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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무신, 무림학관을 제패하다-18화 (18/250)

제18화

제18화

미약한 기운으로 그저 흩어지던 금빛 서기와 달리, 지금 내가 집약시키고 있는 기운까지 장난처럼 받아들일 순 없을 터.

늘 허허로운 반응을 보이던 신혁건마저도 표정을 굳힐 정도였다.

“받아 봐. 이것까지 네가 무사히 받으면 난 지금 당장 네게 이길 순 없다는 뜻이니까.”

정말이었다.

이 주먹까지 녀석이 수월히 받아 낸다면, 나는 녀석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다만, 이기지 못할 뿐이지 지지 않을 순 있었다. 비기기 위해 개싸움을 해야겠지만.

“정말로 대단해. 정말로.”

시종일관 사람 좋은 인상을 풍기던 신혁건마저도 지금은 굳은 표정으로 창끝에 기운을 담고 있었다.

권기(拳氣)? 권강(拳罡)? 그럴 리가.

그럴 수 있을 정도의 경지도 아니거니와 그것은 단순히 경험만으로 이렇게 끌어올리진 못한다.

신혁건 역시 창기나 창강 따위가 아니라 그저 내공을 끌어모아 내는 것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것이 강도를 몇 배는 끌어올려 주었다.

그게 바로 내공의 힘이니까.

신혁건은 내 오른손 주먹에 휘몰아치는 기운에 벙쪄 있다가 더욱 강대해지기 전에 승부를 보려는 듯 땅을 박찼다.

타앗!

뻗어 오는 창끝의 기운은 강인했다.

자칫 빨려 들어갔다간 심하게 다치는 수준으로 끝나지 않을지도 몰랐다.

심호흡을 들이켠 나는 오십 장, 백 장 밖에서도 단단한 바위를 송두리째 부숴 버린다는 소림의 무공을 펼쳤다.

소림의 상승 절기, 백보신권(百步神拳).

허리춤을 회전시키며 기마 자세를 하고 있던 양발이 동시에 주먹을 뻗기 위해 가장 편한 자세를 갖췄고.

이내.

꽈앙!

울컥!

부딪히자마자 속에서 들끓는 핏물을 한 움큼 뱉어 냈다.

“퉤에.”

그리고 나도 모르게 몇 걸음 뒤로 물러났다.

휘청거리는 무릎 때문에 하마터면 주저앉을 뻔했지만.

고작 애X끼랑 부딪쳤다고 바닥에 주저앉으면 쪽팔리잖아.

애써 상체를 숙여 무릎을 잡아서 버티는 것이 전부였으나 꺾이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 주는 중이었다.

고갤 들었다.

녀석은?

“하, 하하. 하하하.”

그런 나와 반대로 창대가 부러져서 제 역할을 할 수도 없는, 두 동강 난 무기를 손에 쥔 신혁건은 벌러덩 누워서 허탈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어떻게……. 하, 하하하!”

실성했나.

전투 의지를 완전히 상실한 녀석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끙.

이러다 제 명에 못 살 것 같다. 남사익과 붙으면서 콩알만 해진 내력이 다 채워지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백보신권을 아껴 두지 않고 최대한 빨리 쓴 것이겠지.

나는 제어할 수 없는, 그저 부들거리는 다리를 억지로 부여잡는 게 고작이었지만, 끝까지 티를 내지 않았다.

어휴, 창피해.

무신이라는 내 과거 별호가 부끄러웠다.

녀석에겐 시선을 주지도 않고 본관 통로를 빠져나왔다.

터덜거리는 걸음으로 겨우.

녀석은 끝까지 허탈한 웃음을 멈추지 못하는 듯 그 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 * *

찢어지고 난리 났던 무복을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고, 남사익과 신혁건과의 비무를 통해 새롭게 깨달은 점을 되새겼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조별 첫 번째 수업은 현 조원들로 야생에서 살아남는 것이다. 협응력과 협동력, 외지에서의 적응력을 키워야 한다.”

총 7일간 진행될 것이라는 말을 덧붙이는 악교운의 말에 모두가 놀라 웅성거렸다.

첫 조별 수업이 야외 수업이라니.

심지어 아직 어색하기 짝이 없는 조원들과 칠 주야씩이나 붙어 있으라고?

근데 또 후보생들 입장에서는 나름 신기한 수업이 될 법도 했다.

