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화
제27화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두 사람의 선택은 무식했고, 더욱 무식한 방법으로 천무린에게 단련을 받아 나흘째 되는 날까지 온몸이 욱신욱신 쑤시는 고통을 참으며 잠을 청해야 했다.
그렇게 나흘째 밤.
“훌쩍, 훌쩍.”
재수 없게 어디서 울고 X랄이야.
두 사람 다인 것 같았다.
난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훌쩍이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봤지만, 어쩌겠는가.
조용히 두 사람을 깨웠다.
툭툭.
“둘 다 일어나 봐.”
내 말에 두 사람은 힘겹게 눈을 떴다. 퉁퉁 부은 두 눈이 부스스하게 떴지만, 이내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바뀌었다.
잠도 안 재우고 또 훈련시키느냐는 그런 눈빛이었다.
시부X.
이딴 대우를 받으려고 내가…….
“이젠 잠도 안 재우고 훈련시키게?”
“정말 하다하다…….”
두 사람의 음성이 더욱 커지려 하자, 나는 슬며시 주먹을 들었다.
흠칫.
이내 합죽이가 된 두 사람이 나를 바라봤다.
그제야 잠잠해진 두 사람을 바라보며, 나는 품속에서 울며 겨자 먹기로 보물 두 개를 꺼냈다.
귀구의 알이었다. 금쪽같은 내 새끼들.
“알?”
“저게 뭐람?”
이런 씨앙. 툴툴거리는 두 사람이 대수롭지 않은 눈으로 바라보았고,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주먹에 힘줄이 돋는다.
하지만.
최대한 인내심을 발휘해 나는 거두절미하고 알의 껍데기를 먹기 좋게 깨서는 건넸다.
“한 방울도 남김없이 먹어라. 남기면 뒈지는 거야.”
“이게 뭔데?”
불안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는 송무에게 살짝 짜증 어린 표정을 지었다.
“보면 모르냐? 영약이지.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그런 말을 듣고서 납득이 갔다. 한 번도 본 적이 없으니 어찌 영약인 줄 알겠는가.
비록 맛은 느끼하기 짝이 없지만 코끝을 간질이는 향은 영물의 알답게 청아함을 풍긴다. 그 향을 맡고서야 의심의 싹이 싹 사라졌다.
조용히 입에 갖다 댄 두 사람은 금세 영약을 취했다.
“우욱. 느, 느끼해.”
느끼하다고 헛구역질하려는 송무에 비해,
“……한 방울도 놓치지 않겠어.”
껍데기를 구석구석 깨 가며 알 껍데기째 먹으려 드는 태강의 모습을 보고 나는 피식 웃었다.
그저 두드리기만 하면 되는 쇳덩이일지라도 적절한 불 조절과 담금질이 필요하듯, 한계까지 몰아붙인 육체에도 영약만큼 좋은 효과를 보이는 것이 없다.
녹초가 된 몸을 회복시키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제법 괜찮은 성장세를 보여 줄 것이다.
가부좌를 튼 두 사람의 등 뒤에서 나는 조용히 호흡을 골랐다.
“사천심법을 펼치고 반항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따라라. 내가 조율할 테니.”
“에?”
“뭐? 굉장히 위험…….”
두 사람은 서로 불안한 눈빛을 교차한다.
영약을 구해 온 천무린도 천무린이고, 향에서부터 진짜 영약임을 깨달은 두 사람이었지만, 그것을 인도하는 게 또래의 천무린이라니…….
무릇 강호인이라면 영약은 사족을 못 쓸 정도로 좋아하고, 제법 괜찮은 영약이 어디 있다고 소문이라도 나면 만사를 제쳐두고 달려들었다.
어디 그뿐이랴. 일확천금을 준다는 대상인이 나타나 구매 의사를 밝혀도 안 판다고 하는 세상이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
제아무리 천무린의 실력이 뛰어나다고 할지라도 이는 명백히 다른 문제였다.
‘……왠지 내 목숨을 걸어야 할 것 같은 상황이잖아?’
‘설마 죽기야 하겠어……. 기껏 아까운 영약 주고 죽이진 않겠지?’
‘혹시 모르지……. 무린이라면.’
‘그건 또 그래.’
“둘이 연애하냐?”
나는 둘 사이에 앉아 왼손은 송무의 등에, 오른손은 태강의 등에 얹었다.
