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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무신, 무림학관을 제패하다-19화 (19/250)

제19화

제19화

“절정 고수까지 죽어 나간 곳에 우릴 보내겠다는 저 인간, 제정신이냐?”

내 시선을 느낀 탓인지 악교운이 나를 마주 바라봤다.

뭘 잘했다고 저렇게 쳐다보는 거야.

개빡치게.

“불만 있는가, 17번 후보생.”

악교운의 말에 나는 양 소매를 걷으며 한 소리를 하려는 표정으로 걸어갔다.

근데.

“무, 무린아, 잠깐만!”

황급히 나의 앞을 막는 송무였다.

왜, 왜 막아?

“비켜. 한 소리 해야겠으니까.”

“아냐! 무린아, 절정 고수가 죽은 건 아니야.”

“뭐?”

“그 영물이 어떻게 된 건지, 조사를 위해 파견된 인원이 조금이라도 많거나 높은 경지의 고수가 파견되면 마치 땅으로 꺼진 건지 하늘 위로 솟구친 건지 모습이 보이질 않는다고 하더라고.”

송무의 말에 그딴 게 어딨냐고 말했다.

그런데.

“아……?”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영물이 하나 있었다. 워낙 강력한 영물들이 즐비한 이 비정한 강호 속에도 숨어 있는 녀석.

“어, 왜 그래? 무린아, 뭔가 아는 게 있는 거야?”

“음, 좀 더 말해 봐. 그 영물이란 것에 대해서.”

확실치 않아서 좀 더 설명해 보라는 손짓에 송무가 이어서 말을 꺼냈다.

“사람에게 해를 주는 건 없었지만, 주변 야영을 하는 이들의 식량이 털렸다는 이야길 들었어. 민원이 꽤 많이 들어왔다고 하더라고.”

대충 갈피가 잡힌다.

식량만 턴다는 걸로 바로 추리가 가능했다.

그렇다는 건 간접적인 피해만을 준다는 뜻.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으니 어지간히 무섭게 느껴질 만도 했다.

확실했다.

영물이면서 귀신같이 사람의 강함과 약함을 본능적으로 구별할 줄 아는 녀석. 그러면서 인명 피해를 직접적으로 주지는 않는 영물.

귀구(鬼龜).

“정말 행운인데.”

거북이의 형상을 한 녀석은 어렴풋한 고수의 힘으로는 찾아낼 수 없는 기이한 능력을 갖고 있었다.

가진 이능 때문에 두문불출하는 녀석을 찾아내기란 여간 힘든 게 아닐 것이다.

그것 때문에 아무런 정보도 없을 당시엔 무신이었던 나도 꽤나 애를 먹었지.

그나마 다행인 점은 귀구란 녀석은 온순한 편이라는 거다. 무슨 일이 있어도 사람을 잘 해치지 않는다.

특히 영물 중에서는.

대다수의 영물 혹은 영수라고 불리는 것들은 영험한 기운이 넘쳐흘러서 그 능력을 개방하지 못하고는 못 사는 동물이나 식물이기 때문에 어지간해선 아주 위험한 놈들뿐이다.

북해의 깊은 곳에 잠들어 있다는 만년설삼(萬年雪蔘)은 다가가기도 전에 얼어붙기 십상이고, 남해의 영기를 그대로 끌어안고 잠들어 있다는 만년열삼(萬年熱蔘)은 뜨거운 열풍에 살갗이 온통 불타기 십상이다.

식물도 이런데, 하물며 살아 있는 놈들은 어떠할까.

말하지 않아도 괜한 욕심을 부렸다간 허망하게 인생을 종 칠 수 있다.

그러니 지금의 나로서는 어지간한 영물은 꿈도 못 꾼다.

하지만 귀구라면?

괜찮다. 할 만하다.

그 녀석이 동굴에 있다는 건……!

천운이다.

불끈!

주먹을 불끈 쥐며, 나는 속으로 몇 번이나 만세를 불렀다.

“기분 나쁜데. 우리가 기껏 식량을 구해 오면 다 없어지는 거 아냐?”

“어쩌겠어. 그래도 괜한 위험이 없다는 게 다행이지.”

“괜한 위험이 없다뇨? 마인도 있고 영물도 있으면 두 가지 위험을 다 견뎌 내야 한다는 건데.”

다들 꺼림칙해하는 표정이었지만,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부를 따름이었다.

귀구가 모습을 드러낸다는 건 확실한 약점이 있기 때문이다.

누구도 모를 약점 중 하나겠지.

