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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무신, 무림학관을 제패하다-51화 (49/250)

제51화

제51화

“……벌써 때가 왔군그래!”

“자자, 모두들 쥐소굴로 모이자고.”

중원 무림에는 강호인들만 자리 잡고 있는 게 아니다. 수많은 기인이사들과 각양각색의 인물들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곳에서 목적과 목표가 남다른 이들도 꽤나 많았다.

특히,

“매년 이런 기회가 있을 때마다 어찌나 반가운지. 거기다 올해는 무려 걸 수 있는 자금력도 두 배가 아닌가.”

“크크, 이럴 때가 아니면 언제 크게 한탕 해 먹겠나? 여기에 제법 큰손들이 많으니까 말일세.”

“당연하지. 여긴 출신도, 소속도, 이름도 그 어느 하나 명확한 게 없지 않은가.”

후덕하니 두툼한 살집을 지닌 사내가 줄줄 땀을 흘리며 껄껄 웃는다. 이 어둡고 탁한 공간이 답답하기 짝이 없을 텐데도 꽤나 익숙해 보인다.

“우리 같은 투기꾼들이야 그런 사람들이 많을수록 좋지 않겠나. 어차피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인생.”

“무슨 소린가. 작년만 해도 여기서 한탕 벌어 간 백정 놈이 떼부자가 돼서 호의호식한다는 말도 못 들었는가.”

“그건 또 어떻게 아는가?”

“이보게, 내가 여기서만 오 년 넘게 굴렀네. 그 정도 눈도 없으면 나가 뒈져야지. 에헴.”

무엇이 자랑인지 모르겠으나, 두툼한 뱃살을 두드리며 거들먹거리던 사내는 떠벌리다가 말고 자신에게 다가오는 말상의 사내를 바라봤다.

퀭한 두 눈, 푸석한 피부와 메마른 입술, 거친 손등으로 보건대 평탄한 삶을 살아온 것 같지 않은 사내의 모습을 지그시 바라보던 후덕한 인상의 사내가 혀를 찼다.

“거, 보아하니 제법 칼밥 좀 먹은 듯한데 어쩌다 이리로 온 게요?”

“……암흑가에서 쥐소굴이라 하면 알아주더구려. 이번 판이 그리도 크다며 말이오.”

그 말에 후덕한 인상의 사내와 땅딸막한 사내는 서로를 바라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여기 작디작은 친구는 조수강이라고 하고, 나는 공야찬이라고 하외다.”

후덕한 인상의 사내는 본인의 이름을 공야찬이라고 소개하고 말상의 사내를 바라봤다.

“나는 원방현이라 하오. 근데 이번 판이 그리도 크다고 소문 듣고 왔으나, 소문난 잔치에 먹을 거 없다고 고작 약관도 되지 않은 이들의 싸움에 누가 그리 큰 판돈을 걸겠소?”

원방현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말상의 사내는 냉소적인 얼굴이었다.

원방현은 이미 몇 년이나 암흑가를 전전하다시피 굴러먹던 이였다.

비무대회에 거는 투기판이 크면 얼마나 크겠나. 고작 아이들이 칼 들고 싸우는데.

“……허 참, 그거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소리를 참으로 쉽게도 내뱉으시오.”

같잖다는 듯 바라보던 공야찬이 혀를 찼고, 조수강이 이어서 기가 차다는 듯 말한다.

“근 8년 동안 들은 개소리 중에 가장 어이없는 말이 아닐 수 없구려.”

그 말에 원방현은 등 뒤에 메고 있던 검 손잡이를 낚아채듯 잡으면서 표정을 굳힌다.

“날 모욕하는 겐가.”

강호의 세계는 비정하다. 별것 아닌 일에도 목숨을 걸고 싸우기까지 하는 이 비정한 강호에서 누군가에게 함부로 말을 뱉는다는 것은 언제든 내 목을 걸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하는 일이었다.

