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화
제26화
“개수를 더 높인다고? 이런 씨……!”
“씨?”
“여기서 더? 미친……!”
“미친?”
얼씨구.
내 눈이 매섭게 두 사람을 돌아보자, 두 사람의 표정이 창백해진다.
평소 욕과 거리가 멀었던 두 사람일진대, 한순간에 인성을 파탄 내 버린 나는 대단한 능력의 소유자일지도.
근데 뭐.
“단련시켜 달라며? 까라면 까. 포기할 거면 언제든지 포기해도 좋아. 단, 포기하면 영원히 내게 지도 받을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그렇게 선언했다.
뭐, 당연한 일 아닐까.
한 번이 어렵지 두 번, 세 번 하는 건 쉽다. 마음가짐이라는 게 한번 내려놓기 시작하면 끝도 없이 내려놓게 된다. 본디 사람이란 약하기 그지없는 존재이기에 마음을 대쪽같이 굳게 먹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내 말에 두 사람은 투덜거림을 멈추고 침묵을 지켰다.
그래서 이제 좀 움직여 볼까…… 하는데.
“그렇게 무식하게 육체를 쓰는 게 뭐 그리 도움이 된다고.”
뭐만 하려 하면 방해꾼이 이리 득실거리니 뭔들 할 수가 있겠나.
설화린은 당최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년아, 내가 너 납득시키려고 이 짓거리를 하는 줄 알아!
그런 속마음과는 달리 나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고 고갤 돌렸다.
하지만 내 반응과 상관없이 그녀는 정말로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훈련과 단련에도 상식이라는 게 있다. 그래서 사천무관에서도 아이들의 성장에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근력 단련을 적당히 하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육체를 저토록 극한의 극한까지 밀어붙인다?
자칫하면 근육이 망가지기 십상이다.
“끄으응.”
“으갸가가갸갸!”
자신의 몸뚱어리보다 큰 돌덩이를 짊어지질 않나, 제아무리 힘을 줘도 끄덕도 안 하는 벽을 밀고 있질 않나.
심지어 동굴 밖에서 갖고 온 수많은 자갈과 모래로 채운 죽통을 양다리에 칭칭 감아 놨다.
저걸 과연 단련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니, 저건 필시 몸을 상하게 할 뿐이었다.
게다가 한나절을 저렇게 녹초로 만들고 난 후 그다음은 가부좌를 틀고 운기조식을 하게 한다.
기초 훈련을 다 뗀 지가 언젠데, 저런 무식한 훈련을 지속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런 뚱한 반응이 계속 이어지자, 나는 기껍게 웃었다.
설화린뿐만 아니라 누가 보더라도 쉬이 이해할 수 없어 비슷한 반응을 보일 거다.
하지만 한 번 무의 정점에 서 봤던 나도 여전히 기초 훈련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기초는 아무리 닦아도 결코 부족하지 않다는 걸 말이다.
그래서 나는 이 무지몽매한 녀석에게 몸소 깨달음을 가르쳐 주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손보면 이 녀석들이 널 금방 이길 텐데?”
응?
내 말에 세 사람의 고개가 동시에 돌아갔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들어 놓고도 왜 모른 척이야?”
“농담이죠?”
“그렇게 들렸으면 유감인데. 난 농담 같은 거 잘 못하거든.”
명백한 도발에 설화린의 고운 아미가 찡그려졌다.
“……후, 그래요. 뭐 저렇게 훈련하는데 근력으로는 금방 이기겠죠.”
더 이상 도발에 넘어가지 않겠다는 반응을 보이는 그녀였지만.
“뭔 헛소리야. 근력이고 나발이고 그냥 널 이기게 만든다고.”
“네?”
설화린이 놀라는 건 이해하는데.
“뭐!?”
“에엥?”
왜 니들까지 놀라는 건데? 그리고 송무와 태강은 좀 다르지 않나.
송무야 그렇다고 치더라도 태강마저 송무화가 되어 버리는 건 좀 곤란한데.
“지금 저랑 장난해요?”
뾰족한 음성이 튀어나왔다. 아마 녀석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말이었겠지.
백옥 같던 설화린의 얼굴이 붉어지자 그 붉은 안색이 더욱 도드라져 보일 정도였다.
“사람을 무시하는 것도 유분수지. 정도껏 하란 말이에요!”
