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화
제7화
그런 둘 사이의 시선이 오가는 것을 알아채지 못한 담진 역시 이 상황에 적응하지 못했다.
할 말을 잃었지만, 그렇다고 언제까지 이렇게 멍 때리고 있을 순 없었다.
“크흠, 앞서 보여 준 후보생 17번과 후보생 6번이 펼친 사천검법을 떠올리도록. 검에 형과 식만 있는 것은 아님을 분명 보았겠지? 초식마다 각자가 가진 ‘의’를 담아 펼쳐라. ……그리고 오늘 검술 교육은 여기까지다.”
그렇게 말한 담진은 혹여 더욱 분란이 생길까 싶어 얼른 교육장에 모여 있는 후보생들을 흩어지게 했다.
얼른 다음 교육 준비를 하라는 말을 남기고.
각자 자신의 개인 훈련장과 숙소로 돌아가는 가운데, 몇몇 인원은 그 자리에 남아 천무린을 흥미롭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후보생들 중 하나가 다가왔다. 일단의 무리를 이끌고.
사천무관에서 지급하는 복장에 비해 좀 과한데?
집에 돈 좀 있다고 자랑하나.
“……제법이군.”
“놀랐어. 황태를 저 모양으로 만들다니.”
“눈꼴시긴 했는데. 언젠간 저렇게 될 줄 알았어. 프흐흐, 안 그래? 소소.”
“똥이 무서워서 피하나요, 어디? 더러워서 피하지. 호호.”
짧게 한마디를 던지고 사라지는 후보생의 뒤로 몇몇 후보생들이 한 마디를 덧붙였다.
그 모습에 천무린은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
“뭐야, 저 새끼들은?”
제법이라나 뭐라나.
저런 콧대 높은 녀석들이 중요치 않았다.
검술 교육이 끝나자마자 무관 내에 있는 의원으로 달려갔다.
이유는 나도 알 수가 없었다.
고작해야 몇 달이나 봤다고. 분명 황 뭐시기를 조진 것도 절대 송무 때문은 아니리라.
‘당의원(唐醫院)’이라고 음각이 새겨진 건물로 뛰어 들어가서는 침대에 누워 있는 송무가 자신을 보고 화들짝 놀라는 모습에 걸음을 멈췄다.
다행히 반병신 수준은 아니었다. 조금 치료하고 나면 금방 나을 것이다.
근데.
“뭐 하냐, 여기서.”
천마이자 무신으로서 살았던 내게도 수많은 부하가 있었고, 분명 나를 존경하여 따르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그런데 왜 이 녀석에겐 유독 더 짜증이 나고 퉁명스럽게 되는지.
그러다 문득 마도관에 있었을 때, 그저 맹목적으로 나에게 친구 하자고 다가왔던 녀석이 떠올랐다.
마도관을 졸업하고 처음으로 나간 실전 임무에서 나를 살리기 위해 적의 칼에 대신 맞아 죽었다.
그런가.
그 녀석과 닮은 구석이 있었다.
“화났어? 무린아?”
「화났냐, 무린.」
멀쩡하지도 않은 놈이 내 눈치를 본다.
똑같다.
특히 송무의 목소리와 겹치는 그 녀석의 목소리.
쳇.
빌어먹을 저승사자. 이딴 구닥다리 같은 감상도 노린 게 틀림없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우연이 일어날 리 없잖은가.
“됐고, 얼른 나아라.”
퉁명스럽게 말한 나는 바로 발길을 돌렸다.
그리고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하나밖에 없었다.
아마 녀석이었다면.
“더 강해지게 만들어 주겠다.”
라는 나의 말에.
「후후, 나 아파 죽어 가는데 참 너다운 말이다. 무린.」
“하하, 나 아파 죽는데 참 너다워.”
대답도 똑같았다.
당의원을 나오는 내 입가에 경련이 살짝 일어난 건 기분 탓이겠지.
* * *
다음 날 천무린이 숙소에서 나오는 순간부터 수많은 이목이 집중되었다.
만년 꼴찌에 불과했던 그가 황태를 단숨에 제압했다는 사실부터 송무가 퍼뜨린, 세 명을 동시에 쓰러뜨린 이야기까지.
후보생들 사이에서는 다양한 반응이 오갔다.
졸지에 거들떠도 보지 않던 경쟁자가 불쑥 나타난 것이니 중위권 다툼을 하고 있는 많은 후보생들 사이에서는 견제의 대상이 되었고, 상위권들 후보생들에겐 유흥거리가 되었다.
거기다 천무린이 꼬질함을 벗고 제대로 씻으면서 활짝 만개한 꽃미모도 한몫을 단단히 했다.
