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화
제6화
“무슨 일인가, 6번 후보생.”
6번 후보생은 천무린도, 송무도 익히 아는 삼호 아니, 삼견 중 우두머리 격인 황태였다. 그가 손을 번쩍 들었다.
“단순히 펼쳐 내는 걸로 잘했다 못했다를 평가하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입니다. 교관님이 말씀해 주신 진의를 파악하려면, 서로 검과 검을 맞대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누가 들어도 시비에 불과했다.
“그러니까 6번 후보생은 17번 후보생과 대련을 하고 싶다는 말인가?”
“네, 그렇습니다.”
담진은 단숨에 황태의 눈빛에서 이글거리는 감정을 느꼈다.
질투? 아니, 그것보다 조금 더 깊은…… 감정의 골이라고 해야 할까.
꽤 깊어 보였다.
그래, 오히려 살의에 가까웠다고 할까.
절대 안 될 일이었다.
생각을 마친 담진은 황태의 말에 대번에 고개를 저었다.
“자네는 비무가 아닌 실전을 원하고 있군그래. 평범한 경쟁이 아니로군. 조금 더 나은 모습을 보여 줬을 때 비무를 진행토록 하지.”
그 말에 순간 뜨끔한 황태였다.
으드득.
하늘이 주신 기회인데, 씨X!
황태는 이를 바득바득 갈며 천무린을 노려보았다.
저놈한테 당한 치욕만 생각하면 어떻게 해서든 모두가 보는 앞에서 저놈을 망신 줘야 한다. 비무라는 명목으로 죽어 주면 더 좋고.
그렇게 살의가 더욱 짙어질 때쯤.
“교관님.”
“뭔가, 17번 후보생.”
나는 히죽 웃으며 말을 이어 나갔다.
“비무를 허락하여 주십시오.”
“음?”
담진은 천무린을 바라보며 그의 눈빛을 응시했다.
앞선 6번 후보생 황태와 같은 살의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사천검법의 진정한 가치를 깨우치려면 하루라도 빨리 검을 부딪쳐 보고, 실전 경험을 쌓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맞는 말이다.
심지어 천무린이 보여 주는 눈빛은 열의, 혹은 사천검법에 대한 열망으로 보일 정도로 담백했다.
익히 알던 만년 꼴찌 천무린이 과연 맞는가.
저 기특한 자세를 보라. 열망 어린 순수한 눈빛과 오로지 배우겠다는 마음가짐이다.
저런 자세이니 의당 하루아침에 그렇게 바뀌는 것 역시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네만 괜찮다고 한다면야.”
본인이 하겠다는데 어찌 말리랴.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
백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것이 더 낫다는 말에 깊이 공감하는 담진이었다.
혹여 잘못되더라도 자신이 충분히 막을 수 있을 터. 딱히 걱정은 되지 않았다.
물론 걱정스런 눈빛이 내 뒤에 가득했지만.
나는 그저 코웃음이 나올 뿐이었다.
먼저 놀자고 하는데 어울려 줘야지.
하잘것없는 생각과 보잘것없는 행동으로 고작 꾸민다는 짓이 저런 짓이라면 얼마든지 받아 줄 용의가 있었다.
제 살 깎아 먹기라는 것을 전혀 모르는 녀석의 행동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렇게 담진은 후보생들의 대열을 둥근 형태로 만들어 기왕이면 모두가 대련을 잘 볼 수 있도록 배치했다.
“둘 다 어디까지나 사천검법에 국한해 검술을 펼쳐야 한다는 점을 명심하게.”
“예.”
“예, 크흐흐.”
천무린을 다시 엿 먹일 수 있다는 생각에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오는 황태였다.
새어 나오는 웃음을 감출 수 없는 듯했다.
등X 같은 놈.
제 발로 호랑이 굴에 들어온다.
전에는 방심해서 내가 쓰러졌지만, 이번에는 결코 그럴 일이 없을 것이다.
이토록 황태가 자신만만해하는 이유가 있었다.
천무린은 검을 잡은 지 며칠 안 되었다고 그 꼬붕 놈한테 들었다.
반면 자신은 사천검법을 익히기 시작한 지 꽤 시간이 흘렀다. 남들보다 훨씬.
천무린이 어떤 잡기술을 익혀서 그때 자신을 난감하게 만들었는지는 몰라도 동등한 조건에서의 비무라면 이야기가 달라질 것이다.
어디 그뿐이랴.
내공부터 이제 막 기초 훈련을 마친, 근본도 없는 저놈보다 황가장에서 진신절기를 모두 이어받은 그가 아닌가.
