 의미에서 한숨이 절로 나왔다.
드디어 두 사람의 드잡이가 끝나고 머리를 매만지며 겨우 살린 모발에 안도의 한숨을 내쉰 후 송무의 말을 듣는 천무린이었다.
“뭐? 저잣거리?”
“응. 두 사람은 먼저 떠났어.”
“의미 없는데. 어차피 그 돈은 소매치기 놈들의 수중에 있을 리 없지.”
천무린의 말에 설화린과 송무가 고개를 갸웃한다.
“응?”
“지들이 원해서 그런 짓을 하는 놈들도 더러 있겠지만, 대부분은.”
천무린은 고개를 저으며 암흑가의 더럽고 치사한 짓거리들을 떠올린다.
“어지간하면 윗대가리 놈들이 있지. 그런 돈을 한 푼, 두 푼 모아서 암흑가를 굴리는 법이거든, 원래.”
“그럼…… 어떻게?”
“뭘 어떻게? 대가리를 찾아가서 쥐어 패면 그만이지.”
나는 그때부터 뒷골목을 전전했다.
그리고 튀어나오는 왈패들이나 건달들을 볼 때마다.
콰앙!
퍽! 퍽퍽! 퍽!
일단 패고 시작했다.
그렇다.
일단 패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