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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무신, 무림학관을 제패하다-11화 (11/250)

제11화

제11화

십 년 만에 참으로 많은 것이 바뀌었다.

아니지. 정파가 많이 바뀐 거다.

마교에 있을 때 마도관에선 뭘 했냐고?

그냥 닥치는 대로 무공을 익히고 써먹고 쌈박질을 했다.

눈 뜨면 싸우고 눈 감을 때까지 싸운다.

그것도 뛰어난 뒷배경, 탁월한 재능 같은 건 다 버려두고 하루 온종일 개싸움을 하게 되면 계급장 따윈 개나 줘 버리게 된다.

그게 마도관의 방식이었고, 아주 단순하지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하루를 그렇게 몇 년을 보냈다.

그런 곳에서 살아남아 천마의 자리까지 올라간 나다.

그러니 헛웃음이 나올 수밖에.

그저 무공만 강하면 다 되던 세상이 언제 이렇게 고약하게 바뀐 건지.

문제는 나 역시 이 무관 생활의 몇 개월 차로 접어들면서 차차 적응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사람의 마음이란 게 참으로 간사하다.

살아온 연식만 따지면 나는 이들과는 비교도 안 되는 세월의 간극을 보인다.

절대 메울 수 없는.

하지만.

우화등선(羽化登仙) 때문에 온갖 번뇌를 버리게 된 탓인지.

혹은 이 남아의 본체가 갖고 있던 기질 때문인 건지.

17세의 맹랑한 꼬맹이들이라고 얕잡아보았지만, 나 역시도 자연스레 그들의 말투와 대화, 행동에 녹아들었다.

경험과 무공에 대한 지식이 아무리 광대할지라도 처한 배경에 따라 사람은 온실 속 화초가 될 수도, 황야의 거친 잡초가 될 수도 있음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그도 아니면 팔자에도 없는 정파의 무관 생활에 내 정신을 놔 버린 것일지도 모르지.

자조적인 생각을 하고 있는 와중에 익숙한 암운이 드리웠다.

툭.

어깨빵을 하고 지나가는 총교관 악교운.

“지금부터 조를 구성한다. 이유는 알고 있겠지.”

후보생들은 오열 종대로 줄을 섰다.

“13개 조로 나눠 움직일 것이며, 절대적으로 성적순이다.”

이 성적이라는 게 되게 웃기다.

성적이 좋다고 해서 마냥 무공이 강한 것도 아니다.

왜?

필기에서 1등을 하면 무투에서 50등을 해도 중간은 간다는 뜻이니까.

“낮은 성적의 후보생과 높은 성적의 후보생은 함께하게 될 것이며, 서로 보조에 맞춰 움직일 수 있도록.”

「총 평가 순위. 17번 후보생 천무린 17등」

조 구성에 앞서 52명 후보생들의 성적표가 적나라하게 게시판에 게시되었다.

이렇게 성적을 투명하게 공개했으니 토 달지 말라는 경고 아닌 경고.

그나저나 최근 쪽지 시험에서 1등을 한 데다 검술 교관의 지도 아래 무투 시험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뒀어도.

이미 똥 싸질러 놨던 예전의 과거가 내 발목을 잡았다.

하!

「 무투 시험 52등. 쪽지 시험 52등……. 」

과거의 내 성적이 적나라하게 게시판에 적힌 것을 보곤 나도 모르게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하긴 허구한 날 처먹기만 하고 무공 단련도 안 했는데.

그런 돼지 같은 놈이었으니 만년 꼴찌를 달고 살았을 수밖에.

그러나 어쩌겠나.

지금부터라도 바꿔 나가야지.

“1조 백리후 / 채종한 / 진이간 / 유역지, 2조 진무양 / 호상윤 / 후송 / 상미미, 3조 설화린 / 천무린 / 태강 / 송무…….”

13조의 명단이 쭉 호명되었고, 성적에 따라 조원이 결정되었다.

“조별 호명은 끝났다. 2차 진급시험이 있을 때까진 특별한 사항이 없는 한, 조별 구성원에 대한 어떠한 이견도 받지 않는다. 같은 조원끼리 서로 인사를 나누도록 반각을 주지.”

담담하고 무미건조한 악교운의 말을 끝으로, 조별로 구성된 이들은 각자 자신의 조원들을 찾아다녔다.

“무린아!”

떼려야 뗄 수가 없구나.

친근하게 내 이름을 부르며 다가오는 송무가 히죽 웃고 있었다.