벌써 승자의 표정을 지은 황태는 후보생들 중에서도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실력자라는 사실이 그의 자부심을 한껏 끌어올렸다.
그런 그가 만년 꼴찌인 천무린에게 졌다는 소문이 퍼지기 전에 어서 바로잡아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더욱 조급해졌다.
어떻게 해서든 지난 과오를 바로잡고야 말겠다.
이글이글.
담진은 두 사람을 한곳에 모아 놓고 천무린과 황태를 힐끗 바라봤다.
너무도 다르다.
만년 꼴찌인 천무린은 이토록 침착하고 차분하며 아주 고고하게 서 있는 반면.
투박하고 거칠기 짝이 없는 기운을 줄기차게 뿜어내는 황태의 모습.
보통은 반대의 경우가 더 이치에 맞지 않나,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이내 고개를 젓는 담진이었다.
다음 교육에 지장이 가면 안 되기에.
담진은 서서히 손을 들어 올렸다.
꽈악!
시작을 알리는 그의 손이 불끈 쥐어지자, 황태가 땅바닥을 박차는 소리가 들렸다.
찻!
나는 빠르게 쇄도해 오는 황태를 무심한 눈으로 바라봤다.
급하다, 급해.
누가 도망가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든 내게 한 방 먹일 생각으로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다.
으레 그렇듯 부자연스러운 행동이다.
출수를 할 때 검 끝이 시기적절하게 움직이지 못하는 게 보인다.
그나마 괜찮은 점이라곤.
초식의 운용이 단순하지 않다는 것 정도.
그래 봤자 애들 수준인 셈이다.
천하삼십육검법이 아니면 내게 이길 줄 알았나 보네.
타탓!
하지만 이 몸으로 저 검격을 모두 막아 내기엔 꽤 부담되거든.
무차별적으로 파고들어 오는 검격을 흘려보냈다.
하여간 무식하기는.
눈에 보이는 움직임 그리고 운용하는 모습도 훤히 보였지만, 한 가지는 염두에 두었다.
아직까지도 덕지덕지 붙은 군살로 인해 내 움직임이 그리 유연하지는 못하다는 것. 거기다 근력 또한 아직 부족했고.
쯧, 혀를 차며 황태의 검격을 받아 내고 있는데.
“그렇게 막기만 해서야 되겠어? 이 버러지야.”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놈.
고개를 저으며 한 소리를 하려다가 이어지는 놈의 말에 말문이 턱 막혔다.
“네놈 꼬붕 새끼는 이번 훈련에 참여도 못 한 거 보니 반병신이 된 건 아니겠지? 쿡쿡.”
타탁.
목검과 목검이 부딪히며 거리를 좁힌 황태의 우악스러운 힘에 조금씩 뒤로 밀렸다.
그보다 이 새끼가 지금 뭐라고 한 거야?
힐끗.
없었다.
힐끗.
또 없었다.
왼쪽으로 봐도, 오른쪽으로 봐도. 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송무가 보이지 않았다.
그런 내 모습에 황태가 나직이 비웃었다.
“푸흐흐, 뭐야, 이 새끼. 그 새끼는 너 지키겠다고 매일 혼자 두드려 맞던데, 정작 너는 그 새끼가 훈련에 참가했는지조차 몰랐다고?”
싱글벙글하는 놈의 표정을 바라보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같잖은 도발에 뛰던 심장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거들먹거리는 말투하며, 비꼬는 표정하며 하나같이 내 맘에 안 들었다.
절대 내가 송무를 신경 써서가 아니었다.
절대로.
어차피 이런 놈들은 다시는 내게 덤비지 못할 정도로 의지를 완전히 꺾어 놓지 않으면 계속해서 나를 귀찮게 굴 것이다.
과거 이런 인간 군상을 어디 한두 번 만나 봤겠는가.
자신의 실력을 깨닫지 못하고 그저 들소처럼 마냥 들이대는, 이런 무지몽매한 놈은 매타작이 필요하다.
그래서 다짐했다. 개방의 타구봉법부터 머릿속에 떠올리기로.
힐끗.
물론 지금은 담진이 눈여겨보고 있기에 사천검법 이외의 초식은 힘들겠지만.
따로 날을 잡아야겠지.
눈앞에서 그대로 머리에서부터 종베기를 해 오는 2초식 하천에 맞춰 좌측으로 몸을 틀며 비스듬히 움직였다.
단 한 걸음에 하천을 피했고, 무방비 상태가 된 황태를 발끝부터 허리까지 회전시켜 4초식 구궁으로 베었다.