남녀칠세부동석(男女七歲不同席)이라는 말을 한 번쯤은 들어 봤을 터다. 남녀가 칠 세 이상이 되면 함께 자리에 앉지도 않는다는 그런 고정관념이 뿌리 깊게 박혀 있었는데.

이 조별 수업에서는 무관한 말이 될 테니까.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수많은 이들이 웅성거리는 와중에.

“야외 수업? 아니, 그러면…… 청결과는 거리가 멀어지겠네요.”

“그것도 그렇고, 식량도 다 직접 구해야겠지?”

“아마 식수도 구해야 할 거고. 근데 야생이라면 어디로 갈지 모르겠어.”

설화린의 한숨을 기점으로 송무와 태강이 식량과 식수를 걱정했다.

다른 조원들에 비해 금방 친근해진 이들은 송무의 재잘거림을 시작으로 굳이 하지 않아도 될 걱정까지 사서 하고 있었다.

그러는 와중에 악교운은 옆에 위시한 부교관들을 가리키며 나직하게 말했다.

“그냥 하면 심심하겠지? 마인으로 위장한 교관들로부터 칠 주야를 버텨야 한다는 규칙을 추가했다.”

담담히 말하면서 씩 웃는 악교운의 모습에 송무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심약한 이들은 사악한 악교운의 미소 한 번에 대번 숨통이 막히는 듯 어색한 미소를 마주 지었다.

“마인이라.”

마공을 익힌 마인을 엇비슷하게 따라 한다는 게 가능할 리가. 그냥 흉내만 낸다는 건지.

“마인이라니……. 야생에서 버티는 것도 처음인데, 갑자기 마인까지 나타나?”

혀를 차며 사천무관의 교육 방식에 고개를 저었지만, 설화린과 태강은 송무의 말에 한마디씩 덧붙였다.

“버티는 거라고 했으니, 직접적으로 공격하진 않을 것 같네요.”

“대다수의 조별 과제가 이와 같은 방식으로 진행되겠죠. 야생이라고 하면 산, 들판, 동굴 그 정도가 되지 않을까요?”

“사천무관 특성상, 장강수로채(長江水路寨)나 녹림(綠林)을 대비해서 바다나 깊은 산속이 될지도 몰라요.”

강호 무림에서 사천은 지역 특성상 수많은 사파의 무리들과 대척점에 서는 일이 많은데, 특히 장강을 중심으로 한 장강수로채의 수적들과 녹림칠십이채(綠林七十二寨)와 같은 산적들과 맞붙는 경우가 많았다.

악교운은 그녀의 말을 들었는지 집중하고 있는 후보생들에게 나직이 말했다.

“장강과 녹림, 그곳과는 관련이 없다. 아직 너희는 애송이들이기 때문에 그런 곳에 갔다간 눈먼 칼에 맞고 죽기 딱 좋다.”

그 말에 후보생들이 그나마 조금 안심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적어도 외부의 위협까진 걱정 안 해도 된다는 뜻이니까.

찌릿.

근데 그 와중에 자꾸 내 뒤통수가 따끔거렸다.

힐끔.

아니나 다를까, 고개를 돌려 쳐다본 곳에는 설화린이 있었다.

설화린은 어제 당한 모욕 때문인지 싸늘하게 나를 바라봤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그런 내 태도 때문인지 그녀도 한숨을 쉬며 반쯤은 포기한 채, 내게 의견을 물어왔다.

“후우, 어떨 거 같아요?”

무작위로 선택된 야생을 칠 주야 동안 버텨야 한다는 것도 문제였지만, 너무 복불복이란 게 더 큰 문제였다.

산속이나 해변가 정도면 차라리 다행이다. 먹을 것이라도 제대로 구해서 버틸 수 있을 테니까.

근데 그게 아니라면?

깊은 동굴 속에서 종유석에 맺힌 이슬만 먹고살거나 혹은 늪지대 따위에 걸리면 고생이란 고생은 다하고 점수도 제대로 못 딸 터였다.

“무작위니까 우리 뜻대로 되는 게 있나. 그냥 하는 거지.”

“그게 조장이 할 말이에요? 뭐라도 대책을……. 정말 못 미더워.”

아까부터 계속 저런다.

하, 뭐 어쩌란 건지.

“무공 실력은 인정해도 지도력까진 잘 모르겠거든요.”

지도력은 뭔 지도력. 내가 뭐 네 담당 교관이냐고.

“통솔력 아니고?”

말은 똑바로 해야지.

조장인 나는 계속해서 이 눈앞에 있는 꼬마 숙녀가 사사건건 걸어오는 시비에 골머리를 썩여야 했다.

