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무신, 무림학관을 제패하다-24화 (24/250)

제24화

제24화

송무는 마인의 움직임에 심히 긴장한 듯 보였지만.

「빠져나갈 수 있는 각을 좁히고 종횡이 아닌 사선으로 베어 넘겨. 오른쪽 다리가 성치 않은 몸으로 피하기가 쉽지 않을 거다.」

공력이 상승하여 사용이 가능해진 전음입밀(傳音入密).

나는 송무에게 전음입밀(傳音入密)을 은밀하게 날렸다.

오롯이 송무에게만 전달되는 음성에 흠칫하는 송무였지만, 이내 마인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겠다는 듯 집중하였다.

그래, 몰입해라. 집중하고 또 집중해서 그간 나한테 맞으면서 한 소리 듣던 걸 몸으로 표현해 봐.

동굴 초입까지의 거리는 대략 3장 정도.

송무의 집중력이 깨지지만 않는다면 충분히 막아 낼 수 있을 것이다.

아니, 막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이고 잠깐, 아주 잠깐만 발을 묶고 있으면 된다. 찰나의 순간이면 충분했다.

나와 설화린도 뒤따라 움직였다.

내 믿음을 저버리지 않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사뭇 진지해진 송무였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다가오는 마인의 비수는 자비 없이 뻗어 갔다. 비록 빙백장으로 인해 오른쪽 다리가 성치 못해도 상체의 움직임만은 유연하기 그지없는 공격적인 기세였다.

후웅!

피잇!

반박자 느린 송무의 움직임을 피해 마인의 비수가 송무의 팔뚝을 베고 지나가자, 피가 튀었다.

화끈거리는 느낌에 절로 얼굴이 찡그려지는 송무였지만, 침착하게 숨을 내쉬었다.

옛날 같았으면, 진작에 포기했겠지만.

웬일인지 몸속을 가볍게 돌고 있는 기운이 충만한 것이 전과 달랐다.

힐끗.

시선이 천무린에게 닿았다가 금방 마인의 움직임에 집중하였다. 남사익과 붙기 위해 훈련했던 무린과 함께한 칠 주야 동안 무식하리만치 괴로운 방법으로 수련을 했다.

하체와 검 끝이 흔들리지 않도록 근력을 키웠다.

가르쳐 준 호흡법을 이용하면서 계속해서.

‘나밖에 없다. 무린이도, 화린이도, 태강이도 없어. 나는 내가 지켜야만 해……. 그리고.’

폐를 끼치고 싶지 않다. 나도 조원들에게 뭔가 도움이 되고 싶다.

그런 생각이 잠든 단전 끝에서부터 치솟아 올랐다.

여태 당하고만 살았다. 만년 꼴찌라는 불명예스러운 모욕도, 황태의 직접적인 괴롭힘에도 꾹 참아 왔다.

그런 그의 삶에서 희망을 준 것은 다름 아닌 천무린이었다.

자신보다 열악한 환경, 최악의 신체 조건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노력과 끈기로 난관을 극복했다.

단, 몇 개월 사이에.

그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간 포기하고 내려놓고 있었던 마음에 불이 붙었다.

나도 할 수 있다.

여태 패배자로만 살았던 삶을 바꿀 수 있다.

그런 마음 말이다.

담담한 태도를 유지하며 움직였다. 각을 좁히기 위해 몸을 움직이고 검을 움직였다.

그대로 빠져나가려던 마인은 사선으로 베어 오는 검격에 역동작이 걸려서 그대로 멈칫했다.

급격하게 차오르는 반동이 마인의 움직임을 방해한 것이다.

키기깅!

사선으로 들어오는 공격은 꽤 까다롭다. 앞에서 오는 검격을 피하려면 뒤로 물러나거나 막아야만 하니 결국엔 움직임에 제동이 걸릴 수밖에.

“그거면 충분해.”

아뿔싸.

마인의 표정이 굳어졌다.

후우웅.

삽시간에 다가온 금빛 서기와 신비롭게 핀 하얀 눈꽃이, 즉 백보신권과 빙백장이 마인의 뒤를 노렸다.

화려한 조명이 마인을 감싸네.

그냥 손속에 제한을 두지 말 걸 그랬다.

그것이 마인이 정신을 잃기 전 마지막에 든 생각이었다.

* * *

“…….”

만신창이가 된 자신의 동기를 바라보는 부교관은 그만 눈을 질끈 감아 버렸다.

그리고 이렇게 만든 네 명의 후보생을 바라보는 부교관의 표정이 몹시 어색했다.

