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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무신, 무림학관을 제패하다-31화 (31/250)

제31화

제31화

8기 후보생들이 다시금 술렁였다.

언젠가부터 백리후가 아닌 천무린의 이야기가 더욱 자주 들리는 건 착각일까.

착각으로 치부하기엔 악교운에게 호명되는 횟수가 지나치게 잦다.

“천무린, 설화린, 태강, 송무. 이번 조별 과제에서 ‘특’ 등급을 받았다. 성적은 내일까지 반영될 것이다.”

“……에? 특이라고?”

“여태 특 등급을 받은 적이 있었나?”

사천무관 내에서 대체로 성적은 ‘상’, ‘중’, ‘하’로 매겨지며 상세하게 들어가면 더욱 세분화된다.

최하, 하, 중하, 중, 중상, 상, 최상까지.

그런데 ‘특’이라고?

후보생들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서로를 바라본다.

“‘특’은 어떻게 해야 받을 수 있는 거지?”

“……그러게. 나도 처음 들어 봤어. 근데 뭘 했다고 특 등급을 받은 거야?”

“조별 과제에 뭔가 특이할 게 있나?”

웅성거림은 잦아들 줄을 몰랐다.

“조용, 조용!”

그렇게 말하고는 악교운의 침잠한 눈빛이 한 사람에게 와 닿았다.

……아까부터 날 계속 쳐다보네. 불길하게.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그 눈빛을 마주 바라봤다.

미소에 인색하다는 야차 놈이 또 한 번 내게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가 금세 차가운 표정으로 돌변했다.

“당분간은 자유 훈련 시간이다. 2차 진급시험까지 평가 반영 시간은 단 2번. 준비들을 열심히 해야겠지.”

그러면서 악교운은 시선을 돌려 마주하고 있던 네 사람을 호명했다.

“3조는 나를 따라오도록.”

……뭐 뻔하지.

함구해 달라고 부탁하지 않을까.

근데 어떤 이야기로 우리의 입을 막고 저들의 의문까지 잠재울지 궁금한데.

‘특’이라는 성적은 나도 들어 본 적 없었다. 그럼에도 모든 후보생들이 보는 앞에서 부여하겠다고 말한 건 정면 돌파를 선택하겠다는 뜻이겠지.

전례 없는 점수를 부여하면 의혹이 불거지고 의문도 많아져서 필시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터져 나올 것이다.

천천히 악교운을 따라가던 나는 왠지 따가운 시선을 느끼고 뒤를 돌아봤다.

자주 마주한 적 없던 부교관이다.

근데 저토록 적의를 보이는 것을 보면,

……나한테 생포되었던 녀석인가 보네.

“고윤 부교관님이 왜 이리 우릴 노려보는 것 같지?”

“그러게. 무린아, 뭐 잘못한 거야?”

“……또 무슨 사고를 쳤길래.”

뭔 이런 개 같은.

뭐만 했다 하면 나냐? 다 같은 공범이면서.

상점에 눈멀어서 달려들던 새끼들이!

하지만 그땐 복면을 쓰고 있었고, 얘들 실력으로는 저 부교관이 그때 마인인지 전혀 판단하기 힘들겠지.

그래서 그런가.

다른 부교관들에 비해 매우 힘들어 보인다.

다리도 하나만 조져 놓으면 되지, 굳이 두 다리 다 조져서 다른 부교관의 부축을 받게 만들어 놓질 않나.

당분간은 검도 잡지 말라는 뜻인지 오른팔도 부목을 대고 있고.

얼굴은 또 어떻고. 벌통을 건드려 벌들한테 무참히 쏘인 사람처럼 사람 얼굴인지도 분간이 잘 안 갈 정도다.

절레절레.

원시천존이시여, 뭐 하시오? 저런 야차 같은 놈 안 잡아 가고.

나보다도 더 심한…….

아니, 만약 나였다면…….

가만둘 수 없지. 옳지, 생각해 보니 너무 적당히 손봐 준 거 같은데. 내 얼굴에 먹칠까지 했다고 생각하면 부하 새끼 절대 가만히 둘 수 없지.

고개를 끄덕이며 악교운의 입장을 이해하고 있는데, 나직한 음성이 내 정신을 깨웠다.

“먼저…… 3조.”

“네!”

“예!”