누구라도 참을 수 없을 터.

원방현의 손아귀에는 조금씩 힘이 들어갔다.

재빠른 손속은 그가 한가락 하는 무인임을 드러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야찬과 조수강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아니, 못 움직인 것일지도.

아무튼.

“가르침을 주는 게지. 이 비무대회의 투기판 참여는 처음인 거겠지.”

“……그렇다면?”

공야찬이 게슴츠레 눈을 뜬다.

사실 게슴츠레 눈을 뜰 것도 없이 평상시에도 게슴츠레한 눈이었다. 눈가에 덕지덕지 붙은 살로 인해 두 눈동자를 제대로 볼 수 없을 정도였지만.

“이유는 안 봐도 알겠구먼.”

공야찬의 말에 원방현은 콧방귀를 뀌었다. 그리고 검 손잡이에서도 손을 뗐다.

뭘 안다는 말인가.

겉보기에 그럴싸한 말만 늘어놓는 것이 사기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듯 보였다. 더 이상 시간 낭비를 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 자리에서 일어나 돌아서는 원방현의 뒤로 들리는 목소리.

“어디 아픈 구석이 있거나 처자식을 먹여 살리느라 궁핍한 모양이야.”

그 말에.

파르르.

원방현은 그대로 발걸음을 멈추고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

고개를 뒤로 돌려 마주한 공야찬의 눈빛이 마치 황궁의 감찰어사처럼 매섭게 빛났다.

그리고 그것은 곧.

“어찌 안 게요?”

“척하면 착. 이제 내 이야길 들을 준비가 된 건가.”

공야찬은 빙그레 웃었다.

그 말에 원방현은 다시 몸을 돌려 조금은 달라진, 아니 공손해진 자세로 공야찬과 마주했다.

“먼저 말할 것이 있소이다. 여기까지 흘러 들어온 것을 보면 본래에 있던 암흑가 도박장이나 투기판에서 죄다 빠그라졌을 테지. 안 그렇소?”

공야찬의 말에 원방현은 침묵을 지키다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인다. 어떻게 알았냐는 눈빛으로.

“……맞소. 근래에 급격하게 죄다 무너지기 시작했지.”

“그 이유를 생각해 본 적 있소?”

조수강이 덧붙인 물음에 원방현은 눈가를 좁혔다.

“……설마, 이 비무대회 때문이란 말이오?”

“후후, 머리를 장식으로 달고 있는 건 아닌가 보구려.”

공야찬의 말에 원방현은 발끈할 새도 없이 이유가 궁금해졌다.

“대체 무엇이 그렇게 만든 것이오? 고작 어린 아해들의 싸움 구경이 그리도 도박판의 판도를 바꿀 수 있을 정도란 말이오?”

그 말에 공야찬은 쩝 하고 입맛을 다셨다.

“본래 같으면 내 이런 귀한 정보를 맨입으로 주는 경우는 없는데, 거 따게 되면 꼭 은혜를 갚아야 하오. 아시겠소?”

능구렁이 같은 발언에 고개를 열심히 끄덕거리는 원방현이었다.

“애초에 빛이 있어야 어둠이 있는 법 아니겠소? 잘 생각해 보시오. 암흑가는 대다수 양지에 존재하는 상단과 표국, 수많은 범죄자들이 옳지 않은 자금력으로 만들어 낸 새로운 시장에 불과하지.”

두툼한 뱃살을 가진 공야찬은 말을 많이 하는 것만으로도 힘에 부친 듯 마치 비가 쏟아지듯 땀을 뻘뻘 흘렸다.

“그런데,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를 위시한 상단과 표국이 지금 어떻게 되었소? 문파에 따라 움직이는 게 아니라 모두 지역 경제로 바뀌었지 않았소.”

공야찬의 말마따나 상단과 표국은 이익을 위해서라면 사천에서 산동까지 움직일 수 있는 작자들이었다.