“이, 이게 무슨…….”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들으면 들을수록 그저 황당할 뿐이었다. 부교관도 익히 알고 있었다. 후보생들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서너 명의 후보생들이 한꺼번에 덤벼들어도 절대 제압할 순 없었을 텐데.

어떻게 자신의 동기를 이 모양, 이 꼴로 만들었단 말인가?

“마인을 잡았습니다. 우리의 식량을 뺏어 가려는 후안무치한 놈을.”

“그렇습니다. 마인을 잡았습니다. 기껏 구해 온 식량을 가져가려 했어요.”

“여기 보십시오. 이 상처들. 태강은 장법에 당해 아직도 헛구역질하고 있습니다. 제대로 당했습니다.”

“아직도 아프네요……. 그래도 모두가 힘을 합쳐서 마인을 잡았습니다.”

허, 참.

부교관으로서 연수 합격을 펼쳐 교관을 잡은 후보생들을 칭찬해야 할지, 교관을 마구 쥐어 팼다고 따끔하게 훈계를 해야 할지.

전자는 사천무관으로선 홍복이고, 후자는…… 창피하다.

그저 창피할 따름이었다.

악교운에게 왕창 깨지는 것은 고사하고 저 친구는 이제 얼굴을 어떻게 들고 다닐 것인가.

이 네 명의 후보생들 중에 과연 누가 교관에게 치명상을 먹일 수 있었을까.

아직까지 합격진을 가르친 적이 없었기에 체계적인 공격은 불가능했을 테고, 누군가가 개인의 역량으로 자신의 동기를 당황하게 만들었을 거다.

본의 아니게 악교운의 말대로, 조장이 가진 역량에 따라 달라진다는 결과가 이렇게 금방 나타날 줄이야.

‘총교관님이 눈여겨보시고 평소에 보이지도 않던 미소를 지으신 이유가 이놈 때문이었나. 아주 괘씸하고도 재밌는 녀석이로세.’

괘씸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재밌었다.

이런 후보생이라면 자신도 이 녀석의 성장을 즐겁게 지켜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옆에 있는 동기와 같은 꼴을 당하고 싶진 않았지만.

어서 수습을 해야만 했다.

“상점, 충분히 부여해 주지. 마인을 제압한 건…… 여태 없었던 일인데, 실제로 행했으니까.”

위장 마인인 건 중요치 않았다. 이 일은 절대로 외부로 발설되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

사천무관뿐 아니라 모든 무림학관의 수업은 교관들의 완벽한 통제 아래 이뤄진다. 한번 어긋나기 시작하면 무법지대로 변하는 것은 아주 순식간일 것이다.

물론 때가 되어 교관들을 뛰어넘을 정도의 뛰어난 실력을 갖추게 된다면 받아들일 수 있는 상황이지만, 지금은 후보생들이기 때문에 자칫 혼란을 줄 수 있는 상황은 최대한 막아야만 했다.

“단, 이와 같은 사실에 대해선 절대 함구하도록. 성적에는 투명하게 반영하겠지만…….”

“압니다. 알고말고요. 오롯이 저희 실력으로 마인을 생포한 거겠습니까. 마인이 손속에 제한을 두지 않았다면 저흰 지금 이 자리에 없었겠죠. 안 그렇습니까?”

말이 아주 청산유수다.

17번 후보생의 넉살 좋은 표정에 절로 눈살이 찌푸려졌지만, 그럼에도 미워할 수가 없었다.

뭐라고 말을 꺼내기도 전에 상황을 정리해 버리는 17번 후보생이었다.

눈치가 빠르다.

그 말에 다른 세 후보생도 고개를 끄덕였다.

자연스레 터득한 눈칫밥으로 다른 후보생들에게 신호를 주는 것이 부교관이 굳이 입 아프게 말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럼, 남은 시간 동안 조별 과제를 마칠 수 있도록.”

쓰러진 동기를 둘러업은 부교관은 더 이상 후보생들과 시선을 마주치지 않은 채 사라졌다.

그러고 나서야 모두 바닥에 쓰러지며 참았던 숨을 몰아쉬었다.

“후아아아.”

“후우우.”

“……하아.”

X랄 맞네.

나는 배고픔도 까맣게 잊은 채 벌러덩 누웠다.

긴장의 끈을 놓아 버렸다.

* * *

꼬르륵.

허기가 졌다는 신호를 보내는 꼬르륵 소리에 절로 눈이 떠졌다.

