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화
제22화
순간, 흠칫하던 세 사람은 일어난 나를 보고 헛기침을 했다.
“무린아, 일어났어? 몸은 어때? 괜찮……. 우욱.”
“……똥을 바지에 지려도 이런 냄새는.”
재빨리 화제를 돌리며 내게 다가오려다가 상체를 세운 나로 인해 퍼지는 악취가 송무의 코를 파고들었다.
그 자리에서 헛구역질을 하는 송무를 보고 진저리를 친 다른 두 사람이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이런 개 같은.
이런 것들이 내 조원들이라고.
냄새가 심하면 얼마나 심하다고, 킁킁.
우욱.
현기증이 올라왔다.
“알았다. 알았어. 가서 씻고 오면 되잖아.”
더 고집을 부려 봐야 나만 손해였다.
나 역시도 악취가 심한 것을 느끼고 있었고, 후딱 뛰어 내려갔다.
가뜩이나 어두컴컴한 곳인데, 이미 해가 뉘엿뉘엿 진 어스름한 시간이었다.
졸졸 흐르는 냇가가 보이자, 나는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흐르는 물에 눕다시피 하여 깨끗이 씻었다.
자연에게는 정말 미안했지만.
뭐, 대자연은 금방 회복할 거니까.
“후우.”
노폐물의 흔적들을 지우고, 새삼 묵직해진 단전을 느꼈다.
기존에 있던 5년의 내력에 더해 무려 30년이 된 반 갑자의 내공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게 느껴지니 방금 당한 설움도 눈 녹듯이 깨끗이 사라졌다.
“이거지.”
역근경의 힘을 새삼 느끼는 중이었다.
임맥을 타통하여 단전의 크기가 월등히 커졌을 뿐 아니라 운신하는 데 필요한 대부분의 혈맥들도 굵고 튼튼해졌다.
역근경을 익히면서 지방 덩어리를 완전히 태우고 내 육체에 남아 있던 불순물을 죄다 제거했다고 판단했지만, 착각이었다.
아직도 멀고도 먼 무의 길이었다.
그리고 잠깐이자 우연히 얻게 된 기연이지만, 이런 기세로 독맥까지 타통한다면?
손끝부터 발끝까지 금빛 서기가 확연히 돋보일 정도로 내력의 길이 한층 더 넓어져서 노도와 같은 내력의 움직임에도 거침없이 받아들일 테고, 콩알과 같은 기운도 금방 찾아낼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렇게만 된다면.
단숨에 절정까지도 넘볼 수 있을 터.
계획한 것보다 훨씬 시간을 앞당길 수 있을 것이었다.
만족스럽기 그지없는 결과를 낳았다. 고작 애송이들과 마찰을 일으켰다고 다리가 풀리는 불상사는 전부 지난날의 추억이 되겠지.
그때.
기척이 느껴진다.
일행이 머무는 동굴 입구에서 서성이는 몇몇 인영이 느껴졌다.
대놓고 움직이는 인영들은 대략 3명.
내공을 끌어올렸다. 내공이 월등히 높아진 지금, 펼쳐지는 기감의 영역 역시 확대되었기에 대번 기척을 느낄 수 있었다.
아마도 마인으로 위장한 교관들이겠지.
이 시간대에 이토록 대놓고 움직이는 인원들은.
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확인해 봤을 때, 마인으로 위장한 교관들은 일류급들이었다.
생사투(生死鬪)가 아니니 지금 내 수준을 가늠하기에 가장 적당할 터였다.
강해졌으면 그만큼 시도해 봐야겠지.
나는 급히 몸을 날렸다.
* * *
벌벌벌.
송무의 양다리가 떨렸다.
태강과 설화린도 송무의 반응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마, 마인?”
우스꽝스러우리만치 마(魔)라고 적힌 두건을 쓰고서 입가엔 검은 천을 둘렀다. 그러곤 온몸을 검은 무복으로 두른 이들이 무려 세 사람이나 동굴 입구에 서 있었다.
세 명이 나란히 서서 눈앞에 선 부교관들과 대치하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뻔히 알 것 다 알지 않은가.
한두 살 먹은 꼬맹이도 아니거니와, 분명 조별 과제에 투입되기 전에 이야기를 나눴을 때만 해도 이들이 설마하니 부상까지 입힐까 하는 생각이었다.
분명 마인(魔人)으로 위장한 교관임을 알고 있다.
하지만.
세차게 뿜어대는 저 기운은.
욱신!
세 명의 마인은 살기(殺氣)를 줄줄 뿜어내고 있었다. 그 기운에 세 사람은 그만 압도되고 말았다.