들뜬 내 기분을 모르는지, 조원들은 심각한 얼굴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건 항의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 우리한테 무슨 일이 생길지 어떻게 알고.”

설화린과 태강이 의견을 냈고, 송무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아무래도 이건 아냐.”

간만에 기분 좋은 느낌을 만끽하고 있는데, 악교운에게 다가가는 송무를 봤다.

뭐야, 어디 가? 가지 마.

“뭔가, 29번 후보생?”

“다름이 아니라 아무래도 북쪽 동굴은 너무 위험……!”

조원들을 대표하여 직접 나서는 송무는 가벼이 손을 올리려 했다.

아, 안 돼! 미친 새끼야!

그를 보고, 나는 있는 힘껏 내공을 다리 끝에 모아 박찼다.

아마 환생 이후 가장 빨리 움직인 순간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안 돼!”

나도 모르게 손을 뻗어 송무의 뒤에서 오른손으로 목 뒤 옷깃을 잡아당기며 다리를 걸었고, 자연스레 왼팔로 송무가 들려던 팔을 잡아 꺾어 버렸다.

“아! 아악!”

철퍼덕!

꼴사납게 쓰러진 송무가 눈물이 찔끔한 표정으로 날 원망하듯 바라봤고, 설화린과 태강을 비롯한 수많은 후보생들은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싶어 쳐다봤다.

“아, 아하하.”

졸지에 모두의 시선을 그만 끌어 버렸다.

거기다.

“때리지 말고 말로 해……. 무린아, 엉엉.”

눈물을 흘리는 녀석 때문에 더욱 시선이 끌린다.

“그게 아니라……! 어디 교관님의 과제에 반기를 들려고 하냐고? 조장으로서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아, 아까는 절정 고수까지 죽어 난 곳에 보낸다고 저 인간 제정신이냐고……. 우웁!”

황급히 입을 틀어막으며 나는 악교운을 바라봤다.

그것도 아주 아련한 눈빛을 담아서.

제발 그 동굴로 보내 줘.

“17번 후보생, 조별 과제에 앞서 소란스럽게 한 죄로 벌점을 주겠다.”

어……?

씨이……X!

* * *

“앞으로 칠 주야다. 정확히 칠 주야 뒤에 각 조를 담당하는 부교관 앞에 멀쩡히 나타날 수 있도록. 제 시각에 나타나지 않거나 상태가 안 좋으면 모조리 벌점 부과다. 상태가 안 좋다는 건 제 한 몸도 제대로 건사하지 못했다는 말과 같으니.”

정확한 일정을 공지하는 악교운과 일렬로 나란히 선 부교관들은 매서운 눈빛을 보여 주고 있었다.

“예!”

“총 52개의 신호탄을 개개인에게 지급했다. 불가항력적인 일을 당했을 때 혹은 더 이상 과제 수행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될 때, 부상을 심하게 입었을 때 등 필요할 때 신호탄을 쏘도록.”

“예!”

신호탄은 무취의 회색 가루가 얇은 종이에 둥근 형태로 감싸져 있었다.

그럴듯한 모양새이긴 했지만, 사실 별게 아니었다. 사천당가에서 직접 만들었다고 알려진 이 신호탄은 일종의 연막탄이었다. 터뜨리는 순간, 연막이 솟구치며 삽시간에 위치를 노출시키는 사천당가의 새로운 발명품이었다.

나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주어진 신호탄을 품속에 넣었다.

맨날 독초나 뜯어먹고, 독사 대가리나 뜯으면서 독을 연구하던 놈들이.

독이 아닌 것을 개발하기도 하나. 하여간 10년 새 참 많이 달라졌다니까.

혀를 차고 있는 와중에 악교운이 부교관들에게 눈짓을 하였다.

“부교관들은 책임지고 움직일 수 있도록.”

“충!”

부교관들은 제각기 절정 초입, 혹은 일류 극의에 해당하는 경지에 속한 무인들이었다.

즉, 악교운이 아니더라도 한 조, 한 조를 담당할 수 있는 개개인의 능력이 충분하다는 뜻이었다.

악교운은 오랫동안 손발을 맞춰 온 부교관들을 그만큼 신뢰하고 있었다.

나는 조원들을 이끌고 북쪽 동굴을 담당하는 부교관이 움직이는 곳으로 향했다.

기다렸다는 듯 부교관들은 각 조를 이끌고 제각기 동서남북으로 흩어진 다양한 지형으로 향했고, 나 역시 사천무관의 북쪽으로 동떨어진 동굴에 금세 도착할 수 있었다.

