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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무신, 무림학관을 제패하다-9화 (9/250)

제9화

제9화

정말로 통할지 몰랐다.

그저 적당한 구실이 필요했을 뿐.

원체 복수와 원한을 많이 사면서 살아온 입장이라 적당히 쥐어 팬 녀석들이 이후 할 행동은 너무 뻔할 뻔 자가 아닌가.

귀찮게 굴 게 분명했다.

절대로 송무 같은 녀석 때문에 패 주려는 것은 아니다.

절대로.

그렇게 눈꼴시린 황태를 보기 좋게 패기 위해 적당한 구실을 둘러댔는데, 의외로 총교관이 쉽게 받아들였다.

맨날 야차 같다고 욕먹더니 꼭 그런 것만은 아닌가 보던데.

아무튼 허락해 준다는데 다음 조건이야 뭐가 됐든 들어줄 생각이었다. 너무 말도 안 되는 것을 시키면 그때 가서 다시 생각하면 되고.

게다가 난 지금 중심을 잡아야 할 때였다.

어떤 무공을 익힐지.

타격감 있는 놈을 고르기도 해야 했지만, 이 악물고 덤벼들 줄 알아야 나에게도 쓸모가 있다.

왜냐고?

구상하던 무공 구결들을 하나씩 되새겨야지. 그래야 지금 당장 내게 뭐가 필요한지 확실하게 알 수 있으니까.

개방의 타구봉법.

무당의 태극권.

소림의 대력금강장.

황보세가의 철금강.

남궁세가의 창궁무애검.

어디 그뿐이랴.

곤륜의 운룡대팔식.

무당의 제운종.

개방의 취팔선보까지.

하, 검술, 권각술 이외에도 신법, 보법까지.

더럽게 많지만 하나하나 써먹고 구결을 외우고 몸에 익히려면 꽤 오랜 시간이 필요할 테고, 대련 상대도 필요하다.

특히 하나하나가 전부 고절한 상승의 절기들이니까.

뻐근해진 몸을 이끌고 덕지덕지 묻어 있던 흙먼지를 털어 내자, 악교운이 말을 걸어왔다.

“무공의 무 자도 모르는 코흘리개들 때문에 그냥 넘어간다만, 네가 쏟아 낸 무공들에 대한 해명은 따로 해야 할 거다.”

……쳇.

최대한 티 안 내려고 노력했는데.

감만 더럽게 좋아 가지고.

숨긴다고 숨기면서 절기를 펼치긴 했지만, 역시 악교운의 눈을 속이진 못했나 보다.

하지만 어쩌겠나.

당장 대놓고 추궁하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라고 여겼다.

“우아아!”

“천무린!”

“천무린!”

짝, 짝, 짝.

사라진 악교운의 빈자리를 채우는 것은 송무와 후송의 환호성과 간간이 울려 퍼지는 박수 소리였다.

거기다 더해진 나를 연호하는 소리.

뭔데.

이 작은 연무장에 사람이 이렇게 많았어?

둘러보니 연무장이 사람들로 가득 찼다.

사천무관의 연무장 중에서도 가장 작은 제7연무장.

그다지 후보생들의 관심도 못 받는 작은 원형 공간에다 자주 찾지 않아서 제대로 관리도 안 된 곳이었음에도 불구하고 8기 후보생들이 자리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거기다 다들 표정이 하나같이 요상했다.

감격한 얼굴이라고 해야 하나.

혹은.

“울어?”

사람 쥐어 패는 걸 보고 감동해서 울다니, 사고 체계가 정신 나가지 않고서야.

“울 수도 있지. 그간 황태의 횡포가 좀 심했어야지.”

후보생들의 심신미약 상태를 곡해하여 받아들이던 내게 송무가 입을 열었다.

“저런 나약한 녀석한테?”

“…….”

송무의 표정이 찡그려지는 것을 보고 나도 모르게 헛기침을 몇 번했다.

이 녀석도 황태에게 당했지, 참.

내가 왜 이깟 놈의 눈치를 봐야 하나 싶었다. 하여간 나는 송무 옆에 서 있는 다른 후보생에게 시선을 돌렸다.

“넌 뭔데?”

“아, 반가워. 난 51번 후보생 후송이라고 해.”

“아, 어.”

무미건조한 내 말투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후송은 누구와 비슷하게 태연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 갔다.

“내가 모두를 대표하진 못하겠지만.”

척!

포권지례(抱券之禮).

“정말 고맙다. 천무린.”

