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2화
제32화
“……그러니까 2차 진급시험 전까지 찾아내겠다고?”
“예.”
어딘가 믿을 구석이 있어 보이는 내 모습에 고개를 갸웃하는 악교운이었다.
눈을 가늘게 뜬 것이 믿어도 되는지 아닌지 판단을 내리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머리를 굴리는 듯 보이자, 나는 확실하게 도장을 찍는다.
“대신에 제가 원하는 걸 들어주십시오.”
“나랑 거래를 하자고? 이미 원하는 조건을 들어줬을 텐데.”
크흠, 뭐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에이, 수지타산이 안 맞잖아……요.”
그 말에 악교운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하기야 그도 맞는 말이었다.
마인을 잡은 공로는 어디에다 내놓아도 뛰어난 성과일 테니까.
“소림사 무공이라도 제대로 익히고 있나 보지?”
……X발, 이 귀신같은 새끼. 어디서 독심술이라도 배웠나.
하지만 침착하게.
“무슨 개소리……가 아니라 무슨 소리십니까?”
“뭐, 상관없다. 네가 뭘 익혔든. 그런데.”
또 뭔 말을 하려고 저렇게 뜸들이나.
“2차 진급시험 전까지 못 잡아내면 나는 널 의심할 거다.”
에?
“아니, 그게 무슨…….”
“당연한 일 아닌가? 사실 누구보다 수상한 놈은 너거든.”
……그것도 그런가.
갑자기 강해진 것하며 자연스레 보이는 이 여유로움하며 여태 보았던 천무린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으니까.
당연히 의심이 갈 수밖에.
근데.
“하하, 또 그런 칭찬을.”
마인에게 마인이라고 하다니, 이보다 더 큰 칭찬이.
“왜 뿌듯해하는 거지?”
미친놈이 아닐 수가 없다. 마인이라고 하는데, 저렇게 헤벌쭉 좋아하는 놈이 어디 있나?
“하하하! 제가 꼭 찾아내겠습니다.”
하긴, 이런들 어떻고 저런들 어떨까.
찾아내기만 하면 그만인 것을.
“찾아내면 네가 원하는 조건을 들어 보고 수용하도록 하지.”
* * *
연무장으로 돌아가는데 설화린을 비롯한 송무와 태강이 후보생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이번 과제에 그런 활약을 했다는 게 사실이야?”
“응?”
“마인으로 위장한 부교관님을 도와서 귀물을 잡았다는 게 사실이냐고!”
“절정 고수들도 못 잡았다는 그 귀물을 대체 어떻게 잡았대?”
“하긴, 그 정도 공은 되어야 ‘특’ 성적을 받는 거 아니겠어?”
일파만파로 퍼진 소문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고, 세 사람은 어색하게 웃으며 그저 고개를 끄덕여야만 했다.
“우, 운이 좋았지 뭐.”
“천운이었어.”
“부교관님이 우릴 위해서 열심히 움직이셔서……. 호호.”
거짓말이 술술 나오네, 이것들이.
그렇게 다음 날, 성적이 여지없이 공개되었다.
「1등 – 백리후
2등 – 설화린
3등 – 진무양
4등 – 낭소소
5등 – 명진
6등 – 임우영
7등 – 천무린
…….
52등 – 황태」
특 등급 성적이 얼마나 파급력이 큰지 대번에 알 수 있었다.
그저 헛소리가 아니었는지 원체 상위권에 속했던 설화린은 쟁쟁한 후보들을 제치고 백리후의 턱 끝까지 따라잡았고, 17등에 불과했던 나조차도 10등 안으로 단숨에 진입했다.
송무와 태강 역시 말할 것도 없었고.
“고생한 보람이 있네.”
“하……. 어쩌면 성적 유지만 잘하면 바로 생도가 될 수도 있겠는걸?”
희희낙락하는 송무와 태강이었다.
“아서라. 그러려면 너희가 다음 대련 시합에서 다 이기고 2차 진급시험에서도 압도적이어야 하는 거 모르냐?”
내 말에 금세 흥이 사그라든 두 사람이었다.
기껏 불타오른 씨앗이 타들어가다 못해 형체도 없이 사라질 형국이었다.
“더 강해질 수 있다면 모를까?”
내 말에 두 사람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강해진다, 강해지려면 무공을 수련해야 한다.
그러려면 어떻게 수련해야 하는가.