제아무리 후보생 간의 격차가 크지 않다고 한들, 그래도 감히 넘을 수 없는 벽이란 게 있다. 설화린은 이 두 사람이 자신을 넘어서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판단했다.
“확신해?”
“뭘 말이에요?”
“네 실력에 그렇게 확신하느냐고?”
기가 찼다. 당사자인 천무린은 대련하는 모습을 몇 번이나 본 터라 사실 설화린이 어떻게 해 볼 수 없었지만.
눈앞에 있는 두 사람은 무공으로 따지면 명백한 하위권이다.
근데 뭐가 어쩌고 어째?
근력 단련을 좀 했다고 하루아침에 달라진다면 누가 무공 수련을 할까. 죄다 근력 훈련이나 하고 앉았겠지.
당신이 아무리 떼를 써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야.
“후우, 좋아요. 그 도전 받아들이겠어요.”
천무린의 기고만장한 성격을 기필코 한 번쯤 꺾으리라 다짐했는데, 때마침 기회가 찾아왔다.
아까 마인과의 승부를 복기해 봐도 두 사람의 실력은 명백히 자신보다 훨씬 아래였다.
태강은 한 방에 나가떨어졌고, 송무는 검 한 번 휘두른 게 고작이었다.
그런 녀석들과 뭐 어쩌고 어째……?
“어이없고, 또 어이없지만……. 좋아요. 대신 조건이 있어요.”
“조건?”
제법 흥미로운데.
척.
설화린이 검지를 뻗어 내 팔뚝을 가리켰다.
“이거 원해?”
끄덕.
내 팔뚝에는 노란색 띠가 질끈 묶여 있었다. 조장을 상징하는 노란 띠였다.
“솔직해서 좋네.”
어쩌고저쩌고 장황하게 말을 늘어놓는 것보다 확실한 의사표시가 좋았다.
간만에 마음에 드는데.
씨익 웃으며, 나는 설화린을 마주 바라보고 입을 열었다.
“그럼 나도 조건을 말해도 되지?”
맞조건을 걸리라고 예상 못 했는지 설화린은 잠시 당황하는 눈빛을 보였으나, 이내 고개를 끄덕인다.
“좋아요. 조건이 뭔데요?”
그건 나도 모른다.
다만, 내가 악교운한테 조건부로 황태를 팼기 때문에 성가신 작업이 있을 때 이 녀석을 써먹을 요량이었다.
“나중에.”
근데 그런 내 반응에 설화린의 얼굴이 굳어지더니 슬그머니 양손을 올렸다.
응?
그러곤 자신의 상체를 교차하여 가렸다.
미친.
“그딴 거 아니야.”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는 정말 어린애한테 눈곱만큼도 관심이 없다.
암만 그래도, 어?
전생에 명색이 천마였는데, 딸린 식구가 몇 명이었는데!
경국지색(傾國之色)이니 침어낙안(沈魚落雁)이니 폐월수화(閉月羞花)니 하는 수많은 미녀들과 함께한 세월이 얼만데!
근데, 뭐?
이런 애송이를 어떻게 해 보려고 한다?
진짜 말도 안 되는 소리지.
“그냥 추후에 나 좀 도와주면 돼.”
“뭘 도와 달란…….”
또박또박 따지는 설화린에게 나는 톡 쏘아붙였다.
“자신이 없나 봐? 자꾸 말을 늘어놓는 거 보면?”
그러자 입을 꾹 닫는 설화린이었다.
“승부는 이 칠 주야의 과제가 끝나는 날, 오전 사시(巳時)로.”
그 말에 설화린보다 다른 두 사람이 더 호들갑을 떨었다.
둘이서 북 치고 장구 치고 다하더니 결국에 승부를 보는 건 본인들이었으니까.
“이게 다 뭔 경우야?”
“……고래 등 싸움에 왜 우리가 터지는데?”
“제X랄.”
그렇게 넋이 나간 표정을 지은 채, 송무와 태강은 두 사람의 신경전에 희생양이 되고 말았다.
무려 사흘간 굴렀던 몸이 종래엔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나…… 어깨가 고장 난 거 같아.”
“너도? 나도.”
눈을 뜨고부터 한시도 쉬지 않고 몸을 굴려 댔으니 어딘가 단단히 잘못되지 않은 게 더 이상할 정도였다. 사람 몸은 쓰면 쓸수록 단련이 되지만 적절한 휴식 없으면 금방 과부하가 걸려 버린다. 제아무리 무공을 익히는 무림인이자 강호인이라고 할지라도.