척! 척! 척!

후송을 시작으로, 꽤나 많은 사람들이 포권지례를 취해 왔다.

늘 어린애들 소꿉놀이, 장난처럼 여기던 나도.

척.

기분이 나쁘지 않네. 뭐.

* * *

10여 년 전에 일어난 정마대전으로 인해 정파 세력의 무림인 오 할 이상이 반신불수가 되었다. 게다가 당시 마교에 의해 중원 전체가 정벌이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사람들 사이에서 널리 퍼졌었다.

하지만 그 검은 물결은 마치 거짓말처럼 중원 정벌 바로 직전에 썰물 빠져 나가듯 사라졌고, 정파는 무너진 체계를 수복하기 위해 수없이 머리를 맞댔다.

정파의 지휘부라고 할 수 있는 무림맹과,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머리 쓰는 일에는 가장 뛰어나다는 제갈세가의 군사부가 합쳐졌지만, 결코 쉽지 않았다.

이미 마도가 무너뜨려 버린 정파의 근간 때문이었다.

정파의 제반을 이루던 정의와 협은 황폐해졌고, 망가진 빈틈 사이로 정파의 기치를 내세우던 문파들도 하나둘 등을 돌리며 그저 생존을 위한 본능만을 앞세웠다.

그리고 때마침 무림맹주는 해답을 찾아냈고, 곧이어 무너져 가는 정파의 근간을 세우는 방법으로 3대 무관을 건립하기에 이른다.

마도에 대한 원한과 복수심을 이용하여 투쟁 의식을 불러일으키고 흩어진 정파 세력을 하나로 통합하며 올바른 경쟁의식을 심어 주기 위해 고안된 것이 바로 3대 무관이었다.

대문파라는 자존심과, 한때는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치열한 신경전 때문에 골치 아파하던 모든 정파의 세력들도 이제는 각자 은원 관계보다는 3대 무관에 집중하여 후기지수들을 키웠다.

전폭적인 지지와 지원을 대문파부터 군소 방파, 연줄을 대고 있는 상단과 표국에서도 해 왔고,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한 무관들은 제각각 방식을 정립했다.

새외와 손을 잡고 함께 성장하기 위한 발판을 마련하거나.

각 상단과 표국을 협약체 삼아 무관의 후원자들을 만들거나.

세상에 다시 나타나지 않을 은거기인들을 대거 찾아내 교관으로 앉히던가.

방법은 가지각색이었지만, 정마대전 이후 10여 년 만에 일어난 장족의 발전이었다.

* * *

근데, 그게 뭐.

대체 뭐!

내 손에 쥐어져 있는 게 검도 아니고 도, 창, 활도 아닌 가느다란 나무 작대기 하나.

십팔반무기뿐 아니라 낭인들이 쓰는 무기 아닌 무기, 병기 아닌 병기마저 다뤄 본 내게도 몹시 생소한 것.

끝이 뾰족한 흑연, 그리고 정갈하게 갈아 놓은 가는 나무 작대기.

필시 실력 좋은 나무꾼이 한 땀, 한 땀 깎아 만든 나무에 대패질에도 장인 정신을 발휘한 이들이 만든 나무책상과 걸상에 걸터앉은 나는 멍하니 책상 위를 바라봤다.

종이 한 장이 놓여 있었다.

「정마대전이 일어난 시기와 발발 이유를 쓰시오.」

필기?

필기이?

필기이이?

내 표정은 삽시간에 굳어졌다.

뭔, 씨X. 태어나서 무공구결 적는다고 붓을 잡아 본 적 말고는 없는 내게 머리를 싸매고 이론을 달달 외우란다.

우욱.

속이 좋지 않았다.

비위가 상당히 좋은 내 오장육부가 심하게 뒤틀리는 느낌이다.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송무와 후송은 내 옆에서 상당히 밝은 표정으로 열심히 연필을 굴렸다.

“감정 상하게 서로 검을 겨누는 것보다 평화적인 방법으로 경쟁을 하는 필기시험이 훨씬 낫지 않아?”

“그걸 말이라고. 후후.”

천진난만한 두 녀석의 말에 나도 모르게 소리를 빽 하고 지를 뻔했다.

지X 염X.

네 글자로 모든 게 설명 가능했다.

남자답게 한바탕 비무를 치르고 말지, 이게 대체 뭐 하는 짓이냔 말이다.

정마대전이 어쨌고, 사천무관의 역사가 어쨌느니.