그러나.

“그러하니, 굳이 구만리를 걸어서 움직일 게 아니라 각 지역에 위치한 무관의 성세에 따라 표국도, 상단도 움직이는 것 아니겠소. 그 무관 주변에 위치하기만 해도 알아서 콩고물이 떨어지는데 말이오.”

변했다. 삼대 무관이 생긴 이래로 어디서 어떻게 자금의 순환이 바뀌는지 알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무관의 성세를 정하는 것이 바로 삼대 무관의 비무대회요. 이제 좀 감이 잡히시오?”

……들으면 들을수록 놀랍다.

새삼 공야찬이 달리 보이는 원방현이었다.

“그렇군. 보통 암흑가라 함은 돈이 있는 곳에 자리를 잡기 마련인데, 무관의 성세에 따라 돈이 있는 곳이 달라지니 투기판도 자연스레 움직인다는 말이겠구려. 그에 따라 큰손들도 그리로 움직이고.”

그 말에 조수강이 고개를 끄덕인다.

“좀 굴러먹었다 싶었더니 제법 이해도가 빠르시오.”

“……후, 좋소. 나도 그 판에 참여하고 싶소.”

원방현의 말에 공야찬은 씨익 웃으며, 자세히 보지 않으면 보이지도 않을 턱짓으로 살을 출렁인다.

“응?”

“다양하오. 원하시는 대로.”

“……각 무관마다 대략적인 정보라도 사고 싶구려.”

그 말에 조수강이 슬쩍 일어나며 눈을 빛냈다.

“제법 비쌀 텐데. 어디 보자, 사천무관에 대한 정보가 대략 10은자…….”

“10은자? 너무 비싼 거 아니오?”

“후후, 우리 목숨값이오. 어디 무관에서 이런 정보를 그냥 던져 주는 줄 아시오? 각 무관에다가 정보원들을 심어 놓고 간헐적으로 정보를 뜯어내기가 어디 그리 쉬운 줄 아느냔 말이오. 거기다 이 정보로 인해 더 큰 수익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10은자가 뭐 그리 대수겠소.”

음식을 만드는 숙수의 보조, 하다못해 무관에서 나오는 대량의 폐품과 쓰레기를 처리하는 청소부 등 정보원들을 심어 놓고 그들에게 흘러간 돈만 생각해도 아찔할 정도다.

하지만 그만큼 다시 회수할 수 있다.

자신만만한 조수강의 미소에 원방현은 도망갈 수 없는 늪에 빠진 듯한 착각이 들었다.

……이거, 잘 온 거 맞겠지?

“좋소. 그렇다면 각 무관마다 내로라하는 인물들에 대해 들어 보겠소.”

“먼저 섬서무관 하면 소림, 화산, 종남, 제갈세가 등 명문가들이 즐비하오. 무관이 생긴 이래로 가장 많이 우승한 무관 아니겠소. 소림의 각원, 무당의 종리삭, 제갈가의 제갈강까지. 한 명, 한 명이 하늘이 낳은 걸출한 인물들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지.”

그 말에 원방현은 섬서무관을 구성하는 수많은 문파들의 이름에 그만 입을 떡 벌렸다. 구파일방 중에서도 수위를 다투고, 오대세가 중에서도 남궁가와 어깨를 견줄 만한 제갈가까지 포함돼 있다니.

벌써 승리는 따 놓은 당상 아닌가.

“다음으로 산동무관. 산동 하면, 역시 남궁가, 황보가, 하북팽가, 개방이 있지. 남궁가의 수많은 후기지수들 중에서도 단연 손꼽히는 창천검존(蒼天劍尊)의 손자인 남궁호가 참가하고, 황보가의 황보궁, 하북팽가의 팽한월, 개방까지. 섬서와 비견하여도 절대 부족하지 않지.”

이쯤 되면 사천무관의 참가 인물들이 궁금해질 정도다.

