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제3화
칠 주야, 그 시간이 지나는 동안 나는 오롯이 토납법을 펼쳤다.
그간 위기의 순간이 종종 있었다. 이 덜렁거리고 출렁이는 지방들을 유지하기 위해 그동안 본체의 주인은 얼마나 용을 썼을까.
얼마나 처먹는 생활을 영위했으면 시도 때도 없이 배가 꼬르륵거렸다.
배 속에 거지가 들었나. 나도 모르게 턱에 흐르는 침 때문에 집중이 깨졌다.
제대로 된 음식을 먹는다는 생각은 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토납법과의 싸움에 방해를 받지 않기 위해 송무로부터 부탁한 벽곡단 한 알, 한 알을 입에 녹이며 다시금 집중했다.
그 덕인지 지방 분해라고는 눈곱만큼도 안 된 두 팔과 두 다리가 조금은 가벼워졌다.
“좋아. 이 정도면 움직일 수 있겠다.”
“어?”
송무가 옆에서 눈을 비비며 일어나 나를 바라봤다. 전혀 달라진 모습이 없는 내가 뭐가 바뀌었는지 전혀 모르겠단 표정이다.
하지만 여태까지 용쓴 이유가 뭐겠는가.
저벅, 저벅.
사람이 걸을 수 있을 정도는 되어야지.
“뭔가? 이젠 제대로 훈련에 임하려고?”
연무장에 선 내 모습에 의아한 표정을 짓는 교관에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조금이라도 제대로 훈련을 받으며 다시 쓰러지지 않으려면 우선 몸 상태부터 점검하려고 한…… 아니, 하려고 합니다.”
하, 지X 같다. 여전히 존대를 하는 것은 입에 붙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순응하고 적응해야 다음의 길이 열리니까.
거기다 분하지만 골칫거리나 다름없는 비곗덩어리로는 그 어떤 훈련에도 임할 수 없었다. 칠 주야 동안, 내 몸을 구석구석 파악한 내 스스로가 가장 잘 안다.
두툼한 살집으로 뒤덮인 몸뚱어리를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른다. 땀이 금세 온몸을 적시고도 모자라서 연무장 모래바닥까지 흥건히 적셨다.
살집들이 엉겨 붙어 진득진득하고 불쾌한 기분을 하루라도 빨리 떨쳐 버려야만 했다.
교관은 그런 내 모습에 징그러운 눈빛으로 보고 혀를 차더니 알아서 하란 식으로 손을 내젓고는 자리를 떴다.
그 뒤부턴 후보생들의 수많은 비웃음과 조소, 교관들의 관심조차 없는 냉정한 말투가 스쳐 지나갔지만, 나는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질질.
달리지 못해 걸었다. 아니, 제대로 걷지도 못해 기었지만 한 줌의 내공을 끌어다 쓰며 온몸 구석구석에 차 있는 노폐물과 지방 덩어리를 태우는 데 전념했다.
“헉, 헉.”
이게 맞는 건가 싶어 다시금 저승사자의 그 허여멀건 얼굴을 떠올리고, 이를 꽉 물었다.
그래, 씨X.
기왕 젊은 몸을 얻었으니 제대로 한탕 놀고 가는 거지.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하지만 그런 마음도 잠시.
무릎이 부들부들 떨리고 당장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지방의 향연에 정신을 놓을 것만 같았다.
“킥킥.”
빠직.
킥킥거리는 눈빛과 비웃음이 아니었다면, 진즉에 쓰러졌겠지만.
특히 저 세 놈.
눈뜨자마자 나한테 염X을 하던 세 놈이 여전히 도발적으로 나를 바라보며 손가락질을 하고 있었다.
“푸들거리는 살집 좀 봐. 저게 사람 새끼냐.”
“온몸이 절었다, 절었어. 누가 보면 계곡물에서 헤엄치다 온 줄 알겠어.”
“혹여 옆에 다가가지 마라. 땀 냄새 때문에 코가 마비될 거 같으니까.”
저승사자에 대한 살기보다 본의 아니게 내 의지를 불태워 주고 있는 놈들은 저 녀석들이었다.
이름이 황태라고 했던가. 그래, 황태와 꼬붕 새끼들.
내가 잘 기억해 놨다. 조만간 죽었다고 복창해라.
