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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무신, 무림학관을 제패하다-21화 (21/250)

제21화

제21화

귀구의 유일한 약점은 바로 화기(火氣)였다.

그러나 그 화기가 귀구에게 닿은 채로 반각에서 일각 정도의 시간을 기다려야만 그 열기가 침투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단순히 화기에 죽거나 하진 않는다. 그저 녀석을 반응하게 하는 데 필요한 촉매제에 불과할 뿐.

“일어났냐?”

바위가 수없이 진동을 하더니 이내 네발 다리가 뻗어 나와 움직이기 시작했다.

“반가워. 간만에 본단 말이지.”

몇십 년 만에 처음 보는 녀석이었다. 마교 교주가 되기도 전에 마주했던 녀석이었으니.

그놈과 동일한 놈은 당연히 아니겠지.

귀구는 평생을 걸쳐 수많은 알을 낳는다.

그 수많은 알은 당연히 강과 바다에 낳고 한낱 돌멩이처럼 있다가 부화될 때까지 다양한 세상을 경험하게 되는데, 이놈은 쓸려 온 강가 근처에 닿았다가 여기까지 온 듯싶었다.

합리적인 추측이었다.

“그리고 내가 노리는 것도 네놈이 낳은 알이지.”

애당초 귀구의 등껍질은 내가 건드릴 수가 없다. 애꿎은 칼질을 했다간 기껏 갖고 온 칼날의 이만 다 나가 버릴 테니까.

귀구는 본능적으로 육중한 무게가 실린 발걸음으로 내딛었다. 그리고 그는 활활 타고 있는 불씨를 피해서 움직였고, 나는 귀구가 사라진 자리를 힐끔 내려다봤다.

무려 12개의 알이 있었다.

“이게 다 얼마의 내공이람.”

동굴이 아니었다면, 정말 크게 앙천대소를 터뜨렸을 것이다.

진정이 안 되는 광대를 억지로 부여잡으며 씰룩이는 미소를 애써 참았다.

“고맙다. 정말 고마워.”

귀구가 불씨 때문에 정신없는 동안, 나는 내 품속에 귀구의 알을 무려 10개나 챙겼다.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자주 올게. 많이 낳아 놔.”

나도 양심은 있다. 12개를 다 가져갈 순 없으니 딱 개수 맞춰서 10개만 가져가려고.

힐끔.

침투한 열기 때문인지 느릿한 걸음으로 동굴의 끝을 서성이며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얼른 귀구의 시선에서 벗어나야 했다. 아무리 그래도 놈은 영물이다.

태생적으로 공격성이 거의 배제된 영물일지라도 자기 새끼들이 사라지면 또 어떤 일을 벌일지 몰랐다.

최대한 시선에서 벗어나면 놈은 여느 때와 같이 동굴 속에 들어온 인간의 기척 때문에 수면에 빠져들 테니까.

더할 나위 없이 좋다.

후후.

이른바 귀구 알 도둑.

귀구의 영단보다는 못하지만, 이 알에 담긴 정순한 내력만 해도 5년 정도의 내력을 흡수할 수 있었다.

물론 10개 모두가 그럴 순 없겠지.

같은 영단에도 내성이라는 게 있으니까.

먹으면 먹을수록 흡수되는 내공의 양이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드니까.

그래도 없는 것보단 낫다.

특히 내게 부족한 절대적인 내공의 총량은 어쩔 도리가 없다.

타닥. 타닥.

귀구의 등 위에 있는 불씨가 점차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슬슬 빠져나가야 한다.

온순한 귀구가 유일하게 성질을 부리는 시기가 자신의 알이 사라진 것을 확인했을 때다.

물론, 그마저도 내가 없으면 성질을 부릴 상대도 없어서 혼자 씩씩거리다가 이내 잠들겠지.

나는 귀구가 뒤돌아 있는 틈을 타서 바지춤에 작디작은 알 10개를 황급히 숨겨 조심스레 움직였다.

“좀 더 강해져서 너를 상대하러 올게. 아 참, 자주 찾아와. 동굴 내에 먹을 거 좀 놔둘 테니.”

사람을 해치진 않아도 굶주림을 못 참는 귀구는 아마 우리가 잘 때 종종 식량을 뺏어 먹으러 올 터였다.

알을 이렇게나 주는데 그 정도야 뭐. 내게 귀구의 몫을 남겨 줄 인심은 있었다.

그렇게 귀구가 위치하고 있는 곳에서 멀어져서는 뒤로 힐끔 고갤 돌렸다.

별 이상이 없었다.

일행이 있는 쪽으로 걸어가며 나는 귀구의 알 모서리를 날려 입에 부어넣었다.

