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1화
제41화
타다닥! 탁! 탁!
목검이 부딪히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하아아앗!”
“흐랴아아압!”
사천검법이나 혹은 여태 사천무관에서 익혔던 십팔반병기를 든 후보생들이 가지각색의 무공을 일제히 터뜨린다.
단, 개개인의 문파에서 익힌 무공은 금지했다.
“……공정을 위해 사사로이 배운 개인적인 무공은 금한다. 개인의 무공은 생도가 되어 마음껏 펼쳐라. 지금은 평가를 받는 것이니 오로지 후보생으로서 익혔던 무공만을 허한다.”
이는 대련 평가의 규칙이었다.
백리후와 남사익, 설화린과 낭소소 등 쟁쟁한 후보자들은 제각기 제 실력을 온전히 드러낼 수 있도록 대진표가 짜여졌고, 대련 평가는 금세 진행되었다.
“시작!”
총교관의 외침에 따라 연무장의 열기는 후끈 달아올랐고, 그간 훈련만 하느라 제대로 된 비무나 대련을 하지 못했던 놈들은 제 실력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검증하고자 마치 목줄을 푼 야수처럼 상대에게 달려들었다.
그렇게 백중세를 이루던 후보생들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치열하게 대련에 매달렸다.
그러는 와중에,
“아직도 준비가 덜 된 건가, 29번 후보생?”
부교관인 고윤은 송무를 바라봤다.
“죄, 죄송합니다.”
웬일인지 떨고 있었다. 조별 과제를 할 당시만 해도, 송무는 이 정도로 불안정한 모습이 아니었는데.
힐끗.
고윤이 시선을 돌려 송무의 맞은편을 바라봤다.
퉤, 하고 침을 뱉은 황태가 손가락을 까딱이며 어깨에 목검을 걸치고 있었다.
“뭐 하냐? 안 할 거야? 못 하겠으면 포기 선언을 하든지.”
한심하다는 듯 송무를 바라보고 있는 황태였다.
그 모습에,
‘고양이 앞에 선 쥐 같은 모습이로군. 쉽지 않겠어.’
대번에 황태와 송무 관계를 파악한 고윤이었다.
“……6번 후보생, 대기하도록. 준비 시간은 반각까지 주어진다고 했다.”
“칫.”
고윤의 제지에 황태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불만스러운 눈빛으로 그 자리에 서서 기다릴 뿐이었다.
“29번 후보생, 정말 못 하겠으면 포기해도 된다. 아무도 네게 강요하지 않는다. 후보생끼리 검을 맞닿는 게 거북스러울 수 있지. 자넨 착하지 않은가.”
부교관 고윤의 말에 송무가 불안정하던 눈빛으로 고갤 든다.
고윤의 마지막 말에 문득 생각에 잠긴다.
착하다, 착하다라.
그런가. 그저 착한가.
늘 어딜 가도 착하단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착하다는 표현은 이내 곧 유약하다는 의미로 비쳐졌다. 그 이유만으로 다른 누군가에게 핍박을 받았다.
또한, 착하단 말 대신에 나약하단 이유로 다른 이들에겐 무시를 당했다.
그래서 강해지면 자신과 같은 이들을 절대 그냥 보고 지나치지 말아야지, 늘 그런 생각을 했다.
그랬는데, 정작.
자꾸만 눈앞에 있는 황태만 보면 급격히 쪼그라드는 심장이 원망스러웠기만 했다.
두근, 두근.
발작하듯 뛰는 심장 소리에 검을 들기는커녕 얼굴조차 마주하기 어려웠다.
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런 멍청한 새끼들 같으니라고! 으휴! 앓느니 죽지!”
자신과는 달리 자신감이 넘치고 힘이 가득한 육합전성이 연무장 곳곳에 퍼진다.
이제는 8기 후보생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이 되었고, 모두가 인정할 만큼 강했으며, 교관들에게도 절대적인 신뢰를 받는 사람.
옆에 서 있는 악교운보다, 자신의 대련을 감독해 주는 고윤보다 더 범접할 수 없는 거력이 느껴지는 단 한 사람. 거인(巨人)으로 느껴지는 인물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네 신념을 지키려면, 혹은 네가 다른 누군가를 지키려면 반드시 힘이 필요하다.」
그렇게 누군가의 말 한마디가 그의 가슴속으로 스며들어 왔다.
스쳐 지나가듯 던진 그의 한마디가 모든 상념을 지워 버린다.
내 신념, 그리고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하다.
그렇다. 지켜 낼 수 없는 신념은 그저 헛소리에 불과할 뿐.