언제 살기를 이렇게 눈앞에서 받아 봤겠는가.
턱!
숨이 턱 하고 막혀 오는 설화린보다 송무와 태강이 더욱 버거워했다.
특히 이류 초입에 불과한 송무가 견뎌 내기엔 엄청난 압박감.
송무와 태강, 이 두 사람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설화린 역시 압박감에 상당히 긴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해를 끼치지 않을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세 사람이었기에 스스로를 독려했다.
“설마 죽이기야 하겠어?”
“그렇겠지?”
송무의 말에 태강이 고개를 끄덕이며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곧 그런 안일함이 그들의 움직임을 둔하게 만들었다. 방심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에.
일류급 마인 두 명이 발산한 살기로 세 사람을 꽁꽁 묶자, 다른 한 명이 쏜살같이 경공을 펼쳤다.
자리를 박찬 한 명의 움직임은 세 사람이 어찌할 방도가 없도록 만들었다. 그저 시선이 좇아가는 것이 전부였다.
세 사람을 지나친 마인은 설화린과 태강이 기껏 구해 온 식량인 열매와 손질한 토끼 고기에 손을 뻗었다.
“엇!”
“이런 젠장!”
얼어붙은 송무와 태강이 뒤늦게 움직이려고 했으나, 쇄도하는 마인의 움직임을 따라잡을 순 없었다.
“어딜 가나요!”
우수한 성적에는 무공도 포함되어 있었다. 설화린의 무공 수위는 후보생들 중에선 상위권에 속해 있었던 만큼 다른 두 사람보단 한 박자 빠르게 몸을 돌린 그녀는 빙백장(氷白掌)을 펼쳤다.
촤차아아!
쩌적!
“핫!”
휘리릭!
마인을 향해 뻗은 빙백장(氷白掌)은 신들린 보법으로 피해 낸 마인의 움직임에 의해 그만 헛수고가 되고 말았다.
“칫!”
설화린은 아쉬운 반응을 보일 새도 없이 보법을 펼치며 쫓아갔지만, 이미 마인은 보법을 펼쳐 뒤로 몇 걸음 벗어난 상태였다.
그 모습을 본 다른 두 마인은 이미 제 역할이 끝났다고 생각했는지 동굴에서 벗어났다.
식량을 왼손에 쥔 마인은 벙쪄 있는 세 사람을 등지고 금세 동굴 입구로 걸음을 옮겼다.
“아, 안 돼. 저거 없으면 우리 오늘 밤은 쫄쫄 굶어야 돼!”
송무와 태강이 동굴 입구를 재빠르게 막으면서 빠져나가려는 마인의 길목을 차단하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쏜살같은 그의 움직임에 대응하는 어설픈 칼질과 주먹질은 너무도 느렸으니까.
그렇게 두 사람을 스쳐 지나가는 마인의 움직임을 벙찐 채로 바라봐야 하는 세 사람의 표정에 절망감이 어렸다.
압도적인 마인과의 실력 차이에 그만 포기의 한숨을 내쉬는 그때.
“포기는 배추 셀 때나 하는 말일 텐데. 너무 일찍 내려놓는 거 아니냐?”
퍼억!
쿠당탕!
낯익은 목소리에 세 사람의 안색이 금세 밝아졌다.
눈엣가시 같은 존재가 지금은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다고 설화린은 잠깐 생각했다.
푸드드더더덕!
식량을 훔쳐 달아나던 마인이 그대로 동굴 내부로 처박히면서 바닥을 굴렀다.
“크읏…….”
짧은 신음과 함께 자신을 공격한 이를 바라보는 마인이었다. 그의 시선 끝에 걸린 건 단 한 사람이었다.
“쫄쫄 굶는다잖아요. 아직 성장판도 안 닫힌 애들 거 뺏어 가서 어쩌려고.”
염치도 없게 말이야.
대력금강장(大力金剛掌)을 나름 내력을 끌어올려 후려쳤음에도 불구하고 큰 타격 없이 충격을 완화하다니.
역시 일류도 완숙한 일류는 반사 신경도 다른 건가.
그럴수록 호승심이 더욱 일었다.
나의 등장에 벙찐 세 사람에게 힘주어 소리쳤다.
내 등장에 좋아할 때냐.
식량도 구하고. 더 좋은 것도 구해야지!
“뭐 해! 마인 잡으면 그래도 벌점 아니고 상점은 딸 거 아냐.”
그 말에 눈을 번뜩이는 세 사람이었다.
사, 상점?
상점이라니!
어지간해서는 상점을 얻을 수 없는데.
일류급 고수를 잡아낼 정도의 공로라면?
하물며 과제 내에서 마인이라고 공표되었다면.
