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3화
그에 질세라, 또다른 인영이 다른 문을 박살 내며 튕겨 나왔다.
콰다당탕탕!
명진과 같이 간 진무양이었다.
“이, 이게 무슨?”
낭소소는 두 사람이 피떡이 된 모습을 보고 황당하다는 눈빛을 보였다.
잠시 꿈이라도 꾸고 있는 걸까.
뚜둑. 뚜둑.
“개념을 밥 말아먹어 가지고. 잘 준비를 하는데 방해를 해? 하 놔, 요즘 새끼들은 왜 이리 예의가 없지?”
불량스레 손가락 관절을 풀고 침을 바닥에 칵, 퉤 하고 뱉은 인영이 걸어 나왔다.
“처, 천무린……. 머, 멀쩡하잖아?”
“뭐야, 이 연놈들은?”
백리후와 낭소소를 바라보며 광대 끝까지 입꼬리를 말아 올린 나는 크게 웃었다.
“혹시 부교관들이 여기에 안 오는 이유도 너희가 다 한 짓이냐?”
온갖 소란이란 소란을 다 피웠지만, 부교관들은 올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아마도 요놈들이 다른 후보생들을 시켜 시선을 분산시켜 놓았겠지.
거기다 술시 이후에는 후보생들의 편안한 휴식을 위해 되도록 관여치 말라는 악교운의 지시 때문이기도 했고.
나는 요 귀여운 꼬맹이들을 바라보며 히죽 웃었다.
“신고식을 할 거면 내가 강해지기 전에 진작 했어야지. 왜 이제 와서 X랄들 하고 자빠진 거야?”
그 말에 침을 꿀꺽 삼킨 낭소소가 다시금 명진과 진무양을 바라봤다.
혼절한 두 사람은 이래 봬도 8기 후보생들 중에서 백리후를 제외하고는 가장 강하다고 알려진 이들이다. 그렇다고 어쭙잖게 강한가?
그럴 리가.
무당파의 제자인 진무양과 청성파 출신의 명진이다.
“어, 어떻게…….”
낭소소가 아찔한 눈으로 천무린을 바라봤다. 그리고 옆에서 침을 꼴깍 삼키는 백리후를 바라봤다.
‘백리후가 긴장을 해?’
화산파의 백리후다. 동년배 중에서 백리후의 재능은 단연 손에 꼽힐 정도다. 그런 백리후가 지금 긴장을 하고 있었다.
낭소소로서는 이 진귀한 광경과 끊임없이 마주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상념을 깨뜨리는 건 다름 아닌 천무린의 목소리였다.
“해명은 너희가 해야지. 왜 나한테 어쨌냐고 묻는 거야. 왜 이런 짓을 벌였는지 이제 맞으면서 알려 주실까?”
뚜둑. 뚜둑.
뒷골목 건달이나 할 법한 불량스런 자세로 터벅터벅 걸어오며 천무린은 백리후에게 손을 뻗었다.
흠칫한 백리후가 손길을 피하려고 한 걸음 물러나려는데 쾌속하게 뻗어 오는 손길은 멈출 줄을 몰랐다.
그래서 내력을 실어 천무린의 손목을 쳐 내려는데,
“간지럽게 뭐 하는 거야?”
단단한 손목을 쳐 내기는커녕 그대로 멱살이 잡혀서 땅에 처박혔다.
콰드득!
“커억!”
백리후는 그대로 혼절하면서 순간 이게 꿈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명진이 개소리를 할 때 반대를 했어야 하는데……. 꼬르륵.
8기 후보생의 서열이 정리되는 순간이었다.
그 광경에 다리의 힘이 풀린 낭소소는 그대로 주저앉아 버렸다.
“이, 이게 다 무슨……. 하, 하하하.”
광년처럼 웃어 버리는 그녀였다.
그리고 나는.
“지들끼리 쳐들어오고 X랄 발광하더니, 또 왜 처웃는 거야? 다들 돌아 버린 건가?”
나는 혀를 차며 고개를 젓고는 뒤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고갤 돌렸다.
창백해진 송무와 태강이 서 있었다.
“……뭣들 해? 녀석들 다 옮겨. 진실의 방으로.”
그래, 진실의 방으로 데려가서 얘들은 좀 교육시켜야겠다.