놈들은 사망 선고일이 당겨진지도 모르고 마냥 히죽거렸다.
* * *
걷는 게 익숙해지고 한 걸음, 한 걸음이 전보다 가볍다고 느끼고 그때부터 달렸다.
푸른 하늘이 보였다.
지고한 경지에 머물며 하늘 아래의 모든 것들을 오시하던 나는 더 이상 없었다. 같은 하늘임에도 불구하고.
잠깐 눈을 감았다 뜨니 십여 년이 지났다고 한다.
“무린!”
그 말에 옛 감상에 젖어 무아지경에 빠져 있던 내 다리의 힘이 그만 풀려 버렸다.
쿠당탕!
지끈하게 밀려드는 쓰라림에 표정을 찡그렸지만, 살기를 내비쳐 겪는 금제의 격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무린아, 괜찮아?”
으휴, 이 도움 안 되는 놈.
말을 걸어온 것은 송무였다.
“괜찮아?”
땀에 쩐 상태로 모래바닥을 굴렀으니 온몸이 다 흙 범벅이었다.
선뜻 손을 내밀기가 쉽지 않은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송무는 기꺼이 손을 뻗어 흙을 털어 주었다. 표정에는 그저 미안함을 담은 채로.
“갑자기 뭔데 말을 걸어.”
아직까지도 꼬맹이에 불과한 녀석에게 눈곱만큼의 정은 생기지도 않았지만, 적어도 녀석이 있음으로 인해서 지금의 내가 17세의 천무린임을 깨닫게 된다.
역설적이게도 현실을 직시해 주는 존재였으니까.
“됐다. 다 털었어! 헤헤.”
손바닥에 땀과 흙이 가득한데도 익살스럽게 웃음 짓는 것을 보고 고갤 돌려 버렸다.
“후우, 그래서 뭐길래 갑자기 말을 건 건데?”
“아! 그게 말이야. 내일부턴 너도 훈련에 참가해야 한다고 기초 무술 교관님이 말씀하셨어.”
그럭저럭 버티긴 했는데, 역시나.
다음 날부터 훈련에 바로 참가하였다.
이미 내 또래의 후보생들은 십팔반무기(十八般武技)를 통해 각자의 무공을 수련하고 있는 반면, 나와 송무는 여전히 만년 꼴찌였기에 산을 뛰어오르며 기초 체력을 단련했다.
하루 온종일 기초 체력을 위해 내공을 순환시키고 몸을 쓰고 나면 거의 기어서 돌아올 수 있었다.
산을 넘고 강을 헤엄치며 발 닿는 곳, 움직일 수 있는 곳이면 모두 훈련장이 되었다.
미친 듯이 숨이 차올랐다.
미친 듯이 뛰는 심장은 멈출 줄을 모르고 질주했다.
헉헉거리는 숨소리가 금방 고르게 되어 가는 시간이 찾아온 것은 곧 내 몸이 변화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매 순간 지방은 불태워지고 근육은 찢어지고 부풀어 오른다.
뒤룩뒤룩 낀 지방이 조금씩 탈바꿈되는 소리가 들려왔다.
매우 기분 좋은 소리였다.
하루하루를 만끽하며 기분 좋게 잠들 수 있는 순간이었다.
원래 훈련은 정신력이다.
기존의 몸뚱어리 주인의 의지였다면, 대번에 무너졌을 체력적 한계가 느껴졌지만.
난 다르다.
그렇게 나는 필사적으로 체력 훈련에 매달렸다. 온갖 땀과 노폐물 배출에 집중하고 나면 저녁엔 운공을 통해 쉴 새 없이 몸을 가다듬고 내공을 운용했다.
“그러니까 시험에 통과하지 못하면 퇴출이라는 말이지?”
“그런 거지.”
17세까지 후보생에서 생도로 진급하지 못하면 퇴출이라는 지침이 있다고 한다.
고작 6개월에 2번의 진급시험이 남았지만, 걱정은 없었다.
애X끼들 따라잡는 데 그 시간이면 충분하다.
“헉, 헉……. 같이 가. 무린아.”
훈련의 반복, 그리고 또 반복.
썩어 빠진 몸뚱어리를 새롭게 갈고닦는 데는 몸을 열심히 움직이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었다.
온몸이 비명을 지르고 뼈마디가 시려 힘이 들었지만, 나는 이를 꽉 물었다.
