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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무신, 무림학관을 제패하다-4화 (4/250)

제4화

제4화

무의 정점을 찍은 그에게는 구결과 구결 사이의 간극을 메울 만한 경험이 있었기에.

주화입마(走火入魔) 따위에 대한 걱정은 없었다.

부정적으로 보면 벌써 열일곱이지만.

긍정적으로 보면 아직 스물도 안 된 나이다.

아직 여유 있다. 아니, 차고 넘친다.

물론 그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남아 있었다.

송무를 옆에 앉혀 놓고는,

“너, 종남의 제자라며?”

이 만년 꼴찌, 하등 볼 거 없는 녀석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고 소속된 문파가 종남파란다.

대문파 종남, 기억난다.

구파일방 중에서 소림, 무당, 화산과 다투며 손꼽는 이름 중 하나.

그리고 종남이라는 이름의 기치를 높였던 단 한 사람.

종남검성(終南劍聖) 진곤.

종남의 장문인이었던 그 녀석 때문에 애 좀 먹었지.

마도의 물결로 인해 정파를 비롯한 중원에 비상이 걸렸다.

몸을 숨기기에 급급했던 타 문파들과 달리 가장 먼저 앞장서서 마교를 막아 내고, 여타 문파들이 정비할 시간을 벌어 주기 위해 자신의 한 몸을 불살랐던 그.

정파라고 하면 마구 속이 뒤틀렸던 나로서도 그 당시엔 감탄했었다.

아니, 다시금 회상해도 절로 감탄하게 된다.

확신이 있을 때, 그리고 이길 수 있을 때 나서는 건 쉽다.

하지만 자신이 살 수 있을지 없을지.

개죽음이 될지 안 될지 모르는 그 순간에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붓는 건 진정으로 강한 자만이 할 수 있는 행동이다.

「그대가 천마이자 강호 무림의 최고임을 아무도 부정하지 않소. 그러니 자비를 베풀어 주시구려.」

당시 진곤의 말에 그의 심기를 건드리기 위해 코웃음을 쳤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의 희생으로 인해 내 옆에 이 녀석이 멀쩡하게 돌아다닐 수 있는 것일 테니.

기분이 좀 묘했다.

거기다 이 녀석은 내 부하 1호가 아닌가.

신경이 쓰일 수밖에.

“……종남이면 천하삼십육검법(天下三十六劍法)과 유운검법(流雲劍法)이던가?”

“어? 그걸 어떻게 알아?”

송무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연무장 옆에 꽂혀 있는 목검 하나를 던져 줬다.

“한번 펼쳐 봐.”

“응?”

“자꾸 되묻지 말고 그냥 펼쳐 보라고.”

내 으름장에 송무는 침을 꼴깍 삼키며 자세를 잡더니 기수식을 펼쳤다.

벌써 어설프다.

껍데기는 대충 비슷하되, 속 빈 강정이 되어 버린 저 기수식부터 그만 혀를 차게 만들었다.

천하삼십육검법(天下三十六劍法)의 모태는 내가 중심이 되어야 하는데, 어수룩한 느낌이 잔뜩 묻어났다.

열일곱이라는 어린 나이를 감안해 아무리 봐줘도 그렇다.

안 되겠어. 에휴.

그러나 이런 내 표정과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나름 자신감 넘치게 펼치는 송무였다.

휘리릭!

사각 없이 36방위로 나뉜 모든 방향에서의 검을 완벽히 통제하는 천하삼십육검법(天下三十六劍法)의 발로.

“하앗!”

짧은 기합과 함께 검술을 펼쳐 내는 송무의 모습을 지그시 지켜봤다.

찌르고 베고 휘두른다.

쓸데없이 힘이 많이 들어가고 과한 발구름으로 인해 다음 동작으로의 연계가 매끄럽지 못했다.

쓰디쓴 입맛에 고개를 저었다.

더 볼 것도 없다.

“정말 재능이 없구나, 너?”

내 말에 숨을 헉헉거리던 송무는 금세 시무룩해졌다.

나는 말했다.

“잘 봐.”

“뭐?”

환생한 뒤 처음 잡는 목검임에도 내 손에 착 하고 감겨 오는 서늘한 느낌에 나도 모르게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진검도 아닌데, 이 정도라니.

휘익! 휙!

연습 삼아 가볍게 휘두르며 베고 찌르는 동작을 몇 번 펼치는 내 모습에 송무가 눈을 크게 떴다.

“무, 무린아, 너 이번에 처음으로 검을 제대로 잡아 보는 거 아니었어?”

“잔말 말고 잘 봐. 그리고 기억해. 완벽하게 펼칠 수 없을지 몰라도 지금의 넌 껍데기만 기억할 뿐이니까.”