“봤어? 봤어?”
“으이구, 얼굴에 아주 혹해 가지고.”
“에이, 얼굴만 잘생긴 거야? 나름 실력도 겸비하지 않았어?”
“그건 그렇지만, 암만 그래도 백리후를 이기긴 어렵지.”
“흐음, 그런가~.”
여후보생들의 눈초리는 정겨워진 반면에 남후보생들의 시선은 매섭게 변했다.
젊은 청춘들이지만, 천무린은 그런 모든 게 다 귀찮았다.
진짜 제대로 된 내공만 있었어도 죄다 조져 버렸을 텐데.
그런 생각을 수없이 하면서.
“부럽다.”
뜬금없는 한마디의 주인공은 송무였다. 여후보생들의 눈길을 독식하는 천무린에게 부러운 눈빛을 보내는 송무였다.
혀를 차며 송무에게 한마디 하려는 찰나,
여후보생들을 바라보는 이가 비단 송무뿐이 아님을 깨달았다.
그런가. 혈기왕성한 놈들이니 어쩔 수 없나.
절레절레 고개를 젓다가도 이렇게도 인연이 쌓이면 연인이 되기도 하고, 차후에 서로의 가문에 좋은 결실을 맺기도 하는 것이 무관의 힘이다.
가문과의 소통.
문파와의 담합.
사람과의 화합.
다양한 방법으로 무관은 활용되고 있었고, 이는 나 역시도 조금은 인정하게 된 부분이었다.
표리부동한 정파 무림을 속으로 욕하기도 했지만, 구시대의 유물들을 조금씩 날려 버리려고 열심히 노력하고 있음을.
또한 사천무관에서 지낸 몇 개월간 느낀 것처럼, 정파 무림도 과거처럼 주먹구구식으로 제자를 양성하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토대를 갖추고 있음을.
천마 천무린 시절, 마교의 근간은 단순히 강한 무공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어릴 적부터 동고동락한 여러 종파들의 힘을 한데 뭉쳤다는 것이 중요했다.
그러다 보니 정파 무림의 각개격파도 가능했다는 것인데, 이와 같이 무관이라는 체제를 통해 옛 모습을 털고 일어서려는 모습을 어느 정도 인정하고 있었다.
그럼 뭐 하나.
지금 당장 내가 강해져야 하는데.
무공에 대한 깨우침이 이들보다 월등하게 높지 않았다면 자신이 갖고 있는 몸뚱어리로는 어림도 없을 일들을 했다.
조금만 내공을 운용하면 금방 바닥을 보여 버리니 혀를 찰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소림의 대반야능력과 역근경, 무당파의 태극신공과 화산의 자하신공 등 수많은 내공구결을 떠올리며 운용하는 와중에도 짜증이 크게 난 이유가 있었다.
속도가 너무 더뎠다.
사천무관에서 익히는 어지간한 내공심법에 비하면 비약적으로 높은 내공이 모였지만, 천무린에겐 영 성이 차지 않았다.
속에서 천불이 난다는 표현은 이럴 때 쓰는 거겠지, 아마?
하다못해 마교에 있는 일류급 무공을 익혀도 이 정도로 느리진 않을 것이다.
뭐, 그렇다고 꼭 단점만 있는 건 아니었다.
속도는 느리지만, 마교의 무공과 달리 안정적이고 주화입마를 걱정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정순했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 정파의 무공은 하나같이 느리지만 정진하는 속도는 차근차근 높아져 갔다.
에이, 씨앙. 이러다가 언제 천하제일인을 하겠냐.
자연스레 불만이 생기면.
“어린노무 새끼들이 왜 이렇게 눈깔들이 곱지가 않냐.”
천무린은 자신도 모르게 속에 쌓인 불만이 튀어나왔다.
그의 툴툴거림에 송무가 황급히 그의 입을 막기 위해 손사랫짓을 했다.
“무린아, 제발…….”
그렇게 아옹다옹하고 있는 사이, 순간적으로 정적이 흘렀다.
“배, 백리후다!”
“음?”
천무린에게 쏠렸던 시선은 한순간에 소리가 터진 곳으로 옮겨갔다.
거기엔 머리를 질끈 묶고 하얀 도복과 대비되는 흑색의 영웅건과 복대가 잘 어울리는 백리후, 그리고 그의 뒤로 3명의 인영이 걸어왔다.
“백리후?”
“응. 백리후. 그리고 백리후와 진무양, 명진, 낭소소.”
“백리후? 저 녀석인가.”