하지만 하루아침에 달라진 것은 천무린의 의지일 뿐.
그를 바라보는, 항상 그의 곁에 동반자라고 여기던 송무에게는 그 모습이 모두 배신으로 다가왔다.
엊그제까지만 해도 자신보다 느리고 뒤처져 있던 천무린이었는데, 어느새 자신보다 앞에 선 모습을 보고 경악하는 송무였다.
그마저도 자신의 체력적 한계를 견디지 못해 당장 쓰러질 것 같았지만 겨우겨우 버텨 내고 이겨 내는 천무린에게 한없는 거리감을 느끼는 중이었다.
흐느적거리는 송무를 바라보는 나는 한숨을 쉬었다.
겨우 이딴 걸 가지고 쓰러지냐. 나보다 육체적인 능력도 월등한 놈이.
“야, 일어나.”
나는 손을 뻗어 지쳐서 주저앉은 송무를 억지로 일으켜 세워서는 목표 지점을 향해 달렸다.
버려두고 달릴 법도 했지만, 환생하고 처음으로 맞이한 첫 번째 부하다. 이리 쉽게 버려둘 순 없었다.
“소, 송무 살려어!”
소리치는 송무의 뒤에서 목덜미를 쥐고 억지로 달리게 하는 천무린이었고, 그런 둘을 뒤에서 바라보고 있는 한 인영.
“17번 후보생 천무린.”
환생한 천무린을 흠씬 두들겨 팼던 교관인 그의 이름은 악교운이었다.
한동안 기절을 했다 일어나더니 확 달라졌다. 하루 이틀 악다구니를 쓰다가 금방 퍼질 줄 알았거늘 제법이다.
주체할 수 없던 살덩이들이 제법 줄어들었다. 다른 이들은 몰라도 천무린에게 일어나는 몸의 변화가 다른 어느 후보생들보다 확연하게 보였다.
원래 수재보다 꼴찌가 교관의 눈에 더 잘 들어오는 법.
그렇게 천무린이 본격적으로 훈련에 임한 지 일주일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났다.
조금 더 두고 볼 일이지만, 어떤 마음가짐 때문인지 몰라도 그는 쓰러지고 난 뒤 확실히 바뀌었다.
“좀 더 지켜보도록 할까.”
* * *
기초 훈련이 끝나면 개인 훈련과 휴식이 뒤따른다.
이 꿀 같은 휴식 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송무는 헉헉거리며 자신의 숙소로 돌아가 잠을 청하려 했지만.
“이 대가리 없는 새끼가 꼴찌 주제에 잠이 오냐?”
나는 그 모습을 가만 놔두지 않았다.
첫 번째로 삼은 부하를 퇴출시킬 순 없지 않겠는가.
“끄어어.”
살려 달란 말을 붙이기도 전에 강제로 끌려가는 송무였다.
그를 질질 끌고 가서는 나는 훈련을 시킬 생각이었다.
여태까지 빌어먹을 살덩이들 때문에 눈여겨볼 수도 없었던 부분이었지만, 무려 두어 달 개고생을 한 덕분에 그럭저럭 사람답게 변화했다.
진급시험 때문인지 혹은 정말로 내 변화에 놀라서인지 알 수 없었지만, 잦은 비웃음도 줄어들었다.
“목검으로 뭐 하려고?”
송무가 내게 물었다.
원래 내 무공의 근간은 마도의 무공.
저승사자 놈 때문에 마공을 익힐 수 없다는 사실에 아쉬움이 있었지만, 먹지도 못할 떡에 시간을 낭비할 순 없었다.
거기다 마도의 무공이 아니라도 절세의 무공은 즐비했다.
백도 무림에 왔으면 백도 무림의 무공으로 최고를 찍어 봐야겠지.
소림의 역근경(易筋經)과 대반야능력(大般若能力).
무당의 태극신공(太極神功).
화산의 자하신공(紫霞神功).
개방의 취선공(取仙功).
사천당가의 백화독공(白化毒功).
남궁세가의 창궁무애공(蒼穹無涯功).
등등.
백도 무림 대문파의 대표적인 무공이자 자부심인 무공 몇 가지가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뭘 먼저 손댈 거냐고?
순서가 어딨어? 그냥 닥치는 대로 다 구결을 외우고 받아들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