“입 다물고 천천히 호흡을 하되, 사천심법의 구결을 따라 펼치면서 영약의 기운을 녹여 내.”
나 역시 사천심법의 구결을 따라 그들의 영약으로부터 기운을 이끌었다.
사뭇 진지해지는 공기 속에서 둘 역시 자연스레 사천심법에 몰입했다. 아니, 몰입할 수밖에 없을 터였다.
이미 너덜너덜해진 몸뚱어리가 영약의 값어치를 알고 미친 듯이 달려들 것이다. 피로한 몸을 회복시키는 것도, 부족한 단전을 채우는 것도 모두 영약의 역할이니까.
그러니 나 역시 큰 위험을 무릅쓰고 이렇듯 두 사람을 안전하게 이끌 수 있었다.
청명한 기운이 두 사람을 감쌌고, 여태 창백했던 안색이 가라앉으며 혈색이 돌아오는 송무와 태강이었다.
“후웁.”
내가 그저 북해빙궁의 어린애랑 내기 따위나 하려고 이런 개고생을 하면서 내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을까.
천부당만부당한 말씀.
훌쩍거리고 있는 저 모지리는 대문파의 제자다. 그것도 종남파라면 구파일방 중에서도 수위를 다투는 곳인 데다 장문인의 사제를 스승으로 두고 있는 녀석이다.
송무의 위치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더욱 쓸모가 많아진다.
또한, 태강은 어떻고.
기린 상단의 상단주 아들이란다. 송무에게 들으니 상단의 규모가 사천에서도 알아주는 수준이란다. 벌써 그림이 그려진다.
난 이들에게 마음의 빚을 지울 생각이다. 차곡차곡 쌓아서 눈덩이처럼 불어난 마음의 빚을 지울 작정이다.
이들은 그 빚에 허덕이게 될 것이고, 내게서 절대 벗어나지 못하게 될 터이다.
본래 강호 무림은 이런 은원 관계에 철저하기 마련이다.
지금이야 이들이 내게 어떤 마음으로 단련을 시켜 달라고 했는지, 그로 인해 받게 된 단련의 과정이 그저 스쳐 지나가는 추억쯤으로 생각될지언정 시간이 지날수록 이 순간이 그들에게 얼마나 큰 짐이 될지 절로 알게 될 것이다.
후후, 후후후.
그렇게 미소를 짓고 있는데, 갑자기 뒤통수가 따가워졌다.
휙.
고개를 돌려보니 송무와 태강이 눈빛을 거두고 휘파람을 분다.
휘휘, 휘휘휘.
“뭐야?”
분명…… 살기가 느껴진 것 같았는데?
착각이겠지……?
* * *
안색도 돌아오고 기운도 차린 두 사람은 남은 하루 동안 충분히 제 역할을 다하였다. 숨을 고르며 여태 사흘간 훈련했던 바윗덩어리도 무리 없이 들 정도였으니 효과를 톡톡히 본 셈이다.
“그나저나…… 무린아.”
“왜?”
“우리 계속 이러고만 있어도 돼?”
“아니, 곧 화린이랑 비무하는 날이 다가오는데…… 우리가 한 거라곤…….”
쭈뼛대는 송무의 모습에 태강도 댓 발은 나온 입으로 그 말을 받는다.
“한 거라곤 바위 들기, 바위 들었다 올렸다 하기, 바위랑 씨름하기 또…….”
이래 갖곤 나한테 존경심이 들기는커녕 내 교육 방식에 의구심만 들겠네. 아주 숟가락에 떠서 입가에 가져다줘도 먹기 싫다고 고개를 돌려 버리는 꼴이니 내 어찌 안 답답하랴!
결국 이 아둔한 녀석들의 입에 직접 넣어서 혓바닥을 굴리게 만들어야 한단다.
하아.
문득, 천마신교에 있던 내 제자가 생각났다.
천하제일의 기재이자 무재였던 녀석. 하나를 가르치면 두서넛이 아니라 열, 백을 알던 녀석. 그리웠다.
제자야, 왜 너 같은 녀석을 두고 나는 이런 아해들과 드잡이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구나. 크흐흑.
서글펐지만 어쩌랴.
“둘 다 사천검법 기수식을 펼쳐.”
몸소 알려 줘야지.
그리고 내 양손에는.
하얀 김이 서렸다.
“미친.”
어떻게 돼먹은 거야.
“빙백장도 쓸 수 있었어?”
