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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무신, 무림학관을 제패하다-49화 (47/250)

제49화

제49화

사천검진을 익히는 데 필요한 시간은 단 하루면 되었다.

……어떤 놈이 미치고 팔짝 뛰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냥 때려치워! 때려치우라고! 다들 찌르고 있는데, 혼자 베고 있으면 뭐 어쩌자고?”

“아니, 눈이 없어? 보고도 못 따라 하는 거냐고.”

“하, 나 참. 무릎을 펴라고. 무릎을!”

바로 이렇게.

하루 온종일 소릴 고래고래 질러 대며 오십여 명이 넘는 후보생들 사이를 뛰어다니며 뚝배기를 깨거나 못하면 연무장을 몇 바퀴씩 뛰고 오게 시키질 않나.

툭하면,

“너도 양심이 있으면 저녁밥은 안 먹을 거지? 오늘 한 거 없잖아.”

“어휴, 나였으면 혀 깨물고……. 됐다. 됐어.”

매번 이런 반응에 후보생들도 이젠 너 죽고 나 죽자는 생각으로 임하게 되었다.

이른바 필사의 각오.

속 시끄럽지 않으려면 잘하면 된다.

잘하면 더 이상 속 시끄럽지 않아도 된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원리원칙이 서서히 후보생들의 마음속에 스며들었다.

서서히 독기가 차오르는 것이다.

여태 천무린을 만나기 전까지 이런 대우를 단 한 번이라도 받아 본 적이 있었던가.

야차 같은 악교운도 이렇게까지 한 적은 없었다.

그 어느 교관도 후보생들을 대할 때 이렇게까지 막무가내로 대한 적은 없었다.

그런데, 그렇게 믿었던 교관들마저 파견이라는 명목으로 떠났다.

그래, 살아남으려면 믿을 사람이라곤 자기 자신과 동병상련의 처지인 같은 후보생들밖에 없다.

악의 무리를 처단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지만.

힐끗.

“으갸갸갸갸갸!”

목검을 들고 마구잡이로 휘두르는데 조금이라도 행동 삐끗하면 귀신같이 달려들어 뚝배기를 깨는 저 악의 무리를 무슨 수로 처단한단 말인가.

그렇다.

그렇다면 살기 위해 발버둥치자.

덜 맞기 위해 발버둥치자.

그것만이 현존하는 유일한 생존 수단이다.

그렇게 후보생들은 스스로와 합의하고, 서로의 처지를 배려해 단합력을 키웠다.

“열심히들 하란 말이야.”

우적우적.

뭔가 씹는 소리가 나는 거 같은데?

우적우적. 촵촵촵.

“이거 맛있는데?”

육포였다. 선홍빛과 붉은빛이 어우러져 상태가 아주 좋다는 것은 세 살배기 아기가 봐도 알 터였다.

문제는 그것을 혼자만 먹고 있다.

저 개새…… 아니, 저 돼지 같은 놈이.

무관에서 지급해 주는 식사와 훈련 도중에 간단히 먹을 수 있게 지급되는 간식들은 최상급에 가까웠다.

각종 문파에서 후원을 해 주기도 하지만, 또 사천과 더불어 각 지역에 파견 나간 교관들과 생도들에게 주어지는 금전 역시 막대했다.

그러다 보니 지급되는 무복이며 무기이며 그 상태가 최상에 가까웠다.

그런데.

“……누려 본 지 얼마나 되었더라.”

“육포 맛이 그리워.”

“육포는 무슨. 우리가 근래에 밥도 하도 허겁지겁 먹어서 맛도 기억이 안 나.”

눈을 뜨면 훈련.

눈을 감기 직전까지 또 훈련.

쉴 새 없이 돌아가는 물레방아처럼 훈련에 매진, 또 매진이었다.

처음에는 죽을 것만 같던 그 훈련도, 이제는 제법 적응이 되다 보니 초창기 때처럼 곡소리가 나오진 않았지만.

“진짜 저 양심 없는 새끼.”

“천벌 받아 뒈질 놈.”

“육포가 목에 걸려 사레들리다 못해 영영 골로 가야 할 놈 같으니라고.”

독기가 차오르다, 차오르다 이젠 악담을 쉴 새 없이 퍼부을 정도가 된 후보생들이었다.

“우적우적, 이야! 팔자 좋다. 다들 떠들 힘도 남아 있고. 우적우적.”

제발 뭐라고 할 거면 입에 있는 거라도 다 씹고 말하든지!