처음으로 마공이 아닌 무공을 펼쳐 보는 나였지만, 단전에서 피어오르는 느릿한 내공과 볼품없는 육체에도 나는 고취되고 말았다.

성장하고 또 성장한다. 땀과 노력으로 인한 보상이 이 어린 남아의 몸에 고스란히 새겨졌고, 처음으로 그 결과물 중 하나를 검 끝으로 표현해 낸다.

종남검성 진곤이 펼쳤던 모든 검식이 내 머릿속에서 그려졌다. 종남파의 비고를 털면서 가져왔던 천하삼십육검법의 구결이 넘실거렸다.

“……린아!”

더없이 유연하게 섞여 든 변초와 허초가 녹아든 검식이 펼쳐졌다.

“무린!”

힘껏 흩뿌리다가도 나풀거리며 뒷걸음질치는, 하지만 발길이 닿는 공간에서만큼은 제약이 없는, 오랜 명문 정파에 대대로 이어 온 검식이 펼쳐졌다.

“천무린!”

번뜩!

송무가 날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뭐야, 저 눈은.

기껏 열심히 보여 줬더니 왜 저런 눈빛인 건데.

욱씬!

“읏.”

쓰라렸다.

송무가 황급히 달려와 내 손에서 목검을 치우고 자신의 옷깃을 찢어 손바닥을 지혈했다.

쓰라린 고통으로 가득하고 핏물이 잔뜩 밴 손바닥이었다.

나도 모르게 취해 버렸나 보다. 간만에 검을 잡는 것이 너무 즐거워서.

하지만 이런 검식조차 중도에 멈춰야 할 정도로 나는 아직 육신이 완벽하지 못하다.

텅 비어 버린 단전까지 확인하니 더욱 확실해졌다.

여전히 나는 멀었다.

기억에 새겨진 경험과 정신력만으로는 펼쳐 낼 수 없는 최상승의 절기들이었으니까.

갑갑한 마음이 들어 정신을 다시 가다듬으려는 찰나, 나보다 더 시무룩한 얼굴의 녀석이 눈앞에서 나를 지혈해 주고 있었다.

시무룩해진 녀석에게 사내새끼가 뭐 그리 기분이 오락가락하느냐고 한 소리를 하려는 찰나.

“어이! 만년 꼴찌 벌레들끼리 아주 잘 뭉쳐 있구먼!”

처음 눈을 뜨고 일어났을 때부터 온종일 시비를 걸던 놈들이었다.

“왜? 이제 검 좀 잡아 보려고?”

“돼지 새끼가 사람 새끼로 변화하더니만, 아주 후보생답게 굴려고 하네.”

“푸하하, 저것 좀 봐. 검 좀 잡았다고 손바닥에 피 터진 것 봐.”

황, 황 뭐시기.

현실 파악을 하기에 급급해 신경도 쓰지 않던 놈들이었지만.

지금은 다르지 않나.

내 성격상 여태까지 많이도 참았다.

그래서.

“어이? 내 참, 어이가 없네. 이 X노무 새끼가. 이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새끼들이 어디서 함부로 끼어들어?”

머엉.

평소에 듣도 보도 못한 상스러운 소리가 들려오자, 세 명은 순간 멈칫했다.

“……뭐라고 씨불였냐.”

입 끝에서 맴돌던 한마디를 억지로 내뱉은 황 뭐시기였다.

“저 새끼가 죽으려고 환장했나.”

“좌상귀! 우상귀! 저놈의 배때기 얻다가 칼을 꽂아 줄까?”

그리고 똘마니 둘.

혀를 차고 그들을 바라보자, 여전히 황당한 눈길로 나를 마주 봤다.

여태 그들이 아는 천무린은 눈을 부라리면 그저 눈을 내리깔고 도망가기 급급한 놈이었는데, 지금은 마주 보고 쌍욕을 한다?

송무보다 쫄보에다 기초 체력 훈련 하나 끝맺지 못했던 천무린에게 쌍욕을 들은 이들은 크게 분개하며 소리쳤다.

거기다.

귓구녕을 후비는 천무린의 태도에 더욱 발끈한 이들은 당장이라도 검을 빼 들 기세였다.

스릉, 스르릉.

그 모습을 보는 천무린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하여간 어린노무 새끼들이 말하는 태도가? 좌상귀, 우상귀에 뭐 배때기에 칼을 어째?”

“무, 무린아, 그만해……. 저놈들 삼호(三虎)인 거 알잖아.”

지X.

삼호?

예나 지금이나 어디다 범을 함부로 갖다 붙이는지 모르겠네. 어지간한 범 한 마리 만나서 온몸이 갈기갈기 찢겨 봐야 정신을 차리지.

거기다 견적만 봐도 딱 느낌이 온다.

약강강약.

약한 자에게 강하고, 강한 자에게는 약한 비겁한 놈들.