생각해 보라. 만약 그게 아니라면 잠도 안 자고 몸만 굴려 대는 사람이 가장 강해지지 않을까.
지고한 경지인 금강불괴(金剛不壞)가 아닌 한, 그런 사실은 모든 인간이 동일하게 적용된다. 그러나 천무린은.
“후욱, 후욱.”
자신들보다 몇 배나 되는 무게, 몇 배나 되는 개수로 훈련을 우습게 해내고 있다. 괴물 같은 새끼.
아, 아니, 괴물 같은 녀석.
송무와 태강은 마음속에서 끓어오르던 말들이 그냥 입안을 맴돌다가 사라졌다.
쓰러지고 싶어도 쓰러질 수가 없었고, 그만두고 싶어도 그만둘 수가 없었던 이유.
천무린이 갑작스럽게 강해진 이유에 대해 논했을 때, 가장 유력한 이야기는 태강의 입에서 나왔다.
무언가 기연을 얻었을 거라는 태강의 말에 송무는 의아해하면서도 함께 호기심을 가졌었다.
그러나.
사흘을 함께한 순간, 다시금 깨닫는다.
천무린이 어떻게 살을 뺐는지, 그 비대하고 볼품없던 몸뚱어리를 정상 범주로 만들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고 무엇을 했을지 말이다.
자신들은 사흘만 해도 죽을 것 같은데.
기연을 얻었을 거라는 태강의 추측은 금방 신빙성을 잃었고, 인내와 끈기로 점철된 천무린의 하루하루를 보자 반문할 힘마저 싹 사라졌다.
어디 그뿐이랴.
사천무관에서의 몇 개월 훈련은 단 사흘간 천무린에게 받은 훈련에 비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
눈만 뜨면 근력을 단련한다. 만물이 만들어 준 자연의 각종 기구들로.
눈을 감을 때까지 훈련한다. 만물이 일으킨 자연의 기운을 가열차게 받아들이면서.
“굴러. 뭐 하고 나자빠져 있어?”
“그깟 어깨 좀 삐걱거린다고 칼 못 잡아?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라도 씹어야지. 하여간 요즘 새끼들 나약해 빠져 가지고.”
“아니, 너희들은 밥을 먹을 자격도 없어. 이 식충이 같은 놈들.”
날이 갈수록, 그리고 설화린과 비무하는 날이 다가올수록 천무린의 입은 더욱 거칠어졌다.
요즘 새끼들이니 나발이니 같은 또래가 하는 말이라곤 생각할 수 없는 말들이었지만, 두 사람은 이미 사고력과 판단력을 상실했기 때문에 그저 구를 뿐이었다.
채찍질의 강도가 심해졌고 더욱 심하게 몰아붙였다. 매일같이 한계를 넘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한번은.
쿨쿨.
타닥, 타닥, 소리가 나는 모닥불을 사이에 두고 동굴 초입에 자리를 잡은 두 사람은 슬그머니 눈을 떴다.
“훈련하다가 죽을 바에 차라리 도망가다가 죽는 게 더 낫지 않을까? 동굴에서 죽으면 누가 우릴 찾아 줘?”
“……네 말이 옳아. 저 악마 새……. 크흠흠, 이렇게 하다 죽는 것보다 낫지. 말해 뭐해?”
“저 사람 같지도 않은 새……. 아니, 인간이 간만에 코 골고 자고 있잖아. 지금밖에 기회가 없어.”
“무린이가 눈뜨기 전에 얼른 가자.”
영혼의 단짝 그쯤 어딘가 되는 두 사람의 끈끈한 우정은 이제 굳이 말로 내뱉지 않아도 서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대번에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살금살금.
잠을 자고 있는 천무린과 설화린의 모습을 보고 두 사람은 살며시 기척을 죽이며 움직였다. 싱그러운 보름달이 두 사람을 비추었다.
“……드디어!”
“크흡…….”
고즈넉한 달빛이 두 사람을 인도했고, 곧 새로운 광명을 밝혀 줄 것만 같았…….
“고즈넉한 달빛 아래 말 안 듣는 조원 새끼들은 때려야 말을 듣지.”
어……?
……그런 음성이 들렸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