굳이 안 건드리려 했는데, 이렇게 제 발로 찾아올 줄이야.
* * *
끔뻑, 끔뻑.
명진과 진무양이 정신을 차리자, 침상 위에 다소곳이 자세를 잡고 있는 백리후와 낭소소가 보였다.
“응? 둘이 뭐 해?”
“……왜 이리 다소곳해?”
그 말에 백리후와 낭소소가 살기를 띠며 두 사람을 바라봤다.
“자자, 서로 친우들끼리 못 잡아먹어서 그렇게 살기 띠지 말고. 하하, 녀석들. 몇 대 좀 맞았다고 원망하고 그러지 말고.”
호탕한 웃음소리가 터져 나오는 쪽을 바라보자, 천무린이 서 있었다.
“음? 왜 저 천둥벌거숭이가 그대로 있지. 아까 분명…….”
명진이 뇌를 거치지 않고 튀어나오는 말을 그대로 내뱉자, 백리후가 검집을 꺼내 명진의 입에 쑤셔 박았다.
콰직!
“어후, 이빨 몇 개 나간 거 아니냐? 하여간 요즘 애들 너무 무식해서 탈이야.”
나는 징그럽다는 듯 백리후의 손속에 인상을 찡그렸다.
그 말에 진무양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소매를 걷어붙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근데 자꾸 왜 저리 까부는…….”
“호호호, 무양아?”
“응?”
“제발 닥쳐 줄래. 나랑 생사무 할 거 아니면?”
아미파의 속가 제자인 낭소소의 말에 눈을 몇 차례나 끔뻑거린 진무양이었다.
이게 대체 무슨 경우인가.
백리후와 낭소소가 왜 저리 거칠게 자신들을 대한단 말인가.
……기억을 훑는 진무양은 침음을 흘리며 되돌아봤다.
분명 술시가 되어 천무린이 기거하고 있는 숙소에 찾아가 손을 봐주려다가…….
“꾸, 꿈이 아니었다고?”
그럴 리가.
명진이 땅을 박차고 주먹을 뻗으려는 찰나에 다가간 속도보다 배는 더 빨리 튕겨 나가서 기절한 것이 꿈이 아니라고?
거기다 태극권을 펼치려는 자신의 권법에 맞섰던 것은 그냥 아무런 초식도, 무공도 아닌 주먹이었고, 거기에 턱이 꽂혀서 기절했던 게 정녕 꿈이 아니라고?
진무양은 창백한 얼굴로 낭소소를 바라봤다.
그러자 낭소소가 차분히 고개를 끄덕인다.
“설마, 두 사람도?”
“……알았으면 제발 닥쳐. 입 다물고.”
맞나 보다.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하하하, 제군들. 원래 다 그런 것이지. 세상 이치라는 게 마음먹은 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다고.”
그렇게 믿을 수 없는 상황을 만든 당사자가 천연덕스럽게 웃으며 진무양의 어깨를 두드렸다.
“자, 그러니까 우리 이제 터놓고 말해 볼까.”
“뭐, 뭘?”
“누가 이런 작당 모의를 했을까나?”
“…….”
“어허허허, 조금 더 기다림이 필요한가? 아니면 친우들을 배신하지 못하겠는가 본데. 하하하.”
야차보다 더한 야차 같은 놈이 크게 웃어 젖히며 네 사람을 바라본다.
“먼저 말해 주는 사람은 열외해 줄 테다. 얼른 말하는 게 좋을 텐데 말이지.”
여, 열외?
무슨 열외…….
아무리 이놈이 무식하다고 하더라도, 그런 것을 말해 줄 의리 없는 사람은 여기에 없…….
“며, 명진이오.”
그렇다. 단숨에 그런 신뢰는 엿가락 바꿔 먹듯 사라졌다.
백리후가 검지를 뻗어 명진을 가리킨다.
“후, 후야. 그게 무슨.”
그것도 과묵하기로 소문난 백리후가 말이다.
“와하핫, 역시 명문가답게 아주 훌륭해. 그런 걸 바로 처세라고 하지. 자, 그럼 이 작당 모의의 주동자는 찾아냈고, 그 작당 모의에 적극적으로 찬동한 사람은?”
그 말에 믿었던 또 한 사람이 손을 번쩍 든다.
낭소소였다.
“소, 소소?”