송무와 태강이 큰 소리로 대답했고, 나와 설화린 역시 뒤따라 대답했다.

“마인을 제압한 일에는 앞서 보여 줬다시피 보상을 해 줬다고 생각한다. 불만 있나?”

불만이 있냐고?

그럴 리가. ‘특’ 등급의 성적은 모르긴 몰라도 수많은 순위를 뛰어넘게 해 줄 만한 평가 성적인걸.

단순히 가산점 몇 점이라고 생각했던 조원들의 얼굴은 꽃이 만개하듯 활짝 폈다.

“……없습니다!”

“좋다. 혹시라도 먼저 다른 후보생들에게 말을 꺼낸 적이 있나?”

“……없습니다!”

세 사람은 악교운의 기세에 짓눌려 찍소리도 못 하고 있는 그대로 말했다.

“성과가 좋은 후보생들이 나와서…… 아주 만. 족. 스. 럽. 군. 날이 갈수록 개판이 되고 있는 게 말이야.”

칭찬인 거야, 욕인 거야.

하나만 하지.

그러면서 왜 또 날 쳐다보는데.

“이와 관련해서 그대들이 지켜 줬으면 하는 게 있군. 무엇인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

“예! 그렇습니다.”

잔뜩 기합이 들어간 목소리로 대답하는 꼴들을 보며 나는 고개를 저었다.

나한테 좀 그렇게 해 봐라.

얼마나 착하고 기특해할지.

이래서 사람은 권력을 갖고 있어야 하는가 보다.

“17번 후보생은 왜 대답이 없지?”

“……그렇슴다.”

“마지못해 대답하는 거 같은데?”

“아닌데?”

“데?”

“……요.”

“불만이 많아 보이는군.”

“그럴 리가……요.”

이 새끼, 나한테 왜 이래. 뭔가 억하심정이 있는 표정인데.

“아무튼 이제 복귀해서 다음 대련까지 준비할 수 있도록.”

“예! 감사합니다!”

그렇게 설화린과 송무, 태강을 따라 나서려는데,

“17번 후보생은 남지.”

“예? 제가 왜요?”

“불만인가?”

“네, 불만…….”

당연히 불만이라고 소리치려는 찰나에 세 사람이 눈에 쌍심지를 켰다.

뭐야, 쟤네들 왜 나를.

“후후, 조장이 곧 조를 대표하지. 조장의 잘못은 조원 전체에게 그 책임이 돌아갈 수도 있는 법이고.”

이 양반이? 협박까지 하네.

“……협박까지 하십니까?”

“협박이라니, 가당찮은 소리. 총교관이 후보생을 부르는 데는 다 이유가 있겠지. 그렇지 않나?”

“맞습니다! 무린아, 총교관님의 깊은 뜻을 어서 받아들이고 얼른 다녀와.”

“그럼그럼, 우린 먼저 가서 훈련하고 있을게!”

송무와 태강이 눈을 찡긋거리곤 후다닥 나가 버린다.

개……XX들.

거기다.

“풋.”

설화린은 웃음소리를 작게 내뱉고는 교관들에게 인사를 하고 사라진다.

X……발.

이런 것들이 내 조원들이라고.

“다른 교관들도 나가지.”

그 말에 흠칫하던 부교관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아니, 어떻게 저렇게 후다닥 나가지? 다리 저는 거 맞냐고!

삽시간에 나와 야차 놈만 남아 있으니 분위기가 싸해졌다.

나는 억지로 광대를 끌어올리며 악교운을 바라봤다.

“……무슨 일이십니까.”

내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나를 지그시 바라보던 야차 놈은 가벼운 한숨을 뱉었다.

구구절절 부교관을 어떻게 생포했니 꼬치꼬치 물어봐도 제대로 대답도 안 할 건데.

“후, 이게 뭐하는 짓인지 나 원.”

응?

“무공을 어디서 익혔는지 말하라고 해도 말 안 할 테고.”

응, 그건 맞지. 죽었다가 다시 환생했다고 말할 순 없잖아. 말해도 뭐 안 믿을 거고.

“그런 후보생 따위랑 실랑이를 할 나도 답답하고.”

알면서 왜 잡아.

나는 게슴츠레 눈을 뜨며 혼자 중얼거리는 악교운을 바라봤다. 뭐 하자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다른 건 됐고, 일전에 말했던 건 기억하고 있겠지.”

