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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무신, 무림학관을 제패하다-8화 (8/250)

제8화

제8화

사람이 모이고 강자와 약자가 나뉘는 체계이다 보니 자연의 섭리를 그대로 가져다 놓은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사천무관에는 파벌 구도가 자연스럽게 형성되어 있었다.

사천무관이 생긴 이래 늘 그래 왔고, 여태 그랬기에 모두가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지만.

51번 후보생인 후송은 사천무관 8기 후보생들 사이의 공기가 한 사람으로 인해 조금씩 뒤틀리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불과 몇 개월 전만 해도 온갖 욕과 손가락질을 받던 녀석이 모두가 보는 앞에서 황태를 꺾었다.

흔히 말해 똥이 무서워서 피하냐 더러워서 피하지, 라고 뒤에서 수군거림을 당하는 황태였지만, 후송은 그의 실력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거칠기 짝이 없고 포악한 성향을 지닌 황태일지언정 8기 후보생 중에서 10위 안에 들어가는 실력자라는 걸.

그러다 보니 백리후와 같은 대문파 출신과, 상단 혹은 표국 등 무가가 아닌 중립적인 성향을 지향하는 이들을 제외하고서는 군소 방파를 중심으로 한 후보생들은 주로 황태 아래에 집결해 있었다.

그런 황태가 남들이 보는 앞에서 개박살이 났다.

심지어 이미 3명이 함께 덤벼서 아작이 났다고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송은 큰 이변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여태까지 그랬다. 황태보다 뛰어난 실력을 가진 후보생도 그의 질척이고 끈질기면서 용의주도한 모습에 결국 두 손, 두 발 다 들었으니까.

인해전술.

흔히 말해서 여럿이 한 명을 계속해서 공격하는 다구리 전법으로, 황태는 지금껏 그런 방법으로 자신의 자리를 고수해 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시는 고개를 들지 못하도록 악랄하게 손을 써 왔으니까 말이다.

분명 그랬는데.

쿠당탕탕!

퍼억! 퍼억! 퍼벅!

“자, 다음!”

무력과 거친 손속으로 후보생들을 아우르던 황태가 땅바닥을 구르며 삼장이나 날아갔다.

황태가 저렇게 무력하게 날아갈 수가 있나.

멍하니 벙쪄 있는 와중에 천무린의 손속에는 자비가 없었다.

웬 둔기처럼 보이는 몽둥이로 매타작을 시작하는데, 언뜻 광기가 느껴질 정도로 그야말로 개 패듯이 황태를 팼다.

비단 황태뿐 아니라 몇몇 패거리들도 복날에 개 맞듯 두들겨 맞았다.

일종의 패싸움? 아니, 패싸움이라기엔 숫자가 전혀 맞지 않았다.

옆에서 중계하듯 떠들고 있는 송무와 손을 까닥거리며 황태를 도발하는 천무린.

“이익! 씨X, 조진다!”

황태는 입가에 흘리는 피를 닦으며 모랫바닥을 박차고 달려갔다.

재차 짓쳐들어온 황태를 바라보며 씩 웃은 천무린은 모래를 걷어차서 그의 시야를 가려 버렸다.

파아악!

“이런 미친 새끼가! 악!”

눈가에 들어간 모래 때문에 일순 시야가 가려졌고.

파박!

“컥!”

그의 양 옆구리에 끔찍한 격통이 느껴지며, 종래엔 명치를 후려치는 단단한 주먹에 그만 게거품을 물고 뒤로 벌러덩 넘어가는 황태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입이 딱 벌어진 후송이었다.

정말 듣도 보도 못한.

뭐 이런.

“어떻게 저런…….”

경악을 금치 못하는 후송의 옆에 다가온 송무가 씩 웃으며 말을 걸었다.

“51번 후보생, 후송이지? 난 송무라고 해.”

“어? 어, 어.”

“당황스럽지? 듣도 보도 못한 형태의 개싸움이라서?”

정말로 그랬다. 천무린이 하는 것은 대결이 아닌 개싸움, 뒷골목 양아치들이나 하는 행동이 아닐까 싶었다.

“근데 정말 유용하지 않아?”

“뭐?”

“감탄이 나올 정도로 간결하잖아.”

대문파 출신의 송무는 진심으로 감탄했다.

비록 노력에 비해 무공에 대한 실력이 개화하진 못했어도 종남의 제자인 그는 올곧고 바른 성정으로 성장해 왔다.

거기다 더해진 유한 성정의 그가 배운 것은 정직이었다.

그런데.