평생을 무공에 쏟아붓고 비무와 생사투에 목숨을 건 천무린이었다.

척하면 착이다.

“삼호가 아니라 삼견이겠지. 삼견(三犬).”

투둑.

그 말에 삼견의 우두머리 격인 황태의 관자놀이가 툭 불거졌다.

황태는 패검을 들고 달려들었고, 나머지 두 사람도 검을 빼 들고 짓쳐들어왔다.

송무는 그 모습을 보면서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쳤다.

“아, 안 돼!”

안 되긴 뭐가 안 돼, 새꺄.

“송무야, 잘 봐 둬라.”

“응?”

어리둥절해하는 송무를 뒤로하고 달려드는 삼견의 모습에 한 걸음 내디딘 뒤에 기수식을 취했다.

보여 줄게. 종남의 진정한 천하삼십육검법을.

그래 봤자 고작 1초식에 불과할 거고 그조차도 완벽하지 못할 테지만, 피가 터진 손바닥이야 회복하면 그만이고.

천무린의 몸에서 얼마 없는 내공의 한 줌이 솟구쳐 올라왔다.

자신이 디디고 있는 반경으로부터 모든 곳을 통제하는 천하삼십육검법(天下三十六劍法)이다.

그 진의와 요결은 내 머릿속에 가득했고, 이미 송무를 가르치던 사이 구결을 되새겼다.

내공도, 깨달음도 설익어 제대로 된 힘을 발휘하진 못하겠지만.

눈앞에 있는 세 마리의 개X끼들을 상대하는 데는 모자람이 없다.

“죽어!”

살의 가득한 검격이 천무린의 이마, 양쪽 옆구리를 노리고 들어오는 모습에 천무린은 어느새 손에 잡힌 철검으로 황태의 검격을 비틀어 흘려 냈다.

키기기긱!

황태는 자신의 검이 천무린의 검에 맞닿자마자 마치 빨려 들어가는 느낌을 받았다.

“이, 이게 뭐, 뭣!”

당황하는 녀석을 보는 동시에 무방비 상태의 녀석에게 왼손을 뻗어 멱살을 잡아당겼다.

“컥!”

흡자결(吸字訣)을 통해 황태의 육중한 덩치가 왜소한 천무린의 손아귀에 그대로 끌어당겨졌다.

내공은 무궁무진하게 쓰인다.

단지 발출을 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내공이 가진 무궁무진한 힘.

그 힘을 이용해 튕겨 낼 수도, 혹은 끌어당길 수도 있다.

흔히 아는 발출을 통해 검강과 검기를 뿌려 댈 수도 있는 것이 바로 내공의 힘이긴 하지만, 아직까지는 어불성설.

그러나 단순히 내공의 묘리를 흘려보내서 쓰는 정도라면?

전신에 있는 모든 내공을 다 끌어모아도 아마 한주먹 거리도 안 되는 양이었지만, 그래도 눈앞에 있는 이 세 잡놈을 혼내 주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다.

바짝 당겨진 거리 때문에 짓쳐들어오는, 양옆에 있는 거추장스러운 두 사람의 검격을 자연스럽게 멈추게 만든 천무린은 피식 웃었다.

두 사람의 안색이 순식간에 파리해진 것을 봤다.

무리하게 내공을 끌어올렸다가 되레 급하게 가라앉히다 보니 내부가 진탕이 되었다는 뜻일 터.

자칫 황태가 다칠까 내공의 순환을 억지로 끊어 낸 두 사람이었다.

아직 어린 아해에 불과한 두 사람에게 아주 큰 선물로 황태를 탄자결(彈字訣)의 묘리로 던져 줬다.

후우웅!

퍼어억!

그러자 두 사람은 황태의 무게에 가속도가 붙은 것을 감당해 내지 못하고 그만 벌러덩 넘어졌다.

쿠당탕!

“으억!”

“끄…… 끄으윽…….”

고통스런 신음과 함께 풀풀 날리는 먼지가 가득한 곳을 바라보며 나는 검을 집어넣었다.

“푸휴.”

고작 이거 했다고 삭신이 쑤신다.

몇 합이나 나눴다고 단전 내에 내공이 티끌도 안 남았다.

조금만 조절을 잘못했다간 선천지기(先天眞氣)까지 끌어다 쓸 뻔했다는 것은 잠깐 가슴속에 묻어 두자.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 정도 녀석들에게는 살의를 느끼지 않았다는 거?

각인된 금살(禁殺)의 대법이 발동되지 않았다는 것은 이제 조금은 의지를 본격적으로 다룰 수 있게 되었다는 의미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손을 털고 있는데.

“우와아아!”

호들갑스런 소리가 들려오더니 송무가 펄쩍펄쩍 뛰면서 내 주변을 뱅뱅 돌았다.

왜 저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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