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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수능력으로 광부에서 신선까지-407화 (407/408)

407화. 인연 그리고 인연… (1)

천신라를 피해 초태해의 작은 섬에 숨어 살던 풍수.

마규보와 목숨을 건 사투 끝에 도망친 운영자.

두 사람은 눈앞의 장면에 말을 잃고 말았다.

소우자가 보낸 수사를 따라 어떤 비경으로 이동했고, 그곳에서 가장 큰, 하지만 소박한 건물로 들어섰다.

그리고 그들이 보게 된 장면은….

“치사하군. 예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어.”

“흥. 마규보 네 녀석 따위가 나에게 견줄 수는 없지.”

“이것들이! 지금 둘이 뭐 하는 거야? 이딴 식으로 할 거야? 빨리 패 안 돌려?”

마루 위에 품(品)자 형태로 둘러앉아 두툼한 담요 위에 앉은 세 사람.

화려한 그림이 그려진 빨간 패를 돌리는 바쁜 세 사람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세 마선.

선마궁의 주인인 천신라, 법문의 수장인 마규보.

그리고 둘에게 윽박지르는 중력괴.

세 마선은 서로를 비웃기도 하며 윽박지르기도 했고, 가끔은 무엇이 웃긴지 키득거리며 투닥거렸다.

“세상에 이게 무슨 그림입니까…. 저 세 사람이 한자리에 있다니….”

특히 풍수는 충격에 빠졌다.

그는 천신라를 피해 도망치기 전, 중력괴와 함께 힘을 합쳐 천신라에게 대항한 적이 있었기 때문.

그랬기에 중력괴가 천신라를 얼마나 증오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데 저렇게 티격태격하며 친우처럼 웃고 떠들고 있다니.

“소문이 사실인가 봅니다. 최 선사 아래에서는 모든 마선들이 자유를 찾고 평등하게 지낸다고 하더니….”

그때, 빨간 패를 돌리고 있던 세 사람의 눈빛에 살기가 오르며 홱 돌아갔다.

“평등? 이놈들과 내가? 불쾌하군.”

“뭐?! 자유? 개뿔.”

“뭐야? 풍수잖아? 혼자 잘도 도망가더니 너 이 새끼 잘 만났다.”

세 마선은 각기 다른 반응을 보이며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려 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곁눈질로 서로의 패를 확인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하던 일 마저 하시지요. 이분들은 오늘 제 손님으로 오신 거니.”

끄응-

그 순간 허공에 틈이 생기며 준혁이 모습을 드러내자, 그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자리에 궁둥이를 붙였다.

다만 천신라는 살짝 다른 반응을 보였다.

그는 준혁의 명령이 마음에 들지 않은 듯 표정이 차갑게 식으며, 무거운 음성을 내뱉었다.

“최 선사. 이번에도 이 두 녀석이 진 빚을 갚아주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정정당당한 승부를 방해하지 말라.”

***

풍수와 운영자의 일을 처리한 준혁은 비경 밖으로 나와 새카만 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최근 들어 시간이 생길 때마다 이런 행동을 반복했다.

새카만 하늘은 마치 공간의 틈이 만들어낸 암흑기처럼 느껴졌기에, 누군가를 떠올리기 적합했다.

“화여….”

소화여가 시공간의 틈으로 사라진 지 오래.

준혁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보았지만, 그녀를 찾을 수 없었다.

심지어 분신이 된 천신라와 마규보, 중괴, 공화룡, 공천귀 등.

천신라가 소화여를 시간과 공간의 틈으로 보내버릴 때 융합했던 권능과 조금이라도 관련 있는 마선들을 모두 동원했음에도 작은 단서조차 얻을 수 없었다.

-미안하군. 하지만 사실대로 말하겠다. 나 역시 알지 못한다. 막 흡수한 힘을 실험해보고자 하는 마음으로 행한 것이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시공간을 움직인 건 아니니까.

이제는 준혁에게 종속됐기에 모든 사실을 밝히는 천신라의 말은 충격이나 다름없었다.

‘분명 방법은 존재한다.’

세상의 이치는 결국 하나로 귀결된다.

사라지게 할 수 있다면, 나타나게 하는 것도 가능해야 정상.

‘아직 내가 찾지 못한 것일 뿐.’

시간과 공간을 움직인다는 것, 이론적으로 불가능한 건 아니었지만, 문제는 하나였다.

경우의 수가 정해지지 않은 무한에 가까운 시간과 또 그만큼의 경우의 수를 가진 공간.

두 가지 힘이 교차하는 특정 지점은 신선에 오른 수사라도, 아니, 대라에 오른 이라고 해도 특정해낼 수는 없는 일이었다.