차라리 쓴 보약이 낫다 싶을 정도로 느끼하고 느끼했다.

당장이라도 게워 내고 싶지만, 강해지기 위해서라면.

무려 5개를 입에 털어 넣고 쉼 없이 꿀떡꿀떡 목으로 넘겨 버렸다.

식도를 타고 내려간 귀구의 알들은 조금씩 묵직한 기운을 내뿜더니 이내 단전에서부터 용솟음치기 시작했다.

마냥 먹기만 한다고 내력이 늘어난다면 얼마나 좋으랴.

제 것으로 만들어야만 내력이 늘어날 수 있는데, 문제는 어린 나이에 먹으면 효과는 월등히 높아지지만 그것을 혼자서 인도해 낼 능력이 없다.

기혈을 타고 흐르는 영단의 기운을 온전히 운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반대로 기운에 대한 운용력이 익숙해진 나이가 되어서도 효과는 완벽하지 못하다.

이유인즉슨, 새로운 기운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는 내공심법의 성취와, 더 이상 부족하지 않은 내력 때문에 필요 이상으로 영단의 내력을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누군가.

무신이었다. 무신.

천마신교의 교주이자 천마였으며, 천하제일인으로 손꼽히던 무신.

고작 25년 내력을 견뎌 내지 못하고 죽을 거면 진작에 죽었어야지.

이거 못 견뎌 내서 죽으면 진짜로 억울해서 저승 가서도 제대로 눈을 감지 못할 터였다.

흡수할 수 있을 만큼 해야 한다.

무려 25년의 내력이다.

얼마나 흡수할 수 있을지 미지수였지만, 25년 치를 그대로 흡수한다면 절정까진 역부족이어도 단숨에 일류의 경지까지는 넉넉히 뚫어 버릴 수 있을 터.

첫 한 알의 5년 치 내공은 그저 그랬다.

두 알째에서는 묵직함이.

세 알째에선 단전을 두드렸고.

네 알째에선 당장이라도 터질 듯한 기운들로 변모했으며.

다섯 알째에선 회오리처럼 내 오장육부를 꼬이게 만들었다.

끄으윽.

고작 25년 내공도 감당하지 못해 내 몸이 당장이라도 터질 것처럼 부푸는 게 정상이냐고!

그런 불평불만은 잠깐이면 족했다.

역근경에 대한 구결을 무수히 반복하면서 나는 단전에 있는 기운을 사방 곳곳으로 흩뿌려 댔고, 진정시키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해야만 했다.

역근경이라는 최상승의 절기도 갑작스레 휘몰아치는 내력의 노도에 당황해하는 중이었다.

각오를 달리하며 아랫입술을 꽉 깨물기 시작한 순간부터 역근경의 기세도 바뀌며 25년의 내력을 한곳에 집중시키기 시작했다.

역근경은 정파 무림의 역사상 최상승 절기로 손꼽히지만, 정순함의 끝이며 안정적인 내공법으로도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그런 역근경이 약동하는 기운을 천천히 유도한 곳은 임맥(任脈)이었다.

여태 살을 빼면서 지방으로 가득했던 내 혈관 속 노폐물을 없애려 노력했는데, 25년의 내공이 그 노폐물을 모조리 갈아 버리고 향한 곳이 임맥이었다.

내가 혈관에 쌓인 지방을 태우느라 보낸 시간이 얼만데.

역근경을 통한 25년 내력이 단숨에 태워 버렸다.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그 와중에도 내력은 임맥을 두드리고 있었다.

둥! 둥! 둥!

몸을 두드리는 충격에 오장육부가 뒤틀리는 고통은 배가되었다.

임맥(任脈)은 사람 몸의 전면을 흐르는 경락의 큰 줄기들을 말하고, 독맥(督脈)은 후면의 가운데를 흐르는 큰 줄기를 말한다.

그런 임맥과 독맥이 타통되고 나면 비로소 벌모세수(伐毛洗髓)를 진행하고, 몇 번의 과정을 겪고 깨달음을 얻어야만 비로소 환골탈태(換骨奪胎)의 경지로 나아갈 수 있다.

그 첫 발걸음이자 시작이 지금 막 이루어지려 하고 있었다.

쩌적.

균열이 생기는 소리가 들렸다.

노폐물이 가득한 혈맥 속을 휘몰아치며 뚫는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괴로웠다.

사실 환생 전 무신으로서 늘 누군가 뒤에서 인도해 주며 임독양맥을 타통하였지, 스스로 임맥을 타통해 본 적이 없었으니.

주륵.

핏물이 배어 입술을 타고 흘렀다.