“주동자는 명진, 동의하여 적극 동참한 사람은 진무양입니다. 이상!”
낭소소가 자신을 팔았다. 아니, 다 같이 동의해 놓고 왜 나를……!
“크으, 역시 아미파 출신은 달라도 달라? 그렇지?”
“과찬이십니다!”
야차 같은 놈이 낭소소의 어깨를 두드리며 엄지를 치켜세워 줬다. 그리고 낭소소는 뭐가 그리 좋다고 같이 엄지를 치켜세우는지.
세상이 다 미쳐 돌아간다 싶었는데, 야차 같은 놈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몸을 푼다.
“자……. 이제 두 사람은 돌아가도 좋아.”
백리후와 낭소소에게 시선을 던진 녀석이 자비로운 미소를 보였다.
“고, 고맙다.”
“고, 고마워요. 호호호.”
그렇게 두 사람은 명진과 진무양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은 채, 재빨리 사라졌다.
그렇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라졌다. 결단코 단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았다.
입관하여 동고동락하며 쌓아 온 5년간의 우정이…….
“참 친구들 잘 뒀어. 그렇지?”
“……이게 무슨.”
진무양이 허망한 눈빛과 말투로 중얼거리자, 야차 같은 놈이 허허로이 웃으며 어깨를 두드린다.
“괜찮아. 금방 끝날 거야. 눈 딱 감고 뜨면 될 거야.”
그리고 그때.
백리후에게 기절했던 명진이 다시금 일어나며 괴성을 지른다.
“크아아아! 천무린! 다 죽여 버리겠다!”
아……. 아까 왜 백리후가 이놈의 입을 검집으로 틀어막았는지 이제 알 것 같다. 무슨 심정이었는지.
그래서 진무양은 자신도 모르게 움직인 손길이 명진의 턱에 꽂히는 것을 느끼고 눈을 질끈 감았다.
“미안, 명진.”
그렇게 네 사람의 우정은 한 인물로 인해 갈가리 찢겨졌다.
* * *
송무와 태강, 설화린은.
아니, 8기 후보생들은 진귀한 광경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8기 후보생들 중 가장 뛰어나고 무게감 있어 보이는 네 사람이 한 사람의 구호에 맞춰 구르고 있었다.
“자, 하나에 8기는! 둘에 하나다! 힘차게 구령 붙이면서 앉았다가 일어납니다. 아아, 그 어깨에 걸쳐 있는 통나무 떨어뜨리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합니다. 알겠습니까?”
“예!”
“본 교관, 목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개수 100개를 더 추가합니다. 다시, 알겠습니까?”
“예에에엣!”
“좋습니다.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하나!”
“8기는!”
“둘!”
“하나다!”
5년간 대문파의 제자들로서 위엄 있는 모습만 보였던 네 사람이 이런 밑바닥을 보이리라고 그 누가 생각했겠는가.
“하나!”
“8기는!”
“하나!”
“하나다!”
“하나라고 했는데? 아직도 정신 못 차립니까? 다시 100개 추가!”
“예, 옛!”
어떤 악마 같은 놈한테 걸려서 찍소리도 못 할 것이라고는 절대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저, 정말…… 나는 다시는 무린에게 안 까불려고.”
“……꿀꺽.”
“하아, 어쩌다 내가 저런 사람에게 무공을 배우겠다고…….”
세 사람의 푸념 어린 푸념이 흘러나왔고, 그들은 구르고 있는 네 사람을 바라봤다. 왠지 모르게 측은함을 느끼는 세 사람이었다.
“앞으로 대문파와 군소 방파 따위의 경계는 다 지웁니다. 오늘부터 알겠습니까!”
“예, 옙!”
“8기 모두가 하나임을 새기고 또 새깁니다. 만에 하나, 오늘과 같은 마음가짐이 조금이라도 달라진다 싶으면 오늘 받은 교육은 아무것도 아니란 것을 알게 될 겁니다. 알겠습니까!”
“예엡!”
“목소리!”
“예에에엣!”
연무장이 떠나가라 소리를 지르며 대답하는 네 사람이었다.
그렇게 찢어졌던 네 사람의 우정은 다시금 붙었다. 진정한 동고동락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마음속 깊이 새기게 된 네 사람이었다.
“히히. 아, 즐겁네.”
어떤 악마 같은 새끼 때문에.
제34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