“……무엇을 말입니까.”

“조건부 자유 연무를 시켜 줄 때의 기억이 안 난다고 하진 않겠지?”

아, 그거? 기억하고 있었네.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한동안 아무 말도 안 해서 혹시, 하고 그냥 넘어갈 줄 알았건만 그건 또 아니네.

독한 새끼.

“……예. 기억납니다.”

“방금 독한 새끼라고 마음속으로 욕한 거 같은데?”

이 눈치 빠른 새끼.

“그럴 리가요.”

“눈치 빠르다고 욕한 것 같은데?”

그 말에 나는 그만 침묵해 버렸다.

“침묵하니 내 말에 더욱 신빙성이 생기는데.”

“……크흠, 그래서 말하고 싶은 조건이라는 게 뭡니까?”

내가 권력만 쥐면 이 야차 놈을 손봐 주리라.

두 주먹에 절로 힘이 들어가는 것을 애써 자제하고 광대를 끌어올렸다.

“다른 건 없고, 지금 8기생 중에 ‘마인’이 있을 거라는 제보를 들어서 말이지.”

“마인? 이미 조별 과제는 다 끝난 거 아닙니까?”

“……후보생 중에 있단 제보라서 말이야.”

에?

후보생들 중에 마인이?

“죄다 신원 조사를 하고 선별해서 후보생을 뽑은 거 아닙니까?”

“그건 내 담당이 아니라서.”

“뭐가 그리 허술…….”

“허술?”

“한 게 아니라 참 교묘한 놈이군요.”

“그렇지. 어디까지나 제보 수준에 불과할 뿐이지. 진짜 마공을 익혔는지도 알 수가 없지. 후보생들의 미미한 수준이라면 그게 마공이라도 별로 판가름이 안 날 테니까.”

그 말에는 일리가 있었다.

제아무리 마공이라 할지라도, 수준이 낮은 마공이거나 마공을 익힌 당사자의 무공 수준이 현저히 낮으면 전혀 티가 나지 않는다.

어지간해선 모를 수밖에.

“누구한테 제보를 들었습니까?”

“그건 알려 줄 수 없지. 하지만 밥값을 할 놈이 있으니 굴려서 성과를 내 보라고 할 참이지.”

와, 이 새끼 나랑 같은 과였네.

아주 적재적소에 잘 활용…….

아니, 이게 아니지. 내가 밥값을 할 놈이야? 이런 개X.

“지금 날 노려보는 건가?”

“하하하, 그럴 리가요.”

노려보는 게 아니라 죽이려고 보는 건데.

“작은 단서도 없습니까?”

“없어. 단서가 있었으면 진작에 잡았겠지.”

그것도 맞는 말이다. 이미 단서가 있었다면 자기네들끼리 해결하고 끝냈겠지.

“단시간에 잡을 생각은 없어. 또한 그리 티를 내서도 안 되고.”

최대한 빨리 안 잡는다라…….

“어떤 경로, 어떤 행위를 하는지 낱낱이 파악하겠다는 거군요.”

“마인들이 제법 용쓴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후보생까지 눈을 낮춰 작업할 줄은 몰랐거든.”

그도 그렇다.

후보생들은 입관식이 13세에 이루어져 17세가 되어서야 생도 진급시험을 보는 것이니 때에 맞춰 입관을 시켰을 정도면 마인들은 꽤나 신경을 썼다고 판단할 수밖에.

아니, 그건 그런데.

좀 기분이 묘한데.

……이래 봬도 천마신교 교주였던 나인데.

내가 통치할 때만 해도 이런 찌질한 짓은 안 했던 것 같은데, 시대가 많이 바뀌었나.

정보야 하오문도 있고 위장한 녀석들이 개방 거지 놈들과 어우러져서 정보를 뜯어내면 되는 것이었는데.

“그렇다면 시간에 두고 길게 보겠다는 말씀이시군요?”

“촉박하게 굴어 봐야 녀석이 눈치채게 될 테니까.”

하긴 제보가 사실이고 여태 들통이 안 날 정도면 어지간히 조심스럽게 행동했다고 봐야 한다.

근데.

만마의 종주였던 나는 마인이 어디에 가장 약한 줄 알고 있잖아. 역설적이게도.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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