더 큰 문제는 그러한 시간과 공간 사이에 왜곡까지 곁들어졌다는 것.

“하아…. 결국 방법은 이것뿐이겠지. 무슨 일이 있어도 찾고 말리라.”

깊은 한숨 뒤 결의가 새겨졌다.

그때, 익숙한 인기척이 느껴지며 소우자와 청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청명은 최근 소우자의 정식 제자가 되어 성과 보금자리를 오고 가며 일을 배우고 있었다.

“주군, 준비가 끝났습니다. 헌데…. 정녕 그리하실 겁니까?”

소화여를 찾기 위해 노력하던 준혁은 진산문을 시켜 한 가지 절진을 만들었다.

진 대라멸진이 천기를 움직일 수 있기에, 그것을 이용해 소화여를 찾을 생각.

문제점이라면 준혁이 대라멸진의 사용자가 되는 것이 아니란 것이었다.

오히려 대라멸진에 둘러싸여 그것들을 이겨내며 천기를 훔쳐봐야 하는 상황이었다.

즉, 자칫 잘못하면 생명이 위태로울 수도 있는 일.

아무리 안전하게 변형했다고는 해도 대라멸진은 대라멸진이었다.

“나를 구하기 위해 생긴 일이다. 지금도 그녀는 저 어둠 속 어딘가에서 혼자 괴로워하고 있을 터. 해야만 하는 일이지.”

“허면…. 그분들께 어찌 전해야 할지….”

소우자 역시 자신의 딸을 구하겠다는 준혁을 말리지 못했다.

다만 주서령과 조호랑은 달랐기에, 사실을 알게 된다면 가만있을 리 없었다.

“사실을 감추게…. 깨달은 바가 있어 폐관에 들어갔다고 말하게.”

잠시 후, 준혁이 앞장서길 지시하자 소우자가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안내를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준혁이 사라진 후,

시간은 유수처럼 흘렀다.

마치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

700년 후.

깨달음을 정리하겠다는 말만 남기고 사라졌던 준혁이 돌아오자 마선문이 들썩거렸다.

하지만 준혁은 반가움을 표하는 이들을 뒤로한 체 곧장 마선들을 전부 불러 모았다.

그리고 그중에서 시간과 공간 왜곡. 그리고 기운을 조율하거나 보탤 수 있는 권능을 가진, 혹은 비슷한 능력을 갖춘 마선들만 선별해 비경 밖으로 이동했다.

그렇게 함께한 이가 총 서른여섯.

그리고 그 뒤로, 호기심이 동해 따라오는 마선들과 수사들이 개미 떼처럼 모여들었다.

수많은 수사가 지켜보는 가운데, 준혁은 서른여섯 명의 마선들을 36방 결계에 배치하고 하늘의 흐름을 파악하고 있었다.

준혁이 계산을 마친 듯 주변을 둘러보자 천신라가 물었다.

“그것이 가능하다고?”

“가능합니다. 중요한 건 세 분의 공명입니다.”

천신라와 마규보, 그리고 중괴를 지긋이 바라보는 준혁.

“그렇다면 이제 시간과 공간을 마음대로 조율할 수 있단 뜻인가?”

“이론적으로는 그러나, 특정 시공간을 움직일 순 없습니다.”

“그럼 어떻게 그녀를 데려온다는 것이지?”

모든 준비가 끝나자 천신라가 이해 가지 않는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준혁은 권능의 융합과 공명에 대해 깨달은 바를 상대에게 설명하려다 말았다.

그러기엔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걸 알았기에, 짧게 대답했다.

“그녀만 가능합니다. 시공간의 틈으로 사라지기 전, 삼청조의 조각을 그녀에게 주었으니까요.”

“아! 그런 것인가.”

긴 설명은 필요 없었다.

삼청조가 가진 능력을 이용해 계면을 무시하고 목소리를 전할 수 있었다.

그 말은 목소리 대신 좌표를 얻을 수도 있다는 뜻.

“좋네. 최선을 다하지.”

“자기가 저질러놓고 참나.”

천신라의 믿음직한 대답에 중괴가 핀잔을 섞었다.

잠시 둘 사이에 불꽃이 튀었으나, 준혁이 바로 중재하고 나섰다.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제게서 얼마든지 힘을 가져다 써도 상관없습니다.”

준혁에게 종속된 모든 마선은 원한다면 준혁의 경지인 신선의 힘을 사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수십이 넘는 모두가 그렇게 행동한다면 준혁은 어마무시한 압력과 반작용을 버텨내야 했다. 동시에 신선이 겪을 수 없는 영력 고갈까지.

그랬기에 항상 제한을 두었다.

그들이 가져다 쓸 힘을 진선 수준에서 막아둔 것이다.

‘오늘은 다르지.’