각 무관들이 구파일방, 오대세가로 나뉘던 것은 정말 옛말이 되었는지 저리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으니 원방현은 사천무관까지 기대될 지경이었다.

“얼른! 얼른 사천무관도 말해 주시오!”

“음…….”

“응?”

반응이 영 시원찮다.

공야찬이 조수강을 바라본다.

“조가, 자네가 말해 주겠나.”

“크흠.”

조수강이 머리를 긁적이며 조용히 말했다.

“……사천무관은 듣지 마시오. 내 굳이 사천무관으로 정보를 팔고 싶지 않구려.”

그런 반응에 원방현이 고개를 갸웃한다.

“그게 대체 무슨 말이오? 사천무관은 뭐가 다르오?”

“에이, 그냥 사천무관은 정보 값도 안 받고 말해 주지. 사천무관은 사천당가, 공동파, 청성파, 아미파가 함께하고 있소. 다른 곳보다는 이름값이 부족한 곳이긴 하지만, 새외이궁의 인물들도 포함돼 있지.”

사천당가, 공동, 청성, 아미. 확실히 대표하는 문파들이 섬서나 산동에 비해서는 다소 이름값이 떨어진다. 다행히 그 부족한 부분을 새외 세력으로 메워 나름 균형을 맞춘 듯했다.

“그런데 뭐가 문제요?”

“워낙 허구적인 사실밖에 없어서 말이오.”

“허구적인 사실?”

원방현이 의아해하는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본다.

원래 정보라는 게 사실도 있지만, 허구도 대거 섞여 있는 법 아닌가. 잘 걸러서 듣는 것이 정보 수집의 핵심 중 하나인데, 그 정보가 얼마나 허구적이면 저리 반응한단 말인가.

“아니, 글쎄. 사천무관에서 이번에 참여하는 후보생들 중에 일류 극의에 다다른 인물이 있다지 않소. 거기다 명문정파의 비전절기를 남발하는 인물이 있다고.”

그 말에 원방현도 피식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정말 허구였네.

허구였어.

“에이, 귀를 씻어 버려야겠구려. 그런 정보 따윈 얼른 버려 버리시오. 괜히 정보를 사 간 사람의 기분만 더럽겠소.”

“그러니 내 공짜로 준다는 거 아니겠소. 허허.”

조수강은 품속에 있는 사천무관과 관련된 정보가 담긴 종이를 쭉쭉 찢어 버렸다.

촤르르.

그런 와중에.

쾅!

꽈드드득!

쥐소굴에서 하나밖에 없는 철문이 박살 나더니 그 안으로 한 인영이 뚜벅뚜벅 걸어 들어왔다.

“…….”

“응?”

공야찬은 떨리는 턱살로 걸어 들어온 인영을 바라봤다.

암만 봐줘도 약관도 채 지나지 않은 나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준수한 귀공자의 얼굴에다 탄탄하기 그지없는 체형이었다.

그러나 나타난 사내에 대한 호기심보다 당장 한 소리 하려던 공야찬은 청년의 무복에 그려진 ‘사천(四川)’이라는 표식에 그만 입을 꾹 다물었다.

“……사천무관?”

벌써 당도했단 말인가.

아니, 근데 왜 공간이 접히는 듯한 착각이.

부우우웅.

퍼어억!

육중한 공야찬의 가슴팍에 날렵한 발차기가 꽂히더니 그가 그대로 뒤로 넘어갔다.

콰다아앙탕탕!

“……허 참, 나 이 나이 먹고 돈 털려 보긴 처음이네. 여기서 기척이 사라졌던데, 빨리 내놔라. 다 죽여 버리기 전에.”

살기등등한 기세를 바짝 세운 채로.

딸꾹!

그 모습에 멈추지 않는 딸꾹질이 나온 조수강은 자신의 손으로 찢은 사천무관 정보가 적힌 종이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좀더 자세히 읽어 볼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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