송무의 말에 가장 앞에 선 녀석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젠 송무를 신경 쓰느라 눈여겨보지 않았지만, 확실히 이들은 어중이떠중이 후보생들과 달랐다.
기도가 다르고 관자놀이에서 툭툭 튀어나온 태양혈과 각자 고유의 기운을 풍기는 것이 대문파에서 키운 제자들의 느낌이 물씬 났다.
적어도 어수룩하고 별 볼 일 없는 녀석들과는 별개로.
“제법이네.”
“그렇지?”
왜 네가 대견해하는데?
같은 대문파 출신이라고 뿌듯해하는 거 봐라. 어휴.
송무에게 혀를 차던 와중에, 내 앞에 드리우는 그림자에 고개를 갸웃했다.
“뭐야?”
“어제는 즐거웠다. 그간 실력을 숨기고 있었던 거 같은데, 그렇지?”
“비정한 강호에선 삼 푼의 실력은 늘 감추고 있어야 된다는 말을 잘 깨닫고 있는 모양이지.”
“푸훗, 그게 뭐예요.”
백리후를 제외한 진무양과 명진, 낭소소가 차례로 말하며 천무린에게 관심을 보였다.
지들끼리 떠들어 대는 꼴을 보며 무슨 헛소릴 하는 거냐고 천무린이 막 입을 열려는 찰나,
“백리후, 낭소소, 진무양, 명진. 8기 후보생들 중 단연 상위권 4명이야.”
“뭐?”
퉁명스러운 내 반응에 송무가 열을 내며 설명을 이어 갔다.
사천무관 8기 후보생들 중 생도로 진급한 3명을 제외한 가장 강하다고 소문난 백리후.
그러니까 저 녀석을 이기면 일단 생도로 넘어가기 전에 수좌를 차지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쓸데없긴 할지라도 굳이 애써 무시할 필욘 없을 거다.
잘 벼린 검과 같은 기세.
황태나 송무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정돈된 걸음걸이와 절제된 기도.
백리후의 스승이 누군지 알고 싶어질 정도였다.
아직 정파 놈들, 살아 있네.
4인방을 뒤로한 채 연무장을 향하는데, 송무가 입을 뗐다.
“근데, 무린아.”
“왜?”
“어제 어떻게 황태를 이긴 거야……?”
어지간히 궁금했나 보다.
송무의 눈빛이 그 어느 때보다도 반짝반짝 빛이 났다.
“이미 한 번 이기는 거 보여 줬지 않았나.”
“그렇긴 하지만, 그땐 천하삼십육검법이었으니까…….”
“멍청하긴.”
“……에, 그렇긴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황태는 황가장의 장남이라…….”
잘나가는 문파의 자식새끼라서 배부르게 영약 처먹고 좋은 스승 만나서 배웠을 거라는 말을 왜 이렇게 빙빙 돌려서 하는지 모르겠다.
“잘 들어라. 황 뭐시긴가 하는 그놈이 지금의 나보단 내공의 총량은 더 많을 수도 있겠지.”
“그런데 어떻게?”
“내공에 대한 집약력과 집중력이다.”
“음.”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이다.
이래 가지고 나 원 참.
“대략 검면은 25촌에서 30촌 정도. 너는 그 모든 검면과 검날에 내공이 집중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생각하냐? 그것도 이류밖에 안 되는 놈이?”
“아……!”
송무는 그제야 이해한 눈빛으로 천무린을 바라봤다.
즉, 검과 검이 부딪치는 면에 천무린의 모든 내공을 집약시켰다.
자유자재로 내공을 다룰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절대 불가능한 기예였을지라도 눈앞에서 천무린은 그런 모습을 보였다.
“배움에도 다 순서가 있는 법이다. 닥치는 대로 받아들여서 네 것으로 만들 수 없으면 순리대로 차근히 따라가야지. 그게 정도 무공이 가는 길이잖아.”
이 말은 송무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지만.
내게도 적용되는 말이다.
물론 닥치는 대로 모두 익혀도 상관은 없을 것이다. 그 모든 간극을 경험과 내재된 지식으로 채울 수 있으니까.
하지만.
근간이 되는 무공으로 중심을 잡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조금씩 피어오르는 중이었다.
송무는 반짝이는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아, 부담스럽게.
그도 그럴 것이 천무린은 대놓고 그의 신위를 보여 주었다.
이젠 조금 더 그를 믿어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
아니, 동년배에게서 느낄 수 없을 정도로 경외감이 드는 정도랄까.
“야.”
“응?”
“나 남자 안 좋아한다.”
“…….”
경외감에서 경멸로 바뀌는 건 한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