송무는 고개를 천천히 들어 허리춤에 찬 목검의 손잡이에 오른손을 얹었다.
“흐음…….”
고윤의 눈에 송무의 눈빛이 보였다.
불안정하게 떨리던 두 눈동자가 지금은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이제 준비가 됐나 보군.”
연무장 내에 벌어지던 대부분의 대련이 이제 막바지에 이르렀다. 병장기 부딪히는 소리가 급격하게 줄어든 것으로 보아, 아마 송무와 황태는 금일 마지막 대련의 주인공들이 될 터였다.
천천히 고윤은 손을 들어 올렸다.
“6번 후보생, 29번 후보생. 지금부터 대련을 시작한다. 살의를 싣지 말고 최선을 다하라. 그저 검에 집중하여 자웅에 겨루는 데에만 최선을 다하라.”
그러곤 두 사람을 바라본다.
“몇 번의 타격을 허용해도 의지가 꺾이지 않는다면 패배한 것이 아니다. 포기 선언, 혹은 불가항력적인 상황, 그리고 마지막으로 감독관인 내가 판단했을 때 한쪽으로 승기가 기울었을 경우 대련을 종료할 것이다.”
진중하게 말을 마친 고윤은 들었던 손아귀를 꽈악 쥐며, 대련 시작의 신호를 알렸다.
경적필패(輕敵必敗), 적을 가벼이 보면 반드시 패한다.
황태는 송무를 가벼이 보고 무시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여태까진 그저 만년 꼴찌에 자신이 괴롭히던 녀석에 불과했으나, 이젠 다르다.
놈은 나와 같이 괴물 같은 놈에게 훈련을 받은 녀석이고, 설화린과도 동수를 이뤘다고 했다.
그런 녀석에게 방심은 금물이다.
거기다 황태가 천무린에겐 짓밟혔지만, 이 후보생들 사이에선 여전히 수위를 다투는 무위를 지니고 있다.
그런 그는 누군가에게 패배를 당할 생각 따윈 추호도 없었다.
‘이건 나, 황태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다. 절대 질 수 없다.’
황태는 사천검법의 초식 중 가장 막기가 까다로운 백경의 초식으로 공격했다.
슈우우욱!
정확히 오른쪽 어깻죽지를 파고드는 검격은 깔끔하고 정밀함이 담겨 있었고, 그것을 바라보는 고윤 역시 가벼이 고갤 끄덕였다.
‘천방지축 날뛰던 녀석이긴 하지만, 확실히 후보생들 중에서 무위는 인정해 줄 만해.’
속도하며, 담긴 기세하며 결코 만만치 않다.
어지간한 후보생들은 이 까다로운 한 수에 기겁할 터.
그런데.
타아악!
뻗어 간 황태의 목검이 위로 올려친 송무의 검격에 의해 하늘 위로 솟구쳐 올랐다가 황급히 자세를 바로잡는다.
저릿. 저릿.
하마터면 검을 놓칠 뻔한 황태는 저릿한 손목을 느끼며 한 걸음 물러났다.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근력이야.’
근육 덩어리인 명진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의 놀라운 근력이다. 저 호리호리한 몸에서 어떻게 이런 힘이 나온단 말인가.
하지만 황태는 노련했다.
굳이 그런 생각을 표정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송무는 여전히 자신의 힘과 검술에 확신이 없어 보인다.
그런 송무의 옆구리를 향해 표독스럽게 검을 쓸어 가듯 베어 간다.
기세는 멈추는 순간, 상대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므로 쉴 새 없이 몰아쳐야 했다.
타아악!
송무가 검날을 비틀며 급히 막아 내자, 황태는 손목에 힘을 주며 몸을 끌어당겨 바짝 몸을 붙였다.
그러면서 말했다.
“……저놈 믿고 까부는 게 영 눈꼴셔. 훈련 좀 받았다고 뭐라도 되는 양 구는 게 말이지. 부교관님 없을 때 조용히 따라와라. 대련 끝나면.”
황태는 대번에 깨달았다. 송무가 자신을 바라볼 때부터 불안정해하던 눈빛의 이유를.
‘내게 당한 두려움이 각인되어 있는 거다. 뼛속부터 새겨진 그 두려움이 하루아침에 사라질 리 없지. 네놈이 아무리 날고 기어 봐야 내 손바닥 안이니까.’
그래서 황태는 속에 잠재되어 있는 송무의 두려움을 끄집어내기 위해 입을 열었다.
“그놈이 없으면 네가 뭐라도 되는 줄 알아? 없으면 넌 쓰레기에 불과해.”
한마디, 한마디가 송무가 결코 듣고 싶지 않았던 말들이다.