“멍청하긴!”
황태는 자신의 말에 흥분한 천무린이 펼치는 큰 동작을 보고 조소를 띠었다.
천무린의 역린을 건드림으로써 천무린이 흔들렸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렇게나 비대한 동작으로 공격해 올 리가 있나.
극도로 흥분했다. 단번에 박살 내 주지.
횡으로 베는 천무린이 자신을 이길 수 없는 이유?
사천검법을 너무 잘 알아서?
아니다.
덩치가 커서?
아니다.
한눈에 봐도 내공이 볼품없었기 때문이다.
황태는 황가장이라는, 중소 방파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큰 중견 방파에서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약을 먹으며 성장해 왔다.
천무린과 같이 이름도 알 수 없는 군소 방파 출신의 인물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의 내공의 총량을 가졌다!
그래서 황태는 단전에 있는 내공을 폭발적으로 끌어올렸다.
천무린이 쥔 검으로부터 뻗어 오는 구궁 초식에 맞서서 아예 검 자체를 깨부술 생각이었다.
물론 치명상을 입힐 수 있으면 더욱 좋고!
“……!”
담진은 내공에서부터 충돌이 생기면 천무린의 손아귀가 박살 날 것을 알고 비무를 멈추게 하려고 하다가 순간 멈칫하고 말았다.
위풍당당.
화아앗!
천무린이 갖고 있는 내력과 상관없이 뻗어 나오는 투기는 담진마저도 흠칫하게 만들 정도였다.
흔들리지 않는 눈빛.
당당한 패기.
굴하지 않는 투기.
누가 봐도 압도적인 내공으로 찍어 누르려는 황태의 앞에서 물러나거나 기백을 잃어야 할 판인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순간 멈칫한 담진의 그런 생각처럼,
타악! 빠각!
단번에 목검이 부서지며 아작이 났고,
휘리리릭!
두 동강이 난 목검은 몇 바퀴를 회전하고 나서야 땅에 꽂혔다.
탓.
“…….”
“……미친.”
“이거……? 말이 되는 건가.”
“…….”
족히 오십여 명이 되는 후보생들 사이에서 순간 정적이 흘렀다.
꽤 긴 정적이었다.
황태가 삼호니 삼견이니 하며 비록 양아치 짓을 할지라도 그의 실력만큼 출중했다.
같은 후보생들 사이에선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실력자였다.
부들거리는 양손에 들고 있는 황태의 목검은 두 동강이 나 있었고, 천무린은 태평한 얼굴로 서 있었다.
게다가 황태가 쥐고 있던 검이 두 동강이 나면서 그의 팔뚝을 스쳐 지나간 천무린의 검격.
마치 불에 댄 듯 욱신거리는 쓰라림에 황태는 한쪽 팔을 부여잡고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이, 이럴…… 리가.”
만. 년. 꼴. 찌 천무린에게 당했다.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양아치 짓도 아무나 못 한다. 강해야 할 수 있다. 그래서 훈련도 게을리 하지 않았던 황태였다.
그런데 불과 몇 개월 전만 해도 만년 꼴찌에다 며칠 전까진 검조차 잡아 본 적 없다는 놈한테 내가 처발렸다고?
그것도 단 몇 합 만에?
물론 천무린이 근래에 훈련도 열심히 하고 개인 훈련도 남들보다 오래 했다고는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단순히 조금 열심히 했다고 그 간극이 이리 쉽게 메워질 수 있다고?
씨X.
씨X! 그럴 리 없어!
황태의 귀에 웅성거림이 들려왔다.
이미 그의 귀엔 후보생들의 내뱉는 말은 중요하지 않았다.
두근.
두근.
여기서 저놈을 죽이지 않으면 여태 쌓아 왔던 자신의 모든 것이 순식간에 무너진다. 무너지고 말 것이다.
황태는 손아귀에 있던 부러진 목검을 단단히 틀어쥐었다.
하지만.
“나였으면 나가 뒈졌다.”
“쪽팔려서 어떻게 다니냐.”
“그렇게 온갖 허세는 다 떨고 다니더니.”
비웃음, 비아냥거림이 눈앞의 광경을 목격한 이들에게서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왔다.
그런 반응에 황태는 손아귀의 힘이 절로 풀리는 것을 느꼈다.
……씨X.
고개를 들어 천무린을 바라봤다.
그놈 역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뒈졌다고 복창해. 살고 싶어도 제발 죽여 달라고 부르짖게 해 줄게.’
입 모양이 그렇게 말했다. 설마 착각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