살아남으려면 강해져야 했던 모순을 보여 준 사나흘의 순간, 함께 있었던 이가 있지 않은가.
“……무린이에게.”
“가르쳐 달라고 하면.”
“……강해질 거야?”
“그것도 엄청.”
두 사람이 서로를 바라보며 어색하게 웃는다.
허허, 이것들이 간을 보네.
내 두 주먹이 불끈 쥐어지려는데, 한 사람이 나섰다.
어? 네가 왜.
“가르쳐 주세요, 저도.”
설화린이었다.
“……어? 네가 왜?”
속으로만 생각하던 게 그대로 입으로 튀어나왔다.
“가르쳐 달라고요. 저도 무공.”
……문제는 설화린과 송무, 태강뿐 아니라 주변에 있던 후보생들도 모두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응? 지금 뭐라고 들은 것 같은데.”
“화린이가 무린이한테 무공을 가르쳐 달라고…….”
“무공은 교관님들께 지도해 달라고 하면 되는데.”
“에이, 잘못 들은 거겠지.”
잦아들 기미가 보이지 않던 웅성거림은 다시금 커진다. 나는 눈을 게슴츠레 떴다.
“그게 무슨 뜻인지 알고나 하는 소리야?”
암만 훈련하는 거 보지 말라고 해도 내가 애들 어떻게 가르쳤는지 다 봤을 거면서.
그런데도 나한테 무공을 수련 받겠다고?
“무슨 뜻이 있나요? 그냥 지도 받겠다는 건데.”
설화린의 두 눈동자는 그저 빛나기만 했다.
이럴 때는 또 무슨 생각인지, 나 원.
문제는 송무와 태강이 설화린의 참여 의사를 보고 나니 재빨리 두 손을 번쩍 든다.
“나도! 나도 무린이한테 배우겠어!”
“……잘 부탁드립니다!”
이것들이 아까 내가 말할 때만 해도 간만 보던 새끼들이……!
그렇게 내 주변에 모여든 세 사람을 비롯하여 태강이까지 포함해 내 지도를 받게 되었다.
* * *
“무승부가 된 일이야. 네가 진 것도 아닌데, 왜 내 밑에서 배우려고 해?”
“더 강해지고 싶어서요.”
지난 송무와의 대련으로 충격이 꽤 컸나 싶어 따로 불러내서 이야길 하는 중이었다.
“부교관이 끼어들지 않았으면 네가 이길 수 있었을 텐데?”
사실 그 말은 사실이다.
송무는 설화린과의 대련 이후 대번에 기절을 했을 정도로 심력을 많이 썼고, 그와 반대로 설화린은 멀쩡하게 돌아다닌 것만 봐도 명백한 실력의 차이를 보여 주었다.
다만.
“그렇게 찝찝하게 이긴 것도 이긴 거라고 생각하나요, 당신은?”
설화린의 물음에 나는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당연히 아니지.
그게 어떻게 이긴 거야?
“……그리고 인정하긴 싫지만, 만약 제가 송무와의 비무가 끝나고 태강과 비무를 했으면 졌을지도 모를 일이죠.”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데?”
“당신이 이겼어요.”
“내가 이겼으면 그걸로 된 거지 왜 나한테 무공을 배우겠단 개소릴 하고 난리야? 그리고 이긴 사람의 조건을 들어주는 거지. 내가 왜 네 조건을 들어줘?”
다른 놈들도 억지로 키우고 있었다. 내 수족이 될 놈들은 한두 명이면 충분하니까.
“……그 조건에도 당연히 순응하죠. 하지만 그보다.”
심호흡을 하더니 설화린이 진지한 눈빛으로 나를 마주한다.
왜 또 그렇게 쳐다봐. 부담스럽게.
“가르쳐 주세요. 강해지고 싶어요.”
“내가 아니라 교관들을 찾아가면…….”
“교관들보다도 당신이 더 잘 가르치는 걸요.”
“왜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데?”
“……내 뜻대로 살아 본 적이 없거든요. 단 한 번도. 보셨겠지만 정략혼도 내 의지는 없었어요.”
정략혼에 무슨 뜻이 있어. 그냥 까라면 까는 게 정략혼인데.
“싫거든요. 누군가 강요하는 삶에서 벗어나서 온전히 제 힘으로 당당히 살아 보고 싶거든요.”
“그러니까 그걸 왜 나한테 와서 X랄…….”