“종남파에 있는 네 스승은 그리 뛰어나다고 알려져 있건만, 넌 섬서가 아닌 사천을 택했지. 왜냐고? 넌 도망자에 불과하기 때문에!”
천무린이라는 존재로 지워졌던 상념이 금세 잿빛의 어두운 기억으로 가득 찼다. 그의 한마디, 한마디가 비수가 되어 송무의 가슴을 콱콱 쑤셔 박는다.
콰직! 콰직!
정신적으로 충격을 받으니 자연스레 송무는 주춤거렸고, 그 틈을 탄 황태의 검격에 속절없이 밀려났다.
물론 황태 역시 이 이상 말을 이어 갈 순 없었다.
그 모습을 본 고윤의 눈매가 가늘어지더니 강하게 호통을 쳤다.
“6번 후보생! 대련 중 대화는 금한다!”
그의 말에도 황태는 여유로웠다. 이미 송무를 몰아붙이면서 승기를 잡은 뒤였기 때문이다.
다시 정신을 차리기 전에 어서 이 승부를 끝낸다.
황태는 사천검법을 종횡무진 펼쳤다. 송무의 맥 빠진 방어 자세가 금세 무너지면서 몇 번이나 검격을 허용했다.
타악! 타탁!
오른쪽 허벅지에 적중한 하천의 초식에 송무가 격통을 느낀 표정을 지으며 황급히 물러났다.
“어림없지!”
황태는 조금이라도 숨을 돌릴 시간을 주지 않았다. 일그러진 표정으로 비틀거리며 물러나는 송무는 연무장 끝에 다다라서야 겨우 거친 호흡을 몰아쉴 수 있었다.
‘……역시 무리였나.’
고윤이 참고 있던 한숨을 내쉬며 송무의 상태를 살폈다.
텅 비어 버린 동공.
힘이 빠진 두 손.
황태에게 허용한 검격으로 인해 무복이 찢기고 시퍼런 멍이 든 곳이 여러 군데 보인다.
‘더 이상의 평가는 의미가 없어 보이는데.’
고윤은 더 이상의 평가가 의미 없다고 판단해 서서히 손을 들어 올렸다.
주먹이 쥐어지면 이 대련은 끝이 나겠지.
고윤이 감독관으로 있는 현재, 이 대련을 제외하고 모든 대련이 종료되었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대자로 뻗은 후보생들과 남은 이 대련을 흥미진진하게 바라보고 있는 후보생들로 나뉘었다.
흥미로운 눈빛, 이미 결론이 났다는 눈빛들로 점철된 수많은 눈빛이 일제히 이곳으로 향했다.
그런 순간.
“이제 와서 회개한 척하지 마…….”
“뭐?”
“역겨우니까.”
읊조리듯 말하는 송무의 말이 파장을 일으켰다.
잔잔한 호수에 조약돌 하나를 던지듯.
연무장 전체에 그 파장이 퍼져 나간다.
“네가 여태 해 온 지난날의 과오가, 너로 인해 고통 받아 온 수많은 녀석들이.”
맥없이 쥐고 있던 송무의 오른손이 이제는 목검의 손잡이가 부서져라 잡는다.
까드드득.
“……다 잊어서 그저 없는 일로 셈 치고 넘어간 것처럼 보여?”
고통스러워 보였던 송무의 두 눈이 무시무시한 기세로 황태에게 집중된다.
그 서릿발 같은 기세에 황태는 당황하지 않고 비틀린 표정으로 송무를 바라봤다.
“그게 아니면? 어쩔 건데, 이 새끼야.”
빠드득.
이를 갈았다.
황태의 눈썹이 역팔자로 꺾였고, 그 어느 때보다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분노한 나머지 손마저 부르르 떨렸다.
분명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떨고 있다고. 천무린도 아니고, 백리후도 아닌, 저딴 쫄보 새끼한테?’
분노로 일그러진 떨림이 아니라 저 기세에 눌린 거라고?
그럴 리가 없다. 절대 그럴 리 없어.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이런 병X 같은 놈이.”
“……널 쓰러뜨릴 거야. 쓰러뜨려서 네게 사, 사과를 받을 거야. 네, 네게 지난 과오가 그저 물 흘러가듯!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지나치지 않도록. 네게 진심 어린 사, 사과를 받을 거야.”
송무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파르르 떨리는 눈가만큼이나 목소리도 떨렸다.
“오냐오냐해 줬더니 기어올라도 너무 기어오르잖아? 건방진 새끼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심정으로 황태는 땅을 박찼다. 평소보다 더욱 거칠어진 호흡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