사파의 수배 인물이 누구며, 어떤 무공을 쓰는지 대체 내가 알게 뭐란 말인가.

강해지면 장땡인 세상이 언제 이렇게 고리타분하게 된 건지.

갑자기 마도관이 그리워졌다.

단전이 텅 비도록 아무 생각 없이 싸우다 보면 하루가 끝난다. 온몸이 근육통이고 피 범벅으로 점철된 그 교육이 내게 맞다.

아니, 그게 맞지 않아? 지금 당장 강해져야 되는 거 아니냐고!

근데 그건 나 혼자만의 생각인지 다른 후보생들의 열기는 사뭇 대단했다.

역사 교관인 배단아는 8기 후보생들의 열기에 감동받아 더욱더 열심히 가르치고 있었다.

“천마신교가 일으킨 정마대전은 누가 봐도 마인들의 선제 기습 때문에 일어난 것이지만, 무림맹의 최전선이 무너진 건 불과 하루가 지나지 않았고, 그 소식이 무림맹 본타까지 닿는 데 무려 사흘이나 걸렸죠.”

아는 내용이다. 그래서 나도 몰래 하품이 나왔다.

하암.

당연한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다.

세간에 난 소문 때문인지 몰라도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은 마인들이 그저 들이닥친 줄 알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전적으로 무림맹의 경계가 느슨할 때를 노렸고, 최약체인 조원들이 구성될 때를 파악했다. 정보란 정보도 모두 활용했다.

하오문을 비롯한 정보 단체를 이용해 무림맹에 대한 정보를 모두 긁어모았고, 직접 확인하고 기록된 사실을 몇 번이나 되짚었다.

즉, 철저하게 계획된 무림 정벌이라는 소리다.

하루 만에 최전선이 무너진다? 그럴 수밖에.

우린 애매한 실력을 가진 놈들로 구성하지 않았다. 최전선에 가장 강한 이들을 배치했고, 직접 6장로들을 나서게 했다.

무림맹 본타로 전서구가 날아가지 못하도록 독무를 흩날렸고, 제 한 몸 불살라 막아 내는 몇몇 이들이 아니었으면 무림맹은 더욱 큰 타격을 입었겠지.

삼분의 일이 박살 나고 나서야 정파는 겨우 힘을 그러모을 수 있었지만, 그 뒤에도 꽤 많은 희생을 감수해야만 했다.

“한 박자도 아닌 서너 박자는 놓친 뒤늦은 대응. 대문파들의 제 몸 사리기. 군소 방파들의 고기방패. 서로에게 책임 떠넘기기.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제법 신랄하다. 배단아는 후보생들에게 과거 있었던 부끄러운 정파의 모습들을 낱낱이 밝혔다.

전혀 단합되지 못하는 모습을 뼈저리게 느끼게 해 주고 다시는 과거처럼 적의 손에 처절하게 무너지지 않도록 하는 것만이 후보생에게 가르쳐야 할 자신의 큰 업이라고 생각하였다.

부끄러운 과오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다음 세대를 생각하여 깊이 각인시켜 주는 그녀의 모습은.

꽤 인상 깊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론을 배제한 선(先) 무공, 후(後) 무력인 내 가치관은 변함이 없었지만.

“자, 오늘의 역사 수업은 여기까지 마치고 반 시진 동안 시간을 줄 테니 남은 시험지 작성을 모두 마치고 제출하도록.”

배단아는 바로 자리를 떴고, 부교관들만이 남아 매의 눈을 한 채 후보생들을 지켜봤다.

“다 보인다~. 다른 사람 거 베껴 쓰면 점수는 0점. 그 자리에서 바로 퇴관이다.”

“조금이라도 안력을 높이려고 내공을 쓰는 자가 있으면 바로 퇴관이다.”

“아 참, 참고로 아무것도 쓰지 않아도 퇴관이다.”

뭐만 하면 퇴관, 퇴관.

질린다, 질려.

그냥 다 내보내지 그래!

에휴, 그러나 어쩌겠나.

퇴관을 하지 않으려면 뭐라도 써야 하는데.

붓을 들어 정마대전의 발발 시기와 연유에 대해 적었다. 내가 아는 대로.

하지만 남들은 모를 발발 시기와 연유는 아주 간략하게.

“……17번 후보생, 천무린! 제출 완(完)!”

부교관의 우렁찬 소리를 뒤로하고 서둘러 시험장을 빠져나왔다.

그것도 가장 빨리.

“……벌써?”

송무의 얼빠진 표정은 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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