훼엥.

한눈에 보기에도 을씨년스러운 동굴 초입이었다.

“여기다. 모두들 장비는 다 챙겼나?”

부교관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칠 주야란 시간은 꽤 길다. 식량도 스스로 구해야 하고, 식수도 구해야 했으며 하다못해 큰 들짐승이나 산짐승이라도 만나는 날에는 너 죽고 나 죽는 문제가 될 수도 있었다.

그래서 나를 비롯한 모두 중무장을 했다.

나와 송무는 검 한 자루씩 허리춤에 차고 있었고, 평소에 장법과 권각술을 쓰는 설화린과 태강 역시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무기를 하나씩 허리춤에 차고 있었다.

어디 그뿐이랴.

체온이 떨어지지 않도록 각종 옷으로 채비했고, 제대로 배운 적도 없는 단검술과 비도술을 펼칠 수 있도록 준비하였다.

“진짜로 생존하고 싶었나 보네.”

부교관은 씩 웃었다. 후보생들이 어떻게든 이겨 내겠다는 의지가 기꺼웠다.

그런 부교관이 북쪽 동굴 안을 한 번 돌아보고 오겠다는 말과 함께 사라지자, 세 사람은 깊은 한숨을 쉬었다.

“휴우.”

“……여기서 칠 주야를 버텨야 한단 말이지?”

“어쩌겠어요. 일단 추위는 덜하지 않을까요?”

“최소한의 용품은 준비하게 해 줘서 다행이야. 정말로.”

세 사람은 이야길 나누었고, 아무래도 처음 있는 이 야외에서의 조별 과제에 부담을 느끼는 중이었다.

산기슭 한가운데 있는 을씨년스러운 동굴 초입에다 죄다 끝이 보이지 않는 무성한 숲으로 뒤덮여 있으니 해가 중천인데도 어둑어둑한 느낌이 드는 곳이었다.

그러나 부교관은 일각이 지나 돌아온 후 별다른 말이 없었다.

그저.

“안전하구나. 칠 주야 뒤에 보자꾸나.”

그들에게 잘 버티라는 말과 함께 사라졌다.

아마 거리를 두고 지켜보고 있겠지.

꿀꺽.

누군가의 목울대가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지만, 세 사람은 동굴 입구에 서서 들어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햇빛이 창창한 이 순간에도 동굴 안은 어둑했으니까.

에휴.

이런 애들을 데리고 대체 뭘 하겠다고.

나는 천천히 동굴 안으로 걸음을 옮겼고, 뒤늦게 따라오는 세 사람의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저벅, 저벅, 저벅.

또옥.

또옥.

종유석에 맺힌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와 어렴풋한 박쥐의 날갯짓 소리는 분위기를 더욱 암울하게 만들었다.

“크흠흠.”

송무가 분위기를 쇄신하기 위해 품속에서 화섭자(火攝子)를 꺼냈다. 야영 생활에서 필수품이라고 할 수 있는 화섭자는 금방 불을 붙일 수 있게 도와주는 도구이자 생명줄이었다.

“불부터 피울까?”

녀석의 말에 나는 걸음을 멈추었고, 송무와 설화린, 태강은 자연스레 시선이 한곳에 꽂혔다.

시선이 향한 곳은 다름 아닌 나였다.

어미 새를 바라보는 아기 새들의 표정이 이러할까.

이럴 때만 조장이지, 아주?

나는 손을 들어 올려 더 진입하려는 조원들의 발걸음을 막았다.

바깥의 햇빛이 들어오는 마지노선이었다.

“일단은 해가 지기 전에 각자 역할을 분담하도록 하지. 동굴 내에 있는 걸로는 불을 피울 수가 없어. 물기를 머금고 있으니까.”

송무에게는 동굴 밖으로 나가 불을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도록 장작과 나뭇가지 등을 찾아오라고 지시했고,

“동굴에서 야영을 하고 버티라고 했을 뿐이지 그 외에 행동반경을 제한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앞에서 식량을 구해 와도 무방할 거야. 너희 둘은 밖에서 열매나 식량이 될 수 있는 것들을 구해 와.”

이게 조별 과제가 불친절해서 좋은 점이다.

동굴에서 야영을 하고 버티라고 했지, 식량까지 동굴 내에서 구하고 동굴 밖으로 나오지 말라고 한 적이 없었다. 재량껏 하란 뜻이다.

“그럼 조장은 뭐 하려고 그러죠?”

설화린이 삐딱한 시선으로 날 바라봤다.

내가 놀겠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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