그런 제한을 푼다는 말에 마선들 중 몇몇은 씨익 웃어 보이기까지 했다.

어차피 전투를 이행하는 게 아니었기에 제한을 푸는 게 무슨 상관이냐고 할 수 있지만, 그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소리.

신선 수준의 수행을 유지한다는 건 그만큼 고양감을 만끽할 수 있는 일이었다.

특별한 일이 있을 때만 준혁에게 허락을 받아 수행을 폭발시켰던 이들은 오랜만에 만끽할 고양감에 벌써 가슴이 두근거렸다.

잠시 후, 준혁이 신호를 보내자 서른여섯 명의 마선들이 제각각 권능을 극한까지 끌어올렸다.

우우웅-

그러자 원형으로 둘러싸고 있던 그들 중심부터 공간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흐음.”

그 중압감에 준혁이 신음을 참으며 한 손을 하늘로 치켜들었다.

콰르르릉-

그 순간 그의 손가락 끝에서 뻗어나간 붉은 광선이 하늘 끝에 닿았고,

화아악-

붉은 광선에 직격당한 하늘 끝이 붉게 물들며 천천히 벌어지기 시작했다.

“시작합니다!”

그리고 준혁의 입에서 ‘시작’이란 말이 떨어진 순간.

서른여섯 명의 마선 중 천신라, 마규보가 한발 앞으로 나서며 권능을 하나로 공명시켰다.

지이잉-

직후, 중괴가 공명된 권능을 공간이 일그러질 정도의 중력으로 압축하자.

파앙-

황금빛 입자가 터져나가며 준혁이 만들어낸 하늘의 붉은 틈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그 순간.

“삼청조!!”

준혁의 외침에 한쪽에서 대기 중이던 분홍색 새가 황금빛 입자를 따라 틈 속으로 모습을 감췄다.

“된 건가?”

잠시 후, 준혁이 손을 거두자 붉은 광선이 사라지며 갈라진 하늘이 점차 자취를 감췄다.

동시에 황금빛 입자 역시 별빛처럼 흐트러지며 눈처럼 떨어져 내렸다.

“아니면 실패인가….”

준혁은 성공할 자신이 있었다.

700년간 오직 이 한 가지에만 매달렸고, 깨달음과 이론은 충분했으니까.

하지만 말 그대로 그건 깨달음과 이론일 뿐. 실제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알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나자 주변이 고요하게 가라앉으며 서른여섯 명의 마선들이 내뿜던 기운도 점차 사그라들었다.

웅성웅성-

멀리서는 엄청난 천지 현상이 무얼 하기 위해서인지 모르는 수사들의 소리가 전해졌다.

잠시 후 모든 기운이 사라지고, 허무해 하는 준혁을 두고 마선들은 멋쩍어 입맛만 다시며 눈치를 보았다.

그들의 주인이나 다름없는 준혁의 기분이 나빠지면 식아를 통해 그들 역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휘이잉-

그때, 가라앉은 기운을 휩쓸고 지나가듯 작은 바람이 스쳐 갔다.

그리고.

화아악-

완전히 사라진 줄 알았던 황금빛 입자가 갑작스레 생성되며 한곳으로 모여들더니, 하늘에 황금빛 틈이 벌어졌다.

“오!”

모두의 시선이 그 틈으로 향했고.

쑤욱-

그곳에서 분홍색 새를 품에 안은 여인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튀어나왔다.

“화여!!”

준혁은 여인의 얼굴을 확인하자마자, 빛처럼 변해 그녀에게 다가갔다.

소화여는 사라지기 전과 똑같은 모습으로 매우 안정적인 상태였다.

오랜 시간 동안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시간과 공간의 틈 속에서 배회한 이처럼 보이지 않았다.

아니, 수행도 사라지기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상승해, 규선의 끝자락을 밟고 있었다.

“상공? 설마? 나 돌아온 거야?”

틈에서 빠져나온 소화여는 준혁을 발견하고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하다가 주변에서 느껴지는 시선에 현실을 자각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는 마침내 웃음을 보이며 준혁의 품에 덥석 안겼다.

“상공! 이렇게 다시 보게 될 줄은…. 바라고 바라던 일이 이뤄졌네요. 절 찾아주신 건가요? 고마워요!”

“당연한 것 아니오. 오래 걸려 미안하오.”

준혁은 그녀를 꼬옥 안았다.

하지만 이어지는 한마디에 말을 잃고 말았다.

“아니에요. 딱 맞췄는걸요. 조금만 더 빨랐다면 마선기록방을 제자리에 두지 못했을 거예요.”

“…? 그게 무슨 뜻이오?”

“훗. 제가 무슨 일을 경험했는지 알아요? 들으시면 놀라실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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