안 그래도 배고파 죽겠는 후보생들인데 눈앞에서 저러고 있으니 침이 흐르다 못해 땅바닥에 뚝뚝 떨어졌다.

“이해해. 이해한다고. 좋아. 사천검진 한 번씩 펼쳐 봐.”

그 말에 후보생들이 굳은살 박인 손에 있던 목검을 땅에 내려놓으며 그대로 배를 깔고 누웠다.

“뚝배기 깨려면 깨든가. 난 이제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이 없어.”

대놓고 드러누운 신혁건을 따라서 백리무영, 당지운, 송무, 태강…… 모두 천천히 엎드리거나 엎어졌다.

“그래, 이 새끼야! 죽이려면 차라리 죽여라!”

“이젠 힘이 없어서 진짜 못 움직이겠다.”

“아마 선조님들도 우릴 이해해 주실 거야.”

무복이 더러워지든 말든 신경도 안 쓰는 후보생들의 모습에 흐뭇하게 웃은 나는 품에 쥐고 있던 육포를 흔들었다.

“허허, 사천검진을 펼쳐서 단 한 번이라도 내 옷깃을 건드리는 조에겐 내가 쥐고 있는 육포를 다 주겠다고. 그리고 오늘 이후 훈련은 면제시켜 주지.”

벌떡!

그 말에 언제 배를 깔고 누웠냐는 듯 후보생들이 번개처럼 일어났다. 힘이 없다고 소리치던 후보생들의 눈에 핏발이 섰다.

오로지 그들의 시선은 단 한 곳.

내 손에 잡혀 있는 육포들과 품속에 있는 육포들에 꽂혀 있을 따름이었다.

“그, 그거 진짜 주는 거야?”

“거짓말이면…….”

“내 평생 모든 걸 걸고.”

“저주하고 또 저주해서 삼대가 망하라고 원시천존에게 빌고 또 빌 거야.”

후보생들이 바들바들 떨며 메마른 입술로 나를 바라본다.

에이, 다들 속고만 사셨나.

“무슨 소리야. 나 그렇게 못 믿어?”

어, 못 믿어.

후보생들의 표정이 무슨 그런 당연한 소릴 하냐는 표정으로 바라보네.

크흠흠.

“여섯 명씩 9개 조를 짜는 거야. 시간은 일각씩 줄 테니 알아서 합을 맞춰 봐. 혹시 한 조가 아니라 여러 조가 날 건드릴 수도 있으니까 육포 좀 더 가지고 올게.”

기지개를 켠 천무린은 그렇게 육포를 가지러 갔고, 후보생들은 제각기 9개의 조를 짰다.

사라진 내 자리에 메운 것은 각자 조를 어떻게 구성하느냐는 궁리였다.

백리무영은 당연히 신혁건과 조를 구성하려고 했으나, 신혁건이 고갤 저었다.

“무영, 우리가 조를 짜는 건 좋은 자세가 아닌 거 같아.”

“어?”

신혁건과 백리무영이 서로를 바라보다가 후보생들을 쭉 훑는다.

“설마 그 녀석이 그리 깊은 생각을 갖고 이런 자리를 만들었으려고.”

그래, 설마?

그 말에 당지운이 조용히 입을 연다.

“혹시 모르지. 정말 그랬을지도.”

당지운까지 신혁건의 말에 힘을 싣자, 백리무영의 표정이 묘해졌다. 천무린은 단 한 번도 훈련장을 벗어난 적이 없었다.

당최 자신의 훈련은 언제 하는지 모를 정도로 자릴 비우지도 않고 늘 관리 감독하며 자세를 교정해 주고 후보생들을 후려치는 일에 여념이 없었다.

그런데 자릴 비웠다.

그것도 하필 제각기 사천검진을 구성하기 위해 조를 구성하는 시간 동안.

“……이상하잖아. 단 한 번도 자릴 비워 본 적이 없던 놈이야.”

“그리고 자기 자신이 욕먹는 한이 있어도 후보생들끼리는 다툴 틈 따위 주지 않을 정도로 단합에 신경 썼고 말이야.”

신혁건과 당지운의 말에 백리무영의 표정이 굳었다.

그리고 그런 세 사람과 달리,

“세 사람 뭐 해? 얼른 조 짜자. 이리 와.”

“의리 없이 너희끼리 조 짜지 말고 여기 와서 같이 궁리해 보자고. 누가누가 더 합이 좋은지.”

송무와 태강이 세 사람을 끌고 와 후보생들과 어울리게 했다.

“……너희들은 녀석이 이런 의도라는 걸 알고 있었던 건가?”