눈앞에 보이는 천무린의 동작은 여태 배워 왔던 모든 것과 거리가 멀었다.

“너도 알다시피 황태가 좀 거칠었어야 말이지. 누가 생각이나 했겠냐고. 황태가 저렇게 맥없이 당하고 박살 날걸.”

그 말에 물끄러미 황태를 바라보는 후송이었다.

무기력하다. 너무 무기력해서 그토록 공포스러웠던 황태가 정말 맞나 싶을 정도였다.

오히려 애처롭게 느껴질 정도랄까.

그리고 그때, 황태는 목검의 손잡이를 꽉 쥐고 벌떡 일어났다.

“개X끼야! 죽어!”

황가장에서 익힌 비전절기인 황가검법(黃家劍法)의 기수식을 취했다.

동시에 황태의 목검이 내공으로 단단해지기 시작하며 살의를 번뜩이는 순간, 쇄도하고 있는 그의 움직임에 후송은 이제는 정말로 끝났다고 생각했다.

천무린의 기행도.

하지만.

그 앞을 가로막는 한 인영.

타닥, 탓!

황태의 손목이 날카로운 손속으로 후려쳐지며 움찔거린 그의 뒷목을 잡아당기고 행동을 멈춰 세운 이는 총교관 악교운이었다.

“내공 사용은 금지라고 했을 텐데.”

이른바 자유 연무(自由演武).

교관, 그것도 총교관의 허락 없이는 이뤄질 수 없는 후보생들의 시간.

하지만 어째서인지 악교운은 그것을 허락했고, 지금 수많은 후보생들이 바라보는 가운데 악교운이 직접 감독하는 상황이었다.

“어떻게 악 교관님을 설득한 거야? 절대 불가능할 줄 알았는데.”

“그러게.”

송무와 후송의 대화에 귀를 기울인 나는 씩 웃으며 황태를 가로막은 악교운을 바라보고 있었다.

개개인의 실력을 쌓는 데 대련보다 더 나은 것은 없다며 나는 다짜고짜 악교운을 찾아갔다.

「자유 연무? 불가.」

일언지하에 거절당했지만, 내공을 절대 쓰지 않겠다는 조건하에 이루어진 자유 연무였다.

나는 황태와 패거리를 불러 모았다. 당연히 그들은 피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일방적으로 벌어진 일이었다.

만년 꼴찌가 걸어온 승부를 피하자니 주변의 시선이 의식되었고, 그렇다고 응하자니 일전에 있었던 두 번의 패배가 절로 머릿속에 떠오르는 상황이었지만, 별수 없었던 황태는 받아들였다.

미치고 팔짝 뛸 일이었다.

악교운의 싸늘한 표정에 칫, 하고 소리를 내던 황태는 여지없이 내게 달려들었고.

쿠당탕.

그리고 반 시진째 저렇게 흠씬 두들겨 맞고 있었다.

날이 없는 몽둥이와 각종 권각술에 의해.

주변의 웅성거림이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송무와 후송, 악교운을 제외하고서라도 이 광경에 흥미를 느끼고 있는 대다수의 후보생들이 지켜봤다.

개같이 달려드는 황태의 모습에.

“역시, 삼견(三犬)들의 수장답네. 개X끼처럼 달려드는 꼴이라니!”

그 말에 이젠.

“낄낄, 삼호(三虎)가 아니라 삼견(三犬)이래.”

“맨날 패거리 몰고 다니며 까불 때부터 알아봤어.”

“진짜 끝났네.”

대놓고 비웃거나 비아냥거리기도 하고, 혹은 조용히 주먹을 불끈 쥐며 쾌재를 부르는 이들도 있었다. 한눈에 봐도 황태의 인성을 보여 주는 대목이었다.

그 와중에 후송의 시선이 닿는 곳엔 여후보생들이 몇몇 있었다.

그녀들의 시선은 악의 무리를 처단하는 천무린의 모습이 마치 백마를 탄 협객으로 보이지 않았을까.

두 손을 모으고 바라보는, 예사롭지 않는 모습에 괜히 가슴이 찌르르했지만.

정작 이 모든 상황의 당사자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좋아, 이건 시도해 봤고. 그럼 이건 어떠려나?”

혼자서 중얼거리는 천무린은 어찌나 들떴는지 이 상황을 매우 즐기는 듯 보였다.

물 만난 물고기처럼 말이다.

후송의 안목으로는 도저히 익힌 적도, 배운 적도 없는 고절한 손속이 황태를 무수히 두들기고 있음에도 당최 무슨 무공인지 알 수가 없었다.

