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무신, 무림학관을 제패하다-2화 (2/250)

제2화

제2화

“그러니까 천마신교가 갑자기 물러났다고?”

“응! 그렇대도.”

내 눈앞에 있는 또래 녀석의 이름은 송무.

원래 이 몸뚱어리의 주인과 그나마 친했던 모양인지 내가 깨어났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훈련도 내팽개치고 달려 들어온 놈이었다.

거기다 나불대는 걸 좋아하는지 계속해서 내 옆에서 조잘거렸다.

“왜 그런 거지?”

“왜긴 왜야. 천마신교의 교주가 죽고 나서 내부 분열이 일어났대. 근데 그건 왜 물어봐? 그것도 무려 10년 전의 일을?”

하, 10년? 씨X.

그럴 줄 알았다.

애초에 천마신교는 모래알과도 같은 각자도생(各自圖生)의 삶을 사는 집단이었다.

그간 교주라는 직책에 오른 이들이 권력을 잡아도 매번 장로들에게 치였으니까.

그런 장로들을 단숨에 휘어잡은 것까진 잘했지만, 역시나 내가 사라지니 바로 들고일어났나 보군.

“무림 일통이 코앞이었는데. 후우, 머저리 같은 놈들!”

“응? 뭐라고?”

송무가 고개를 갸웃하며 나를 바라봤다.

“됐고, 그럼 여기는 뭐 하는 곳이냐?”

“에? 무린아, 아직도 어디 아픈 거야?”

“콱!”

내가 솜방망이 같은 주먹을 불끈 쥐고 한 대 때릴 자세를 취했지만, 전혀 위협을 느끼지 않은 녀석의 눈빛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녀석은 입을 삐죽인 채 말했다.

“사천무관이잖아. 3대 무관 중 하나!”

“사천무관? 그딴 게 갑자기 왜 생겨난 거지?”

사천무관이니 3대 무관이니, 정파 놈들을 짓밟을 때 그딴 건 없었다.

“무림맹에서 정파 세력들을 규합하고 단합하자고 창설한 거잖아. 천마신교의 침략을 받았을 때 각개격파를 당해 정신이 없어서 제대로 된 힘을 발휘하지 못한 게 천추의 한이었던 거지.”

천마신교의 교주가 갑작스레 사라지고 곧 내부 분열이 일어나 쪼개졌다.

허나 방심할 순 없었다.

모두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천마신교의 무인들이 단숨에 사천, 섬서, 안휘, 산동을 모조리 박살 내어 수세에 몰렸던 때를.

너나없이 모두 쓸어버릴 때는 그저 두려움과 공포심만이 정파인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래서 다시는 같은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천마신교를 견제하기 위해 정파의 우두머리들이 머리를 맞댔다.

전시 상황이 되면 각 문파에만 머물러 각개격파를 당할 것이 아니라, 최대한 짧은 시간 내에 방어 진지를 구축할 수 있는 방비를 할 것.

이를 위해서 지역적 이점을 고려하여 각 정파가 단합하기 좋은 곳에 3대 무관을 세웠다.

섬서의 섬서무관.

사천의 사천무관.

산동의 산동무관.

그중 내가 속해 있는 이곳은 사천무관.

지명이 앞에 붙은 것처럼, 사천무관은 사천에 본타를 두고 있었다.

특히 사천무관은 주변 인근의 문파들을 규합하여 무관을 운영하고 있었고, 사천당가와 점창, 공동, 곤륜, 아미파가 그 주를 이루고 있었다.

물론 분타로 나뉜 화산과 무당, 개방과 새외삼궁과의 결속력을 다지기 위해서도 북해빙궁과 남해태양궁, 포달랍궁의 인원 몇몇이 무관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어때, 이해가 좀 되었어?”

나는 송무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이놈은 왜 이리 잘 알지.

흔히 말하는 설명벌레, 뭐 그런 것인가.

하지만 금방 왜 정보에 능한지 눈치챌 수 있었다.

시력이 별로 좋지 않은지 애체(眼鏡: 안경)를 낀 녀석은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가득한 눈을 하고 있었다. 허리춤에 목검을 차고 있지만 굳은살이 골고루 박이지 않은 손아귀.

어깨춤부터 발끝까지의 근골과 관자놀이에 박힌 태양혈의 수준만 보아도.

잡지식과 정보에만 능하다는 게 내 눈에 보였지만.

이 녀석……. 정보통으로 쓰기에 꽤나 알맞다.

상관없다. 지금 당장 내겐 이런 놈이 필요하니까.

“쓸 만하다.”