“역시!”

“역시는 무슨 역시. 조별 호명 될 때 가장 늦게 불린 녀석이.”

“헤헤, 뭐 어쩔 수 없지. 네가 가르쳐 준 천하삼십육검법을 더욱 열심히 갈고닦을게.”

자존심도 없는지 그저 헤헤 웃는 녀석이.

이젠 뭐, 그냥 그렇다.

피식 하고 웃어넘기는데, 저 멀리 후송이 아련하게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도 같은 조 되고 싶었는데…….”

다 큰 사내새끼가…….

“무공 수련을 하다가 막히는 거 생기면 언제든지 찾아와.”

그 말에 대번 화색이 도는 표정으로 자신의 조로 뛰어가는 후송이었다.

송무만큼이나 단순한 녀석이다. 약아빠진 녀석이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수많은 후보생들이 자신의 조를 찾아 흩어지기 시작하면서 질서 정연된 모습을 갖추고 있을 때, 낯선 두 남녀가 우리 쪽으로 걸어왔다.

중원 무림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은은하고 새하얀 장발을 찰랑이며 고운 입술로 인사하는 여후보생이었다.

“안녕하세요, 설화린이에요.”

반짝이는 눈빛과 중원의 사람과는 다른 분위기에 매료된 송무와 태강의 표정은 밝았다.

“응! 난 송무. 북해빙궁에서 왔지? 나는 종남파에서 왔어.”

“태강이라고 합니다. 기린상단 상단주님이 제 아버지이십니다.”

고상하다. 고상해.

누가 후보생들끼리 인사할 때, 제 가문이나 뒷배경을 설명하라던?

하지만 그런 건 의식조차 하지 못하는 두 사람은 아마도 설화린의 미모에 단단히 홀려서겠지.

송무와 태강의 인사를 받은 설화린의 반짝이는 눈빛이 이제 나를 바라봤다.

한껏 미소를 지으면서.

“안녕하세요? 설화린이에요.”

내게 손을 내민다.

얘는 스스로도 자기가 예쁘다고 생각하나 본데?

이런 부류는 피곤하다. 지가 예쁘다고 생각하고 주변에서 예쁘다고 떠받들어 줬으니 자존감이 극도로 높을 수밖에.

근데 암만 예쁘면 뭐하나.

피도 안 마른 어린애들한테 내가 관심이 있을 리 없잖아.

“천무린.”

냉랭하리만치 짤막한 대답에 설화린은 한껏 눈살을 찌푸렸지만, 금세 표정을 고쳤다.

“반가워요. 천무린 후보생. 그리고 송무 후보생, 태강 후보생도 모두 잘해 봐요.”

손을 내민 그녀의 반응에 나는 어깨를 으쓱였고, 송무와 태강은 행여나 놓칠세라 그 손을 마주 잡고 열심히 흔들어 댔다.

2차 진급시험까지 남은 시간은 고작 2개월.

진급시험으로 얻을 수 있는 점수 이전에 미리미리 착실하게 평가를 잘 받아 놔야 진급이 수월하다는 것을 아는 설화린은 조원들 사이에서 문제가 없었으면 했다.

그리고 그때.

“모두 모였나!”

장내를 가득 채우는 육합전성.

저벅저벅 걸어오는 악교운이었다.

8기 후보생을 감독, 관리하는 총교관인 그는 장내를 쭉 둘러보더니 입을 열었다.

“잘 알다시피 후보생들은 생도로 진급할 수 있는 단 세 번의 기회가 있다. 이제 남은 기회는 총 2번이다. 앞선 진급시험에서는 단 세 명만이 생도로 올라섰지.”

그 말을 듣고 내게 의문이 생겼다.

백리후가 8기 후보생들 중에서 제법 강하다 혹은 또래 중에서 단연 최고라고 불리는데, 그보다 강한 3명이 있었다는 점에서 절로 호기심이 일었다.

뭐 물론 그래 봤자 애송이들에 불과하겠지만.

단지 대문파 출신과 새외삼궁 등 다양한 인물들이 가득한 이곳 후보생들 중에서 그보다 상위인 놈들은 대체 어떤 놈들인지 정도의 호기심을 느꼈다고 할까.

“인사를 나눴으니 친해져야겠지. 바로 조별 임무다.”

거두절미하고, 악교운은 마치 농을 던지듯 이 말을 꺼냈다.

하지만 그 말을 쉽게 받아들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조별 임무라는 말에 모두가 웅성거렸다.