고달프다.

X발, 얘한테까지 내가 통솔력이 있는지 없는지 검증 받아야 하다니.

“그리고 어제 옷 안 갈아입었어요?”

대꾸하기도 피곤했다.

옷은 갈아입었는데 꼭두새벽부터 소림 72절예를 단련하다 보니 또 옷이 넝마가 되어 버렸다. 이건 정말 대책을 세워야겠다.

어제만 해도 남사익의 열양장에 대비하기 위해 역근경과 소림 72절예를 단련했고, 몸속에 침입한 화기를 몰아내기 위해 몸을 관조해야 했다.

거기다 신혁건의 창술까지.

짧은 순간이었지만, 낭창거리는 그의 창술이 워낙에 인상적이었기에 나는 운기조식을 통해 상상으로 몇 번이나 그려 냈는지 모른다.

아마 무관에서 지급하는 창이 아니라 조금 더 내구도가 단단한 창이었다면?

혹은 진지하게 임하여 내가 백보신권을 끌어내기도 전에 사전에 공격을 당했다면?

싸움은 알 수 없는 전개를 보였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몇 번이고 되새겼고, 역근경과 소림의 무공들을 되돌아보았다.

약간의 깨달음.

그리고 찾아온 변화는 느릿했지만, 내게 짜릿한 쾌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내 옷 타령을 할 새가 있으면 네 무공이나 더 단련하지 그래.”

“뭐, 뭐라고욧?!”

또다시 모욕을 받았다고 판단했는지 설화린은 더 크게 소리를 치려다가 악교운이 한 걸음 나서서 이야기하려는 분위기를 눈치채고 입을 다시금 꾹 닫을 수밖에 없었다.

매번 이런 식이었다.

부들부들.

그런 그녀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악교운은 내공을 담은 육합전성을 사방으로 뻗쳤다.

“지금부터 각 조마다 어디로 흩어질지 발표하겠다. 먼저 1조.”

백리후의 조였다.

“뒤로 보이는 야산이다.”

“이야!”

백리후를 제외한 그의 조원들은 악교운의 입을 유심히 바라보다가 원하는 답을 들었는지 모두 환호성을 질렀다.

“크으, 됐다. 됐어. 1등은 따 놓은 당상이네.”

“거기다 조장이 백리후잖냐.”

“다들 수고하라고.”

벌써부터 축제 분위기인 녀석들이었고.

“시끄럽군. 2조는 사천무관 서쪽에 보이는 넓은 평야다.”

“오오!”

“장난 아닌데?”

야산이나 평야는 기본적으로 야영하기에 좋다. 야산은 먹을 것을 찾기에 좋고, 평야는 마인의 습격에 대비하기에 좋다.

13개의 후보군들 중 벌써 좋은 것들이 나오다니.

이거 왠지 싸한데.

“3조.”

우리 조였다.

“사천무관 북쪽에 있는 동굴이다.”

“어…….”

“동굴이라.”

애매했다.

동굴이라? 나쁘지 않은 것 같기도 하고.

마인으로 위장한 교관이 습격해 오려고 하면 어차피 입구는 하나이기에 대비하기 좋을 거고.

먹을 거를 구해서 수납하기도 편하다.

나는 제법 괜찮단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송무가 창백한 표정을 지었다.

“북쪽 동굴이라면…….”

언제나 담백한 표정의 태강과 차분한 설화린마저도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설마……?”

“아니겠죠. 거긴 후보생들이 어떻게 할 수준이 아니지 않나요?”

그 말을 듣는 내 표정에 짜증이 어렸다.

좋은 장소 아니었어? 또 뭐길래 후보생이 갈 수준이 아니란 건데?

“자세히 말해 봐.”

“음, 사실 잘은 몰라. 다만 북쪽 동굴에 영물이 살고 있다고 들었어.”

“영물?”

“응. 영물.”

영물이 사는데 왜 호들갑이고, 그게 왜 문제가 된다는 거지.

아니, 애당초 영물이 있으면 퇴치하고 내단을 끓여 먹든 구워 먹든 해야 되는 거 아냐?

“그게 왜 문젠데?”

“사실 그 영물을 퇴치하려고 몇 번이나 사천무관에서 파견된 인원들이 있었지만, 단 한 번도 퇴치 못 했어. 절정 고수까지 포함되어 있었다고 하는데.”

절정 고수까지?

X발.

하다하다 정말.

나는 짜증 어린 표정으로 악교운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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