백리무영의 물음에 송무가 무슨 말이냐는 듯 고개를 갸웃한다.

“무슨 말이야?”

그 태도에 백리무영이 후, 하고 헛웃음을 짓는다.

“역시 아닌 거겠…….”

“무린이는 단 한 번도 우리에게 해가 되는 행동을 말하진 않아.”

“응?”

그런 송무의 말에 백리무영이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의아한 눈빛을 보냈다.

자연스레 설화린이 한마디 꺼냈다.

“저렇게 답이 없어 보이는 인간 군상이긴 하지만……. 여태 5년간 하지 못했던 일은 몇 개월 만에 이룬 사람이에요.”

“5년간?”

미간이 좁혀지는 백리무영의 의아함에 황태가 낮은 목소리로 읊조리듯 말했다.

“알다시피 5년간 우리끼리 싸우고 경쟁하기에 바빴거든. 힘을 합쳐 본 적은 없었지.”

황태의 말에 더하여,

“인정하긴 싫지만.”

백리후가,

“정말로 인정하기 싫지만.”

진무양이,

“짜증 나도록 열 받고.”

명진이,

“영영 높은 벽처럼 느껴지지만, 그래도 인정할 수밖에 없지.”

낭소소까지.

콧대 높은 4인방이었던 대문파 출신 4명과 황태가 함께 말을 거들며 이야기한다.

그 말에 백리무영이 벙찐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후보생들의 얼굴을 쭉 훑는다.

메마른 입술과 푸석해진 피부, 손끝이 갈라지고 피가 날 뿐 아니라 흙바닥에 하도 많이 굴러서 더러워진 무복까지.

어느 하나 괜찮은 곳이 없는 녀석들이.

눈빛이 맑다 못해 청명했다.

백리무영이 신혁건과 생도가 되었을 때, 그리고 압도적인 실력으로 생도가 되었을 때 보내 준 눈빛과는 전혀 달랐다.

그때도 인정의 눈빛이 뒤따르긴 했지만…….

‘이건 다르다. 차원이.’

명백한 믿음이 보이는 눈빛. 그 어떤 질시도, 질투도, 시기도 없는 눈빛이 보인다.

백리무영이 다시 한번 후보생들을 쭉 훑었다.

그러다가 자신도 모르게 피식 하고 웃었다.

“이렇게 하나가 될 줄이야.”

조기 진급에 따른 생도가 된 백리무영은 안다.

현 8기를 제외한 모든 위 기수의 상태가 어떤지.

단합?

‘……말도 안 되는 소리지. 있을 수도 없는 일이고.’

후보생들이 하는 경쟁 따윈 우스운 일인 것처럼 더욱 심한 개인주의와 치열한 경쟁으로 점철된 생도의 삶이다.

혹독하리만치 평가에 냉정하고, 실적과 성적에 목말라 하는 생도의 삶을 보고 온 백리무영으로서는 동기 후보생들의 모습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동시에 이 오십여 명도 넘는 인원의 마음을 사로잡은 한 녀석에게 저도 모르게 경외심이 들었다.

“어떻게 된 녀석이…….”

그 반응에 송무가 히죽 웃으며 손뼉을 쳤다.

“무린이 오기 전에 얼른 조 짜자.”

“사천검진의 특성상 근력이 좋은 인원이 앞에 서서 먼저 구궁의 초식을 펼치도록 되어 있잖아요? 그렇다면…….”

“그렇지. 다음에 이어지는 건 섬세하게 이어지는 초식이니까 이 부분은 화린이나 소소가 잘 어울릴 것 같은데?”

……그렇게 후보생들은 제각기 조를 구성하는 데 여념이 없었고, 그 상황을 바라보고 있는 한 인영은 뒤로 벌러덩 누운 채 하늘을 바라다봤다.

“이제 좀 윤곽이 잡히려나.”

사실 아직도 멀었다.

나는 안다.

천마신교가 얼마나 강한지. 일찍이 마도관을 세워 수많은 영약과 강인한 마공들로 훈련생들을 체계적인 방식으로 훈련했다.

특히, 실전을 방불케 하는 훈련은 천무린도 당시엔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사실 무공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개개인의 인성을 도외시하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

여긴 또 다르지.

마도관과 같을 순 없다.

그리한다고 해도 할 수가 없다.

그래서.

어색하면서도 마음에 들었다.

어설프지만 순박한 녀석들의 마음가짐. 그러면서 순수하게 강해져서 인정을 받고 정파 무림을 수호하고 싶다는 그 마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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