“응? 뭐라고?”

“됐고. 사천무관이라고 했나?”

일방적으로 말을 끊는 천무린의 모습에도 송무는 고개를 끄덕인다.

“아무리 정파 세력이 인의예지를 따진다지만 구파일방, 오대세가 버러지들은 어차피 제 잘난 맛에 살고 있을 터인데, 어떻게 규합이 되었지?”

“……말이 왜 그렇게 험해? 근데 10년도 지난 이야길 이제 와서 하면 뭐해.”

“10년도? 뭐가 달라졌단 말인가.”

시대에 걸맞지 않는 헛소릴 한 것인지 송무는 눈을 갸름하게 떴지만, 자신과는 다르게 무림 역사에 관심이 없는 이들도 꽤 있었기에 길게 생각하지 않고 입을 열었다.

“응?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라……. 맞아. 무린아, 네 말처럼 정파 하면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세력이지. 다른 중소 문파, 군소 문파랑은 현격한 차이가 있었으니까. 그러나.”

“그러나?”

“이젠 아냐.”

“어째서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가장 선두에 서서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를 쓸어버렸다.

고리타분한 정파의 우두머리를 최대한 신속하게 박살 낸 것은 전장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려 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오대세가나 구파일방의 콧대 높은 지휘자들이 너무 꼴 보기 싫었기 때문이었다.

맨날 사람들을 챙긴다고 입으로만 떠들고, 정작 아랫사람들과는 겸상도 하지 않으려는 자존심 높은 작자들.

“다른 건 몰라도 너도 들어 본 적 있지? 천마 천무린이라고. 어쩌면 천하제일인으로 꼽히는 천마신교의 교주.”

어쩌면이 아니라 그냥 천하제일인이었어. 이 새꺄.

그것도 무신이라고! 하, 나 원 참.

“알지. 근데 왜?”

“천마신교가 정파 세력을 공격해 올 때 유독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를 대상으로 혈겁을 많이 일으켰어.”

……그래서 힘의 균형이 맞은 건가.

“자칫 잘못했으면 구파일방이 아니라 오파일방이, 오대세가가 아니라 삼대세가가 될 정도로 많은 대문파들이 멸문지화(滅門之火)를 당할 뻔했지.”

대충 이해가 간다.

구파일방이랑 오대세가는 내가 가둬 놓고 쥐어 팼다고 봐도 무방하다.

왜냐고?

이유는 없다.

그냥 꼴 보기 싫었을 뿐이니까.

“근데 무린아, 어제까지만 해도 나랑 훈련을 어떻게 빼먹을지 이야기했던 것 같은데. 갑자기 이런 건 왜 물어봐?”

“갑자기 궁금해져서 그렇다. 왜?”

그렇게 이야길 나누고 있는 사이,

덜컥! 하고 문이 열렸다.

나를 이 침대로 눕힌 교관이 서릿발 같은 눈으로 째려봤다.

아니, 저 새끼가 내 원래 육체만 있었으면 당장 찢어발겼……. 크억!

나도 모르게 살기가 피어올랐나 보다.

빌어먹을 저승사자 놈!

부지불식간(不知不識間)에 온몸을 엄습하는 고통에 침대를 나뒹굴었다.

들어오자마자 혼자 몸을 버둥거리던 내 모습을 한심하게 바라보던 교관은 나직이 입을 열었다.

“한심하긴. 17번 후보생 천무린, 29번 후보생 송무. 잡담할 시간이 있으면 수련하여 만년 꼴찌를 탈출하는 것이 가문에도 덜 부끄러운 짓일 텐데.”

격통에 데구루루 구르던 나는 그 말을 듣고 한숨이 나왔다.

……하다하다 만년 꼴찌라고.

어쩐지 무관이 만들어지자마자 들어온 이놈의 몸뚱어리는 최소 5년은 훈련했을 텐데 내공이 한 줌이 채 안 된다.

아니, 내공은커녕 외공도 제대로 훈련한 흔적이 없다.

제대로 훈련을 했다면, 이렇게 비곗덩어리가 되진 않았겠지.

그렇다고 해서 자질이 마냥 부족하거나 뒤떨어지지도 않았다.

체내에 한 줌의 내공을 끌어다가 운용을 하였을 때, 마치 물 흐르듯 자연스럽다.

그저 매일 놀고 처먹었다는 소리만이 이 상황을 납득시킬 수 있단 뜻이었다.

이딴 거지 같은 몸에 날 집어넣다니, 저승사자 이 개X끼.

언젠가 진짜 다시……. 안 돼. 멈춰!