텅 빈 단전과 손가락 하나 까딱이기 힘든 극심한 피로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나보다 뛰어난 경지의 누군가와 사투를 벌인다는 건 내력과 무공뿐 아니라 심력 또한 무지막지하게 소진하는 일이다.

체내에 존재하는 정신력과 체력은 단순히 내력만 높다고 해서 강해지는 것이 아니니까.

괜히 체력 단련과 명상을 할까.

그렇다고 계속 이렇게 누워만 있을 순 없는 노릇이었기에 무거운 몸을 일으켜 앉았다.

타다닥.

화섭자로 인해 생긴 불씨가 마른 장작에 옮겨붙어 타닥거리는 소리와 함께 동굴 안을 훤히 비추며 일행의 차가운 몸을 녹여 주고 있었다.

기절한 듯 쓰러진 일행을 바라보며 짧은 시간 내에 얻은 것들을 관조했다.

오늘 하루만 해도 쉽게 접할 수 없는 귀한 경험들을 했다.

귀구도 얻었고, 값진 대련을 통해 실전 경험을 쌓았다.

임기응변식으로 펼친 취팔선보에 대해서도 다시금 생각해 볼 가치가 있었다.

뒤적뒤적.

어디 있더라.

고이 숨겨 논 내 보물을 찾았다.

품속에 있던 귀구의 알을 깨뜨려 입에 쏙 넣으며 가부좌를 틀었다. 일행이 잠에서 깨기 전에 얻은 것들을 녹여 낼 생각이었다.

겸사겸사 내력을 좀 더 얻으면 더 좋고.

비릿한 향과 기름 덩어리가 목으로 넘어가는 느낌은 그다지 좋지 않았지만, 식도를 타고 흘러간 덩어리는 금방 소화되며 몸속에 흡수되었다.

꿈틀.

단전이 다시금 요동쳤다. 새롭게 들어온 기운에 텅 빈 단전이 반응을 보인 것이다.

때맞춰 역근경을 펼치며 심호흡을 했다. 익숙한 기운에 따라 움직이는 역근경의 서기였다.

그러나.

5년의 공력이 역근경에 녹아들었지만, 증진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쩝, 아쉬웠지만 이해는 갔다.

비수에 베였던 흔적들을 회복하고 소모되었던 단전의 빈 공간을 채우고 난 후 금방 사라져 버린 귀구의 알이었다.

아쉬움이 뒤따랐지만 금세 몸을 회복해 최적의 상태로 만들어 주었고, 자연스레 마인과의 혈투(?)에 대해 다시금 집중하도록 만들어 주었다.

그간의 관록과 경험으로 충분히 몰아붙였음에도 불구하고 일류 초입과 일류 극의는 역시 차원이 달랐다.

환생을 한 뒤로 소림의 무공에 꽤나 집중했다곤 하지만, 실제로 사용을 한 것은 고작 칠 주야에 불과하다. 무공에 대한 깊이가 아무래도 얕을 수밖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토록 싸울 수 있었던 이유는.

“금제 때문이려나.”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나는 빌어먹을 저승사자 때문에 금살이라는 금제에 걸려 있다.

자연스레 최강이라 자랑하고 다니던 천마신공도 금제되었다.

절대적인 무공을 쓸 수 없다는 금제는 내게 크나큰 허무를 안겨 주었지만, 지금은 그 부족함을 다른 것으로 채우고 있었다.

그런데.

“이걸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육조 혜능과 신승 달마가 일궈 낸 역근경과 소림의 무예는 부처의 마음가짐에 기반한다.

부처의 마음, 즉 헤아릴 수 없는 깊이의 자비심과 불심을 토대로 한 마음가짐이 곧 소림의 무예에 기반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게 웬걸.

수없이 많은 혈겁을 일으키던 내가 금살이라는 금제를 당함으로써, 소림의 무예에 적합한 심신이 되었다.

애초에 살인에 대한 욕구도, 살기를 쉬이 꺼낼 수도 없는 몸이 되었으니 말이다.

그 금살이라는 금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역근경의 내력이 내게 하해와도 같은 성취를 안겨 주었다.

단순히 귀구의 알을 통해서 내공 증진이 한 단계 높은 경지로 나아가기 위한 상승을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여태 맞물려 있던 비무 대련을 통해 생긴 깨달음과, 억지 자비심이 만들어 낸 역근경의 효력이 곧 상승효과를 일으킨 것이다.

거기다 내가 가진 무공에 대한 경험까지 더해지니, 이렇듯 삼박자가 골고루 맞아떨어진 것이다.

절로 일취월장(日就月將)이라는 말이 나오는 순간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