바로 조별 임무라고?

그게 말이 돼?

서로 인사를 나누기에도 한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다.

여태까지 치열한 개인별 경쟁으로 어떻게든 남들을 밟고 올라서야 한다는 생각에 후보생들 사이가 그리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거기다.

“시험의 난이도가 그리 어렵진 않을 것이다.”

누가 그 말을 믿겠는가.

악교운의 말에 눈에 띄게 당황한 한 후보생이 손을 번쩍 들었다.

송무였다.

“저, 저…… 교관님!”

“뭔가, 29번 후보생?”

“아무리 그래도 시간이 너무 촉박…….”

씨익.

송무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대번에 파악한 악교운은 미소를 지었다.

“촉박하다? 그럼 퇴관하든가.”

칼 같은 대답이다.

꿀꺽.

악교운의 뒷말을 기다리는 수많은 후보생들이 떨리는 동공과 긴장한 마음으로 쭈뼛쭈뼛 서 있었다.

“강하면 그 어떤 변수도 견뎌 낼 수 있다. 갑작스러운 것도, 억지스러운 것도. 그러니 네가 약한 것을 원망해라.”

호! 나는 이 말에 전적으로 공감하는 편이다. 강하면 장땡인 세상.

생각보다 나랑 잘 맞는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데, 저 인간?

그의 말에 후보생들은 절망할 새도 없었다.

“각 조마다 조장을 결정하도록.”

다시금 웅성거릴 만한 주제를 던져 줬기 때문에.

“뭐야, 첫 번째로 호명된 사람이 조장 아니었어?”

“그게 맞지 않냐? 어차피 성적이 좋은 만큼 똑똑하고 싸움도 제일 잘할 거 아냐.”

“아니지. 그렇게 따지면 지금 천무린은?”

“어……. 그런가?”

응당 성적이 좋은 사람이 조장이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의문이 절로 들 때쯤 악교운은 적절하게 입을 열었다.

“어디까지나 조원을 구성했을 뿐이지, 누가 조장을 맡느냐에 따라 차후에 있을 임무가 얼마나 신속하고 성공적으로 해결될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누가 조장이 되느냐.

그의 말은 꽤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는데, 조장이 되었을 때의 혜택이 제법 컸기 때문이다.

일단 평가에 반영되는 가산점.

조장에게 따로 주어지는 연무장과 숙소.

그 외에도 이래저래 주어지는 혜택은 그간 욕심을 내지 않던 이들의 마음에도 불을 지피기에 충분했다.

“흠흠.”

설화린은 가벼운 헛기침과 함께 주변을 둘러봤다.

그녀의 기억 속에 자신보다 성적이 좋은 조원은 없었다. 당연히 자신이 첫 번째로 호명되었으니 그 점은 확실할 테고.

뿐만 아니라 송무와 태강은 이미 전의가 꺾인 듯 보였다.

훗, 당연한 건가.

그렇다면 마음에 걸리는 건 단 한 사람.

천무린이라는 변수가 있긴 하지만, 그래 봤자.

저 헬렐레 하고 있는 다른 두 사람을 보라.

아무리 그라도 다수결의 의견을 무시할 순 없을 것이다.

송무와 태강만 자신의 손을 들어 준다면?

제아무리 천무린이 막무가내라고 할지라도 반발하진 못할 것이다.

주변에서 보는 시선도 이렇게 많은데.

그녀는 자신이 있었다.

외모? 어디 하나 빠지는 것 없다.

실력? 평가 순위만 봐도 확실하지 않나.

인성? 남들이 평가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내가 바로 조장감이다.

그런 자신만만한 생각에 설화린은 당연히 자신을 옹호해 줄 조원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려다가,

“그럼 당연히 무린이지! 무린아, 네가 할 거지?”

송무가 천무린의 손을 잡아 번쩍 들게 했다.

너무도 순수한 얼굴로.

“……에?”

이게 무슨 개 같은 소리인가.

설화린은 자신의 귀를 의심하며 설마 하는 눈으로 송무를 바라봤다.

방금까지 자신에게 빠져 있던 사람인데.

재차 고개를 돌려 태강을 바라봤다.

설마 당신도?

……그 설마가 맞았다.

태강 역시 송무의 말에 흡족한 표정으로 고갤 끄덕이고 있었다.

응당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표정으로.

근데.

“귀찮은데.”

정말로 귀찮아 죽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한 녀석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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