후, 또 아무 생각 없이 살기를 내비칠 뻔했다.

“휴식은 오늘까지다. 내일부터 나오지 않는다면, 무관 후보생으로서 퇴관이다. 각오하도록.”

홱 하고 몸을 돌려 나가는 교관의 모습을 보고 송무가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휘유, 어쩌지. 이대로 가다간 우리 둘 다 퇴관 당하고 말 거야.”

퇴관? 쪽팔리게 무슨 퇴관이야.

밑바닥에서부터 기어오르는 건 내 전문이다.

특히 이와 같은 무관 체계를 일찍이 깨달은 것도 나다.

천마신교에서는 수많은 종파를 한데 규합하여 마도관을 개설하고 훈련시켰다.

적자생존(適者生存).

약육강식(弱肉强食).

강자지존(强者至尊).

이 세 마디로 모든 것이 설명되는 천마신교에서 쥐뿔도 없던 나는 살아남아 결국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그런 내가 고작 이딴 무관에서 퇴관될 것 같아?

사천무관이라.

좋다.

강해지고 강해져서 백도 무림의 정점이 되어야겠다.

백도 무림 출신의 무신 천무린이 되어서 누가 최고인지 똑똑히 알려 주마.

첫 목표로 정파 조무래기들이 기껏 고안해 낸 사천무관을 내가 점령해 주지!

* * *

당장 다음 날부터 훈련에 응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금살, 나는 그것을 이용하기로 했다.

가만히 있다가도 혼자 격통에 빠져 헤매는 모습을 몇 번 보여 주자, 교관 몇몇은 끙 하며 아픈 이에게 강제로 훈련을 받게 할 순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나는 단전에 자리 잡은 내공의 절대량을 키울 작정이다.

왜 당장 살을 빼지 않느냐고?

조금만 걸어도 무릎이 빠개질 지경이다. 그런 상황에서 훈련을 받고 살을 빼려고 아등바등하다간 온몸이 바스러질지도 몰랐다.

그래서 해답을 찾아냈다.

나약해 빠진 외공을 보태 줄 내공을 먼저 손보는 것. 꽉 막힌 노폐물들을 배출하고 나면 지금보다 훨씬 움직이기 편해지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니까.

그러나.

시작부터 고난과 역경 속을 헤매었다.

한 줌의 내공을 끌어내어 축기를 하고 온몸에 쌓인 노폐물들과 씨름을 했다.

제아무리 재능이 없는 이라도 한나절 고생을 하면 눈곱만큼이라도 변화가 있어야 했다.

하지만 내겐 크나큰 문제가 있었다.

내공의 흐름을 타야 하는 혈관이 지방 덩어리에 꽉 막혀 제대로 된 운기를 할 수가 없었다.

결과적으로 하루 밤낮을 투자해도 아무런 성과를 보일 수 없다는 사실에 그저 헛웃음만 나올 뿐이었다.

오히려 이 몸뚱어리에 한 줌의 내공이 남아 있는 것이 기적이라고 해야 할까.

이 순간만큼은 내 과거 무신으로서 쌓아올린 내공이 그저 아쉬워질 뿐이었다.

단전에 자리 잡은 내공을 조금이라도 뻗치려고 하면 진득한 지방들이 공간을 꽉 막고 놔주질 않았다. 오죽하면 혈관이 찢어지는 고통까지 느꼈을까.

정신력이 무신 천무린의 그것이라고 할지라도 현재는 그저 평범한 사람보다 못한 남아의 그릇.

그리고 천마일 때는 아플 일도 없었다.

그것을 깨닫고 나니 온몸에 찾아오는 대가를 거부할 수도, 막을 수도 없이 그저 이를 악물고 견뎌 낼 뿐이었다.

고이 정신을 집중하고 아랫입술을 피나도록 깨물었다.

지금은 나 혼자. 그 누구도 도와줄 사람이 없다. 이대로 정신줄을 놓으면 이 몸뚱어리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병X이 될 터.

온몸이 축축해질 만큼 필사적으로 혈관을 뚫기 위해 내공을 운기했다.

미세하리만치 새겨진 토납법의 흐름을 좇아서 한 시진, 두 시진…….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심정으로 수없이 때렸다.

머릿속에 남아 있는 초절정의 내공심법들도 더러 생각났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시기상조, 이 몸으론 무얼 익혀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되레 흘러오는 파도를 이겨 내지 못하고 혈관이 터져 버릴 수도 있기에 나는 인내하고 또 인내하며 자신과의 싸움에 몰두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