신나서 몸을 움직이는 천무린의 모습에 악교운의 눈빛에는 이채가 서렸다가 사라졌다.

그렇게 한참 황태를 걸레짝이 되도록 만들어 놓고 나서야 나는 드디어 움직임을 멈췄다.

땅바닥에 누워 꿈틀거리고 있는 황태의 옆으로 느릿하게 걸어간 나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내일 또 보자고. 나 아직 시험해 봐야 할 게 많아.”

씩 웃는 내 모습에 몸을 부들부들 떠는 황태였다.

“이런 개X끼가…….”

캬, 감탄이 절로 나온다.

저 독기, 어쩔 거야. 정말 좋다.

“그래, 그 독기. 너무 마음에 든다. 꼬우면 너 혼자가 아니라도 돼. 더 데리고 오든가.”

파르르 떨리는 입가와 산발이 된 채 흩날리는 머리. 흙먼지에 뒤덮여서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황태였다.

게다가 모멸감과 비아냥대는 듯한 내 말에도 그저 분해만 하는 광경.

후송과 송무는 이 광경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어색하다고 할까.

정작 그 광경을 만들어 낸 천무린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악교운에게 말했다.

“교관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과하게 손을 쓰지 않았습니다. 어디 부러진 곳도 없고요. 정 뭣하시면 직접 확인해 보셔도 좋습니다.”

그런 천무린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악교운.

「방관하는 거, 별로 좋은 거 아닙니다. 애들 교육에 안 좋아요.」

아침이 되자마자 천무린에게서 들은 말이었다.

교관들도 다 눈이 있다.

후보생들 간의 미묘한 변화, 분위기의 반전, 사소한 다툼뿐 아니라 개개인의 개성과 성격까지 줄줄 꿰고 있다.

옆에서 동고동락하면서 하루 온종일을 함께 먹고 자는 동기 후보생들보다도 어쩌면 더 자세히 알지도 모른다.

왜?

하루 온종일을 지켜보고 교육하고 평가하는 것이 교관들의 업이니까.

그리고 그들의 보고서를 통해 최종적으로 검토하고 책임지는 자리에 있는 8기 총교관 악교운.

멸문한 명문 세가, 산동악가(山東岳家)의 마지막 핏줄인 그는 나락까지 떨어졌다가 제 실력으로 사천무관의 총교관 자리를 당당하게 꿰찼다.

범인들은 감히 상상하지도 못할 험한 꼴을 얼마나 당했는지 그 누가 알랴.

정파 세계의 치열한 정치판에 깊은 회의를 느낀 그는 이 이상의 보직에 대한 논의를, 특히 무림맹의 권유를 한사코 거절하고 이곳에 남았다.

그런 그의 무미건조한 삶에 한 차례 훈풍이 불었다.

도발적인 표정을 짓고 있는 한 후보생 때문에 그는 헛웃음을 지었다.

방관.

애들 교육.

그 단어에서 악교운은 벌써 깨달았다.

마치 넋 놓고 놀고 있지 않았냐고 자신을 꾸짖고 있지 않은가.

처음엔 일언지하(一言之下)에 거절했다. 제아무리 그래도 후보생들 간의 유혈 사태는 불가한 것.

하지만.

「이게 무관입니까? 이게 애들 훈련하는 곳이 맞느냐는 말입니다. 죄다 한곳에 몰아넣고 평등, 공정 따윈 개나 줘 버리고 각자 잘사는 놈들끼리 뭉치고, 센 놈들끼리 뭉치고. 약한 놈은 그저 눈치나 보며 쥐어 터지고 말입니다. 애당초 무관을 만든 목적이 이거였냔 말입니다.」

사천무관의 폐해.

그 점을 꼬집고 있었던 것이다.

알면서도 바로잡지 않는 것. 그것이 정말 사천무관의 의도였냐고 다시 한번 꼬집는 후보생의 말에 절로 자조적인 미소가 지어졌다.

동시에 흥미가 생겼다.

눈앞에 있는 이 후보생의 행보를 보는 게 즐거웠다.

그래서 허용했다. 후보생 간의 자유 연무를.

대신에 그는 조건이 있다고 후보생에게 말했고, 후보생은 그 조건은 듣지도 않은 채 일단 알겠단다. 꽤나 유쾌해서 이번엔 헛웃음이 아니라 정말로 간만에 환한 미소가 지어졌다.

악교운 스스로도 의식하지 못할 만큼 간만에 나온 미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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