송무와 태강은 천무린의 손에 어린 새하얀 기운을 보고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그 모습은 누가 봐도 일전에 펼친 설화린의 무공과 같았다.
그러나.
“무슨 소리예요? 그게 어떻게 빙백장이에요?”
얼씨구?
내가 힐끗 쳐다보니 동굴 외곽에서 빼꼼히 바라보고 있는 설화린이었다. 어지간히도 심심했나 보다.
뾰로통한 표정으로 고갤 든다.
“화린이, 네가 펼치는 것과 똑같이 하얗고 차가운…… 느낌인데?”
“……맞아.”
송무와 태강은 고개를 갸웃하지만.
“그건 빙백장이 아니라고요!”
발악하듯 소리치는 설화린이었지만, 그녀도 심히 당황스러운 표정이었다.
‘분명 아닌……데. 아닌 것은 확실한데.’
빙백장이 아닌 것은 확실한데 저렇게 흉내 내는 것도 처음 본다.
대체 어떻게 된 인간이기에 저렇게까지 음양의 기운을 자유자재로 다룬단 말인가?
힐끗.
나를 바라보는 설화린의 눈빛이 느껴졌다.
또 귀찮아지겠네.
녀석이 생각하는 것이 맞다.
이건 빙백장이 아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빙백장의 구결이 기억나지 않기 때문에 펼칠 수가 없었다. 다만.
태초부터 사람은 음양의 조화를 이루는 존재다.
구음절맥, 칠음절맥, 태양절맥 등 음양의 불균형을 갖고 태어난 이가 아닌 이상, 음양의 조화를 이루고 살아간다.
그저 차이가 난다고 하면, 남녀가 갖고 있는 신체 구조에 걸맞게 변화된 기운이 다를 뿐.
그리고 그 기운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해답은 대표적으로 포달랍궁을 제외한 새외 이궁에 있다.
북해빙궁은 기운 중에 음기에 집중하고, 반면에 남해태양궁은 양기에 집중하여 각자의 특색을 살린 것이다. 즉, 음양의 기운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뜻으로 볼 수 있었다.
거기다 그 기운을 특수한 무공을 통해 끌어올리는 것이 빙궁과 태양궁의 방식이지만, 나는 대충 묘리만 떠올려도 이 정도의 흉내를 내는 건 어렵지 않았다.
왜냐고?
난 무신이니까.
빙공을 어렴풋이 흉내 내는 정도야 뭐 그리 대수라고.
“그리고 너, 훈련하는 거 보게?”
“……왜요?”
“북해빙궁은 남들 수련하는 거 훔쳐봐도 무방하다고 여기나 보지?”
“…….”
불문율. 무림에서 다른 이가 무공 수련을 하는 모습을 훔쳐보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사천무관을 비롯한 무림학관 내에서 공통적으로 배우는 무학이라면 모를까, 개인의 무학을 익히는 데 훔쳐보는 것은 강호의 도리가 아니었다.
“……어차피 지금 사천검법 펼치고 있던 거 아니었어요?”
“내가 펼치는 건?”
“……흥! 됐어요. 뭐 그깟 흉내 낸 무공으로 내일 어떻게 해 볼 생각인가 본데.”
아, 또 말 많아지네.
귀찮다는 듯 말을 자르며 나는 손을 휘휘 내저었다.
“알았어. 알았으니까 잠을 자든 수련을 하든 네 맘대로 해. 잊었어? 우리가 훈련할 때만큼은 서로 참견하지 않기로 했지.”
어디서 나쁜 것만 배워 와서는 말이야! 떽!
내쫓아 버리듯 보내 버리고는 송무와 태강이 펼치고 있는 사천검법의 기수식을 살폈다.
“1초식부터 6초식까지 펼쳐.”
“그냥?”
“어, 그냥.”
굳이 사천검법을 펼치라고 한 이유는 개개인의 특성을 잡아 주기엔 시간도 없을뿐더러, 사흘간의 훈련이 헛되지 않았음을 직접 느껴 보게 하기 위함이었다.
검 끝이 어깨선과 맞닿을 즈음, 두 사람은 동시에 호흡을 내뱉었다.
“심법에 대한 운용은 잊고, 오롯이 검술에만 집중하도록.”
고개를 끄덕인 두 사람을 바라보며, 나는 나직이 입을 열었다.
“제1초식, 상천!”
후우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