땀과 섞인 핏기가 방울방울 떨어져 내렸고, 나는 역근경의 기세에 더욱 힘을 주었다.

쩌저적.

다시금 임맥에 균열이 생겼다.

임맥에 파고드는 충격은 곧 내게 직격탄으로 돌아왔지만, 길어져 봐야 좋을 게 없음을 몇 번의 과정을 겪고서야 느꼈다.

정면 돌파.

쩌저저적.

미세했던 균열이 확연하게 느껴질 정도로 크게 갈라졌고 이내.

퍼엉!

바람이 터지는 소리와 함께 노도와 같은 기세가 드디어 임맥을 뚫어 버렸다.

콰콰콰카!

파상공세로 밀려드는 내력에 임맥은 그대로 타통되면서 내 몸은 마치 벼락이라도 맞은 듯 부르르 떨렸고, 내력이 몇 번이나 소주천을 진행했다.

그런데.

임맥을 뚫고 지나간 내력들이 여전히 기운이 넘쳐 갈 길을 잃은 채 전신 세맥을 타고 흘렀다.

‘……어?’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마냥 찍어 누르기에도 미비하지 않고, 그렇다고 남겨 두자니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르는 이 내력을 어찌할쏘냐.

그래서 나는 녀석들의 모든 기운을 한 곳으로 유도했다.

기운이 역류하여 기껏 뚫어 놓은 세맥들이 상하는 판단을 할 바에 되든 안 되든 한 곳을 노린다. 목적지는 독맥!

모든 의지를 끌어모아 독맥을 향해 움직였다.

내 인도하에 기운들은 광활해진 세맥을 타고 역근경의 무거움을 바탕 삼아 독맥이라는 둑을 두드렸다.

꽈앙!

약동하는 기운에 부딪힌 덕에 전신이 크게 한 번 흔들렸다.

크윽.

온몸을 적시는 노폐물은 전신으로 흘러나왔고, 땀과 섞여 바닥에 뚝뚝 떨어졌다.

몇 번이나 독맥이라는 둑을 두드렸지만, 쉽게 열리진 않았다.

임맥을 뚫은 것도 용한데, 아마 독맥까진 무리였으리라. 역근경이 아니었다면 시도조차 못 할 일이었고, 지금은 다시 내 몸을 돌아보며 관조할 때였다.

한 번, 두 번……. 무려 열 번의 소주천이 진행되었고, 시시때때로 식도를 막아 대는 노폐물이 입가를 타고 턱 끝에 맺혀 떨어졌다.

입을 열지 않으면서 최대한 식도를 열어 놓는 것만이 겨우 얻은 내공을 잃지 않는 방법이었으니까.

그리고 점차 가라앉은 내력들의 기세가 누그러질 때 겨우겨우 단전에 그러모을 수 있었다.

“푸화아악!”

입을 벌려 게걸스럽게 뱉어 댔다.

으윽, X발! 이게 뭔 냄새야.

여태 지방을 태우기 위해 노력해서 뱉어 냈던 노폐물들도 역겨운 냄새가 났지만, 이것은 정말 말도 안 될 정도였다.

거기다 억지로 입 안에 머금고 있었더니 아예 코가 마비될 정도였다.

“으으.”

하지만.

입가에 타고 흐른 노폐물의 흔적을 닦아 낼 기력도.

몸을 일으켜 세울 기력도 전혀 남아 있지 않았다.

설마 죽겠어.

알아서 찾아 주겠지.

털썩.

그대로 곯아떨어졌다.

* * *

“……니까 이게 무슨?”

“어쩔 수 없…….”

“……!!”

아유, 시끄러.

잠 좀 자자, 잠 좀.

달달하게 꿈 좀 꾸고 있는데, 왜 이렇게 방해를 하는 거야.

“좀 치우면 안 돼요? 냄새가 나서 못 버티겠어요! 당장 마인 습격보다 내 후각이 마비될 것 같다고요!”

“나도 화린이 말에 공감해. 우욱.”

“동굴 앞에 냇가가 있던데 거기다 던져 놓고 올까?”

씨X. 내 이야기였구나.

잠결에 들린 이야기가 결국 내가 뱉어 낸 노폐물 이야기였다.

태강으로 짐작되는 놈은 아예 헛구역질을 하는 중이었고.

“빙공으로 얼려 버릴까요?”

저, 저, 저!

빙공으로 얼린다고?

“그거 좋은 생각인데. 눈뜰 때까지 얼려 놓으면…….”

송무가 그 말을 공감하고 있는 것을 듣자마자 나도 모르게 울컥해서 벌떡 일어났다.

“이걸 다 죽여? 말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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