하고 염X인데, 라고 말하려는데 말문을 끊는 그녀였다.
“당신이 내가 우물 안에 갇혀 살고 있음을 깨닫게 해 줬으니까. 그러니까…….”
그러니까?
“책임지세요.”
헐.
나는 황당한 얼굴로 설화린을 바라봤다.
* * *
“……뭐?”
“같은 후보생들끼리 어쩌고 어째?”
같이 수련을 받는다는 것쯤은 있을 수도 있는 일이다. 근데 무공을 가르쳐 달라고? 교육을 해 달라고 하는 미친 후보생이 당최 어디 있단 말인가.
“설화린이 그렇다던데. 거기다 종남파, 기린 상단에 적을 둔 녀석까지.”
“하하, 위협이라도 느꼈나 본데. 그렇게 세력을 만들겠단 건가.”
백리후와 진무양, 낭소소, 명진은 서로를 바라봤다.
“꽤나 포부가 큰데?”
“거봐, 가만히 놔두면 끝까지 기어오른다고 했지? 초장에 밟아 놔야 한다고 했지?”
근육 덩어리를 출렁이며 두 주먹을 맞부딪히는 명진이 세 사람을 돌아봤다.
“군소 방파 중심으로 자기 세력을 키워서 우리에게 대항하겠다는 생각 같은데,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그런 명진의 말에 세 사람은 전처럼 반대부터 하진 않았다.
헛소리로 치부하기엔, 그리고 그냥 그러려니 넘어가기엔 천무린이 하고 있는 행보가 너무도 튀었다.
이렇게 가만히 뒀다간 2차 진급시험에까지 영향을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럼 다음 대련에서 꺾으면 되겠군.”
진무양의 말에 백리후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걱정하는 게 무엇인지 알겠으나 너무 염려치 마라.”
그런 두 사람의 말에 명진이 답답하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뭔 답답한 소리들을 하고 있어? 다음 대련까지 한 달이나 남았는데 그때까지 기다리려고?”
“그럼 대체 어쩌잔 거지, 명진?”
“지금 당장 나서서 군소 방파 녀석들이 뭉치기 전에 깨부수는 거지. 때로는 단순 무식할 필요가 있다고.”
명진의 말에 낭소소가 나서며 손사래를 친다.
“그랬다가 부교관들한테 걸리기라도 하는 날에는 끝장일 텐데……?”
“애들 시켜서 잠깐 시선을 분산시켜 놓으면 돼. 미리 일정 파악해 놓으면 되지.”
뇌까지 근육일 줄 알았던 명진이 이럴 때는 머리가 비상하게 돌아갔다.
좋게 표현하자면 잔머리를 잘 굴린다는 뜻이고, 나쁘게 표현하면 얍삽하기 그지없었다.
“후, 이게 맞는 건가 싶지만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천둥벌거숭이를 한 번쯤은 손봐 줄 필욘 있겠지.”
진무양이 호응하는 의사표시를 하자, 명진이 기대에 찬 눈빛으로 백리후를 바라봤다.
……끄덕.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인 백리후의 모습에 쾌재를 부르며 명진이 괴소를 터뜨렸다.
“흐흐, 좋아. 술시(戌時)에 숙소에서 끝장을 보자고. 나랑 무양이랑 먼저 가 있을 테니 둘은 천천히 와도 좋아.”
낭소소는 혀를 차며 제발 천무린의 얼굴은 건드리지 말아 달라고 몇 번이나 당부하고서 돌아갔다.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백리후와 낭소소가 천천히 술시(戌時)에 맞춰 움직였다.
“이미 상황이 끝나 있겠지?”
“아마도.”
개인 훈련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면서 두 사람은 천무린을 얼마나 처참한 꼴을 만들어 놨을지 걱정해야 했다.
콰아앙!
푸드더더덕!
숙소에 들어서자마자, 한 인영이 문을 박살 내며 뒤로 튕겨 나가 바닥을 뒹굴었다. 몇 바퀴나 구르고 굴러 벽에 처박히고 나서야 겨우 멈췄다.
“아니, 적당히 손봐 주기로……!”
낭소소가 황급히 뛰어가서는 처박혀 있는 인영의 가장 걱정되는 얼굴을 쳐다봤다.
얼굴이 많이 안 상했어야 할 텐데…….
응?
뭐 이리 험상궂은 산적같이 생긴 놈이…… 아, 아니, 명진이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