안 주고 배길 수 있을까.
내 말 한마디에 세 사람의 머리가 비상하게 돌아갔다. 두 눈을 매의 눈처럼 번뜩였다.
게다가 지금 마인은 세 명 중 한 명밖에 없다.
방금까지 육식동물 앞에서 꼬리를 말던 초식동물에 불과했던 녀석들이 이제는 군침을 흘리며 득달같이 쓰러진 마인의 사방을 포위했다.
“상, 상점!”
“상점 받아야지!”
“상점을 주세요!”
내가 말을 꺼냈지만, 미친 연놈들이었다. 아주.
나는 그것을 보고 혀를 찬 만큼, 마인 역시 어처구니가 없다는 눈빛을 보이며 몸에 묻은 먼지를 툭툭 털었다.
너도 어이없지? 미안.
그러곤 나를 바라보며 눈썹을 역팔자로 꺾는 마인이었다.
오호라.
제대로 빡쳤나 본데?
덤벼 보라고, 나도 확실히 검증해 보게. 내가 얼마나 강해졌는지.
오른손을 허리춤에 두고 왼손 주먹을 서서히 내리면서 백보신권(百步神拳)을 위한 자세를 취했다. 일류 초입에 불과한 내가 일류 중에서도 완연한 실력자인 교관에게 피해를 입힐 수 있는 건 이 무공밖에 없었다.
그런데.
당장이라도 내게 덤벼들 것 같던 마인은 몸을 틀더니 검을 잡고 자세를 막 가다듬고 있는 송무에게로 성큼 다가섰다.
누가 마인 위장한 거 아니랄까 봐!
나도 모르게 방심하고 있던 터라 어쩔 도리가 없다고 판단한 순간, 그대로 송무의 목을 잡고는 경직된 세 사람에게 흉흉한 살기를 뿜어냈다.
“엥?”
“…….”
그 와중에 송무가 입을 열어 소리쳤다.
“어차피 날 못 죽일 거 아냐! 빨리 잡아!”
이런 병X.
그렇게 말하면, 당연히 손에 더욱 힘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제아무리 마인으로 위장했다고 할지라도.
교관의 손에 잡혀 있는 비수가 송무의 목젖에 닿았다.
주륵.
비수 끝에 묻은 핏방울은 결코 눈속임 따위가 아니었다.
“어? 어……?”
목에서 느껴지는 열감에 송무의 눈빛이 격하게 흔들렸고, 그 모습을 보고 설화린과 태강도 몸이 굳을 수밖에 없었다.
한 걸음, 한 걸음씩 마인은 송무를 인질로 삼고 동굴 입구로 방향을 틀어 움직였다.
“마인 역할극에 아주 진심이시네. 이 교관님은.”
씨X, 이대로 놓치면 다 똥 되는 거다.
그렇다고 송무의 안위를 무시하고 다짜고짜 공격했다간 어떤 상황에 맞닥뜨릴지 알 수 없다.
지금 저 마인의 눈빛을 봐라. 한편으로는 이해가 된다.
한낱 후보생들한테 잡혀서 상점을 주는 상품으로 전락한다?
나라도 차라리 죽는 편이 낫지, 그런 꼴은 절대 당하고 싶진 않았다.
고로 잘못 뛰어들었다간 송무가 죽진 않더라도 크게 다칠 수도 있겠지.
나도 그렇게 야박한 놈은 아니다.
상점에 대한 욕심 때문에 동료를 저버릴 정도는…….
뭐, 아주 잠깐 생각만 해 봤다. 진짜, 아주 잠깐.
크흠.
하지만 송무를 구하면서 일류 교관을 잡을 수 있는 방법.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방법이 지금 이 순간 당장 떠오르지 않는다.
내가 압도적으로 무공이 강하다면 모를까.
내심 반쯤 포기를 하고 있을 때.
“식량은 주고 가시죠? 아무리 그래도 후보생을 인질로 삼으면서까지 마인의 역할을 하라는 이야긴 나오지 않았을 텐데요.”
설화린이 한 걸음 나서며 침착하게 말하자, 마인의 걸음이 우뚝 멈췄다.
“칠 주야 끝나면 조별 과제가 어땠느니 평가 이야기가 나올 텐데 말이에요. 식량이라도 주고 조용히 사라지면 아무 말 안 할게요.”
그녀의 설득력 있는 말에 마인으로 위장한 교관은 제 체면과 위신을 생각하는 듯했다.
그러면서 설화린은 나를 쳐다봤다. 그녀의 눈이 몇 번이나 깜빡였다.
이런 깜찍한 녀석 같으니라고. 제법 똑똑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